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시아 리키아(Lycia)의 파타라(Patara)에서 태어난 성 니콜라우스(Nicolaus, 또는 니콜라오)는 집안이 매우 유복하였다. 그가 성덕과 신심 그리고 기적 등으로 유명하게 된 것은 미라의 주교 때였다고 한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동안에는 그 역시 신앙 때문에 투옥되었으나 다행히 석방되었고, 아리우스(Arius) 이단을 단죄한 니케아(Nicaea) 공의회에도 참석하였다.
그의 생애는 거의 알려진 것이 없지만, 그의 뛰어난 행적으로 인한 전설과 비공식 전기 등은 매우 아름답게 채색되어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는 파타라 출신인데 돈 많은 양친이 사망하면서부터 죄인들의 회개를 위하여 헌신함과 동시에 자신의 막대한 유산을 가난한 사람들과 자선활동을 위하여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그의 행적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는 어느 가난한 세 처녀에 관한 것이다. 그녀의 부친이 딸들의 지참금 문제에 얽혀 사랑스런 딸들을 매춘부로 넘겨야 할 곤경에 처했음을 알고, 니콜라우스는 세 번에 걸쳐 그 집에 금이 든 자루 세 개를 몰래 넣어 주었고, 마침내 이 세 자매는 정당하게 혼인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이교 신전을 부수었으며, 지방 관리인 에우스타시우스(Eustasius)를 몰아세워서 무죄한 죄수 3명을 사형 직전에 직접 구출했는가 하면, 콘스탄틴 황제의 꿈에 나타나서 무죄한 정부관리 3명의 무죄 사실을 알려 그들이 석방되게 했다는 등 수많은 전설이 전해온다.
이러한 행적으로 인해 그의 명성은 전 서방에 퍼져나갔고, 1087년에 그의 유해를 바리(Bari)로 이전하여 경당을 세우자 유럽 최대의 순례지가 되기도 하였다. 그래서 그는 흔히 바리의 성 니콜라우스로 불린다. 죄수들과 어린이들의 수호성인인 그는 또한 리키아 연안의 뱃사람들을 극적으로 구출했던 사실 때문에 폭풍우에 갇힌 뱃사람들의 수호성인으로서 공경을 받고 있다.
그리고 성탄절 때 어린이들에게 성 니콜라우스의 이름으로 선물을 주는 관습은 아주 오래전부터 시작되었다. 성 니콜라우스는 네덜란드에서는 '신터 클레스'(Sinter Claes), 영어권에서는 '산타 클로스'(Santa Claus)로 불려졌다. 그러나 주의할 사실은 산타 클로스의 모습은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아니라, 독일의 신인 토르(Thor)에 근거하는 것이다.
이 신은 겨울과 유울 로그(Yule Log, 성탄전야에 때는 큰 장작) 그리고 크랙커와 그나셜이라 부르는 염소들이 끄는 마차와 관련되는 토속적인 신인 것이다. 이것은 니콜라우스를 토착화시킨 형태라고 보는 것이다. 어쨌든 성 니콜라우스는 그리스, 시칠리아(Sicilia), 풀리아(Puglia), 로렌(Lorraine) 그리고 러시아의 수호성인이기도 하다.
강론 : (마태 9,35-10,1.5ㄱ.6-8)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예수님께서는 모든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면서,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마태 9,35)."
"가서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태 10,7-8)."
지금 교회가 하는 일은 예수님께서 지상에서 하셨던 그 일입니다.
복음을 선포하고, 자비와 사랑을 베풀고, 마귀들을 쫓아내고...
이것은 '교회' 라는 공동체의 임무이기도 하고,
교회의 구성원인 신앙인들 각 개인의 임무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에게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는 일은
하느님 나라의 잔치에 사람들을 초대하는 일과 같습니다.
"큰길과 울타리 쪽으로 나가 어떻게 해서라도 사람들을 들어오게 하여,
내 집이 가득 차게 하여라(루카 14,23)."
신앙인은 그 초대를 받아들여서 잔치에 참석하는 사람이기도 하고,
동시에 사람들을 잔치에 초대하는 일꾼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에게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는 일은
하늘나라에 '함께' 가자고 권유하는 일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잔치에 사람들을 초대하는 일은
그 잔치에 '함께' 참석하자고 권유하는 일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가라고 권하면서 자기는 가지 않는다면,
그것은 가지 말라고 말리는 것과 같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잔치 음식을 먹으라고 권하면서 자기는 먹지 않는다면,
그것은 먹지 말라고 말리는 것과 같습니다.
복음을 선포하려면 자기 자신이 먼저 복음화되어 있어야 하고,
신앙인으로서 제대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복음을 선포하는 것은
거짓말을 하는 것이고, 그래서 결국 거짓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 되어버립니다.
그것은 복음을 모독하는 큰 죄가 됩니다.
(복음 자체는 진짜이지만, 선포하는 사람의 '삶' 때문에
복음을 듣는 쪽에서 거짓 복음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신앙인은 예수님의 사랑과 자비를 받은 사람이기도 하고,
사람들에게 그 사랑과 자비를 베풀어야 하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에게서 받은 사랑과 자비를 사람들과 나누어야 하는 사람이라고
바꿔서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을 의무라고 생각할 때가 많은데,
신앙인으로서 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의무이지만,
신앙생활을 충실하게 하려고 노력하다 보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기 자신이 '기쁨'으로, 저절로 하게 되기 때문에 의무가 아닙니다.
사랑은 나눌수록 커지는 '기쁨'입니다.
더 많이 사랑을 실천할수록 자기가 받는 사랑도(기쁨도) 더 많아집니다.
만일에 사랑을 받기만 하고 나누지 않으면 받은 사랑도 잃게 될 것입니다.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마태 25,29)."
이 말씀의 '가진 자'는 '나누는 자'로,
'가진 것이 없는 자'는 '나누지 않는 자'로 바꿔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누어 먹으면 모두에게 보약이 되지만,
굶주리는 사람을 외면하고 혼자서만 먹으면 독약이 됩니다.
신앙인은 예수님 덕분에 마귀에게서 벗어난 사람이기도 하고,
마귀들을 쫓아내기 위해서 예수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마귀'는
넓은 뜻으로 '악한 세력', 또는 '악'으로 생각하는 것이 옳습니다.
신앙인은 악을 물리치기 위해서 싸우는 사람입니다.
'악'은 마귀들뿐만 아니라 인간 세상의 온갖 고통을 다 포함하는 말입니다.
우리는 전쟁을 막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고,
전염병과 질병을 퇴치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고,
재난을 극복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고,
독재자를 물리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고...
이기심과 탐욕과 분열을 물리치고 극복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세상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세상의 일을 외면하고
복을 비는 기도만 하는 것은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울고 있는 사람과 함께 울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예수님 없는 곳에서 혼자 울게 될 것입니다.
"저 쓸모없는 종은 바깥 어둠 속으로 내던져 버려라.
거기에서 그는 울며 이를 갈 것이다(마태 25,30)."
이 말씀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는
자기 자신에 대한 후회와 절망을 나타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태 10,8)."
라고 명령하십니다.
교회의(신앙인의) 복음 선포와 사랑 실천은 '사업'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사랑은 손익계산을 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대차대조표를 만들지 않습니다.
사랑은 비교하지 않고, 경쟁하지 않고, 우열을 가리지 않습니다.
세속의 눈으로 보면 사랑은 아무것도 아닌 것일 수 있지만,
예수님의 눈으로 보면 사랑은 '모든 것'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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