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창기의 교부이자 순교자로 일명 ‘테오포로스’(Theophoros, bearer of God)라고도 불리는 성 이냐시오의 생애는 별로 알려진 것이 없다. 아마도 그는 시리아 출신인 듯하며, 사도 성 요한(Joannes, 12월 27일)의 제자였음이 분명하고 개종자이다. 그는 사도 베드로(Petrus)에 의하여 안티오키아 교회의 제2대 혹은 제3대 주교로 임명되어 축성되었다.
전설에 의하면 성 이냐시오는 40년 동안 교회를 다스리다가 트라야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에 체포되어 로마(Roma)로 이송되었다. 그를 호송하던 배는 소아시아 연안을 거쳐 그리스를 통과하여 마침내 로마에 당도하였다.
그의 배가 정박하는 곳마다 그리스도인들의 환영을 받았으나 호송 책임자는 그를 아주 잔인하게 대하였다고 한다. 그는 그 당시 어느 공식 경기의 마지막 날인 12월 20일 로마의 원형 극장에서 사자의 밥이 되어 장렬하게 순교하였다.
그는 로마로 끌려오는 동안에 여러 통의 편지를 썼고, 스미르나(Smyrna, 오늘날 터키의 이즈미르, Izmir)에 잠시 머무는 동안에서 성 폴리카르푸스(Polycarpus, 2월 23일)에게도 서한을 보내어 그리스도교 신앙을 보전하라고 권고하였다. 또 교회, 결혼, 삼위일체, 강생, 구속 그리고 성체성사에 관한 그의 교육적인 편지들은 초기 그리스도교 저서 가운데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역사적 문헌들이다.
강론 : (루카 12,1-7)
<언젠가는>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너희가 어두운 데에서 한 말을
사람들이 모두 밝은 데에서 들을 것이다.
너희가 골방에서 귀에 대고 속삭인 말은
지붕 위에서 선포될 것이다(루카 12,2-3)."
1) 이 말씀을
앞에 있는 11장의 "바리사이들과 율법 교사들을 꾸짖으시다."와 연결한다면,
언젠가 때가 되면 인간들의 모든 선행과 악행이,
또 인간들이 감추고 있거나 잊어버리고 있었던 모든 일들이,
또 인간들의 은밀한 내면의 모습들과 온갖 부끄러운 모습들이
하느님 앞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날 것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최후의 심판은 인간의 본모습을 최종적으로 드러내는 때인데,
그 전이라도, 즉 죽기 전이라도 적나라하게 드러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죄와 악행을 감추고 숨기는 일은 잠깐 동안은 성공할 수도 있지만,
영원히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2) 이 말씀을 뒤의 8절에 있는 '증언'과 연결한다면,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복음을 선포하라는 명령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즉 복음을 숨기지 말고, 감추지 말고, 드러내고 알리라는 명령입니다.
복음은, 즉 '기쁜 소식'은 온 세상 사람들이 알아야 할 '뉴스'입니다.
모든 신앙인은 그 뉴스를 전해야 하는 '아나운서'입니다.
3) 이 말씀을 표현되어 있는 그대로 읽으면,
"너희가 복음을 전하지 않아도 언젠가는 온 세상에 전해질 것이다."
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해석하면, 이 말씀은
복음 선포 사명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는 신앙인들에게 하시는 경고 말씀이 됩니다.
복음을 제대로 알리지 않고 감추거나 숨기는 것은
탈렌트를 숨기는 것과 같고(마태 25,18),
그래서 하느님 나라가 완성될 때
자기 몫으로 보장되어 있었던 '복음의 은총'을 얻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복음의 은총'이라는 말은
복음을 받아들이고 믿어서 얻게 되는 구원, 생명 등을 가리킵니다.)
교회에서 선교 사명을 강조하면서 복음 선포 활동에 동참하라고 촉구할 때,
"내가 안 해도 다른 사람들이 하겠지." 라고 생각하거나,
"그것은 그 직분을 맡은 사람들이 하면 되는 것 아닌가?"
라고 생각하면서 응하지 않는 것은
자신이 받은 복음을 숨기고 감추는 일과 같습니다.
"내가 안 해도 다른 사람들이 하겠지." 라는 말이 아주 틀린 말은 아닙니다.
이 말처럼 "내가 안 해도" 누군가는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은총은 내가 아니라 그 사람이 차지할 것입니다.
선교활동은 그 직분을 맡은 사람이 하면 된다는 생각은 틀린 생각입니다.
모든 신앙인은 기본적으로 그 직분을 맡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신자들의 기본 의무에는 선교활동의 의무도 들어 있습니다.)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선교사 직책을 맡긴 사람들만 선교사인 것은 아닙니다.
모든 신앙인은 자기가 있는 곳에서 각자 선교사가 되어야 하고,
복음을 증언해야 하고, 선포해야 합니다.
말로도 해야 하고, 또 '삶'으로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복음을 의도적으로 감추고 숨긴 것은 아니더라도
복음 선포에 소극적이거나 무관심하다면,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사실상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예수님을 모른다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안다고 적극적으로 말하지 않는 것은
모른다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조금 바꿔서 표현하면,
자기가 신앙인이라는 것을 적극적으로 말하지 않는 사람은
자기는 신앙인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과 같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경고하십니다.
"사람들 앞에서 나를 모른다고 하는 자는,
사람의 아들도 하느님의 천사들 앞에서 그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루카 12,9)."
이 말씀은, 최후의 심판 때 변호인이 되어 주시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모른다는 말은 관계가 없다는 뜻이기 때문에
"모른다고 할 것이다."는 "관계를 끊어버리겠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과 관계가 끊어지는 것은, 또는 예수님께서 관계를 끊어버리시는 것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음을 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경고만 하신 것이 아니라, 격려의 말씀도 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사람의 아들도 하느님의 천사들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루카 12,8)."
이 말씀은, 최후의 심판 때 적극적으로 변호해 주시겠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변호해 주신다는 말은 사실상 구원해 주시겠다는 뜻입니다.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안다고 증언하는 것은
자신이 신앙인이라고 고백하는 일이고, 복음을 증언하고 선포하는 일입니다.
그 일을 하다가 박해를 받을 수도 있고, 고난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고백과 증언과 선포를 하려면 당연히 신앙인답게 살아야 합니다.
(신앙인답게 살지 않으면 그 고백과 증언과 선포가 거짓말이 되어버립니다.)
세속에서 살면서 신앙인답게 사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래서 신앙인의 '삶' 자체가 고난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도 "예수님께서 나를 알아주신다." 라고 확신할 수 있다면
힘과 용기를 잃지 않고 끝까지 갈 수 있습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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