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4년 12월 8일 나해 한국 교회의 수호자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

dariaofs 2014. 12. 8. 01:30

 

                                                                                    (루카 1,26-38)

 

<마리아>

 

마리아의 '원죄 없이 잉태되심'은

잉태 전에 이미 하느님께서 마리아를 선택하셨고

특별한 은총을 베풀어 주셨음을 나타냅니다.

또 이것은 하느님의 구원 사업이

'처음부터' 계획되고 진행된 일이라는 것도 나타냅니다.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셔서 사람들을 구원하게 하신 일은

즉흥적이고 우발적인 일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마리아의 노래'에 있는 "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시어(루카 1,54)" 라는 말과

'즈카르야의 노래'에 있는

"당신의 거룩한 예언자들의 입을 통하여 예로부터 말씀하신 대로(루카 1,70)"

라는 말은, 하느님께서 '처음부터' 인간의 구원을 계획하셨음을 나타냅니다.

'기억하시어' 라는 말은 잊어버리고 있다가 갑자기 생각하셨다는 뜻이 아니라,

계속 생각하셨고, 계속 보살피셨다는 뜻이고,

'예로부터 말씀하신 대로' 라는 말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구원 계획을 사람들에게 계속 알려 주셨고,

준비시키셨음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마리아의 잉태 전부터 특별한 선택과 은총을 주신 일은

하느님께서 하신 일이고, 마리아 쪽에서 한 일은 아닙니다.

(잉태되기 전에, 또는 잉태된 다음에도,

태아 상태인 마리아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일에 관해서

우리 입장에서는 하느님께서 하신 일을 찬양하고 공경하기는 해도

마리아를 본받자는 말을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본받아야 할 것은

그렇게 특별한 선택과 은총을 받았던

마리아의 지상 생애 동안의 '응답의 삶'입니다.

 

마리아가 자신이 하느님의 특별한 선택과 은총을 받았음을 알게 된 것은

가브리엘 천사를 만났을 때인데,

그때부터 '응답하는 삶'을 살았던 것은 아니고,

그 전부터 그렇게 살았다고 우리는 믿습니다.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는 가브리엘 천사의 말은(루카 1,28)

'지금' 함께 계신다는 뜻이 아니라 '언제나' 항상 함께 계신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 말은 마리아 쪽에서도 그렇게 항상

하느님과 함께 살았음을 나타내는 말이기도 합니다.

 

하느님은 언제나 사람들과 함께 계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마리아와 함께 계셨다는 것 자체가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마리아 쪽에서 하느님과 함께 살았다는 점입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몸이 함께 있다고 해서

함께 사는 것, 또는 함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온 마음으로 사랑하고, 일치를 이루고, 모든 일을 함께 해야

참으로 함께 사는 것, 또는 함께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하느님과 함께 살았다고 기록되어 있는 첫 번째 인물은

창세기에 나오는 '에녹'입니다.

"므투셀라를 낳은 다음, 에녹은 삼백 년을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면서

아들딸들을 낳았다(창세 5,22)."

"에녹은 하느님과 함께 살다가 사라졌다.

하느님께서 그를 데려가신 것이다(창세 5,24)."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사람들과 함께 사셨지만,

제대로 하느님과 함께 살았던 사람은 에녹이 처음입니다.

이것은 에녹 이전의 사람들은 하느님과 함께 살지 않았다는 뜻이 됩니다.

하느님과 함께 살았던 두 번째 인물은 '노아'입니다(창세 6,9).

 

에녹은 첫 번째로 '승천'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의 승천은 하느님과 함께 살았던 '삶'의 결과입니다.

바로 그 점에서 마리아와 비슷합니다.

하느님과 함께 살았던 마리아가 승천한 것은 당연한 결과라는 것입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를 "은총이 가득한 이" 라고 부른 것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루카 1,28).

만일에 이 말을

하느님께서 마리아에게만 은총을 가득히 주셨다는 뜻으로 해석한다면,

그것은 하느님께서 마리아를 '편애'하셨다는 뜻이 됩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편애하시는 분이 아니라,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똑같은 사랑을 주시는 분입니다(마태 5,45).

하느님은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하시는 분이 아닙니다(마태 5,46).

 

따라서 "은총이 가득한 이" 라는 말은

마리아가 하느님의 은총에 '온전히 응답하는 삶'을 살았음을 나타냅니다.

하느님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은총을 가득히 주시는 분인데,

그 은총을 가득히 받는 사람도 있고,

덜 받는 사람도 있고, 안 받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을 '극진히' 사랑하셨고(요한 13,1.공동번역),

그래서 최후의 만찬 때에 그들의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그 자리에는 배반자 유다도 있었고, 예수님은 그의 발도 씻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다도 '극진히' 사랑하셨지만,

유다 자신이 그 사랑을 받지 않았고, 배반했고, 스스로 떠났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자신의 중요한 협력자(또는 제자)였던

'데마스' 라는 사람에 관해서 이런 기록을 남겼습니다.

"데마스는 현세를 사랑한 나머지 나를 버리고 테살로니카로 가고...(2티모 4,10)"

현세를 사랑해서 바오로를 떠났다는 말은

하느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해서 사도 직무를 버렸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배반자 유다나 데마스는

가득히 주시는 은총을 자기들이 스스로 안 받음으로써 못 받게 된 사람들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