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4년 10월 26일 가해 연중 제30주일

dariaofs 2014. 10. 26. 00:30

 

 

율법학자가 예수님께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을 묻습니다. 그 당시 율법에는 613개나 되는 계명이 있었고, 그것이 경중輕重에 따라 구분되었다고 합니다. 그 중에서 어떤 계명이 가장 중요하느냐는 물음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주저하지 않으시고 하느님께 대한 사랑, 이웃에 대한 사랑이 가장 중요하다고 대답하십니다.

 

성서의 말씀에 예사로워지기 쉬운 우리들 대부분은 예수님의 이 대답을 아무런 위화감 없이 받아들여 버리기 쉽지만 한 젊은 구도자가 문제점을 제시합니다. ‘사랑은 계명이 되어도 좋습니까?

 

젊은이가 말하는 대로입니다. 사랑은 속에서 우러나오는 것입니다.

 

스스로의 책임으로 자유롭게 결단한 것이 아니면, 사랑이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누군가로부터 명령을 받는다든지, 무리하게 강요를 받는다든지, 협박을 받은 상태에서 선택하는 것은 결코 사랑이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확실히 ‘계명’이라고 하는 말에는 본인의 자유로운 결단을 속박해 버리는 듯한 강제적인 여운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랑을 계명이라고 하는 성경의 참 의미는 어디 있을까요?

 

이 문제의 대답은 신명기 6장입니다. ‘주 너희 하느님을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사랑해라’ 왜 그래야 하는지 나옵니다.

 

[뒷날, 너희 아들이 너희에게 ‘주 우리 하느님께서 부모님께 명령하신 법령과 규정과 법규들이 왜 있습니까?’하고 물으면, 너희는 너희 아들에게 이렇게 말해줘야 한다.

 

 ‘우리는 이집트에서 파라오의 종이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강한 손으로 우리를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셨다.

 

그런 다음에 우리가 늘 잘되고 오늘 이처럼 우리를 살게 해 주시려고, 주님께서는 이 모든 규정을 실천하고 주 우리 하느님을 경외하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셨다.]

 

신명기는 하느님께서 사람들에게 은총을 쏟으신 갖가지의 구체적인 사실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집트의 노예 상황에서 해방시켜 주신 것도 하느님. 약속의 땅을 내수진 것도 하느님. 모든 것이 하느님의 덕택입니다.

 

인간은 하느님께 빚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께 사랑을 드려야 한다고 하는 이치가 거기에 있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의 역사적 사실에 눈으로 돌리고, 거기에서 흘러 넘쳐 나오는 감사의 마음, 거기에서부터 하느님을 경외하고 소중히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생각이 끓어 올라옵니다.

 

그것이 ‘계명’이라는 표현이 되어 갑니다. 하느님 사랑, 이웃 사랑이 먼저 있어서 지금의 우리들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지금, 사랑하면서 살기로 다짐합니다.

 

유영근 야고보 신부(대전교구 주교좌 대흥동 본당 보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