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4년 10월 15일 가해 연중 제28주간 수요일(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기념일)

dariaofs 2014. 10. 15. 00:30

 

 

에스파냐 카스티야(Castilla)의 아빌라에서 태어난 성녀 테레사(Teresia, 또는 데레사)는 알론소 산체스 데 세페다와 그의 두 번째 부인 베아트릭스 다빌라 이 아우마다의 딸이다. 성녀 테레사는 아우구스티누스 수녀들로부터 교육을 받았으나, 건강이 나쁘다는 이유로 1532년에 아빌라에 있던 수녀원을 떠나야 했다.

 

오랫동안 수도생활을 갈망해오던 그녀는 1536년에 아빌라에서 카르멜 수녀가 되어 다음 해에 서약하였으나, 건강상의 이유로 1538년에 수녀원을 떠났다가 1540년에 다시 들어갔다.

그녀는 1555년과 1556년 사이에 환시를 보았고 신비스런 음성을 들었는데, 알칸타라(Alcantara)의 성 베드로(Petrus, 10월 19일) 신부의 영적 지도를 받을 때까지는 불안에 떨어야 했다. 성 베드로 신부는 그 모든 환시가 진실한 것임을 그녀에게 확신시켰다.

 

격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그녀는 그 당시의 다소 느긋한 수도생활보다 더욱 엄격한 봉쇄 생활을 원하는 수녀들을 위하여 아빌라에 성 요셉 수도원을 세웠다(1562년).

 

1567년 카르멜의 총장인 루베오 신부는 성 요셉 수도원과 같이 엄격한 규칙을 따르는 다른 수도원을 세우도록 그녀에게 허락하였으므로, 메디노 델 캄포에 제2의 수도원을 세울 때 십자가의 성 요한(Joannes a Cruce, 12월 14일)이란 젊은 수도자를 만났으며, 1568년에는 두루엘로에 남자를 위한 최초의 수도원을 세웠다(이것이 최초의 개혁 카르멜 수도원이다).

성녀 테레사는 에스파냐 전역을 다니면서 카르멜의 개혁을 위하여 노력하였으나, 1575년의 총회는 그녀의 개혁 그룹을 제한하였다. 1580년까지 카르멜 내부의 보수파와 개혁파간의 투쟁은 격심하였다.

 

이윽고 그레고리우스 13세(Gregorius XIII)는 맨발의 개혁파를 독립 관구로 인정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테레사는 수많은 편지와 책을 지었는데, 이 모두는 영성 문학의 고전이 되어 널리 읽혀지고 있다. "자서전"(1565), "완덕의 길"(1573), "영혼의 성"(1577) 등이 특히 유명하다.

그리스도교 역사상 가장 돋보이는 신비가 중의 한 명인 성녀 테레사는 지적이고 빈틈없는 사람이었으며, 매력적이나 깊은 영성을 지녔으므로 차원 높은 관상생활과 더불어 수준 높은 활동생활을 성공적으로 조화시켰던 위대한 성녀이다.

 

그녀는 에스파냐의 알바 데 토르메스에서 선종하였고, 교황 그레고리우스 15세에 의하여 1622년에 시성되었다. 그리고 1970년에는 교황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하여 교회의 여성으로는 최초로 교회학자로 선언되었다. 그녀는 '예수의 성녀 테레사'로 불린다.

 

강론   :   (루카 11,42-46)

 

<드러나지 않는 무덤>

 

"너희는 불행하여라! 너희가 드러나지 않는 무덤과 같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그 위를 밟고 다니면서도 무덤인 줄을 알지 못한다(루카 11,44)."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의 위선을 비판하시면서

'드러나지 않는 무덤'과 같은 자들이라고 그들을 꾸짖으십니다.

구약성경 율법에는, 무덤에 몸이 닿은 사람은

이레 동안 부정하게 된다고 되어 있습니다(민수 19,16).

부정하게 된 사람은 정결 예식을 행하기 전에는 성전 예배에 참석할 수 없습니다.

만일에 정결 예식을 행하지 않는다면 공동체에서 추방당합니다(민수 19장).

 

그런데 '드러나지 않는 무덤'은 무덤이라는 표시가 전혀 없는 무덤이고,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이 부정하게 되는 줄도 모르고 부정하게 됩니다.

물론 무덤이 있다는 것을 아무도 모르고,

그래서 부정하게 되었다는 것도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라면,

아무런 일도 아닌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예수님의 말씀은 구약시대 율법의 정결과 부정에 관한 말씀이 아니라,

하느님의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 없는가? 에 관한 말씀입니다.

바리사이들 같은 위선자들 때문에 잘못된 방향으로 인도를 받아서

하느님 뜻이 아닌 것을 하느님 뜻인 줄로 알고,

하느님 나라가 아닌 곳으로 가면서 그곳을 하느님 나라라고 믿게 된다면,

그것이 바로 '드러나지 않는 무덤' 때문에 부정하게 되어서

하느님 앞에 서지 못하게 되는 일입니다.

 

혹시 사람들 가운데에는

"모르고 지은 죄에 대해서도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

잘못된 인도를 받았다면 인도한 사람의 책임이지

인도받은 사람의 책임은 아니지 않은가?" 라고 물을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잘못 인도한 사람의 죄가 더 큽니다.

그러나 잘못된 인도를 받아서 죄를 지은 사람도 책임을 피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라는 분을 알 기회도, 또 '복음'이라는 것을 들을 기회도 없었고,

그래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전혀 모르는 것 자체는 죄가 아닙니다.

그러나 선행과 악행에 관해서는 몰랐다는 변명이 통하지 않습니다.

 

좋은 예가 "원수를 사랑하여라." 라는 예수님의 계명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계명을 주신 것은 증오와 복수는 악이라는 것,

또 원수를 사랑하는 일은 선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가르쳐 주신 일입니다.

또 자비와 사랑 실천이 하느님의 뜻이기 때문에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원수도 사랑해야 한다고 가르쳐 주신 일이기도 합니다(마태 5,43-48).

 

그런데 당시 사람들은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를 당연하게 생각했고(마태 5,38),

원수를 미워하는 것이 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마태 5,43).

그것은 하느님 뜻을 오해한 것이고, 자기들 마음대로 해석한 것입니다.

원래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는 복수를 허락한 율법이 아니라

정의를 실현하라는 율법이었고, 또 과잉 처벌을 금지한 율법이었습니다.

또 구약성경에서 원수를 미워하라고 한 것은

원래는 우상숭배를 금지한 율법이었습니다.

 

증오와 복수가 선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드러나지 않는 무덤'이고,

그런 주장에 동조하는 사람은 그 무덤 때문에 부정하게 된 사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도, 예수님의 가르침도 몰라서 증오와 복수가 악인 줄 몰랐고,

그게 선인 줄로만 알고 그렇게 행동하면서 살았다고 변명할 수 있을까?

그런다고 해서 악이 선으로 바뀔까?

정말 몰라서 그랬다고 해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 나라는 그런 사람은 아예 들어갈 수 없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 나라에 들어가고 싶다면 그 나라의 기준에 맞춰야 합니다.

악을 행하는 것도 죄이지만 몰랐다는 말만 하는 것도 죄입니다.

 

여기서 '드러나지 않는 무덤'이라는 말과

마태오복음 23장 27절에 있는 '회칠한 무덤'이라는 말을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드러나지 않는 무덤'과 '회칠한 무덤'은

겉과 속이 다른 위선을 비판하는 표현이라는 점에서는 같은 말이지만,

실제 상황을 생각하면,

'드러나지 않는 무덤'이라는 말이 훨씬 더 강한 표현이고, 훨씬 더 엄한 비판입니다.

 

'회칠한 무덤'은 멀리서 보면, 또는 무덤이라는 것을 모르면,

사람들이 그 겉모습만 보고 "아름답다, 멋있다." 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랬다가 가까이 가서 보고 그게 무덤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속았다." 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어떻든 '회칠한 무덤'은 처음에는 사람들을 속여도

결국에는 실체가 드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드러나지 않는 무덤'은 무덤의 존재 자체가 감추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끝까지 그 실체를 모를 수도 있습니다.

바로 그 점 때문에 '드러나지 않는 무덤'은 '회칠한 무덤'보다 훨씬 더 악하고,

훨씬 더 위험합니다.

그러니 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드러나지 않는 무덤'을 오늘날의 표현으로 바꾸면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 정도가 될 것입니다.

보이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것의 존재 자체를 모를 때가 많고,

감염되어도 처음에는 감염된 줄을 모를 때가 많습니다.

나중에라도 감염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치료를 하면 다행인데,

끝까지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최후의 심판 때에 비로소 알게 될 수도 있습니다.

 

겉으로만 그럴듯한 사이비 종교가 '회칠한 무덤'이라면,

교회 내부에 숨어 있는 '이단 사상, 잘못된 성경 해석, 잘못된 교리 해석,

잘못된 신념, 세속적인 풍조, 세속화 성향 등'은 '드러나지 않는 무덤'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