강 론 말 씀

2014년 9월 21일 가해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대축일

dariaofs 2014. 9. 21. 00:30

 

                                                                                   (루카 9.23-26)

 

성 정하상 바오로

 

순교자 정약종 아우구스티노와 유조이 체칠리아 성녀의 아들이다. 또한 순교자 정철상 가롤로의 아우이자 정정혜 엘리사벳의 오빠이다.

 

어려서부터 성가정의 신앙을 이어받아 누구보다 열심히 천주교 교리를 실천하는데 노력하였으며 1801년의 신유 박해로 오랫동안 침체되어 온 교회를 재건하는 데 헌신하였다.

 

정하상 성인이 만 여섯 살에 모친과 함께 옥에 갇혔다가 석방되었다.

 

가산이 적몰되고 집이 파괴된 탓에 거처할 곳이 없었으므로 선친의 고향으로 가지만 사람들의 비난과 조소, 핍박을 받아야만 했다.

 

그러나 신앙만은 버리지 않았고 모친의 입에서 나오는 교리를 열심히 배우면서 충실한 하느님의 종으로 성장해 갔다.

 

청년기에는 혼인 같은 세속적인 일에 관심을 두지 않고 오로지 자기 구원에 노력하면서 교회 재건 운동에 참여하였으니 가장 염두에 둔 것이 조선에 성직자를 모셔오는 것이었다.

 

21세에 처음 북경으로 떠나 조선의 뜻을 전한다. 한 동안 중국과의 왕래가 없었으므로 선교사 영입은 정하상의 북경성당 방문을 통해 활기를 띤다. 그러나 초반에는 번번히 실패하고 만다.

 

당시 조선에는 교회를 이끌어 갈 만한 지도자가 없었으므로 젊은 정하상이 모든 일을 도맡다시피 하였는데 순교자의 후손인 이경언 바오로, 현석문 가롤로 등이 그를 도와 활동하였다.

 

나이 29세때 유진길을 만나서 함께 북경 선교사들을 만나고 후에 조신철 가롤로를 알게 되어 도움을 받는다.

 

정하상과 유진길은 교황님께 조선 교회의 실상을 알린 편지를 전하는데 이 편지는 조선 교우들이 교황님께 올린 두 번째 편지이다.

 

이 편지는 포교성성 장관 카펠라리 추기경의 마음을 움직이고 마침내 브뤼기에르 주교가 초대 교구장으로 임명된다.

 

정하상은 21년간 교회의 밀사로 활약하면서 수없이 북경을 왕래하였으며 성직자 영입에 많은 기여를 하였다.

 

1839711일 후동에 체포되어 문초를 받기 시작했으며 앵베르, 샤스땅, 모방 선교사가 순교한 다음날인 922일에 서소문 밖 형장으로 끌려나가 순교하니 그의 나이 44세였다

 

 

유영근 야고보 신부 (대전교구 주교좌 대흥동 본당 보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