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4년 10월 18일 연중 제28주간 토요일 (성 루카 복음사가 축일)

dariaofs 2014. 10. 18. 00:30

 

 

루카 복음서와 사도행전의 저자인 성 루카(Lucas, 또는 루가)는 에우세비우스(Eusebius)와 히에로니무스(Hieronymus)에 따르면 안티오키아(Antiochia) 출신의 그리스인 의사였고(골로 4,14), 51년경에 있었던 사도 바오로(Paulus)의 제2차 전교여행 때 그를 수행하였으며, 57년까지 필리피(Philippi)에 머물면서 그곳의 공동체를 지도하였고, 바오로의 제3차 전교여행 때에도 수행한 듯 보인다.

 

또한 그는 바오로가 수감 중이던 61-63년까지 로마(Roma)에 있었으며, 재차 투옥되었을 때에도 함께 있었다. 66년 바오로의 서거 때부터 그는 그리스로 건너간 듯 보인다.

믿을만한 전설에 의하면 그는 예루살렘에 계시던 마리아를 뵈올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마리아의 초상화를 여러 개 만들어 섬겼다고 한다. 그가 언제 어디서 복음서를 기술했는지는 분명치 않으나, 아마도 70-90년 사이에 그리스에서 기록한 듯 하며, 사도행전은 35년부터 63년까지의 교회 성장기를 서술한 것이다. 그는 84세의 일기로 보에시아에서 운명한 듯하지만 순교했다는 주장도 있다. 그는 화가와 의사의 수호성인이며 문장은 소이다.

 

강론   :   (루카 10,1-9)

 

<직업>

 

'루카'는 의사였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베드로, 안드레아, 야고보, 요한은 어부였는데

예수님께서 부르시자 물고기를 잡는 직업을 버렸습니다.

세리였던 마태오도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직업을 버렸습니다.

그러면 의사였던 루카도 예수님께서 부르셨을 때 의사라는 직업을 버렸을까?

 

열두 사도였던 제자들과 사도가 아니었던 제자들의 생활이 조금 달랐을 수도 있고,

그래서 직업을 버릴 필요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루카복음 10장 1절-9절에 있는 '일흔 두 제자를 파견하시다.'를 보면

사도가 아닌 제자들도 직업을 버린 것으로 생각됩니다.

일흔두 제자의 활동은 열두 사도와 별로 다르지 않고,

직업을 유지한 채 그런 활동을 하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경우를 보면, 천막을 만드는 일이 그의 직업이었고,

가끔 그 일을 하기도 했습니다(사도 18,3).

그러나 바오로 사도도 사실상 직업을 버렸습니다.

사도들이 이렇게 직업을 버린 것은 사도 직무에 전념하기 위해서입니다.

먹고사는 일에 매이면 복음 선포에 전념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루카의 경우에도 당연히 직업을 버렸을 것입니다.

물론 선교 활동 과정에서 병자들을 만나면

의사로서 그 사람들을 도와주는 일은 했을 것입니다.

어떻든 루카는 의사라는 원래의 직업을 버리고

복음서와 사도행전을 기록하는 일과 선교 활동에 전념했는데,

사람들의 몸을 고쳐 주는 일 대신에

영혼을 고쳐 주는 일을 하게 된 것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신앙생활과 직업의 상관관계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직자들과 수도자들은 직업을 버리게 되지만,

일반 신앙인들은 직업을 버릴 필요가 없고, 버릴 수도 없습니다.

(성직자들과 수도자들이 직업을 버린다는 말은

생계를 위한 돈벌이를 안 한다는 뜻이지

노동 자체를 안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어떤 부자에게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가난한 이들에게 주고 나를 따라라."

라고 말씀하신 일이 있는데(루카 18,22),

이 말씀은 열두 사도, 일흔두 제자, 또 바오로와 바르나바 사도와 같은

제자들에게 해당되는 말씀이고,

일반 제자들과 신자들에게도 그런 요구를 하신 것은 아닙니다.

 

윤락업처럼 직업 자체가 죄가 되는 경우라면

신앙생활을 위해서 그런 직업은 버려야 합니다.

그러나 그런 예외적인 경우 외에는 모든 직업은 하느님 앞에서 귀천이 없고,

누구든지 자신의 직업으로 하느님 나라 건설에 각자 한 몫을 담당하게 됩니다.

 

종말에 하느님 나라가 완성되어도

인간 세상의 다양한 직업은 그대로 남아 있을 것 같고,

인간들의 다양한 활동은 계속될 것 같습니다.

그 나라가 모든 사람이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모습으로

날마다 성가만 부르고 기도만 하는 나라라고 생각하기는 어렵습니다.

 

일부 사이비 종교가 종말이 곧 온다고 주장하면서

학생들은 학업을 버리고, 직장인들은 직업을 버리고,

한 자리에 모여서 기도만 하는 모습을 볼 때가 가끔 있는데,

종말의 시간을 마음대로 정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지만,

직업과 학업을 버리는 것도 종말을 준비하는 올바른 태도는 아닙니다.

직업과 학업은 버려야 할 죄도 아니고, 악도 아니고, 그 자체로 선(善)입니다.

(아까 말한 대로 윤락업 같은 경우 외에는...)

 

혹시 사람들 가운데에는 먹고사는 일을 걱정하지 말라고 하신

예수님 말씀을(루카 12,22) 인용하면서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려면

먹고사는 일을 초월해야 한다고 주장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걱정하지 말라는 예수님 말씀은 '집착'하지 말라는 뜻이지,

먹고살기 위한 노동을 하지 말라는 뜻은 아닙니다.

또 '초월'이라는 말이 좋은 말이긴 한데,

먹고사는 일을 초월한다는 것은 아예 노동을 안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 말도 역시 집착하지 않는다는 뜻일 뿐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일하기 싫어하는 자는 먹지도 말라고 말합니다(2테살 3,10).

 

우리의 '일터'는 그곳이 어디에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간에

단순히 생계를 위해서 돈을 버는 곳만은 아닙니다.

'일터'도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 곳이고, 복음을 증언해야 하는 곳입니다.

다시 말해서 신앙인은 자신의 직업을 통해서, 또는 직업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고,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하게 됩니다.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합니다.

직업 따로, 신앙생활 따로, 가 아닙니다.

 

예를 들면, 신앙인이면서 정치인인 경우,

신앙인으로서 정치를 해야 하고,

정치를 통해서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고 증언해야 합니다.

다른 직업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정치인들 가운데에는 천주교와 개신교를 모두 포함해서

그리스도교 신앙인이 제법 많은데...

그들의 정치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모습을 보기가 왜 그렇게 어려운 것인지...)

 

교회에서만 신앙인의 모습이 되고, 일터에 있을 때에는 신앙인이 아닌 것 같은,

또는 신앙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 같은 모습이 된다면,

그것은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이고,

자신의 신앙을 부정하는 것과 같습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