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칼리스투스(또는 갈리스토)는 로마(Roma)의 트라스테베레 태생인 로마인이었으나 카르포포루스의 노예로서 회계 일을 맡고 있었는데, 그가 돈을 잃어버리자 도망하였다가 포르토에서 체포되었다. 이때 그는 중노동형을 선고받았다.
여기서 석방된 후에 그는 또 시나고가에서 싸우다가 다시 체포되어, 이번에는 사르데냐(Sardegna) 섬의 광산에서 일하는 중노동형을 받았다. 그는 황제 콤모두스의 아내 마르치아의 요청으로 다른 죄수들과 함께 또 석방되었고, 노예에서도 석방되었다.
199년경에 그는 부제가 되었으며, 아피아 가도(Via Appia)의 묘지들을 관리하는 책임을 맡았고, 이때 그는 교황 제피리누스(Zephyrinus)의 친구이자 고문관이 되었다. 그는 217년에 제피리누스를 승계하여 교황이 되었으나, 교황직에 가장 유력시되던 히폴리투스의 심한 반발을 받았다.
그들은 교리적으로 또 규율적인 입장에서 교황을 공격하여 쉽사리 사그라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불과 몇 년 후 그가 운명함으로써 이 싸움이 끝났다. 4세기경부터 그는 순교자로 공경을 받았는데, 그 당시에는 박해가 없었지만 아마도 폭도들에 의하여 살해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강론 : (루카 11,37-41)
<위선>
"정녕 너희 바리사이들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하지만,
너희의 속은 탐욕과 사악으로 가득하다.
어리석은 자들아, 겉을 만드신 분께서 속도 만들지 않으셨느냐?
속에 담긴 것으로 자선을 베풀어라.
그러면 모든 것이 깨끗해질 것이다(루카 11,39-41)."
이 말씀은 바리사이들의 '위선'을 꾸짖으시는 말씀입니다.
그들은 겉으로는 깨끗하게(거룩하게) 보이는 사람들이었지만,
실제로는 깨끗하지 않은(거룩하지 않은)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느님은 겉과 속을 모두 만드신 분이고,
겉과 속을 모두 보시는 분이기 때문에
하느님을 제대로 섬기려면 겉과 속이 모두 깨끗해야 합니다.
겉만 깨끗하고 속은 안 깨끗하면 하느님을 제대로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속이 깨끗하면 겉은 안 깨끗해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겉과 속이 모두 똑같이 깨끗해야 합니다.)
사전적인 뜻으로는 '위선'은 겉으로만 선한 척 한다는 뜻이지만
바리사이들은 선한 척을 한 사람들이 아니라,
자기들이 선하다고 착각한 사람들입니다.
바로 그것이 문제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위선자라는 것을 몰랐고,
예수님께서 위선자라고 비판하셔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바리사이들의 착각 같은 그런 위선은 위험합니다.
다른 사람들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도 속이는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악한 목적으로 사람들을 속이는 사기꾼들은
자신들이 하는 짓이 악하다는 것을 어느 정도는 의식하고 있습니다.
그런 죄의식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오히려 회개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자기들은 잘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위선자들은
그 착각 때문에 회개하기가 어렵고,
그래서 위선도 사기만큼이나 위험한 일입니다.
그런 점에서 지금 예수님의 말씀은
바리사이들 자신들이 자신들의 '속'을 바로 보고 회개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자선을 베풀어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넓은 뜻으로는 "사랑을 실천하여라."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겉과 속이 모두 깨끗해지는 방법으로 '사랑'을 말씀하신 것은
바리사이들의 신앙생활에 사랑이 없음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사실 그 당시 바리사이들의 신앙생활은 지나칠 정도로 철저했습니다.
그러나 사랑이 없었습니다.
율법 실천과 신심 행위는 철저하게 했지만 하느님에 대한 사랑이 없었고,
불우이웃 돕기는 잘했지만 이웃에 대한 사랑이 없었습니다.
분명히 잘하는 일들이 많았지만 사랑이 없었기 때문에
그 일들은 모두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위선이 되어버렸습니다.
지금 이 내용은 마태오복음에 있는 '최후의 심판'(마태 25,31-46)의 내용과
바로 연결됩니다.
그 내용을 보면, 오른쪽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언제 어떻게 사랑 실천을 했는지를 모르고 있고,
왼쪽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언제 어떻게 사랑 실천을 안 했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이 말을 조금 바꿔서 표현하면, 오른쪽에 있는 사람들은
사랑 실천을 했으면서도 한 줄을 모르고 있고,
왼쪽에 있는 사람들은
사랑 없이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일만 했으면서도
사랑 실천을 한 줄로 알고 있습니다.
'사랑'이란 원래 무한하고 영원한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많이 해도 늘 부족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오른쪽에 있는 사람들이 자기들의 사랑 실천을 모르고 있는 것은
그들이 정말로 '사랑으로' 사랑을 실천했음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왼쪽에 있는 사람들은 뭔가를 하긴 했지만,
사랑으로 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부족하다거나 미흡하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고 있고,
자기들은 할 일을 충분히 다 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평가, 칭찬, 존경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위선자들입니다.
위선자들도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반성하고 회개한다면
진짜로 선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들은 잘못한 것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하던 대로 계속하겠다고 고집을 부리면,
올바른 길을 가르쳐 주어도 가지 않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되고,
자기의 행동이 위선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고치려고 하지 않으면,
그때에는 사기꾼이 됩니다.
지금 예수님의 가르침은 모든 신앙인 개인에게도 해당되고,
교회 전체에도 해당됩니다.
위선자들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교회 전체가 위선에 빠지면 망할 것입니다.
그런데 개인과 교회를 분리해서 따로 생각할 일이 아닙니다.
위선자들만 모여 있으면 그 교회 전체가 위선에 빠질 것입니다.
그래도 제대로 선한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교회 전체가 잘못되는 것을 막을 것입니다.
반대로, 교회 전체가 위선에 빠져 있으면서 고치지 않는다면
원래 위선자가 아니었던 사람도 물이 들어서 위선자가 될 수 있고,
교회 전체가 올바른 길을 가고 있다면,
위선자였던 사람들을 회개시킬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 교회의 모습은? 또 우리 자신의 모습은?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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