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4년 11월 24일 가해 연중 제34주간 월요일 (성 안드레아 동락 사제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dariaofs 2014. 11. 24. 06:23

 

 

베트남에 복음이 전해진 것은 1533년경 중국으로 가던 유럽 선교사들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그 후 선교 사업은 간헐적으로 이루어지다가 1615년에 예수회가 이곳에서 정식으로 복음을 전하였다. ‘베트남의 사도’로도 불리는 예수회의 로드(Alexandre de Rhodes) 신부는 1624년 성탄절에 이곳에 도착하여 1645년까지 수만 명의 베트남인들에게 세례를 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1698년까지 베트남에서는 산발적으로 혹독한 교회 박해가 있었다. 18세기에 들어서도 세 번의 박해가 있었고, 19세기에 들어서도 박해가 더욱 잔인해지자 프랑스는 이를 막기 위해 1862년에 베트남을 침략했고, 1883년에 베트남을 식민지화함으로써 박해를 종식시켰다.

 

 이때까지 박해를 받은 이들 중 117명이 1988년 6월 19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베트남의 순교자들로서 시성되었다. 시성된 이들 중에는 96명의 베트남인과 에스파냐 출신의 수도회 소속 선교사 11명 그리고 10명의 파리 외방 전교회 소속 선교사들이 포함되어 있다. 신분별로 보면 8명의 에스파냐와 프랑스 출신 주교들과 50명의 사제들(13명의 유럽 출신과 37명의 베트남 출신) 그리고 59명의 평신도들로 구성되어 있다.

성 안드레아 둥락(Andreas Dung-Lac)은 1785년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세례를 받고 사제가 되어 여러 지역에서 선교와 사목활동을 하였다. 그는 많은 신자들과 함께 박해 중에도 주님을 굳게 믿고 따르다가 1839년 12월 21일 베트남의 하노이(Hanoi)에서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그는 1900년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해 시복되었다. 그 후 1988년 6월 19일 성 베드로 광장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성 안드레아 둥락 사제와 동료 순교자들을 시성하면서 그들의 축일을 11월 24일에 기념하도록 보편교회 전례력에 포함시켰다.

 

강론   :   (루카 21,1-4)

 

<가난한 과부의 헌금>

 

"예수님께서 눈을 들어 헌금함에 예물을 넣는 부자들을 보고 계셨다.

그러다가 어떤 빈곤한 과부가

렙톤 두 닢을 거기에 넣는 것을 보시고 이르셨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을 예물로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지고 있던 생활비를 다 넣었기 때문이다(루카 21,1-4)."

 

여기서 '빈곤한, 가난한'이라는 말은

'무일푼, 재산이 하나도 없는'이라는 뜻이기 때문에

이야기 속의 과부가 자신의 생활비를 전부 다 봉헌했다는 말은

사실상 전 재산을 바쳤다는 뜻입니다.

부자들은 아무리 거액의 돈을 바쳤더라도 여전히 부자로 남아 있지만,

그 과부는 동전 두 닢을 바쳤더라도 전 재산을 바친 것이기 때문에

봉헌한 다음에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만일에 이 이야기 속의 과부가 가난하지 않고 '부유한 과부'였다면,

그래도 그 과부는 전 재산을 다 봉헌했을까?

아마도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예수님께서 그 과부의 마음을 보시고 칭찬하셨기 때문입니다.

'가난했는데도' 다 바쳤다는 점도 중요하지만,

그 과부가 부유했든지 가난했든지 간에 다 바쳤다는 점이 더 중요합니다.

 

이 복음 말씀은 그 과부를 본받으라는 가르침인데,

그러면 우리도 그 과부처럼 전 재산을 봉헌해야 한다는 뜻인가?

가지고 있는 것을 모두 바치고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가난뱅이가 되라는 뜻인가?

모든 신앙인이 그 과부처럼 전 재산을 다 바치는 일이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 일인가?

사람들의 실제 현실을 무시한 '이상론'이 아닌가?

 

우리는 이것이 막연한 이상론이 아니라

실현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교회의 역사에서 봅니다.

"신자들의 공동체는 한마음 한뜻이 되어,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 그들 가운데에는 궁핍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땅이나 집을 소유한 사람은 그것을 팔아서 받은 돈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놓고,

저마다 필요한 만큼 나누어 받곤 하였다(사도 4,32.34-35)."

 

초기 교회의 신앙인들은 소유를 포기하고 전 재산을 교회에 봉헌함으로써

모두가 다 재산이 하나도 없는 가난뱅이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에는 '궁핍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모두가 가난해짐으로써 모두가 부자가 된 것입니다.

이렇게 교회 역사에서 이미 했었던 일인데 또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사도들은 처음에 예수님을 따를 때 실제로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루카 5,11).

그들이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모든 것을 버렸다는 것은

예수님께 모든 것을 바친 것과 같습니다.

자기의 소유물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까지도.

 

예수님께서는 어떤 부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루카 18,22)."

가진 것을 다 가난한 이들에게 주라는 말씀은

사랑을 실천하라는 뜻이기도 하고,

'사랑'이신 하느님께 가진 것을 다 바치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바친 것을 하느님께서 가져가시는 것은 아닙니다.

초기 교회의 모습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우리가 하느님께 바치는 일은 실제로는 이웃과 나누는 일이 됩니다.

 

(교회에 헌금을 바치는 일은

신자들은 가난해지고 교회만 부자가 되는 일이 아니라

모든 신자들이 함께 부자가 되는 일입니다.

그게 실감이 잘 안 나긴 하지만,

그래도 진짜로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가 사랑을 실천하면 그 보상으로 '하늘의 보물'을 받겠지만,

그 전에 '사랑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일 자체도 '하늘의 보물'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신 분이기 때문에(1요한 4,8) 사랑은 곧 하느님입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 하느님께서 계시고,

하느님께서 계시는 곳이 하늘나라이고,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일 자체가 하늘의 보물입니다.

 

인간 세상의 현실을 보면,

소유욕, 집착, 이기심 등은 부자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있습니다.

가진 것이 많은 부자들은 잃지 않으려고 집착하고,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은 가지려고 집착할 때가 많습니다.

가진 것이 동전 두 닢뿐인 과부가 그것을 모두 바친 것은

재물에 대한 집착을 버린 모습입니다.

(따라서 그 과부가 '부유한 과부'였더라도 예수님의 가르침이 바뀌지 않고,

복음 말씀의 제목을 '가난한 과부의 헌금'이라고 하지 않고

그냥 '어떤 과부의 헌금'이라고 해도 상관없습니다.)

 

모든 신앙인이 성직자나 수도자가 될 수는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모든 재산을 버릴 수가 없는 것도 현실입니다.

그러나 집착을 버리는 일은 신앙인이라면 당연히 실천해야 할 일입니다.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들은 이승에서의 인생을 살기 위해서

편의상, 그리고 일시적으로(임시로) 가지고 있는 것일 뿐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잠시 우리에게 맡겨 주신 것입니다.

그것들을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착각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