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 모세오경 - 구약성경입문 -
Ⅰ. 개관
1. 서명
구약성경의 첫 번째 다섯 권에 대한 서명은 다양하다. 유다인들은 율법(律法)을 의미하는 토라(הꙜוֹתּ: tôrāh)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집회서의 머리말에서 이에 대한 첫 성서적 증언을 찾아볼 수 있다(집회서 머리말 1절; 2역대 23,18; 느헤 8,1-2참조). 한편 희랍어 역본인 Septuaginta는 Πεντάτευχος(Pentateuchos)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이 용어는 πέντε(pente: 다섯)와 τεύχος(teuchos: 본래 ‘도구’를 뜻하나 파피루스로 된 두루마리를 넣어 두는 ‘상자’를 가리키기도 하고 후에는 ‘책’이라는 의미를 지니게 됨)의 합성어로서 ‘다섯 권으로 된 책’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이 외에도 여러 가지 명칭이 있으나 그 가운데 ‘모세의 율법’이라는 명칭이 가장 일반적이다. 모세는 이스라엘 최대의 입법 대리자였으며 하느님의 법(말씀)을 백성들에게 전해준 중재자였기 때문일 것이다.
모세오경 각 권의 명칭에 있어서 유다교는 각 권의 첫 단어 또는 첫 구절 가운데 중요 단어를 따서 서명(書名)으로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제1권은 תיꚄאꙟꔶ(berē'šît), 제2권은 תוֹמꚉ הꗦꔞꕵ(we'ēlleh šemôt), 제3권은 אꙜꙓꗁꕰ(wayyiqrā'), 제4권은 רꔰꕎꗬꔶ(bemidbar), 제5권은 םיꙞꔧꕖꕘ הꗦꔞ('ēlleh haddebārîm)이라 불린다. 그러나 Septuaginta는 각 권의 특수 내용에 따라 제1권을 Γένεσις(Genesis: 創世記), 제2권을 Ἒξοδος(Exodos: 脫出記), 제3권을 Λευτϊκόν(Leuitikon: 레위記), 제4권을 Ἀριθμοί(Arithmoi: 民數記), 제5권을 Δευτερονόμιον(Deuteronomion: 申命記)이라 부르며, Vulgata는 물론 현대어 번역본들 역시 이 서명을 그대로 따른다.
여기서 한 가지 유의할 점은 토라가 처음부터 이처럼 다섯 권으로 나뉘어 편집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원래 한 권으로 되어 있었으나 보관상의 어려움으로 내용을 존중하면서도 결국 분량에 따라 인위적으로 구분되었을 것으로 본다. 만약 순수 내용에 따른 구분이었다면 창세기 1-11장(세상과 인류의 기원), 창세기 12-50장(성조시대), 탈출기 1-18장(이집트 탈출), 탈출기 19장-레위기-민수기-신명기 34장(시나이 출발에서 약속의 땅 도착 직전 모세의 죽음까지) 이렇게 구분하는 것이 보다 논리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2. 법과 역사
모세오경 속에서 우리는 갖가지 이야기[史話] 본문들과 법(法)에 관한 본문들을 대하게 되나, 이 두 유형의 작품들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금송아지 사화’(탈출 32-34)는 약속의 땅을 향한 출발명령과 계약조문으로 끝맺음하며, 코라와 다탄과 아비람의 ‘반역 이야기’(민수 16-17)는 사제직 수행을 위하여 아론(Aaron) 가문이 어떻게 선택되고 있는가를 설명해 주고 있다. 또한 창세기가 일반적으로 많은 사화를 담고 있고 레위기가 법률 부분에 많은 자리를 할애하고 있다 하더라도, 할례법(割禮法)을 명시하고 있는 곳은 창세기 17장 9-14절이며 아론을 사제로 임명하는 사화를 내포하고 있는 곳은 레위기 8-9장이다. 이 밖에도 여러 가지 예를 찾아볼 수 있으나, 아무튼 모세오경을 읽어나감에 있어 우리가 숙지해야 할 사항은 법에 관한 부분들과 역사에 관한 부분들을 따로 분리해서 보는 것은 타당치 못하다는 점이다. 오로지 하나의 법만이 있을 뿐이며 이는 동시에 하나의 역사이다. 하느님께서 무상으로 선택하시고 이끌어 가신 이스라엘 백성의 법이며 역사 그것이 바로 토라의 내용인 것이다.
3. 전승(傳承: Traditio)
이러한 법과 역사는 사실 부정할 수 없는 조화를 이루고 있다. 다섯 권의 책은 선택, 계약, 사랑, 신실성(信實性), 희망 등과 같은 기본주제를 중심으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모세오경의 마지막 편집자의 손을 거쳐 이루어진 본 작품은 문학비평사(文學批評史)가 말해주고 있듯이 오랜 역사를 걸쳐 서서히 준비되어 온 작품이다. 모세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는 아주 오래된 전승들이 있었을 것이며, 이러한 전승들이 여러 시대의 성경저자의 손에 의해 수집되고 기초될 때까지 대개 구전으로 전달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기초 과정들이 앞선 다음에 모세오경이 완성되었음을 인식한다면, 최후편집자인 5세기의 에즈라는 필경 이스라엘 백성들의 다양한 전승들을 수집하고 보완하고 정리함으로써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와 같은 훌륭한 작품을 집대성했다는 사실도 쉽게 인정할 수가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전체적인 조화를 인정한다 하더라도 작품을 읽어 나가면서 문학적인 견지에서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들을 가끔 만나게 된다. 우선 누구든 쉽게 발견해 낼 수 있는 문제가 서로 비슷한 내용들이 여러 번 되풀이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천지창조(창세 1,1-2,4a; 2,4b-25), 이집트 여인 하갈을 떠나보내는 사건(창세 16,3-14; 21,9-19), 십계명(탈출 20,1-17; 신명 5,6-21), 이스라엘 축제(탈출 23,14-17; 34,18-26; 레위 23,4-41: 신명 16,1-17) 등이다. 물론 이처럼 동일한 사건을 다루고 있다 하더라도 각개 사화는 독창적인 면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단순한 반복현상으로 보기는 힘들다. 이에 관해서는 성조들이 자신의 아내를 여동생인 양 꾸미고 있는 사화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창세 12,10-20; 20,1-18; 26,6-11). 또는 동일한 내용의 사화가 앞서의 예에서처럼 뚜렷하게 구분되어 나타나지 않고 하나의 사화 속에 통합되어 나타날 때도 있으니, 그 좋은 예가 노아의 홍수사화이다(창세 6,5-9,15).
이러한 문학현상에 대한 문제 해결은 작품 안에서 서로 다른 문체를 선별해냄으로써 가능해진다. 그 중 가장 간단한 방법은 하느님의 서로 다른 호칭을 분류하는 방법이다. 특히 동일한 사건을 내용으로 하고 있는 사화 안에서 하느님의 이름이 서로 달리 불릴 때, 그 사화의 기초자료[전승]가 분명히 다름을 쉽게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아브라함이 아내인 이집트 여인 하갈을 떠나보내는 사건을 다루고 있는 두 개의 사화(창세 16,3-14; 21,9-19)에서 하느님은 분명히 다르게 불리고 있다. 첫 번째 사화에서는 ‘야훼’로, 두 번째 사화에서는 ‘엘로힘’으로 기술되어 있다.
사실 이와 같은 문학현상을 제일 처음 포착하고서 그 문제 해결을 시도한 이는 불란서인 의사(醫師) 아스트뤽(Jean Astruc)이라는 사람이었다(1753). 그는 하느님의 호칭에 따라 A전승(지금의 엘로힘계 전승과 유사)과 B전승(지금의 야훼계 전승과 유사) 양대 전승을 구별해 낸다. 아스트뤽은 누군가가 모세오경을 집대성함에 있어 이 양대 전승을 기초로 했을 것이며 그 밖의 내용은 다른 10개의 소전승을 기초로 해서 작품을 엮어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아직 미흡하기는 했어도 모세오경 문학비평사의 발판을 마련한 인물로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이후 연구는 수많은 성경학자에 의해 끊임없이 지속되었고, 마침내 19세기 말 Julius Wellhausen의 등장으로 사대전승체제가 확립되기에 이른다: 야훼계(J), 엘로힘계(E), 신명기계(D), 사제계(P).
이 사대전승은 각각 문학적인 특성을 보여 준다. 야훼계 문체는 구체적이고 수식적이며 생동감이 넘치고 순박하다. 특히 하느님의 모습이 우리 인간과 똑같은 모습으로 묘사될 때가 많다(예: 창세 3,8; 7,16 등). 이와는 달리 엘로힘계 문체는 보다 영적이다. 하느님과 인간의 거리를 뚜렷이 하며, 때로는 두려운 존재로서 하느님을 묘사하기도 한다. 하느님은 당신을 뜻을 전하기 위해 종종 천사를 보내신다(예: 창세 22,11-18; 32, 23-33 등). 이는 야훼계와는 달리 순수 인간적 모습을 빌어 하느님을 묘사하기를 회피하기 위함이라고 볼 수 있다. 신명기계 문체는 역설적이며 틀에 박힌 어법을 풍부하게 보여 준다: “들어라, 이스라엘”, “네 하느님 야훼”, “젖과 꿀이 흐르는 땅” 등. 은혜로이 주어진 선택(electio)과 하느님의 사랑을 강조하는 데 부심한다. 끝으로 사제계 전승은 대개 종교법에 관한 부분을 많이 담고 있으므로 문체는 비교적 딱딱하며 고루한 편이다. 반복어법이 많고 숫자, 족보, 예배 등에 대해 편견에 가까울 정도로 관심이 많다.
4. 사대전승의 종교적 가치
1) 야훼계 전승
야훼계 전승 속의 하느님은 인간이 순종하지 않더라도 인간과 함께 생활하시는, 인간을 위해 끊임없이 역사(役事)하시는 하느님이다. 그분은 노아에게 은총을 베푸시는 분이며,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와 그의 후손들에게 번영을 약속해 주시는 분이다. 또한 인간의 관습과는 반대로(초월해서) 당신이 원하는 사람을 택하시는 분이며, 약속과 계약에 충실하신 분이다. 인간이 하느님께 응답할 수 있는 방법은 성조시대의 보잘것없는 예배로부터 시작해서 좀 더 발전된 양상을 띤 모세 시대의 예배에 이르기까지 모든 예배를 통해서이다. 이것이 바로 야훼계 전승이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는 기본 주제들이며, 본 전승의 신인동형동성사상(神人同形同性思想)은 인간으로 하여금 하느님께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야훼계 전승은 솔로몬 왕정(970-930) 후반기에 남 유다에서 탄생한 전승으로 본다.
2) 엘로힘계 전승
엘로힘계 전승은 북 이스라엘의 예언운동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계약은 하나의 관계 정립으로서 호렙(Horeb) 산에서 체결되며, 하느님은 당신의 말씀과 의지를 인간에게 전해주시므로 인간은 오로지 이에 복종해야 한다(탈출 24,7). 아무도 죽음을 각오하지 않고서는 하느님을 만날 수 없으나 하느님은 계명을 통하여 당신을 알게 해 주시며, 그분은 또한 사막에서와 마찬가지로(민수 12,13-14) 호렙산에서(탈출 32,14), 이방민족에게 있어서처럼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도 회개하는 죄인들을 용서하시는 분이다(창세 20,5-6). 모세와 같은 예언자들을 통하여 당신 백성을 이끄시며 모세의 얼은 하느님의 뜻에 따라 다른 이들에게도 통교된다(탈출 18; 민수 11). 그러나 엘로힘계 전승은 왕정제도에 대해서는 소극적이거나 비판적인 태도를 지닌다.
3) 신명기계 전승
사회적 격동기(BC 7세기 말)에 탄생한 신명기계 전승은 성조들의 하느님이며 계약의 하느님이신 야훼께서 온전한 자유로 한 백성을 선택하시며, 이 백성에게 ‘땅’과 ‘제도’(왕정제도, 사제제도, 판관제도, 예언제도 등)를 선사해 주고 계심을 강조하고 있다. 그분은 넘치는 사랑으로 당신 약속에 충실하신 분이며(신명 6,3), 이 사랑에 응답하기 위해서 이스라엘은 사람 가까이 있으며(30,14) 또한 이방민족들까지도 감탄하는(4,6) 율법을 준수해야만 한다. 모세에 의해서 그리고 그 이후 사제들과 예언자들에 의해서 전승, 발전, 해석되는 이 율법은 이스라엘 백성의 삶의 근본, 즉 생명과 기쁨의 원천이 된다.
4) 사제계 전승
사제계 전승의 하느님은 참 생명이 온 누리에 전파되기를 원하시는 우주의 하느님이며 인간을 당신 모상대로 창조하신 하느님이다. 노아 안에서 인류를 구원하시며 그와 계약을 맺으신다. 세상 모든 민족 신앙의 선조로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시며 그와도 계약을 체결하신다. 모세와 함께 예배행위를 체계화시켜 나가시며, 아론과 그의 가문이 성지순례, 축제, 하느님의 영광이 거하시는 거룩한 장소인 성전에서의 희생제물 봉헌 등을 책임지는 사제직을 맡는다. 이 전승에서는 하느님의 초월성이 그 어느 전승들보다 두드러지게 강조되며, 당신 성소에 현존하시는 하느님은 백성에게 삶을 선사해 주시는 분으로 계시된다.
Ⅱ. 모세오경 각권
1. 창세기
창조와 구원을 주제로 하는 창세기는 기원사(1-11)와 성조사(12-50) 두 부분으로 구분되는 작품으로서 각 부분은 본디 독립적으로 구성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이기에 나누어 살펴보기로 한다.
1) 기원사
기원사(1-11장)는 문학유형사적인 면에서 민담(民譚)에 속하는 여러 사화들을 담고 있으며, 이 민담 전승 속에서 인간이 몸 붙여 살 세상의 탄생은 경작(耕作)이라는 관점에서 서술되고 있다. 인간(םꕇאָ)은 땅(הꗪꕇꔣ)을 경작하도록 운명지어진 존재로 묘사되고 있기 때문이다(2,15; 3,17-19.23). 에덴동산에서 하느님의 명을 어김으로써 인간은 땀을 흘려야 하는 고통을 감수하게 되었으며(3,14-19), 카인 저주는 경작지와 하느님으로부터 카인(과 그의 후손)을 떼어놓기에 이른다(4,11-12.14. 16). 천상적 존재들과 여인들의 관계(6,1-4)는 인간의 수명을 한정하는 결과를 낳게 되며(6,3), 끝으로 하느님은 인간의 언어를 “뒤섞어 놓고” 그들을 흩어버림으로써 인간의 야욕에 대응하신다(11,1-9).
그러나 1장 1절-2장 4a절과 9장 1-17b절, 이 두 사화는 민담과 뚜렷하게 구분되는 작품으로서 서사체 사화가 아니라 깊이 있는 신학적 진술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7일’이라는 도식 위에 엄격한 서열을 따라 피조물들의 창조를 체계적으로 기술하고 있으며 대홍수로 인한 혼란 이후 창조에 대한 진술을 다시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두 사화는 또한 언어나 신학에 있어서 창세기 17장과 야곱 사화의 사제계 문헌과 밀접한 관련성을 보여 준다.
5장, 10장, 11장 10-32절의 족보 목록은 기원사의 세 번째 요소를 이룬다. 이 목록은 아담(5,3)으로부터 노아(5,29)와 그의 후손 셈(5,32; 11,10)을 지나 아브라함(11, 26-32)에 이른다. 이 목록은 또한 ‘제민족 목록’과의 연계 하에 당시 잘 알려져 있던 인간세계 전체를 투영한다(10장).
기원사 제1부(2,4b-4,26)는 인류사의 초기단계를 그려준다: 인간과 주변세계의 창조(2,4b-25), 하느님의 계명 어김과 동산으로부터의 추방(3장), 인간에 대한 인간의 첫 범죄와 카인 저주(4,1-16), 후세의 인간세계(4,17-26). 이 부분은 인간이 야훼를 흠숭하기 시작했다는 언급으로써 마감된다(4,26b).
장수(長壽)를 전제로 한 열 세대(世代) 나열에 이어(5장) 제2부는 돌이킬 수 없는 단절을 초래한 홍수 사화를 전해 준다. 홍수에 대한 상세한 사화(6,5-8,19) 말미에서 하느님이 인간의 미래를 보장할 창조질서 회복을 다짐하심으로써 땅의 경작은 다시금 가능하게 된다(8,20-22).
홍수 이후 인간은 저주를 불러들이고 말 범죄를 또 다시 짓는다(9,20-27). 이번에는 가나안(Canaan)이 저주의 대상이 되며 그 응벌로 가나안은 야훼 흠숭 공동체로부터 단호히 배제된다. 야훼는 이제 셈(Sem)의 하느님으로만 머무실 것이다(9,26). 끝으로 서로 다른 언어를 말하는 다수 민족으로의 인류 분산(11,1-9)은 기원사의 저자나 독자 또는 청중들이 잘 알고 있던 인간 세계의 상황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기원사 줄거리에 두 개의 주요 사제계 문헌이 결정적인 순간 편집과정을 통하여 삽입된다. 즉 2,4b-25절에 비해 보다 조직적이며 광범위한 또 하나의 창조설화(1,1-2,4a)와 홍수 이후 땅의 비옥을 기원하는 축복 경신 문구(9,1-17)가 자리한다. 이 축복문에서 하느님은 또 다른 홍수가 땅을 덮치지 않도록 늘 기억하고자 “계약”을 체결하시며 “계약의 징표”로 무지개를 세우신다.
2) 성조사
이어서 이야기는 갑자기 성조사화로 넘어간다. 창세기 12장 1-3절과 함께 더 이상 인류 전체가 아니라 아브라함이 그 시조로 등장하는 한 백성의 이야기가 전개되며, 이 본문에서 하느님의 축복 약속은 우선은 아브라함에게 그리고 그를 통하여 “세상의 모든 종족들”에게 전달됨으로써 이스라엘과 인류의 미래가 문제시될 뿐이다. 다만 현 문맥 속에서 축복 약속이 기원사의 저주와 대립되고 있다는 점에서 기원사와 성조사 사이의 연결 고리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성조사 즉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요셉 전승은 창세기의 주요부분을 형성한다(12-50장)
아브라함 사화(12,1-25,18)는 몇몇 개별 독립 민담들을 담고 있으며(12,10-20; 22; 23; 24) 이들 민담들은 “이런 일들이 있은 뒤.....”(22,1) 또는 “아브라함은 이제 늙고 ....”(24,1)와 같은 진부한 이음 문구들을 통하여 상호 연계되어 있을 뿐이다.
이와 같은 민담 본문들을 예외로 한다면 우리는 상호 조화를 이루는 여러 개의 서술체 사화들을 만날 수 있다. 우선 창세 13장, 18장, 19장은 아브라함과 롯에 관한 사화를 이룬다. 이 가운데 13장은 18-19장을 의식하며 짜여진 작품으로 간주할 수 있다. 롯과 헤어진 후 아브라함은 마므레로 향하며(13,18; 18,1) 야훼께서 거기서 나타나시나, 롯은 소돔으로 향하며(13,12-13; 19,1) 거기서 그는 도읍의 멸망을 접하게 된다. 한편 18,1-16절이 아브라함에 관한 독립 사화를 취하고 있는 반면 19장은 아브라함과 롯에 관한 사화에 맞추어 구성된 작품으로 보인다. 소돔이 멸망한 후 롯에 관한 이야기는 요르단 동부에 위치한 모압(Moab)과 암몬(Ammon)족의 시조 탄생으로 마감된다(19,30-38). 이와 마찬가지로 18장의 절정 또한 이스라엘의 조상인 이사악의 기적 같은 탄생(21,1-7)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18,12-15절을 21,1-7절과 비교하시오). 이처럼 롯과 아브라함의 헤어짐은 모압/암몬 백성과 이스라엘 백성 탄생을 준비한 셈이다.
이사악 사화(26장)는 매우 간결하며, 성조들에 관한 전승 수집 차원에서 본다면 관심은 이사악이 아니라 아브라함과 야곱에게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사악 사화는 두 개의 사화만을 담고 있으나 이 또한 아브라함의 사화와 유사한 내용일 뿐이다(26,7-11.26-31). 이 두 사화는 이사악이 필리스티아 사람들 땅에서 그들과 함께 살게 된 배경을 설명하기 위한 목적으로 상호 연결되어 있다. 여기서 또한 네겝(Negeb)의 우물이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는 사실은 이스라엘과 필리스티아의 국경이 문제시되고 있음을 가리킨다.
현 문맥 속에서 이사악 사화는 실상 야곱 사화(25,19-34; 27-36) 초두에 삽입되어 있다. 아브라함 사화와는 달리 야곱 사화는 독립 전승들을 거의 보여주지 못한다. 모든 전승들은 야곱의 형제 에사우(25,19-34; 27; 32-33)와 그의 삼촌 라반(29-31)과 야곱의 갈등이라는 보편적 주제 하에 잘 정돈되어 있다. 야곱의 도주 동기(27,43-45; 28,10.20.22)와 31장(특히 13절)의 귀향 이야기, 특히 32-33장의 잘 정리된 맺음 부분은 장자권과 축복으로 말미암은 에사우와의 일련의 갈등 일화를 담고 있던 단 하나의 ‘야곱 이야기’(25,19-34; 27) 속에 야곱과 라반의 이야기를 규합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또한 야곱의 여정에 있어서 결정적인 순간 베텔(28,10-22)과 프니엘(32,23-33)에서의 하느님의 발현은 사화의 골격을 이룬다. 베텔과 프니엘 성소에 중요성을 부여하면서 북 이스라엘 왕국의 합법성을 의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사화는 분명 북 이스라엘에 기원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창세기에서 요셉 사화(37-50장)는 ‘세 성조전승’을 뒤따른다. 그러나 이들 성조들의 사화와는 달리 요셉 사화는 상당히 길면서도 처음부터 끝까지 또 다른 문학유형에 기초한 하나의 완벽한 단원으로 이해된다. 요셉 이야기 말미에 삽입된 48장의 축복 장면은 야곱과 요셉이라는 두 주요 인물들을 묶어 주며 동시에 27장의 동기들을 되풀이함으로써 야곱 사화의 개막을 회상시킨다. 이 장면은 따라서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는 완벽한 ‘야곱 사화’를 꾸미기 위해 야곱 사화를 요셉 사화에 연계시켜 준다. 한편 요셉 사화에서는 하느님께서 직접 개입하시는 장면을 찾아보기 힘들며 어떠한 새로운 계시도 발견할 수 없다. 현인으로서의 요셉에 관한 사화의 목적은 오로지 윤리적인 가르침을 선사하는 데 있으며, 현인의 덕행이 어떻게 보상받고 있는지를 밝혀주는 데 있다.
2. 탈출기
이야기의 구조는 탈출기와 더불어 중대한 전환점을 맞이한다. 성조사화에서는 등장인물들은 언제나 개별적이었으나 이제 한 ‘백성’의 형태가 서서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1) 이집트 탈출(1,1-15,21)
탈출기 제1부의 주제는 과월절에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는 이집트 탈출이다. 성경학자들은 종종 이 부분을 과월절 축제에 관한 전례적 이야기로 간주하고자 했으나, 과월절 축제라는 전례적 분위기는 인정한다 하드라도 현재대로의 제1부가 치밀하게 재정리된 신학적 편집과정을 거쳤음을 부인할 수가 없다. 이집트인들에 의한 억압 언급에 이어 야훼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울부짖음을 들으시고 성조들과 맺으신 계약을 기억하신다는 이야기로 넘어간다(2,23-25). 또한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구원을 예고했을 때 그들은 믿었다고 전한다(4,31). 이와 같은 신앙 확언은 백성들이 갈대 바닷가에서 이집트의 추격자들로부터 구원된 후 다시금 되풀이되며 강조된다(14,31). 사화는 여기서 절정에 이른다. 15장 1-18절의 노래는 이집트 탈출 사건에 대한 찬미가 또는 전례시 사용되었던 흔적일 수도 있다.
2) 사막생활(15,22-18,27)
탈출기 15장 22절-18장 27절은 이집트 출발과 시나이 도착 사이의 사막 여정 이야기를 전한다. 이 단원에서는 우선 모세(와 아론)를 거스른 불평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불평의 동기는 목마름(15,24; 17,3)과 굶주림(16,3)이며, 이들 불평거리는 모세가 하느님의 명에 의해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구해낸 다음 백성들이 사막생활에서 겪어야 했던 역경에서 비롯된다. 다시 말해서 비난의 대상은 모세가 아니라 갈대 바다를 건넌 후 이스라엘이 굳은 신앙을 고백했던(14,31) 야훼 하느님 바로 그분이다. 이 불신실한 모습은 또한 ‘금송아지 사건’(32장)으로 야훼를 배반하게 될 시나이 산에서의 이스라엘의 모습을 미리 보여주는 듯하다.
3) 시나이 계약(19-40)
탈출기 15장 22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시 출발한다. 그들의 목적지는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땅이지만 우선은 시나이(Sinai)에 다다르며, 이는 지도상으로 볼 때 엄청난 우회(迂廻)를 말한다. 이 점에서 몇몇 학자들은 신앙고백[Credo] 유형의 본문 속에서 약속의 땅을 향한 여정이 아무런 설명 없이, 즉 사막생활에 대한 언급이 없이 이집트 탈출을 뒤따르고 있다는 주목할만한 사실을 찾아냈다(신명 26,5-9; 6,20-25; 참조. 탈출 15,12-13; 1사무 12,8; 시편 135,8-12). 이와 유사한 기타 본문 속에서 사막 여정에 관한 이야기가 삽입되어 나오기는 하나(여호 24,7; 예레 2,5; 아모 2,10; 시편 78,52; 136, 16; 105,40) 시나이에 대한 언급은 여전히 발견되지 않는다. 시나이 사건에 대한 사화의 핵심은 따라서 본디 이집트 탈출 사화와 연결되어 있지 않았던 독립 전승임이 분명하다. 다만 이 사화의 전례적 특성상 전례시 자주 활용되었던 것으로 본다.
시나이 체류 사화는 모세오경 가운데 가장 방대하나(탈출 19-레위-민수 10,10) 그 구성에 있어서 매우 복잡한 작품이다. 이 사화는 그 내용과 출처에 있어서 서로 다른 여러 법령들과 훈령들을 담고 있다.
탈출기 19-24장은 시나이 사화의 첫 독립 단원으로서 두 개의 법령인 십계명(20,1-17)과 계약법(20,22-23,19)을 담고 있다. 이 두 법령은 서사체 틀 속에 삽입되어 나타나며, 동시에 다양한 전승적 요소들을 병합시키거나 정리하고 있다. 탈출기 19장에서 이집트 탈출 이야기가 하느님의 의지 선포의 선행 요소로 등장함으로써(4절; 참조 20,2) 이 의지는 이스라엘을 위한 야훼의 역사적 업적이라는 거대한 문맥 속에 자리하게 된다. 이어서 십계명 선포 준비단계가 뒤따르며 여기서 모세는 하느님 말씀의 직접적 수신인으로 소개되고 있다(19,9.20). 십계명(20,1-17)이 선포된 후에도 모세의 이와 같은 특수 지위는 백성의 두려움으로 다시금 강조된다(20,18-21). 십계명은 이렇게 해서 뒤따르는 계약법전(20,22-23,19)에 담겨 있는 계명들과 구별된다. 이 두 법령 모두 시나이에서 하느님으로부터 선사되나 백성들이 하느님의 목소리를 두려워했기에 이를 백성들에게 전달하기 위해서 모세 홀로 계약법의 계명들을 받는다. 십계명은 따라서 다른 법들의 기초가 되며 모세는 중재자 역을 맡는다. 율법 선포식은 끝으로 24장의 장엄한 계약 체결로 끝맺음한다. 여기서 우리는 19장 5절의 “계약”과 “야훼의 목소리를 들어라”라는 표현이 24장 7-8절에서 반복됨을 본다. 이렇게 탈출기 19-24장은 잘 짜여진 문학단원을 이룬다.
탈출기 34장에서 또 하나의 ‘소 십계명’이 발견되며(34,10-26: 흔히 예배 십계명이라 부른다) 이 역시 계약 체결이라는 틀 안에 자리하고 있다(34,10.27). 이 장은 앞서와 마찬가지로 서사체로 서술되어 있으며 ‘금송아지’를 주조함으로써(32장) 야훼를 배반한 이스라엘에 대한 전승과 조화를 이룬다. 이와 같은 계약 파기와 계약 갱신을 전해 주는 내용으로 탈출기 32-34장은 독립 사화를 이룬다. 이 사화를 통해서 우리는 이스라엘의 시초 시기는 순명을 바탕으로 한 이상적 시기가 아니라 계약 단절의 시기였으며 이후 갱신된 계약은 하느님의 은총과 용서에 기초한 것임을 확인한다.
탈출기 25-31장과 35-40장은 이들 문맥과는 분명하게 구분된다. 이 장에서는 모세가 시나이에서 받은 성소 건축과 예배 제도에 관한 훈령들(25-31장)과 레위기로 이어지는 성소 건축 사화(35-40장)가 발견된다(레위기 8장은 탈출기 29장이 명하고 있는 사제들에 의한 성소 축성식을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자리에 이 두 단원이 삽입된 것은 상당한 숙고의 결과로 보인다. 계약체결 후 모세는 시나이 산으로 다시 불림을 받으며 여기서 그는 성소와 예배에 관한 훈령을 받는다(24,12-18). 모세가 사십 주야 산에 머무르고 있는 동안(24,18) 백성들은 야훼를 배반한다(32,1-6). 성소 건축은 계약 갱신(34장) 후에야 착수되며(35-40장), 예배 제도는 속죄의 날에 관한 훈령과 함께 마감되고(레위 16), 이 속죄의 날 성소는 이스라엘 백성의 부정(不淨)과 죄로부터 정기적으로 정화될 것이다. 한편 시나이 산을 뒤덮을 뿐만 아니라 야훼의 ‘영광’을 가려주는 구름(탈출 24,15-18) 역시 이 두 단원을 다른 문맥과 연결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 구름은 탈출기 40장 34-35절에 의하면 만남의 장막으로 자리를 옮겨 뒤덮고 있기 때문이다. ‘영광’으로 묘사된 야훼의 현존은 이후 사막에서 이스라엘을 동반할 것이다(민수 10,11-12).
끝으로 탈출기는 편집과정을 거치는 동안 창세기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게 된다. 창세기 50장 24절에서 요셉은 죽기 전 야훼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로부터 구해 내시어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이끌어 가시리라 예고하며, 탈출기 33장 1절에서 모세는 성조들에게 약속한 땅으로 당신 백성을 이끌어 가라는 명을 유사한 어법으로 야훼로부터 받는다. 성조사화와의 관계는 성조들과 맺은 야훼의 “계약”을 언급하고 있는 탈출기 2장 23-25절과 6장 2-8절에서도 발견되며, 이 가운데 6장 2-8절은 창세기 17장과 매우 가까워 흔히 사제계 편집결과로 간주한다. 성조사와 모세의 전승 관계를 다시금 강조하고자 한 흔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3. 레위기
레위기는 거의 다 예배 문제에 대한 자료만을 담고 있는 작품으로서 몇몇 서사체 부분조차도 예배를 주제로 하고 있을 뿐이다: 탈출기 29장에서 명령된 사제 축성식(8장), 새로이 건조된 제단에서 봉헌된 첫 공동제사(9장), 올바른 제물봉헌에 관한 두 개의 짤막한 사화(10,1-5.16-20), 독성죄를 범한 사람에 대한 처벌(24,10- 14.23).
레위기 1-7장은 제사에 관한 규정집으로서 제의(祭依: 1-5장)와 그 집행(6-7장) 조항을 담고 있다. 여기에 담겨진 규정들은 이스라엘 제의 변천사에 있어서 다양한 단계를 반영해 주며, 특히 ‘속죄제’와 ‘면죄제’가 전반부(1-5장)에서는 마지막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에도(4-5장) 후반부(6-7장)에서는 한 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다(6,17-7,7)는 사실이 이를 잘 입증해 준다.
사제 축성식과 첫 제사봉헌에 관한 서사체 사화(레위 8-10)에 이어 레위기 11-15장은 상호 뚜렷하게 구분되는 또 다른 규정들을 내용으로 한다: 정(淨)한 동물과 부정(不淨)한 동물(11장; 신명 14,3-21 참조), 출산 후 산모의 정화(淨化: 12장), 사람과 의복과 가옥에 생긴 나병과 기타 악성 발진(13-14), 육체적 유출(流出)로 인한 부정(15장). 이 장들은 본디 독립되어 있던 소규정집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며 이는 각개 소규정집이 הꙜוֹתּ(tôrāh)라는 단어로 마감된다는 사실로 드러난다(11, 46; 12,7; 13,59; 14,32.54.57; 15,32).
레위기 17-20장은 예배에 관한 흠, 특히 사람에게는 정화 능력이 없어 관계되는 사람을 예배 공동체에서 축출할 수밖에 없는 결정적 흠(17,4.9.10.14; 18,29; 19,8; 20,3.5.6.17-18)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피 섭취(17장), 비합법적 성관계(18장), 죽음에 붙여야 할 범죄(20장)와 같은 치유불가한 이와 같은 흠은 곧 바로 제의법을 위반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19장은 공통점을 찾아내기 힘든 여러 규정집을 담고 있으며, 21-22장은 사제들(21장)과 봉헌물(22장)에 고유한 규범을 다루고 있다.
치유 가능한 부정(11-15장)과 불가능한 부정(17-20장) 사이의 이와 같은 구분은 “속죄의 날”에 관한 규범을 담고 있는 레위기 16장의 자리를 정당화시켜 준다. 모든 부정 일소는 성소 자체가 속죄불가한 모든 부정행위들로부터 정화되는 연례 대(大) 속죄행사 안에서 그 완성과 절정을 맞이하기 때문이다. 레위기 23-25장에서 우리는 전례력(典禮曆)에 관한 규정을 읽는다: 성소의 등불과 제사상 빵에 관한 규범(24,1-9)으로 보완되는 축제 달력(23장), 안식년(25,1-7), 희년(25, 8-31). 레위기 24장 15-22절에서는 죽음에 붙여져야 하는 범죄에 관계된 또 다른 규정들이 독성죄를 범한 사람에 관한 사화(24,10-14.23) 사이에 삽입되어 나온다. 레위기의 이와 같은 다양한 규정집들은 탈출기의 일부까지 포함하는 대규정집에 자리하게 되며 이때 레위 26장은 “시나이 산에서 야훼께서 모세를 시켜 세워 주신”(46절: 이 구절은 첨가부분인 레위기 27장의 마지막 구절에서 다시금 반복된다) 대규정집을 닫기에 이른다. 레위기 26장은 따라서 기본 계명들을 상기시킬 뿐만 아니라 -신상(神像) 금지(26,1; 탈출 20,4-5 참조), 안식일법(26,2; 탈출 31,12-17 참조)- 시나이에서 주어진 계명을 따를 경우에는 축복(3-13절)을, 그렇지 않을 경우는 저주(14-38절)를 예고하며, 끝으로 이스라엘 백성은 회개하고 야훼는 그들과 맺으신 계약을 기억하시기를 희망한다(39-45절).
레위 26장은 보다 오래된 사제계 표현법을 보여 주며(탈출 6,2-8 참조), 그 편집단계을 통해 이집트 탈출사건을 기원사와 성조사만이 아니라 시나이 산에서의 율법 하사와 예배 제도에 연계시켜 준다. 이 본문은 또한 법규와 계명 등의 준수에 관한 지대한 관심으로 말미암아 신명기계 작품과의 밀접한 관계도 잘 드러낸다(레위 26,3.14-15.43; 18,4-5.26; 19,19.37).
4. 민수기
모세오경 가운데 민수기는 이질적인 혼합작품으로 보일 만큼 매우 상이한 자료들을 담고 있어 그 윤곽을 한 눈으로 파악하기가 그리 쉽지 않다. 구조 또한 마찬가지다. 민수기 10장 11절이 이스라엘의 시나이 출발을 언급하고 있다는 점에서 10장 10절까지는 탈출기 19장 1절부터 시작된 시나이 체류 사건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10장 11절부터는 탈출기 15장 22절-18장 27절과 유사한 이스라엘의 사막 체류를 전해 주며, 이어서 사화는 20장 14절에서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어 요르단 동부지역 점령 이야기가 소개된다.
민수기 1장 1절-10장 10절은 탈출기 일부와 레위기와 마찬가지로 예배에 관한 규범들을 정리해 주며 정(淨)이라는 용어가 핵심 단어로 등장한다. 1-4장은 이스라엘 백성의 인구조사와, 성소(=만남의 장막) 가까이 있는 진지(陣地)로 사방에서 모이는 각 지파가 자리하고 있는 위치를 전해 준다. 5장 1-4절에 의하면 이스라엘은 “부정한” 사람들을 축출함으로써 야훼께서 몸소 머무시는(3절) 진지의 성성(聖性)을 유지해야 한다. 바로 이러한 성성 유지라는 관점에서 이어지는 규정들이 규합된 것으로 보인다: 간통으로 의심되는 여인의 경우(5,11-31)는 나지르인(6장)과 레위인들의 성별(8,5-22)과 과월절(9,1-14)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부정에 관한 질문 대상이 된다. 진지의 성성과 야훼의 현존은 또한 사제계 축복(6,22-27) 연사 속에서 다시금 강조되며, 이는 야훼께서 “증언 궤에 놓인 속죄 판 위에서” 말씀하시고(7,89; 탈출 25,22 참조) 구름이 성소를 뒤덮고 있기 때문이다(9,15-23).
이 마지막 본문은 탈출기 40장 2절과 30-34절을 반복하고 있으며 이는 시나이 체류기임을 밝혀준다. 레위기 1장 1절부터 민수기 9장 14절까지의 예배에 관한 규정집은 결국 사건의 흐름을 지연시키는 셈이다. 여기서 우리는 야훼를 위해 성별된 이스라엘 백성이 성막(聖幕)을 그들 가운데 모시고 사막을 통과하여 이동하기에 필요한 모든 규범들을 만나게 되나, 탈출기 40장 34-38절에서 이미 구름과 구름의 이중 기능, 즉 성소를 채우고 있는 하느님의 영광을 덮어주는 기능과 이스라엘을 그의 여정으로 이끌어 가는 기능이 문제시된 바 있기 때문이다. 탈출기(13,21-22; 14,10-20.24)의 구름과 불기둥에 관한 전승이 되풀이되는 민수기 9장 15-23절에서 구름의 이 둘째 기능은 첫 자리를 차지한다. 다시 말해서 구름은 이제 이스라엘의 이동이 야훼의 명에 정확하게 부합하도록 단계마다 출발과 정지를 알리는 신호 역할을 하게 된다. 은제 나팔 신호들은 특히 정규적인 출발명령을 위해 활용된다(민수 10,1-10).
민수기 10장 11절-20장 13절은 탈출기 15장 22절-18장 27절의 사막생활에 관한 사화와 매우 흡사한 사화들을 담고 있다(특히 탈출기 17장 1-7절과 민수기 20장 1-13절을 비교하시오). 양대 본문에서 우리는 모세 즉 야훼께 대한 이스라엘의 반항을 쉽게 만난다. 물론 민수기에서도 이스라엘 백성의 ‘투덜거림’이 발견되나(14,2.27.29.36; 16,11; 17,6.20.25) 목마름과 배고픔이 아니라(11,4-6; 20,2-5; 21,5 참조) 약속의 땅을 향한 여정에 있어서의 이의제기(14,2-3)와 모세의 특수 지위(16,1-11; 17,6)에 관한 것이다. 한편 야훼의 의지를 거스른 이스라엘의 반항은 보다 심각하게 서술되며 ‘성성’이라는 개념이 주요 개념으로 부각된다(11,18; 16,3.5.; 17, 2-3; 20,12-13).
이 단원에 삽입되어 있는 예배법에 관한 본문들 역시 동일한 관점을 보이고 있다. 민수기 15장은 번제물들(1-16절; 레위 2; 7,11-21 참조)과 속죄제를 동반하는 봉헌물들(22-31절; 레위 4-5 참조)에 대한 보충 제사법을 언급한 후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야훼의 계명을 지킴으로써 그분에게 ‘거룩한’ 백성이 되도록 독려한다. 특히 “이스라엘 전(全) 공동체를 위한” 용서에 대한 강조는 문맥상 이스라엘의 범죄를 민수기 13-14장의 ‘정탐대’ 이야기와 연계시키려는 의지로 보인다. 민수기 16-17장의 코라인들의 반역을 18장이 전제로 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를 더욱 분명히 해 준다. 사제법에 대한 엄격한 준수는 야훼의 진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엄습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기 때문이다(18,5). 또한 ‘거룩한’이라는 용어가 이 장 전체를 덮고 있다는 사실도 이를 입증해 준다(18,3.5.8.9.19.32). 끝으로 19장이 말하는 불태운 적색 암소의 재와 함께 마련된 정화수(淨化水)는 앞으로 이스라엘을 위기에 몰아넣게 될 결정적 예배적 흠을 치유하기 위한 요소로 남는다.
므리바에서의 기적의 샘 사화(20,1-13)는 그러나 작품의 단절을 초래한다. 모세와 아론은 “나를 믿지 않아” - 이 사화에서 ‘믿지 않다’는 표현은 모세가 야훼의 명대로 바위에게 말(명령)하지 않고(8절) 기적을 위해 지팡이를 사용한 행위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11절) -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12절; 참조 20,24; 27,14) 결국 사막에서 죽어야 할 세대에 속하고 만다. 민수 20,14-36,13절은 또 다시 서사체 자료와 제사법에 관한 규정으로 채워져 있으며, 그 가운데 제1부에서 우리는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을 향한 여정에서 난관을 극복해 나가는 사화들을 만난다. 이스라엘은 우선 여러 나라를 통과해야만 했으며 따라서 몇몇 왕들과 충돌을 할 수밖에 없었다: 에돔(20,14-21)과 아랏(21,1-3)의 왕, 아모리 왕 시혼(21,21-30)과 바산 왕 옥(21,33-35), 모압 왕 발락(22-24장).
그러나 26장은 갑자기 시나이 산에서 인구 조사된 바 있는 모든 세대(민수 1장)가 사멸되었다는 확언(64절)과 함께 새로운 인구조사 실시를 전하고 있음으로 해서 앞선 단락과는 분명하게 구분된다. 모세의 뒤를 이어 여호수아가 임명되며 이로써 한 시대는 마감되고(27,12-23), 아론의 사망시 반복되었던 므리바에서의 죄(20,24)가 다시금 언급된다(27,14).
미디안 사람들을 마주하기 위한 이스라엘의 진군 이야기(31장)를 제외하고는 제의에 관한 문제가 다시금 주요 주제로 부상한다(28-30장). 모세의 죽음 예고 후(27,12-14) 그의 유언처럼 소개되고 있는 정기 제사력(28-29장)이 으뜸이며 여인의 법적 지위에 관한 훈령(27,1-11; 30,2-17; 참조 36장)도 발견된다.
끝으로 민수기의 마지막 작품들은 임박한 가나안 땅 정착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요르단 동부 지역(32장)과 서부 지역의 땅 분배에 관한 명령(33,50-34,29)과 함께 레위인들의 도성(都城)과 도피성(逃避城)에 관한 훈령이 제시되며(35장), 이 사이에 사막에서의 여정 단계 목록이 삽입되어 있으나(33장) 이는 시나이 “순례”에 관한 옛 여정 전승을 참조하면서 그 단계를 새로이 정리해 보려는 후대의 편집 노력으로 보인다.
5. 신명기
신명기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모세의 유훈형(遺訓型)으로 꾸며진 독립된 동질의 작품이면서도 앞서의 모세오경과도 잘 연계되는 작품이다. 모세의 유훈은 “요르단 강 건너편 모압 땅에서”(1,1.5) 선포되며 이 지역은 민수기 22장 1절 이후 이야기되고 있는 사건들이 펼쳐진 장소이다. 또한 신명기는 민수기 27장 12-23절에서 이미 예고된 대로 모세의 죽음과 그의 후계자로서의 여호수아 임명으로 끝맺음한다. 이 임명은 또한 신명기를 뒤따르는 작품들[신명기계 역사서]과도 연계시켜 준다.
신명기의 구조는 외형적으로 매우 선명하다. 우선 이중 도입 연사가 첫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1,1-4,40과 4,44-11,32) 다음으로는 신명기계 법전(12-26)이, 그리고는 여러 가지 자료로 이루어진 마지막 부분(27-34)이 발견되나 이 가운데 28-30장은 모세의 유훈으로서 1,1절부터 시작된 그의 유훈을 닫아 준다.
첫 번째 도입 연사(1,1-4,40)는 호렙(Horeb: 신명기에서는 시나이 대신 호렙이라는 지명이 사용된다) 출발 이후의 이스라엘 역사 회상을 내용으로 하고 있으며 이는 하나의 대 유훈으로 마감된다(4,1-40). 이 연사는 그러나 식별하기 매우 쉬운 하나의 주요 사상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 즉 호렙 세대는 땅의 약속을 믿지 않음으로써 그 땅에 들어갈 자격을 상실했기에(1,19-2,15), 사막에서의 하느님의 인도와 요르단 동부 지역에서의 승리를 체험한 새로운 세대는 약속의 땅에서 호렙에서 받은 야훼의 계명을 앞으로 엄격히 준수해야 한다는 사상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그 땅에서 쫓겨나 흩어지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4,23-31). 한편 첫 연사 말미(4,32-40)에서 우리는 세상의 창조주이신 야훼는 성조들에 대한 사랑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을 선택하셨고 그에게 당신 계명을 선사하셨다는 신명기계 신학의 핵심 주제를 만난다.
두 번째 도입 연사(4,44-11,32)는 소재에 있어서 매우 새로우며 “오늘”의 세대를 위해(5,3) 십계명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사실이 인상적이다(5,6-21). 탈출기 20장의 십계명과 비교해 볼 때 가장 큰 차이점은 안식일 법의 합법화에 있다: “너는 이집트 땅에서 종살이를 하였고, .....음을 기억하여라.”(15절; 탈출 20,11 참조). 모세의 중재자 역할은 여전히 강조되며, 여타의 모든 계명들은 시나이에서처럼 십계명의 확대로 나타날 뿐이다. 6,4절에서는 “이스라엘아, .....들어라!”(5,1)라는 문형 반복에 이어 지극히 간결한 이스라엘 종교의 신앙고백이 발견된다: “야훼는 하느님이시고, 그분 말고는 다른 하느님은 없다”(4,35.39; 7,9; 10,17 참조). 이 신앙 고백은 하느님을 사랑하여라(5절)는 명령과 마음과 눈으로 그분의 계명을 항구히 지켜나가라(6-9절)는 명령과 결합되어 있다. 뒤따르는 훈계는 잡신 숭배에 관한 것이며(6,10-19) 이어서 다음 세대에 전해 주어야 할 구원사의 간결한 고백이 인용된다(6,20-25). 7장 1절-10장 11절은 선택된 이스라엘로 하여금 땅의 소출을 향유할 때(8,12-18) 이웃 백성들에 대하여 교만하지 말 것(7,6-8)과 자신의 의로움을 뽑내지 말 것(9,4-6)을 경고하며, 호렙에서 있었던 일을 상세하게 회상시킴으로써 이와 같은 경고에 무게를 실어 준다(9,7-10,11). 끝으로 마지막 훈계(10,12-11,32)는 야훼의 계명에 대한 순명과 불순명에 따라 펼쳐질 축복과 저주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신명 12-26장 전체는 신명기계 학자의 신학과 언어를 잘 반영하고 있는 법전이며, 이 작품 속에서 우리는 계약법전(탈출 20,22-23,19)과 병행한 부분으로서 후대에 병합되었을 보다 오래된 법적 자료들을 식별해낼 수 있다.
이 신명기계 법전은 ‘예배의 중앙화’에 대한 규정 즉 예배의 유일한 장소에서만이 제사를 바쳐야 한다는 명으로 전개되며(12,2-28), 이 명령은 실로 법전의 제1부(12-18장)를 규정한다(특히 14,22-26; 15,19-23; 16,1-17; 17,8-13; 18,1-8절을 참조하시오). 이는 분명 신명기에 의해 후에 병합된 상당히 오래된 전승과는 무관한 것으로 보인다. 즉 ‘예배의 순수성’(12,2-7)과 ‘예배의 일치성’(12,8-12) 유지라는 명분을 내세운다 하더라도 유일한 장소에서의 예배만이 유효하다는 사상은 옛 전승과는 별개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명기는 그 예배의 장소를 거명하지 않고 다만 “야훼께서 택하실 장소”라고 언급할 뿐이며 이 장소는 종종 “그곳에 당신 이름을 두시려고”라는 설명을 동반한다(12,5.11.14.18.21; 14,23-25 등). 따라서 이 장소를 예루살렘으로 단언하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따르는 것은 사실이나 한편 우리는 예배에 관한 한 예루살렘만큼 중요한 도읍이 구약성경에서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는 사실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편 이 법전의 구조는 불완전하게만 발견될 뿐이며 내용 또한 일부만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을 뿐이지만, 제1부(12-18장)가 예배에 관한 문제 또는 야훼와 특별한 관계에 있는 직무의 직함에 관심을 쏟고 있다는 데에는 이의가 없다: 예배의 중앙화(12,1-28), 잡신 숭배 금지(12,29-14,21), 십일조와 안식년과 사회적 책무(14,22-15,18), 맏배와 축제(16,18-20을 제외한 15,19-17,1), 직무의 직함과 재판과정(16,18-20; 17,2-18,22).
제2부(19-26장)는 제1부보다 더욱 불분명해 그 구조를 파악하기란 거의 불가능해 보이나, 그런 가운데서도 19-20장이 공동체에 관계된 법령을 나열하고 있는 반면 22장 이후 개인이 우선시된다는 점을 차이점으로 간주할 수 있겠다. 19장은 재판에 관한 법령을 담고 있으며 20장은 전쟁에 관한 법을 다루고 있다. 이어서 21장은 익명의 살인(21,1-9), 전쟁포로가 된 여인(21,10-14), 두 아내에게서 태어난 자식들의 상속권(21,18-21)에 대한 법령을, 22장은 이웃의 소유물에 대한 연대성(22,1-4), 뒤섞임에 대한 금지(22,5.9-11), 성(性)과 결혼(22,13-23,1)에 관한 훈령을 담고 있으나 그 가운데 어미새 보호(22, 6-70), 가옥 건축(22,8), 의복(22,12)에 관한 규정이 삽입되어 있다. 23장은 예배의 순수성(23,2-9), 진지에서의 금지사항(23,16-21), 제반 금지사항(23,16-26)을 나열하고 있으며, 24장은 초두에서 혼인법에 대해 말하고 있으나(24,1-5) 6절부터 23장 16절까지는 기타 금지 사항과 사회생활문제에 대한 결의론적(決疑論的) 법조항을 열거한다. 끝으로 앞선 부분과 뚜렷이 구분되는 26장은 햇곡식을 봉헌할 때 올린 신앙고백(26,1-11: 이 가운데 5b-9절은 ‘소(小)신앙고백’에 속한다)과 십일조에 관한 훈령(26,12-15)과 계약 의무조항에 대한 최후의 훈계(26, 16-19)를 소개한다.
신명기의 마지막 부분(27-34장) 가운데서 28-30장은 신명기 1장 1절에서 시작된 모세의 유훈을 잇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유훈을 마감시켜 준다는 점에서 따로 떼어 보아야 할 것이다. 27장은 모세를 그저 3인칭으로 소개할 뿐이며 훗날 에발 산과 그리짐 산에서야 비로소 이루어질 저주 의식에 대한 규범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여호 8,30-35 참조). 28장은 축복(1-14절)과 저주(15-68절) 주제를 다루고 있어 신명기의 두 번째 도입연사(4,44-11,32)의 맺음 부분인 11,26-28절과 연계된다. 이어서 29장은 1-14절에서 계약체결의 “오늘”과 차세대를 위한 유효성을 한번 더 강조하면서 새로운 시작을 알리고 난 다음, 이스라엘이 잡신들을 숭배한다면(15-20절) 나라는 멸망하고 백성들은 쫓겨나리라 예고한다(21-27절). 30,1-10절은 그러나 야훼께 대한 회개와 유배로부터의 귀환 가능성을 시사하며, 축복과 저주 또는 삶과 죽음(30,15-20)을 상기시키기에 앞서 하느님께서 주신 법에 대한 순명은 얼마든지 가능한 것임을 확인시켜 준다(30,11-14).
모세의 유훈에 이어 31-34장은 그의 최후 행적과 권고를 소개한다. 모세는 여호수아를 후계자로 세우며(31,1-8) 율법에 대해 간직해야할 사항을 지적한 후(31, 9-13.24-29)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기록하고 가르쳐야 할 노래에 대해 말한다(31, 14-22). “모세의 노래”(32,1-43)는 본디 독립되어 있던 작품일 것이나 이 자리에 삽입됨으로 해서 고유 기능을 갖추게 된다. 즉 율법이 기록된 것처럼 모세는 이 노래를 기록해야만 하며(31,19), 또한 율법이 그러한 것처럼(31,26) 이 노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일깨워 주는 ‘증인’이 될 것이다(31,19.21). 이 노래는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이 야훼를 저버릴 때 어떤 결과가 초래될지를 다시금 일깨우며, 아울러 야훼는 끝내 당신 백성을 향하여 돌아오시며 그분만이 하느님이심을 확언한다(32,36-43).
끝으로 신명기는 모세의 죽음과 여호수아의 등장으로 마감된다(34,1-9). 이 장은 미래의 역사를 전망하고 있으면서도 마지막으로 모세라는 인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모세는 결국 “야훼께서 얼굴을 마주보고 사귀시던 예언자”로 소개된다(34,10-12; 탈출 33,11 참조).
Ⅲ. 결어 : 모세와 모세오경
모세오경은 저자의 이름이나 서명날인을 남기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모세라는 사람의 작품으로 전승되어 왔다. 그리스도 시대에는 물론 (마태 19,8; 마르 10,5; 12, 26; 루카 24, 44; 사도 3,22; 13,39; 로마 10,5.19; 19,1절 참조) 초대교회 신자들, 대부분의 교부들은 토라가 모세에 의해 저술되었다는 사실을 의심 없이 믿었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 모세오경의 문학비판 또는 전승비판 등의 연구 결과로 이러한 사실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모세오경에 대한 연구는 앞으로도 계속되겠으나, 일반적으로 네 개의 큰 전승들 (J,E,D,P)이 결합되어 모세오경이 구성되었고, 그러기에 역사적인 모세가 활동했던 13세기보다 훨씬 후기에 작품이 완성되었다는 사실은 이제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며, 각 전승의 형성 시대와 장소에 대해서도 우리는 알만큼 알고 있다. 그럼에도 토라(Tôrāh)는 ‘모세오경’으로 불릴 수 있겠는가 ?
그러나 ‘시대와 장소’라는 데에 유의해야 한다. 각 전승의 형성 시대와 장소가 각 전승 기원의 시대와 장소와는 무관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민족 형성의 기초를 다진 인물, 야훼 신앙의 창시자, 최초의 입법자였던 모세에게 이들 전승의 기원을 두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모세오경이 모세의 작품임은, 종전과 같이 직접 쓰였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모세의 정신과 권위에 의거해서 쓰였다는 의미에서이다. 이런 의미에서 모세의 친저성은 영구불변일 것이다.
제7장 : 신명기계 역사서 - 구약성경입문 -
Ⅰ. 개관
히브리어 경전의 구분법을 따르면 여호수아기, 판관기, 사무엘기 상·하권, 열왕기 상·하권은 전기 예언서에 속한다. 이사야, 예레미야, 에제키엘, 12 소예언서를 포함하는 후기 예언서에 대칭되는 명칭이다. 전기 예언서라는 명칭은 여호수아기는 예언자 여호수아가, 판관기와 사무엘기 상·하권은 예언자 사무엘이 그리고 열왕기는 예언자 예레미야가 저술했다는 전승에서 비롯되나, 이 작품들이 예언서적인 성격을 내포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야훼와 이스라엘의 관계, 대변자로서의 예언자들이 선포하고 있는 하느님의 말씀에 이스라엘 백성이 순종하고 있는지 아니면 불순종하고 있는지를 다루고 있는 것이 이 작품들의 기본 내용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런 저런 예언자들을 제외하더라도 사무엘, 가드, 나탄, 엘리야, 엘리사, 이사야, 예레미야 등 이스라엘의 대표적인 예언자들이 종종 그 모습을 드러내는가 하면, 열왕기 같은 경우는 유배시대 이전의 예언-집필가들이 활약했던 시대상황을 잘 묘사해 주기도 한다.
이처럼 여호수아기, 판관기, 사무엘기, 열왕기는 그 다음 이어지는 예언서들과 밀접한 관계를 띠고 있지만 또한 그 앞부분, 즉 모세오경과도 부정할 수 없는 관계에 놓여 있는 작품이다. 모세오경의 마지막 권인 신명기 마지막 본문에서 여호수아는 모세의 후계자로 지명되며, 여호수아기는 모세가 죽은 다음 날로부터 시작된다(여호 1,1). 이런 이유로 모세오경을 이루고 있는 4대 전승, 즉 야훼계, 엘로힘계, 신명기계, 사제계 전승을 본 작품들 속에서도 찾아보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아직 만족할만한 답을 얻지 못하고 있다. 특히 “모세육경” 주창자들에 의해 여호수아기에서 야훼계 전승과 엘로힘계 전승과 흡사한 문헌들을 식별해내기 위한 집요한 노력이 있었으나 어느 누구도 여호수아기가 신명기계 학자들에 의해 저술되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신명기와의 이러한 관계는 여호수아기뿐만 아니라 다른 역사서에서도 다양하게 감지된다. 신명기를 역사를 통하여 이스라엘의 선택을 정당화시킴과 동시에 이러한 선택에서 비롯되는 신정(神政)을 절대적인 제도로 강조하고 있는 작품으로 본다면, 여호수아기는 선택된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 말씀에 대한 성실성을 통하여 약속의 땅에 정착하는 과정을, 판관기는 선택에 상반되는 배반과 회개를 거듭하는 이스라엘을 묘사하고 있다. 사무엘기 상·하권은 사울에 의한 왕정 실패 후 신정이 어떻게 다윗을 통하여 구현되고 있는가를 서술하고 있으나, 솔로몬 사망 이후 신정을 펴지 못하는 왕들을 질책하면서 결국은 왕정제도의 실추와 소멸을 그리고 있는 것이 열왕기의 내용이다. 이렇게 볼 때 신명기는 열왕기 끝 부분까지 이르는 이스라엘 대 종교사의 서막부분으로 자리한다. 단 성경 속에서 신명기가 역사서와 구분되어 배열된 이유는 모세라는 인물과 그의 작품[전승]에 관계되는 모든 것을 따로 떼어놓기 위함에서였을 것이다.
신명기계 학자들은 이스라엘의 과거역사를 묵상하고 거기서 종교적 교훈을 파악하고 제시한 사람들로서 이미 하나로 묶여 전달된 구전 전승이나 문헌을 사용하고 있으며 필요시 재손질하고 있다. 이들에 의한 편집은 여러 시대에 걸쳐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서 신명기계 역사서를 읽어나가야 할 것이다.
Ⅱ. 역사서 각권
1. 여호수아기
여호수아기가 제시하고 있는 대로의 가나안 정복사는 복잡하기 이루 말할 수 없는 역사이다. 상이한 오래된 전승을 혼합하고 조립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를 입증해 주는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여호수아가 죽을 때까지도 약속의 땅은 아직 완전히 정복되지 않았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7세기말의 신명기계 학자들은 이 정복사에 현실과 다른 이미지를 부여하고 있다. 그들에 의하면 여호수아는 이미 통일된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이며, 가나안 전 지역은 이미 여호수아의 지배 하에 있다. “야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워 주셨기 때문이다”(여호 10,42).
1) 구 조
▪ 머리말(1)
▪ 가나안 정복(2-12)
▪ 가나안 분배(13-21)
▪ 결어 (22-24,27)
▪ 부록 (24,28-31)
2) 내용과 분석
- 머리말 (1장)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에게 약속의 땅을 선사해 주셨음을 재천명하고 있으나, 이 땅을 점유하기 위해서는 용기와 당신 말씀에 대한 성실성이 요구됨을 상기시키고 있다.
- 가나안 점유 (2-12장)
먼저 2-9장안에서 우리는 벤야민 지파의 성소(聖所)였던 길갈(Gilgal)과 관련이 있는, 거기에 보존되어 있었을 전승 그룹을 만나게 되며, 모세오경의 사대전승 (J.E.D.P)과는 상이한 전승임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 전승집은 대략 왕정시대 초기에 수집되었을 것으로 보며, 끝 부분인 24장도 대체로 여기에 속한 것으로 본다. 단 작품의 내용 가운데 요르단을 건너 가나안에 들어가는 사화가 이집트 탈출 사건을 모방하고 있음이 특이하다: 여호수아기 3장 7-17절과 탈출기 14장 5절과 31절, 여호수아기 3장 6-17절, 4장 10-11절과 탈출기 13장 21-22절, 14장 19-20절, 여호수아기 5장 15절과 탈출기 3장 5절, 여호수아기 8장 18-26절과 탈출기 17장 8-16절을 비교해 보자.
10-11장은 또 다른 전승들을 제시해 주고 있다. 이 전승들은 가나안 남부지방과 북부지방 정복사화에 가나안 왕들에 의한 두 번에 걸친 군대파견과, 기브온과 메롬에서의 전투를 잇달아 연결시키고 있다. 이 전승들에 의하면 여호수아의 지휘 아래 이스라엘 지파들이 참가하여 가나안 정복을 마치는 것으로 보이나, 이는 여호수아기 13장 1-6절, 14장 6-13절, 15장 13-19절, 17장 12절과 16절이 말하는 바와 다르며, 판관기 1장의 내용과도 다르다. 이와 같은 서로 다른 점들을 감안한다면 가나안 정복은 아직 미완성품으로서 계속 이루어져야 할 일이라는 점과, 각 지파는 오로지 자기 지파의 이익을 위해서만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결국 여호수아기는 사건을 앞지르고 있으며 이는 가나안 정복에 대한 완벽한 도표를 제공해 줌과 동시에, 후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해 주기 위함이라고 볼 수 있다.
- 가나안 분배 (13-21장)
13장 1-7절은 이스라엘에 속해 본 적이 없었던 이상적 영토목록(여호 1,4; 민수 34,1-12 참조)을 제시해 주고 있다. 이 구절은 뒤이어 서술되는 지리에 관한 문헌의 도입부분임이 확실하며 신명기계 학자들에 의해 삽입된 것으로 본다. 이어서 므나쎄 반(半) 지파, 르우벤 지파, 가드 지파를 트란스요르단(Transjordan)에 정착한 지파들로 말하고 있으며(13,8-33), 16-19장은 왕정시대 이전 각 지파들이 차지하고 있던 지역을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각 지파들의 도시목록만큼은 부분적이기는 해도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의 분리 이후와 관련된 것으로 본다. 특히 유다의 도시목록이 그렇다(15장).
영토 분배작업을 마치면서 모세의 율법을 실천에 옮기기 위하여 20장은 비고의적 살인자를 위한 도피성에 대하여 말하고 있으며(탈출 21,13; 민수 35,9-34; 신명 4,42; 19,1-13), 21장은 레위 지파의 몫을 설명해 주고 있다(신명 14,22-19; 18,1- 8절 참조).
- 결어 (22장-24장 27절)
22장이 보여주는 전승은 어느 시대의 전승인지 불분명하나 트란스요르단 지파들의 출발을 말해주며, 동시에 요르단 강가에 세운 제단을 언급하고 있다. 23장은 24장의 중복부분으로서 신명기계 편집자의 손에 의해 삽입된 부분이며, 24장은 이스라엘 지파들 사이에 체결된 종교적 성격의 조약으로서 스켐(Sechem)모임에 관계된 옛 전승을 보여주는 매우 주요한 부분이다.
- 부록 (24장 28-31절)
판관기의 두 번째 도입부분으로 볼 수 있는 판관기 2장 6-9절의 내용과 유사한 점으로 미루어 두 작품의 편집조화를 잘 드러내주고 있는 부분이다.
3) 신명기계 편집
여호수아기가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되기 이전에 벌써 이 책에 수록된 여러 전승들이 다소 폭넓게 서로서로 조화를 이루어 연계되어 있었던 것으로 본다. 신명기계 학자들은 자신들이 작품에 심고자하는 정신에 따라 이러한 전승들 여기저기에 손질을 가하게 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다음에 열거하는 본문들은 신명기계 학자들에 의해 구성되어 삽입된 작품으로 취급한다: 1장 전체 또는 최소한 1장 1-9절의 도입부분, 라합의 신앙고백(2,9-11절; 신명 4,39절과 비교), 에발산 모임(8, 30-35; 여호수아기 24장과 관계가 있고 신명기 27장으로부터 직접적 영향을 받은 부분), 정복 요약부분(12장), 24장의 중복부분인 23장 전체.
신명기계 학자들에 있어서 가나안 정복은 세속적 사건이 아니라 신학적인 사건이었다. 가나안 정복은 하느님 구원사업의 단면으로서 당신 백성 이스라엘과 맺으신 약속 가운데 기본적이며 우선적인 것이었다. 학자들이 작품에 손을 대려했을 때는 하느님 계획실현이 다시금 위기에 처해 있는 것처럼 보였던 시대였다. 북 이스라엘 왕조는 이미 멸망했고 남 유다 역시 초라한 모습으로 맥을 이어가고 있었을 뿐이다. 따라서 여호수아기가 강조하고 있는, 여호수아의 지도 아래 통일된 국가상은 이러한 위태로운 시대에 예언적인 의미[가치]를 지니게 된다. 이스라엘 백성의 일치를 이루어 주실 수 있는 분은 그 옛날 여호수아 시대와 마찬가지로 야훼 하느님 한 분뿐이시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상이 이집트 탈출이라는 황금시기 안에 삽입되어 나타나며, 율법에 대한 순명을 떠나서는 일치도, 하느님의 축복도 받을 수 없음을 재천명한다. 여호수아기에 나타난 이상적 승리는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이 야훼의 율법을 준수할 줄 알 때 비로소 얻게 되는 하느님의 구원 선물이 될 것이다.
2. 판관기
판관기는 신명기계 역사가들의 편집방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판관기의 주요부분이라 볼 수 있는 3장 7절-16장 31절은 여러 “판관들” 또는 “지파의 영웅들”을 소개하고 있으나, 이들에 관한 전승들은 단 하나의 관점에서 편집되어 있다. 2장 6절-3장 6절 그리고 10장 6절-16절 및 각 판관들의 등장을 알리는 문구 속에서 편집자의 작의(作意) 또는 신학이 분명히 드러난다: 이스라엘의 배반 → 이에 대한 하느님의 응벌 → 이스라엘의 회개와 울부짖음 → 하느님의 구원.
1) 구 조
▪ 역사적인 도입부분 (1,1-2,5)
▪ 교의적인 도입부분 (2,6-3,6)
▪ 판관들의 역사 (3,7-16,31)
▪ 부록 (17-21) : 단 지파의 이동과 성소 (17-18)
기브아의 범죄와 벤야민 지파를 거스른 전투 (19-21).
2) 내용과 분석
첫 번째 도입부분은 성공사례, 실패사례와 함께 이스라엘 지파들의 가나안 정복사를 간략하게 소개하면서 각 지파에 분배된 영토에는 아직도 원주민들로 구성된 위협적인 저항세력이 자리 잡고 있음을 밝혀 준다. 하느님의 약속과 상반되는 것처럼 보이는 이와 같은 상황은 따라서 그 해명을 필요로 할 수밖에 없었다(2,1-5). 이와 같은 정복시대를 상기시키는 역사적 서언부분에 뒤이어 본격적인 판관들의 시대가 펼쳐진다(2,6-16,31). 이 가운데 2장 6절-3장 6절은 이스라엘 지파들의 역사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 즈음에 대해 종교적 의미를 부여해 주는 또 하나의 도입부분으로 취급해 볼 수 있다(여호 24,28-31절과 비교). 여기서는 여호수아 시대가 비교적 이스라엘의 성실성을 보여 주었던 시대였다면 판관시대는 불성실성을 보여 주었던 시대로 미리 평가되고 있다.
판관기의 주요부분이 이스라엘 열두 판관들에 관한 내용인 것은 사실이나 그 안에서 다양한 차이점이 발견된다는 사실 또한 간과할 수 없다(3,7-16,31). 드보라, 기드온, 입다, 삼손의 활약에 대해서는 장황하게 묘사해 주고 있는 반면, 그 외의 판관들에 대해서는 간략하게 또는 그 이름 정도를 언급하는데 만족하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이후 판관기는 왕정제도 정착 이전 이스라엘의 무정부 상태를 말해 주는 두 개의 부록으로 끝을 맺는다. 마치 왕정제도의 필요성을 이끌어내기 위해 이 사화들이 삽입되었다는 인상을 심어준다(17-21장).
3) 신명기계 편집
판관기에 수록된 다양한 전승들은 가나안 정복 이후 이스라엘 백성의 생활환경을 묘사해 주고 있다. 이 전승들은 한 영토를 공유하고 있는 여러 민족들과 잦은 분쟁을 치러야 했던 이스라엘을 소개시켜 주고 있으며, 이러한 상황은 여호수아기가 이미 서술한 바에 잘 부합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전승들 자체는 재손질되지 않았으며, 단지 각기 다른 전승들에 상동성(相同性)을 부여하면서 작품의 일반적인 구조[틀]안에 삽입되어 나타날 뿐이다. 편집자들은 최소한의 응용과 함께 자신들의 작의를 실현시켜 나가고 있다. 모든 것이 야훼께 대한 충실성에 달려 있으며, 질투의 하느님은 당신 백성들에게 전적인 사랑을 요구하고 계심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편집방법을 통하여 신명기계 학자들은 동시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당대의 문제점들을 타결해 나 갈 수 있는 확고한 방법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조상들처럼 회개하여 야훼께 돌아올 때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불쌍히 여기실 것이며, 그들에게 또 다른 새로운 구원자를 보내 주시리라는 생생한 산 교육 말이다.
3. 사무엘기
다른 신명기계 역사서들에 비해 신명기계 학자들의 영향을 비교적 덜 받은 작품으로 보이나, 사무엘기 상권 7장, 12장, 하권 7장에서 이들의 주요사상을 엿볼 수 있다. 사무엘기 하권 9-20장은 문학적인 조화[단일성]를 잘 보여 주고 있으나, 그 밖의 부분들은 다분히 혼합적이다. 그 중요성 때문에 왕정제도가 각기 다른 상황에 따라 평가되고 있을 뿐만이 아니라, 사울이나 다윗에 관한 사화 속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발견된다. 이러한 현상은 결국 편집자들이 각기 다른 전승들을 인위적으로 조화시키려 했다기보다는 오히려 나란히 열거하는 데 만족하고 있다는 증거로 이해된다. 각 전승에 고유한 특징들을 잘 보전하려 고심했다는 점에서 작품의 연속성이나 논리성이 결여되어 있음을 시인할 수밖에 없으나, 한편 서로 다른 전승들을 쉽게 판별하고 정리해 볼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신명기계 학자들은 이처럼 자신들이 수집한 전승들을 자유자재로 수정하거나 편집하지 않고서, 하나의 전승을 희생시키기보다는 오히려 작품전체의 논리적인 일관성을 희생시켜가면서 그 모든 전승들을 결집시키는 데 만족했다고 볼 수 있다.
1) 구 조
▪ 사무엘(1사무 1-7)
∘ 사무엘의 유년기(1-3)
∘ 하느님의 궤(4-7)
▪ 사무엘과 사울(1사무 8-15)
∘ 왕정제도의 탄생(8-12)
∘ 사울시대의 개막(13-15)
▪ 사울과 다윗(1사무 16-2사무 1)
∘ 사울 왕궁에 들어오게 된 다윗(16,1-19,7)
∘ 다윗의 도피(19,8-21,16)
∘ 무리의 우두머리 다윗(22-26)
∘ 블레셋에 망명한 다윗(17-2사무 1)
▪ 다윗(2사무 2-20)
∘ 유다 왕 다윗(2-4)
∘ 남북 이스라엘의 왕 다윗(5-8)
∘ 다윗 왕권계승 사화(9-20)
▪ 부록(2사무 21-24)
2) 내용과 분석
■ 사무엘기 상권
1-3장은 사무엘의 탄생과 유년사화를 전해 주고 있으나 사무엘기 전체에 관한 도입부분으로 볼 수 있다. 이스라엘이 블레셋 민족에 의해 야훼의 궤를 빼앗기는 사건 (4-6장)은 실로(Silo) 성소 또는 사제 엘리와 그의 자식들에 대한 언급을 제외한다면 앞부분과 거의 관련이 없는 작품이며, 사무엘 역시 여기서는 제2의 인물로 나타날 뿐이다. 또한 7장은 본 사화의 논리적 속편으로 볼 수 없으며 게다가 사무엘이 1-3장의 예언자와는 달리 판관의 모습을 취하고 있다(7,15).
8-12장에서는 두개의 서로 다른 전승이 쉽게 발견된다. 하나는 친(親)왕정제도 전승이고(8; 10,17-25; 12) 다른 하나는 반(反)왕정제도 전승이다(9; 10,1-16; 11). 이 두 개의 전승이 8장 22b절과 10장 26-27절 그리고 11장 12-15절에 의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다음 13장 16절-14장 46절에서의 사울(Saul)은 무슨 일이든 하느님께 여쭙는 경건한 종교적 인물로 소개되며 그럼으로써 하느님의 도움을 받는 인물로 나타나는 반면, 13장 8-15절은 15장과 이중어록(二重語錄)을 형성하면서 사울이 이미 하느님으로부터 버림받았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렇게 볼 때 1-15장에서는 크게 서로 다른 두 개의 편집단계가 발견된다. 제1단계에서는 야훼의 궤를 빼앗기는 사건에 이어 왕정제도에 관한 사화가 뒤따라 나오며 이는 또한 블레셋과의 전투를 준비시키는 과정으로 제시된다(4-6; 9,1-10; 11; 13-14). 이 단계에서 사무엘은 하느님의 영감을 받은 자 또는 사울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의 도구로 등장한다. 여기에 사무엘에 관한 설화가 보충되며(1-3장), 다윗에게 기름 바르는 사건(16,1-3) 설명을 목적으로 사울의 버림받음 이야기(15장)가 등장한다. 제2단계에서 사무엘은 마지막 판관으로 묘사되며, 이는 반 왕정제도 사상을 준비 또는 돈독케 하고 있다(7-8; 10,17-25; 12).
이후 서로 다른 전승 또는 이중어록이 끊임없이 발견된다. 야훼로부터 이스라엘 왕으로 첫 선택을 받은 사울의 왕권이 어떠한 이유 및 상황으로 말미암아 다윗에게 양위되는지 독자들 스스로 판단해 낼 수 있도록 편집자는 수집한 전승들을 그대로 전해주는 데 만족하고 있는 듯 하다. 그러면 여기서 서로 다른 전승 또는 이중어록을 열거해 보도록 한다 : 다윗과 사울의 인연(16,14-23; 17,1-11절과 17,12- 30; 17,55-18,2), 사울의 다윗 살해기도(18,10-11절과 19,9-10), 다윗의 업적과 명성(18,12-16절과 18,28,30), 사울 딸과의 결혼 언약(18,17-19절과 18,20-27), 다윗과 요나탄의 우정(19,1-7절과 20,1-21,1), 배반당한 다윗(23,1-13절과 23,19-28), 사울을 살려두는 다윗(24장과 26), 끝으로 사울의 죽음(1사무 31,1-4절과 2사무 1,1-16).
■ 사무엘기 하권
사울의 죽음 후(2사무 31; 1열왕 1) 2-6장은 헤브론(Hebron)에서의 다윗 왕국, 블레셋과의 전투, 예루살렘 점령과 천도 그리고 예루살렘에 야훼의 궤를 안치시키는 이야기를 전한다. 나단(Natan)의 예언과 다윗의 기도를 소개하고 있는 7장은 오래된 작품이며 구약성경 가운데 주요한 작품으로 손꼽힌다. 8장은 다윗이 치른 전투를 요약해 주는 내용으로 편집자들의 작품으로 본다. 이어서 서술되는 다윗 왕권 계승사화(9-20; 1열왕 1-2)는 솔로몬 시대 초기 사건을 직접 목격한 사람의 손에 의해 구성된 작품으로서 재손질한 흔적을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구약성경 최초, 최대의 산문체 걸작품으로서 때로는 야훼계 사상이 엿보이기도 하나 야훼계 학자의 작품으로 보기는 힘들다.
끝으로 21-24장에서는 원래 주제상 둘씩 짝지어져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여섯 개의 단편들이 발견된다: 종교적 범죄에 대한 응벌(21,1-14절과 24장), 블레셋 패장과 다윗의 장군 목록(21,15-22절과 23,8-39), 임금에 관한 시편(시편 18편 참조)과 다윗의 마지막 말 (22장과 23,1-7).
3) 신명기계 편집
다윗 왕권계승사화(2사무 9-20장; 1열왕 1-2장)는 솔로몬 시대 초에 완성된 작품으로 본다. 그 외 작품들은 비교적 후기에 수집, 보완, 편집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떠한 역사적 상황이 사무엘기라는 한 권의 작품이 탄생되도록 자극했겠는가? 그것은 북 이스라엘 왕조의 멸망이다. 북 이스라엘의 멸망과 함께 남 유다로 흘러 들어온 전승이 남 유다의 전승과 만나게 되며, 이때부터 남유다 왕국, 특히 다윗 가문에 초점을 맞추고서 작품이 서서히 완성되었으리라 본다. 그러기에 이 작품에서 다윗은 모세만큼 중요한 인물로 제시되며 이에 대해서는 나단의 예언 (2사무 7장)이 핵심적이다.
신명기계 학자들은 다윗-솔로몬 이후 남북 이스라엘 왕국의 왕정제도에 대한 쓰라린 체험을 터득한 후 과거의 이상적 임금 다윗에 대하여 관심을 쏟음과 동시에 새로운 이상적 임금을 기대하는 한편 이 왕을 중심으로 모든 백성이 일치하여 새로운 왕국을 형성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불러일으키고자 작품에 손을 댄 것으로 본다.
4. 열 왕 기
다윗의 말년으로부터 이야기가 전개되는 열왕기는 사무엘기의 후편으로 보인다. 다윗 왕권계승 사화의 정점으로서 솔로몬의 즉위를 묘사하는 열왕기 상권 1-2장에 이어서 솔로몬의 역사, 사마리아 멸망까지의 남북왕국의 역사, 이후 유다의 마지막 왕까지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 열왕기이며, 작품 한 가운데에서 예언자 엘리야와 엘리사(1열왕 17-2열왕 13)의 행적이 발견된다.
각 시대의 역사는 따로 따로 그러나 전체적으로 제시되며 줄곧 종교적 성격이 강조되고 있다. 각 시대의 역사를 평가하는 데 있어서 자주 반복되는 문구를 쉽게 발견할 수 있으며, 이는 왕 자신의 품행에 관한 것으로써 결국 하느님의 율법에 얼마나 신실했느냐 하는 내용이다.
1) 구 조
▪ 다윗 왕권계승(1열왕 1-2)
▪ 솔로몬 시대(1열왕 3-11)
▪ 정치적 종교적 분단(1열왕 12-13)
▪ 엘리야 시대까지의 남북왕조(1열왕 14-16)
▪ 엘리야(1열왕 17-2열왕 1)
▪ 엘리사(2열왕 2-13)
▪ 721년까지의 남북왕국(2열왕 14-17)
▪ 유다왕국(2열왕 18-25,21)
▪ 부록(2열왕 25,22-30)
2) 내용과 분석
열왕기 상권 1-2장은 사무엘기 하권 9장에서 시작된 다윗 왕권 계승사화의 마지막 부분으로서 솔로몬이 다윗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르게 되는 결정적 단계를 말해 주고 있다. 3-11장까지는 솔로몬에 관한 역사이나 이 가운데 6-7장은 사제계 전승에 속하는 성전묘사를 그 내용으로 하고 있고, 3장 2-3절과 11장 1-13절, 41-43절과 8장 대부분은 신명기계 편집자에 의해 이루어진 작품으로 본다. 12-16장은 분명 “왕조실록”을 원전으로 구성된 작품이나, 베텔(Bethel)성소 저주사화 (12,33-13, 33)와 예로보암에 대한 아히야의 신탁(14,1-18)은 예언전승에서 유래한 것으로 본다.
다음 엘리야에 관한 작품은 다분히 혼합적일 뿐만 아니라 그나마 아람인과의 전쟁사화(20; 22)로 단절된 채 나타나며, 엘리사에 관한 이야기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 두 예언자에 관한 작품은 왕정시대 혼란기 이스라엘의 대 예언자들이었던 이들이 이루어낸 놀라운 일들을 소개하던 대중선집(大衆選集)에서 발췌한 작품으로 추정된다. 끝으로 히즈키야의 역사는 예언자 이사야라는 인물에 중점을 두고 있다. 열왕기 하권 18장 13절-20장 19절은 이사야서 36-39장에서도 발견되며, 이는 이사야의 제자에 의하여 기초된 작품으로 여겨진다.
3) 열왕기 편집시기
열왕기 상하권 초판은 약속으로 가득 찼던 시대 즉 요시아 시대에 편집되었을 것이다. 열왕기 하권 23장 25절에서 확인할 수 있는 요시아 왕에 대한 찬사, “요시아처럼 모세의 모든 율법에 따라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야훼께 돌아온 임금은 그 앞에도 없었고 그 뒤에도 다시 나오지 않았다”라는 구절이 초판의 맺음말이었을 것이다. 제 2판은 유배시대 중인 대략 560년경(2열왕 25, 27절 참조) 편집되었을 것이며, 이때 요시아 이후시대가 작품에 첨가된 것으로 추측한다.
열왕기 편집자들은 요시아 왕의 종교개혁이 실패로 돌아갔음을 실감했으며, 587년의 국운으로 치달려간 암흑의 날들을 상기시켜야만 한다는 의무감을 피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왕기 마지막 부분이 다윗의 후계자 여호야킨에게 하사된 바빌론 왕의 호의를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 가닥 희망의 빛, 구원의 서광을 은연중에 기대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부인할 수 없다(2열왕 25,27- 30).
Ⅲ. 결어 : 신명기의 가치
신명기계 역사서는 열왕기에서 끝맺음하지만 신명기의 영향력은 지속된다. 계시된 그리고 글로 옮겨진 신명기계 법은 유배시대 이후의 유다교 전체를 지배하게 되며, 역대기와 다니엘서 그리고 마카베오기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모든 성경이 그러하듯 영원한 작품으로 남는다.
신명기 정신은 율법 제일주의의 경향을 바로 잡아주며 중용의 미를 가르친다. 신명기가 모세의 법을 거듭 강조할 때는 이를 세심법 또는 지키기 어려운 법으로서가 아니라(신명 30,11-14) 사랑의 법으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역시 기본 계명을 언급하면서도 신명기의 또 다른 고유정신인 이웃 사랑에 관한 가르침을 연계시켜 말씀하신다(마르12,30; 루카10,27; 마태22,37).
그러나 신명기의 진정한 가치는 이 작품이 신명기계 역사서들과 함께 유배시대 이후의 새로운 유다 공동체를 가능케 했다는 데에 있다. 신명기 신학은 유다교로 하여금 온갖 시련을 극복해 낼 수 있도록 새로운 용기와 희망을 불어 넣어준다. 이 작품은 이스라엘의 비극을 정면에서 바라볼 줄 알며, 야훼께 대한 신실성을 과감하게 변호할 줄도 아는 작품이다. 바로 여기서 신명기 신학은 하나의 은총론으로 넘어간다. 이는 모든 것이 전적으로 하느님께 달려 있으며 그분에겐 결코 실망이나 좌절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바빌론 유배라는 비극적 현실을 체험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음과 같은 위로의 말씀을 귀담아 듣고 더욱 용기를 낼 수 있었을 것이다.
너희가 곤경에 빠지고
이 모든 일이 너희에게 닥치면,
마침내 너희는 야훼 너희 하느님께 돌아가
그분의 말씀을 잘 듣게 될 것이다.
야훼 너희 하느님께서는
자비하신 하느님이시기 때문에
너희를 버리지도 파멸시키지도 않으실 것이며,
저희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계약도
잊지 않으실 것이다.
(신명 4,30-31절)
제8장 : 예언서 - 구약성경입문 -
초기단계에 있어서 이스라엘의 예언운동은 고대근동지방의 바빌로니아, 이집트, 페니키아 등지의 예언운동과 별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이 운동은 곧 독자성을 찾아 선택된 이스라엘 백성의 당면과제에 해답을 선사하는 역사적이며 역동적인 운동으로 이스라엘 역사 안에 자리한다.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은 물려받은 전통을 지속시켜 나감은 물론 8세기-4세기 사이에 이를 발전시켜 후기 유다교에 계승시켜 준 인물들이다. 특히 이들은 모세 시대에 이미 확립된 윤리적 유일신 사상, 즉 “이스라엘의 유일하신 하느님은 당신 백성들에게 정의와 율법준수를 명하시는 의로우신 하느님이다”는 사상에 충실했으며, 이 사상을 최대한 발전시켜 나갔다.
Ⅰ.개 관
1. 예언자
1) 명칭
히브리어 성경에 자주 등장하는 명칭은 איꔩꗺ(nābî')이나 그 어원이 불분명하며 또한 사용용도 역시 일관성을 띠고 있지 않다. 이는 벌써 이스라엘의 예언운동이 고대 근동지방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입증해 주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다행히도 Septuaginta나 그 밖의 다른 희랍어 번역본을 통해 그 의미를 비교적 정확하게 파악해 볼 수 있게 되었다. 희랍어 번역본들은 히브리어 איꔩꗺ를 προφήτης로 번역하고 있으며, 이 용어는 어원학적으로나 의미론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는 용어다. 희랍어 προφήτης는 전치사 πρό와 동사 φημί의 합성어에서 유래한 명사형으로서 ‘~를 대신하여 말하는 자’, ‘~의 입장에서 말하는 자’라는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예언자(豫言者)라는 용어는 ‘미래를 말하는 자’로서의 예언자가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 불림을 받아 그분을 대신해서 말하는 그분의 ‘대변인’ 또는 ‘사자’(使者)로서의 예언자를 가리키는 용어임을 우선 숙지해야 한다. 이들이 시공의 제한을 받지 않으시는 하느님을 대신해서 말하는 사람이라면 그들이 전하는 말은 인간의 시각으로 볼 때 미래에 관한 일만은 아닐 것이다.
2) 구분
(1) 초기 예언자
12-10세기의 예언자들로서 바알(Baal) 숭배를 단호히 배격하면서 야훼 신앙을 선포한 사람들이다. 외적인 면에서 이들 예언자들의 모습이 고대 근동지방, 특히 페니키아 지방 예언자들의 모습과 너무나도 흡사한 것은 사실이나(1사무 10,5-6), 이 독특한 운동을 야훼 신앙운동으로 끌어 올렸다는 데 이들의 업적이 있다.
(2)예언자들의 아들들
이 명칭은 셈어적인 표현법으로서 예언집단 구성원을 의미한다. 대략 9세기경부터 이스라엘 역사 안에 등장해서 이러 저러한 성소(聖所)를 중심으로 집단을 이루어 예언활동을 전개한 사람들이다. 선대 예언자들과는 달리 광적인 행동을 지양하면서 활동하나 이들 역시 야훼 신앙의 수호자 내지 선봉자들이다. 대표적 예언자들로서 이스라엘 야훼신앙의 챔피언들이라고 부를 수 있는 엘리야(1열왕 18,22; 19, 10.14)와 엘리사(2열왕 2,3.15; 9,1-3)가 있다.
(3) 제도적 예언자
시대를 따라 구분할 수 없는 예언자들이다. 왕궁에 또는 그 주변에 거하면서 왕에게 하느님의 뜻을 전달했던 예언자들로서 다윗 시대의 나탄과 가드를 그 시조로 볼 수 있다. 국사결정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인물이었으나(2열왕 23,2; 예레 18,18), 직위남용이 불씨가 되어 성경에서는 종종 ‘거짓 예언자’로 비난받기도 한다(아모 7,14; 예레 28등). 현실과 타협하거나 특히 하느님의 뜻이 왕의 의지와 일치하는 양 거짓 전언할 때 이들은 참된 예언자 대열을 벗어난 사람들로 인식될 수밖에 없었다.
(4) 예언-집필가
8세기의 대표적 예언자 아모스를 기점으로 이스라엘 역사에 등장하는 예언자들로서 독자적으로 예언활동을 전개해 나가면서 자신의 이름으로 된 저서 가운데 일부를 직접 글로 남긴 사람들이다. 본격적인 예언문학 운동은 바로 이들에 의해 시작된다. 또한 구약성경에서 예언서라고 할 때는 흔히 이들의 작품을 두고 말한다.
시대별로 예언자들을 구분해 보면,
유배시대 이전
8세기 : 아모스, 호세아, 이사야(1-39), 미카
7- 6세기 초엽 : 스바니야, 나훔, 하바쿡, 예레미야
유 배 시 대 (587-537) : 에제키엘, 제2이사야(40-55)
유배시대 이후
6세기말 : 제3이사야(56-66), 하까이, 즈카르야(1-8장)
5세기 : 말라기, 오바드야, 요나
4세기 : 요엘, 제2즈카르야(9-14)
2. 예언서
1) 문학유형
하느님의 대변자로서의 예언자들은 그분의 말씀을 하나하나 글로 옮겨 쓰기에 앞서서 우선 힘찬 목소리로 말씀을 선포했던 사람들임을 다시금 상기할 때 예언서는 짤막한 그러나 다수였던 단편들로 구성된 작품임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고, 그러기에 이 작품들 속에서 다양한 문학유형을 구별해 낼 수도 있다.
그 예를 들어보기로 하자.
▪ 신탁(神託): 하느님의 이름으로 시작되는 장엄한 선포 즉 “야훼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야훼다” 또는 “너희들은 내가 야훼인 것을 알게 될 것이다”라는 문구로 시작되거나 끝맺음한다.
▪ 훈계: 설교자로서의 예언자 모습을 가장 돋보이게 하는 문학유형(아모 5,4- 5; 스바 2,3).
▪ 자서전: 영적 체험이나 자기생애의 주요사건들을 자신을 중심으로 즉 1인칭 으로 기술한 문학유형(이사 6;예레 1,4-10;호세 3,1-4).
▪ 서사체 전기(아모 7,10: 예레 26-29; 32-45).
▪ 찬미가(호세 6,1-6; 예레 14; 이사 42,10-13).
▪ 고백(이사 53,1-9; 예레 11,18-12,6; 15,10-21; 18,18-23; 20,7-8).
▪ 독설과 위협(아모1,3-2,16; 호세 7,8-16; 이사 5,8-25; 예레 7,16-20).
▪ 풍자적 비유(에제 17,2-24; 19,2-14; 23,2-36).
▪ 상징적 행위와 삶: 예언자들은 가끔 입으로 말하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자신들이 전하고자 하는 바를 몸짓으로 표시하기도 하며, 상당한 경우 삶 그 자체를 통하여 말하기도 한다(1열왕 11,29-40; 예레 13,1-9; 호세 1-3; 에제 24,15-27).
2) 구성
구전으로 전해 내려오던 또는 이미 글로 옮겨져 있던 예언자들의 설교내용과 생애 등이 제자들에 의해 보존되고 전해진 다음 결국 하나의 예언서로 그 골격을 갖추게 되었을 것이며, 이 과정에서 또 다른 요소들이 삽입되거나 수정 또는 보완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모든 예언서들은 이와 같은 복잡한 생성과정을 거쳐 이루어진 작품이므로 작품 속에 나타나는 이해 곤란한 부분이나 문맥의 단절, 어색함 등은 오히려 당연한 문학현상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물론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이다.
Ⅱ. 유배시대 이전의 예언자
1. 아모스
1) 생애
예언-집필가의 시조로서 이때부터 예언자의 이름이 예언서의 서명으로 나타난다. 남 유다의 트코아(Teqoa: 예루살렘 남방 17km지점) 출신으로(1,1) 예로보암 2세 시대(787-747), 대략 760-750년경 북 이스라엘에서 예언활동을 하나 그의 예언활동 기간은 상당히 짧았던 것으로 추측한다. 예로보암 2세 시대에 북 이스라엘은 상당한 경제적 번영을 향유하게 되나 이에 못지않게 사회불의 역시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었다. 국가제도의 확립에서 비롯되는 지배계급의 억압, 농경제도의 정착에서 오는 지주의 농경지 찬탈, 여기에 악덕상인들의 기만 등 여러 가지 사회문제 속에서 정의로 무장한 예언자 아모스는 북 왕국의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한다.
2) 구조
▪ 표제(1,1)
▪ 이방제국과 이스라엘에 대한 신탁(1,2-2,16)
▪ 경고와 위협(3-6)
▪ 현시(7,1-9,8)
▪ 부록(9,8-15)
3) 베텔사건(7,10-17)을 통한 아모스의 예언직
아마츠야(12절)
아모스(14-15절)
‘보는 자’(ḥōzēh)야,
나는 예언자(nābî’)도 아니고
예언자의 제자도 아니다.
유다 땅으로 달아나,
야훼께서 나를 잡으셨다.
거기에서나 예언하며
나에게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예언하여라.’ 하고 말씀하셨다.
밥을 빌어먹어라.
나는 그저 가축을 키우고 돌무화과 나무를 가꾸 는 사람이다.
아모스서 7장 10-17절에서 우리는 참된 예언자 아모스와 거짓 예언자 아마츠야 사이의 논쟁을 접한다. 두 예언자가 각각 어떠한 예언자상을 지니고 있었는지 살펴봄으로써 아모스 이후의 예언자들이 어떻게 자신들의 예언직을 수행해 나가게 되는지 밝혀 볼 수 있다.
아마츠야(12절)
아모스(14-15절)
‘보는 자’(ḥōzēh)야,
나는 예언자(nābî’)도 아니고
예언자의 제자도 아니다.
유다 땅으로 달아나,
야훼께서 나를 잡으셨다.
거기에서나 예언하며
나에게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예언하여라.’ 하고 말씀하셨다.
밥을 빌어먹어라.
나는 그저 가축을 키우고 돌무화과 나무를
가꾸는 사람이다.
(구분) 10-11절 : 왕과 예언자의 관계
12-17절 : 아마츠야(12-13절)와 아모스(14-17절)
아마츠야의 논고와 아모스의 응답내용을 비교하면서 몇 가지 결론을 이끌어보자:
(1) 아마츠야는 아모스를 가리켜 임금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던 예언자를 지칭하는 ‘보는 자’(ḥōzēh: 2사무 24,11 -가드 예언자)라 부른다. 아마츠야는 자신이 북 이스라엘 임금의 관리인 것처럼 아모스를 남 유다 왕의 관리 또는 그로부터 특별히 파견된 사람으로 단정하고 있다(10절 참조).
(2) 따라서 아마츠야가 볼 때 아모스는 남 유다에서만 예언활동을 해야 할 사람이다. 그리고 거기서 자신의 생계문제를 해결함이 마땅하다고 믿고 있다(미카 3,5절 참조).
(3) 그러나 아모스는 거짓 예언자 아마츠야가 품고 있는 예언자상을 단호히 배척한다. 자신은 임금이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된 사람이며, 빵을 빌어먹기 위해 예언자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님을 천명한다. 하느님으로부터 선택되고 파견되었으므로 오로지 하느님께서 명하시는 대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할뿐임을 분명히 한다.
4) 메시지
-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부를 틈탄 온갖 사회적 불의를 비난하면서 정의로운 사회구현을 종용한다(5,7-17.21-27; 8,4-8). 또한 이스라엘의 선민의식에서 비롯된 잘못된 의식을 비난하면서 “야훼의 날”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한다(5,18- 20).
- 아모스의 이 모든 노력은 결국 이스라엘로 하여금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품위를 되찾아 구원에 이르도록 함에 그 목적이 있다(5,15; 9,8-15).
2. 호세아
1) 생애
예로보암 2세 말기와 그 뒤를 이은 소위 왕위찬탈 시대에 활동했던 북 이스라엘 태생의 예언자로서 자신의 쓰라린 결혼체험을 바탕으로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을 선포한 사람이다. 예언활동시기를 대략 750-730년으로 보며, 따라서 아모스와 동시대의 인물로 추측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결혼 체험기를 제외한다면 예언자 자신의 삶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바가 없다.
2) 구조
▪ 표제(1,1)
▪ 호세아의 결혼과 그 상징적 가치(1-3)
▪ 이스라엘의 범죄와 징벌(4-14)
3) 호세아의 결혼과 그 상징적 가치(1-3장)
주해에 있어 상당한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는 본문이나, 호세아 예언자 자신의 실질적 결혼체험을 바탕으로 야훼와 이스라엘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묘사한 훌륭한 작품으로 본다. 자신을 야훼 하느님으로, 자신의 아내 고멜(Gomer)을 이스라엘 백성으로 비유하면서 이스라엘의 불성실성과 야훼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을 그리고 있는 구약성경 걸작품 가운데 하나이다. 특히 호세아의 세 자녀 이름 속에서 이 이름들이 지니고 있는 의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겨냥하고 있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즈르엘(피의 역사; 2열왕 9-10장 참조), 로-루하마(사랑 포기; 탈출 34,6절 또는 신명 13,18절 참조), 로-암미(계약파기; 탈출 6,7; 신명 27,16-19; 레위 26,12; 예레 7,2 참조).
4) 메시지
- 호세아는 모세 전승에 밝았던 인물로서 이집트 탈출 사건, 시나이 계약, 광 야생활 등을 상기시키면서 이스라엘 백성의 본 모습을 강조하고 있다.
- 결혼을 상징적 바탕으로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관계를 묘사하기는 호세아가 처음이며 이후 작품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 호세아서 마지막 장이 말해주고 있듯이 호세아 예언자의 예언목적은 불성실한 이스라엘 백성을 무한한 사랑의 하느님께 다시 돌아오게 하는 것, 즉 회개이다.
3. 이사야(이사 1-39)
1) 생애
이사야는 유다왕국 귀족계급 출신으로 기원전 765년경 예루살렘에서 탄생한 인물이다. 우찌야 왕(781-740)이 죽던 해인 740년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언소명을 받고(6,1-13) 예언활동을 전개한다. 당시의 유다는 아모스 시대의 북 이스라엘처럼 경제적 번영과 정치적 안정을 누리고 있었으나 사치와 권력 남용 등으로 사회는 부패해 있었다. 그러기에 이사야는, 그의 예언활동 초기엔, 아모스처럼 사회정의를 부르짖는 예언자로 활동한다(1-5장).
이사야 예언사명은 요탐(740-735), 아하즈(735-716), 히즈키야(716-687) 시대까지 이어지나, 아하즈 시대인 734년으로부터 시작해서 상당기간 동안 공생활을 중단하고 은둔생활에 접어들었던 것으로 보며, 이때 그 유명한 “임마누엘서”(6-12장)가 집필되었으리라 추측한다. 이사야는 천부적인 종교적 감성을 지닌 예언자로서 이스라엘 대시인들 중의 한사람으로 손꼽힌다. 그는 다른 어떤 예언자보다도 제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으며, 바로 이들 제자들(이사야 학파)에 의해 자신의 이념과 사상이 계승되어 제2 이사야서(40-55장)와 제3 이사야서(56-66장)가 탄생하기에 이른다.
2) 구조
▪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한 신탁(1-12):
735년(시리아-에프라임 전쟁 이전 작품: 1-5)
엠마누엘서(6-12)
▪ 이방 제민족에 대한 신탁(13-23)
▪ 종말론적 성격을 띤 “대 묵시록”(24-27)
▪ 이스라엘과 유다에 대한 약속과 위협의 신탁(28-33)
▪ 종말론적 성격을 띤 “소 묵시록”(34-35)
▪ 부록(36-39) : 2열왕 18,13-20,19절 참조
3) 메시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
이스라엘은 선택의 그 순간부터 하느님의 성성(聖性)을 잘 알고 있었다. 성전 한 가운데 거하시는 야훼는 스랍들, 하느님의 성성을 끊임없이 선포하는 역할을 맡고 있던 천사적 존재인 스랍들에 둘러싸여 계신 분이기에 이사야에게 있어서는 그분은 거룩하신 하느님,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이다(1,4; 10,20; 12,6; 17,7; 29,19.23; 30,12.15; 31,1; 37,23).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
하느님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이시므로 그분은 개인적인 유대관계를 통하여 당신 백성과 통교(communicatio)하시며 일치하신다. 이사야가 즐겨 사용하는 용어는 계약(foedus)이나 선택(electio)이 아니라 ‘양자로 받아들임’이라는 의미의 adoptio이다. 그에게 있어서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께서 키우고 애지중지한(1,2), 포도밭 주인이 포도밭을 보살피듯(5,1-2.4) 크나큰 사랑으로 감싸주며 보호하시는 당신의 자녀들이다. 그러나 이 사랑은 또한 이스라엘의 배은망덕과 불성실에 대한 응답으로 무서운 결과를 초래할 원인이 될 수도 있다(1,5-9; 2,9-11.17-19; 5,5-6 ; 10,33-34).
메시아 사상
이스라엘 백성에 관한 이와 같은 징벌이 결정적인 것일 수는 없다. 하느님은 당신의 약속을 이루시는 분임을 확고히 믿고 있었던 그는 이스라엘의 전멸을 상상할 수 없었다. ‘살아남은 자’에 대한 예언자 이사야의 신탁은 따라서 그의 희망을 대신하는 표현이라 볼 수 있다(1,8-9; 4,3; 7,3; 10,20-22; 28,5; 37,4.31-34). 이런 의미로 4장 2절의 “야훼의 싹” 또는 6장 13절의 “거룩한 씨”를 이해할 수 있으며, 이러한 개념들은 다른 예언서에서도 발견된다.
살아남은 자에 관계되는 이러한 개념들을 통해서 우리는 이미 이사야의 메시아사상을 감지할 수 있었으나, 이사야의 메시아관은 또 다른 희망찬 용어들 속에 잘 반영되어 있다. 메시아에 관한 한 우선 다윗 왕가를 거론할 수 있겠으나(2사무; 시편 89,4-5), 예언자 이사야는 보다 더 구체화시켜 나가고 있다. 그는 메시아를 뚜렷한 역사적 인물로 소개한다. 메시아의 탄생을 하느님의 구원역사에 대한 구체적 표지로 이해하고(7,11.14), 메시아에게 의미 있는 이름들을 선사함으로써 그의 사명을 규정하고 있으며(7,14; 9,5), 그의 영적인 특은을 또한 강조하고 있다(9,5; 11,2; 28,16-17). 또한 메시아의 나라를 서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7,17; 9,6; 32,1-5), 그 나라 안에서 펼쳐질 은총과 축복을 열거하기도 한다(11,3-8; 32,15- 19). 이사야서에서 발견되는 이와 같은 메시아관, 메시아에 대한 기다림은 일반적으로 예언자의 신탁들이 준엄한 양상을 띠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예언 내용 구심점을 이룬다.
4. 미카
1) 생애
호세아, 이사야와 동시대 인물로서 대략 740-687(요탐-아하즈-히즈키야시대)사이에 예언활동을 한 남 유다 출신이다(1,1). 아모스 못지않게 사회적 불의를 고발하면서 하느님의 정의를 선포한 예언자이며, 예레미야서 26장 18-20절에 의하면 히즈키야 시대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인물로 평가된다(3,12절과 비교).
2) 구조
▪ 표제 (1,1)
▪ 저주의 신탁: 이스라엘과 유다를 심판(1,2-3장)
▪ 축복의 신탁: 시온에서 이루신 언약의 말씀(4-5장)
▪ 저주의 신탁(6,1-7,7)
▪ 희망의 신탁(7,8-20): 유배시대 이후의 작품
3) 메시지
- 사회적 불의 안에서 하늘의 복수를 불러일으키는 온갖 범죄를 발견하고서 하느님의 심판을 선언한다(2,1-11; 6,9-11).
- 심판이 지난 후 하느님 나라, 시온의 승리를 예견하고 있다는 점에선 아모스가 부르짖었던 정의 개념을 능가한다(4-5).
- 아모스의 정의, 호세아의 사랑, 이사야의 겸손을 수렴하고 있다(6,8).
5. 스바니야
1) 생애
요시아 왕정시대(640-609) 전반기에 예언활동을 한 인물로 본다(1,1). 스바니야서에 나타난 이러 저러한 신탁들은 요시아 왕에 의한 종교개혁 직전 유다지방의 상황을 잘 알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잡신숭배(1,4-5), 이방문화의 영향(1,8), 거짓 예언자와 타락한 사제(3,4), 사회적 불의와 폭력(3,1-3) 등.
2) 구조
▪ 표제(1,1)
▪ 야훼의 날(1,2-2,3): 유다와 예루살렘 위협
▪ 이방국가와 예루살렘에 대한 신탁(2,4-3,8)
▪ 약속(3,9-20)
3) 메시지
- 유다뿐 아니라 모든 나라들을 벌할 범세계적 재앙의 날로서 “야훼의 날”을 선포한다(1,2-2,30).
- 그러나 “겸손하고 가난한 사람들”(2,3; 3,12)은 살아남아 하느님 나라를 차지하리라는 구원의 희망을 제시한다(마태 5,3참조).
6. 나훔
1) 생애
나훔의 출생지로 언급된 엘코스(1,1)의 정확한 위치를 알 길이 없어 어느 지방 출신인지는 모르나, 작품 속에서 나훔이 유다에 대하여 비상한 관심을 쏟고 있는 점으로 미루어 유다인일 것으로 추측한다. 대단한 재능을 가진 시인으로 보이며 그의 언변은 열렬한 애국심을 가득 담고 있기도 하다. 억압세력의 멸망을 만족스럽게 생각하고 있으니, 이는 그에게 있어서 이스라엘과 유다의 재건을 예시하는 징조였기 때문이다. 억압세력 아시리아의 수도 니네베의 멸망을 예찬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나훔은 대략 니네베 멸망직전인 612년경 활동한 것으로 본다.
2) 구조
▪ 표제(1,1)
▪ 시편(1,2-8): “야훼의 분노”
▪ 유다를 향한 축복과 저주의 신탁(1,12-13; 2,1.3)
▪ 니네베 위협신탁(1,9-11.14; 2,2)
▪ 니네베 함락예찬(2,4-3,19)
3) 메시지
니네베 즉 억압세력의 멸망을 포함한 나훔의 열렬한 애국심에 관한 표현 속에서 하느님의 정의를 읽어 나갈 수 있다. 니네베 멸망은 축적된 범죄(3,1.4.19)에 대한 당연한 결과였으며 게다가 니네베는 야훼를 거슬러 일어선 모든 나라의 전형으로 묘사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는 하느님의 승리이며 동시에 이스라엘의 승리이다.
7. 하바쿡
1) 생애
예언자 자신이나 그의 활동시기에 대하여 작품은 침묵하고 있다. 단 작품 속의 칼데아인을 바빌론 사람으로 볼 때 예레미아 예언자와 같은 시대에 활동한 인물로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2) 구조
▪ 표제(1,1)
▪ 예언자와 하느님의 대화(1,2-2,4)
▪ 저주의 신탁(2,5-20)
▪ 찬미가(3): 야훼의 승리
3) 메시지
하바쿡 예언서가 제기하고 있는 근본 문제는 의로우신 야훼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벌하시기 위해 어찌 이방민족인 칼데아(=바빌론)를 도구로 이용하실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이다(1,13절 참조). 이에 대한 응답은 다분히 역설적이기는 하나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정의의 최후승리를 준비하시는 과정 속에서 찾아야 한다. 따라서 의인은 결국 시련을 극복하기까지 굳은 믿음을 통해서만 하느님의 승리에 동참할 수 있을 것이다(2,4; 로마 1,17; 갈라 3,11; 히브 10,38절 참조).
8. 예레미야
1) 생애
예루살렘 북동 6km 지점에 위치한 아나톳(Anatoth)에서 650-645년경 출생한 사제가문 출신이다(1,1). 1장 2절에 의하면 628년에 예언소명을 받고서 요시아 시대를 거쳐 치드키야(597-587) 시대 또는 그 이후까지 예언활동을 한 것으로 본다. 따라서 예레미야는 젊은 왕 요시아의 종교개혁으로 대표되는 희망찬 시기를 잘 알고 있었으며, 동시에 유다의 종말을 목격한 예언자이기도 하다.
작품 속에서 예언자의 고백록 또는 자서전이 자주 발견된다는 점에서 우리는 다른 예언자들보다도 예레미야를 더 가까이 만나볼 수가 있다. 예레미아는 고독한 인간, 비극적 인물로 제시된다. 그의 사명은 순수 인간적인 시각으로는 언뜻 실패작인 것처럼 보이나 신앙의 눈으로 본다면 바로 이것이 성공작이다.
2) 구조
▪ 표제(1,1-3)
▪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한 신탁(1,4-25,13)
▪ 제민족에 대한 신탁(25,14-38; 46-51)
▪ 구원(26-35)
▪ 예레미아의 고통(36-45)
▪ 부록(52): 예루살렘 멸망
예레미야서에서는 세 가지 기본 문학유형이 발견된다. 신탁-고백(11,18-12,6; 15,10-21; 17, 12-18; 18,18-23 ; 20,7-18), 산문체 전기(19,2-20,6; 26;36; 45;28-29; 51,59-64; 34,8-22; 37-44), 끝으로 작품전체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산문체 연사가 그것이다.
3) 메시지
예언자의 고백
예언서의 핵심부분으로서 하느님과의 내적 긴밀한 통교를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고백록은 인간 예레미야를 깊이 알도록 이끌어 줄뿐만이 아니라, 그가 얼마나 인간적이었던가를 밝혀줌으로써 독자들에게 오히려 용기를 심어주고 있는 부분이다. 사실 예레미야는 하느님께서 그에게 요구하신 역할을 원치 않았다고 말할 수 있다(1,6; 17,16; 20,7-9). 시작부터가 고통이었고 이후 하느님과의 대화 주제 역시 늘 고통에 관한 것이었다. 인간적으로 견디기 어려운 짐에 눌린 그의 인생! 따라서 고통 중의 그의 기도는 겟세마니 동산에서의 예수의 기도와 너무나 흡사할 수밖에 없었다. 초대교회 신자들은 그래서 예레미아의 모습 속에서 그리스도의 모습을 찾았다.
새 계약
예레미야는 하느님의 명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끊임없이 그분의 말씀을 전하는 가운데 인간의 마음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느님 한 분뿐이심을 체험한다. 하느님의 개입 없이는 모든 것이 불가능함을 철저하게 인식하고서 “새 계약”을 선포한다(31,31-34; 32,37-41; 로마 8,2절 참조). 십자가상 죽음 전날 저녁 제자들과 함께 최후의 만찬을 가지시던 중 그리스도께서는 예레미아 예언자에 의해 이미 선포된 새 계약을 체결하신다: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루카 22,20).
Ⅲ. 유배시대의 예언자
1. 에제키엘
1) 생애
예루살렘 성전의 사제였던 에제키엘은 597년경 여호야킨 왕과 지도층의 인물들과 함께 바빌론으로 유배된 것으로 본다(2열왕 24,15 참조). 예언자는 “제삽십년, 곧 여호야킨 임금의 유배 제오년 넷째 달 초닷새날”(1,1-2: 양력으로 BC 593년 7월 31일)에 소명을 받고서, “제이십칠년 첫째 달 초하룻날”(29,17: 양력으로 BC 571년 4월 26일)까지 예언활동을 전개해 나간다. 예언사명 수행 중에도 사제직과 예언직 사이의 갈등은 에제키엘로 하여금 극도의 민감성을 발휘하게 했음이 분명하다. 그에게 있어서 모든 것은 예언 말씀을 전할 기회가 된다: 면도날(5,1-2), 음식(4,9- 17), 아내의 죽음(24,15-16) 등. 예언자는 몸과 마음을 다해 이 선포의 세계로 들어간다. 부정(不淨)한 음식을 먹어야 했던 존재는 바로 자신이었으며 머리와 수염을 깎아야 했던 이도 자신이었다. 현시 장면에서와 마찬가지로 상징적 행위시 그는 온전히 투신하고 있다. 현시 속에서 그는 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냄비에 관한 현시에서 그의 예언 말씀은, 말라빠진 뼈들에 관한 그 잘 알려진 현시 안에서 생명을 불러일으키듯이(37,10) 죽음을 이끌어 들인다(11,3).
2) 구조
▪ 머리말(1-3)
▪ 예루살렘 함락이전 신탁(4-24)
▪ 이방민족들에 대한 신탁(25-32)
▪ 예루살렘 함락이후 신탁(33-39)
▪ 에제키엘의 토라(40-48)
에제키엘서 전체를 볼 때 4개의 현시가 핵심을 이루고 있으며(1-3; 8-11; 37; 40-48). 이러한 현시 외에도 풍부한 상상력을 풍겨주는 작품들이 여럿 나타나며(23; 27; 31; 32), 또한 예언자의 상징적 행위를 그 내용으로 하고 있는 작품들도 있다(4,1-5,17; 12,1-20; 37,15-28).
3) 메시지
예언사명
초기 예언자는 이스라엘의 범죄를 폭로함으로써 심판과 응벌을 선포하기 위한 기반을 마련함과 아울러 유배라는 응벌의 정당성을 고취시킨다. 예언자는 앞서 사제였기에 사제계 전승에 친숙했던 인물로서 다른 어떤 예언자보다도 하느님의 성성(聖性)에 민감했으며, 이스라엘 백성의 범죄의 심각성을 보다 깊이 의식할 수 있었다. 하느님의 결정적 개입 없이 이스라엘의 구원은 전혀 불가능한 상태이다.
하느님의 심판과 응벌
유배라는 응벌로 이끈 이스라엘의 범죄는 보다 근원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에제키엘에 의하면 이스라엘은 죄를 떠나 살아본 적이 없는 “반역의 집안”이며(2,5.6. 8; 3,9; 20,8.13.21), 선택 이후 어느 한 순간도 하느님과 친교를 나눠본 적이 없는 백성이다(16; 20; 호세 2,17절과 비교). 이 백성의 모든 범죄는 우상숭배 즉 하느님 배반에서 출발하며, 여기서 하느님께 의지하기를 포기하고서 이방 강대국에 구원을 요청한다거나(23), 하느님의 율법을 거스르는 불의와 폭력을 일삼는 크나큰 죄악이 뒤따른다(7,10.23; 22). 유배라는 응벌은 따라서 당연한 것이었으며 이스라엘 백성은 그 책임을 모면할 길이 없다(3,16-20; 18,1-32; 33,10-20).
구원의 가능성
범죄에 따른 응벌을 살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과연 구원은 가능한가? 가능하되 그것은 그야말로 하느님의 일방적인 구원의지에서 비롯된다. 당신의 거룩한 이름이 이방민족들에 의해 더렵혀짐을 가로막기 위함에서이다(36,22). 이스라엘은 우선 한 데 모여 본국으로 귀환하게 될 것이며(34,11-13; 36,24; 37,12.21), 정화(淨化)된 다음(36,25), 새 계약을 통해 영원한 하느님의 백성, 하느님의 말씀에 신실(信實)한 백성으로 머무르게 되리라(36,26-27; 37,14; 39,29). 새 계약으로 새로운 이스라엘 백성이 탄생될 것이며, 새 성전에서 영원히 하느님을 섬기게 될 것이다(40- 48).
2. 제2 이사야(40-55)
1) 생애
이사야서 40-55장의 예언자를 “제2 이사야”라고 부를 뿐 그의 생애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바 없다. 550-538년 사이에 바빌론에서 유배중인 동족들에게 역시 희망과 용기, 하느님 계획의 신비 등을 선포한 예언자로서 이사야의 사상과 정신을 계승하고 있다.
2) 구조
▪ 바빌론 유배중의 이스라엘(40-48)
예언자의 사명(40), 동쪽에서 온 해방자(41), 야훼의 종 첫째 노래(42,1-9), 이스라엘 해방에 대한 신탁(42,10-44,23), 해방자 키루스(44,24-45,25), 야훼의 엄위(46), 바빌론에 대한 풍자(47), 야훼만이 유일하신 하느님(48).
▪ 시온의 재건(49-55)
야훼의 종 둘째 노래(49,1-6), 당신 백성을 저버리지 않으시는 야훼(49,7-50,3),야훼의 종 셋째 노래(50,4-9), 야훼께 신뢰(50,10-52,12), 야훼의 종 넷째 노래(52, 13-53,12), 새 예루살렘(54), 메시아적 구원(55).
이 작품을 기원전 8세기 예언자 이사야와 직접적 관련이 없는 작품으로 보는 이유는 역사적 관점에서 바빌론 멸망직전을 그리고 있다는 점, 교의적 관점에서 유일신 사상과 메시아사상과 구원의 보편사상 등이 정립되어 있다는 점, 문학적 관점에서 용어와 문체가 1-39장과는 현저하게 다르다는 점에서이다. 더구나 40장 1-11절에 예언자의 새로운 사명이 명시되어 있고 55장 10-13절이 하나의 결론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본디 제2 이사야서는 독립되어 있던 작품으로 본다.
3) 메시지
야훼는 주님이시며 그의 말씀은 변함이 없으신 분
과거의 역사를 주도하신 하느님은 지금도 사건의 흐름을 주도하시는 분임을 믿고 또한 그대로 선포하고 있는 한 예언자를 작품 속에서 만날 수 있다. 그는 예언자 호세아나 다른 예언자들처럼 이스라엘의 역사, 그 가운데 특히 사막생활을 되돌이켜 보는 가운데 거기서 신앙의 새로운 출발점을 찾아나간다. 하느님의 새로운 개입을 결코 의심하지 않으며, 구원자로서의 그분을 다시금 기대하고 있다.
창조주로서의 하느님
과거의 모든 것을 창조하신 분이 야훼 하느님이라면 그 분은 또한 거기에서 다른 것 즉 ‘새로운 것’을 창조하실 수 있는 분이다. 여기서 새로운 이집트 탈출, 과거의 탈출보다 더 아름답고 놀라운 탈출을 창조하시리라는 신앙과 희망을 이끌어 낸다. 새롭게 정화된 시온을 향하여 말이다.
증인과 중재자로서의 이스라엘
제2 이사야서에 있어서 선택된 이스라엘 백성은 윤리적 유일신 사상의 증인으로서 세계 역사 가운데에 자리한다(40,48; 43;11; 45,5-6.18-22; 46,5-9). 이들을 통하여 이방민족들은 회개[하느님께 돌아옴]하여 하느님 백성 자리에 앉게 될 것이다 (40,5; 42,10; 45,14; 52,10; 54,5). 구원의 보편성은 여기서 보다 분명히 구체적으로 제시된다(44,5; 45,22-24; 창세12,1-3절 참조).
Ⅳ. 유배시대 이후의 예언자
1. 제3 이사야(이사 56-66)
1) 생 애
이사야 정신을 계승한 이사야 학파의 또 다른 제자들에 의해 유배시대 직후에 팔레스티나에서 쓰인 작품으로 본다. 해방이라든지 재건이 더 이상 문제시되지 않고 있으며, 이미 팔레스티나에 재정착한 것으로 보이고 각종 사회문제가 대두되고 있다는 점에서 538-520년 사이에 활동한 사람의 작품으로 본다. 이렇게 본다면 그는 예언자 하까이나 즈카르야와 동시대에 활동한 인물이 된다.
538년 키루스 황제의 칙령 반포 후 유배민들은 각기 나름대로 소그룹을 형성하여 귀환하기 시작한다. 세스바차르의 인도로 제1그룹이 예루살렘에 당도하여(에즈 1,8-11; 5,14) 칙령의 명령대로 성전 재건 사업에 착수하나 제단을 다시 세우는 것으로 만족한다(에즈 3). 이어 또 다른 그룹들이 속속 귀환하며, 그 가운데 대제관 여호수아와 여호야킨 왕의 손자 즈루빠벨의 인도를 받은 그룹이 귀환함으로써 유다 공동체는 활기를 띠기 시작하고 성전 재건사업에도 박차를 가하게 된다(에즈 5-6장). 또한 이때에 귀환민, 잔류민, 디아스포라의 유다인, 외국인 등으로 새로운 복합공동체가 형성되며, 이 공동체는 각종 사회적이며 종교적인 문제점을 안고 움직이기 시작한다.
2) 구 조
개종자에 대한 호소(56,1-8), 질책과 약속(56,9-57,21), 참된 단식과 거짓 단식 (58), 시편(59,1-14), 단편적 묵시록(59,15-21), 미래 예루살렘 영광에 대한 첫 찬미가(60), 예언자의 사명(61), 미래 예루살렘 영광에 대한 둘째 찬미가(62), 하느님의 복수(63,1-6), 시편(63,7-64, 11), 우상숭배 배척(65), 신탁, 묵시적 시, 종말론적 연사 (66).
3) 메 세 지
- 에제키엘과 제2 이사야의 영향을 받아 예루살렘 성전으로 말미암아 예루살렘 역시 거룩하게 된다는 사상을 노출시키고 있고, 단식과 안식일법 준수를 강조하고 있으며, 이방인들에 대한 관심, 내적 종교 강조, 시온의 영광을 예찬하고 있다.
- 시대적 문제점들 즉 우상숭배에 의한 종교적 타락, 형제적 증오심과 외국인들에 대한 멸시에서 야기되는 공동체 내분을 소개하면서 해결 방안을 제시하고 이에 대한 부단한 노력을 종용하고 있다.
2. 하까이
예언자 하까이는 다리우스 왕 제 2년 520년에 예언활동을 전개함과 아울러(1,1) 즈루빠벨과 여호수아의 귀환으로 활기를 되찾은 성전재건사업을 적극 지지한 인물이다(에즈 5,1; 6,14). 하까이는 집정관 즈루빠벨, 대제관 여호수아 그리고 백성 전체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며(2,4), 특히 즈루빠벨을 통한 희망의 메시아 시대를 연상하면서 성전재건을 바로 이 메시아 시대의 개막으로 선포하고 있다.
3. 즈카르야(즈카 1-8)
사제이며 예언자였던 즈카르야는 하까이와 함께 예루살렘 성전재건사업을 독려했던 인물이며, 국가의 재건과 율법준수도 아울러 강조했던 인물이다. 또한 그의 작품, 그의 예언활동은 에제키엘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 작품의 핵심부분은 8개의 현시가 차지하고 있으며(1,7-6,8), 여기에 즈루빠벨의 상징적 대관식(6,9-14)과 예언신탁 모음집(7-8)이 첨가되어 있다.
▪ 표제(1,1)와 회개요소(1,2-6)
▪ 현시(1,7-6,8)
▪ 상징적 대관식(6,9-14)
▪ 단식문제(7)
▪ 메시아적 구원(8)
즈카르야 역시 성전재건을 메시아 시대의 개막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그의 메시아관은 하까이의 그것과 다소 차이가 있다. 즈카르야는 다윗의 후손 즈루빠벨뿐만이 아니라(3,8-10) 대제관 여호수아(3,1-7) 이 두 인물의 공동노력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완벽한 메시아 시대를 기대하고 있다.
4. 말라키
‘나의 특사’라는 의미 (3,1)의 말라키서는 익명의 작품으로서 성전 재건 사업 완료(515 : 에즈 6,15) 후부터 느헤미야에 의한 통혼금지(434: 느헤 13) 이전까지 활동한 사람의 작품으로 본다(1,13 ; 2,10-12).
말라키서는 신명기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고 있으며, 이는 1장 2절과 신명기 7장 8절, 1장 9절과 신명기 10장 17절, 2장 1절, 4절, 33절과 신명기 18장 1절, 2장 6절과 신명기 33장 10절, 3장 22절과 신명기 4장 10절 비교를 통하여 확인된다. 사제들과 백성들의 잘못된 종교의식을 고발하고 있고(1,6-2,9 ; 3,6-12), 통혼과 이혼을 엄금하며(2,10-16), 또한 그리스도에 의해 설정될 신약의 완벽한 제사를 예시하기도 한다(1,11). 신약의 복음사가들은 말라키서가 말하고 있는 대로 “야훼의 날”을 알리려 엘리야가 오리라는 유다전승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그 엘리야를 세자 요한으로 이해했다(루카1,17 ; 마태 11,10-14 ; 17,12).
5. 오바드야
구약성경 가운데 가장 분량이 적은 작품으로서 야훼 하느님의 능력과 정의를 찬미하고 있다는 사실을 제외한다면 배타적 구원관이나 지나친 국수주의 성격 등으로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는 작품이다.
6. 요나
대략 기원전 5세기경의 작품으로 보는 요나서는 문학유형상 예언서라기보다는 역사성을 띤 교훈설화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아미타이의 아들 요나(1,1)는 열왕기 하권 14장 25절에서도 그 이름을 찾아 볼 수 있어 요나가 아모스 또는 호세아의 동시대 인물로 추정되나, 열왕기가 말하는 요나와 요나서의 요나는 다른 인물임이 분명하다. 열왕기의 요나는 다분히 국수주의적이며, 적대관계에 있던 이스라엘 사람 요나의 파견으로 아시리아의 수도 니네베 사람들이 회개했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요나서는 유다 공동체의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선민사상과 구원관 등을 배척하면서 누구든지 회개하면 구원받을 수 있는 구원의 보편성을 천명한다. 복음저자들도 요나서를 인용하고 있다: 니네베의 회개(마태 12,41; 루카 11,29-32), 요나와 예수(마태 12,40).
7. 요엘
구약성경 다른 곳에서는 그 이름이 전혀 발견되지 않는 요엘이라는 사람의 작품은 대략 4세기경 기초된 것으로 본다.
요엘서는 두 부분으로 나뉜다: 1,2-2,27(메뚜기 떼의 침입, 국가적인 기도와 단식의 날 선포, 야훼의 신성 예찬)과 3-4장(새로운 시대와 야훼의 날).
예언서적인 성격이 아직은 강하게 나타나는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요엘서는 분명 예언문학과 묵시문학의 중간단계에 있는 작품이다. “요엘서는 오순절의 예언자이나 회개와 단식과 기도에 또한 모든 이들을 초대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톨릭 사순절 전례의 창시자로 볼 수도 있다”(R. de Vaux).
8. 제2 즈카르야(즈가 9-14)
제2 즈카르야의 관심사는 제1 즈카르야의 그것과 사뭇 다르다. 즈루빠벨이나 여호수아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고 성전재건에 대해서도 침묵을 지키고 있으며, 아시리아나 이집트는 모든 억압세력의 상징으로만 나타날 뿐이며 벌써 희랍제국세력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9,13). 이런 이유로 9-14장을 1-8장과 분리해서 다루며, 4세기 말엽 익명의 저자에 의해서 저술되어 첨가된 작품으로 본다.
이 작품은 “야훼의 말씀인 신탁”이라는 문구로 시작되는 두 부분으로 쉽게 구분된다: 9-11장과 12-14장. 동일한 문구로 시작되는 또 하나의 신탁이 (히브리어 성경에서는 즈카르야서 다음에 배열되어 있는) 말라키서에서 발견된다는 사실이 특이하다.
제2 즈카르야서의 중요성은 메시아적 기다림에 대한 가르침에 있다. 특히 12장 1절-13장 6절의 신탁은 ‘신비스런 인물의 희생’을 통한 다윗 왕가의 재건을 말하고 있다(이사 53 참조: 고통받는 종). 여기서의 메시아는 물론 다윗 왕가의 혈통을 이어받는 인물로 묘사되어 있으나 더 이상 세속적인 화려함은 찾아 볼 수 없다. 복음저자들은 제2 즈카르야서를 자주 인용하거나 또는 암시하고 있다(마태 21,4-5; 27,9; 요한 19,37 등).
9. 다니엘
1) 본문
다니엘서가 히브리어 경전에는 “끄뚜빔”(ketûbîm) 속에 그리고 희랍어 경전에는 “예언서” 속에 포함되어 나온다. 문학유형상 예언서로 보이는 것은 사실이나 비교적 후기에 저술되었기 때문에 히브리어 경전의 “예언서” 목록에서 제외된 것으로 본다.
다니엘서는 세 가지 언어로 기술되어 있다: 히브리어(1,1-2,4a 과 8-12), 아람어(2,4b-7,28), 희랍어(3,24-90; 13-14).
2) 저자와 저작연대
저자는 “경건한 자들”이라는 의미의 םיꕉי꘏ꖏ(ḥasîdîm) 가운데 한 사람으로 본다. 하시딤은 당초 마카베오 형제들의 저항운동을 지지했던 사람들이나(1마카 2,42; 2마카 14,6) 이 운동이 종교성을 상실했다고 판단한 순간 이탈한 사람들로서 이들로부터 바리사이파와 에쎄네(Essene)파가 갈라져 나온다. 다니엘서 9장 4-19절과 3장 26-45절의 기도문은 하시딤의 정신을 잘 보여준다. 저자는 희랍문명에 혐오감을 가지고 있으며, 성실하게 살고 있는 유다인들에게 율법을 강요하는 자들을 증오하고 있다. 시리아 왕 안티오코스 4세(일명 Antiochos Epiphanes)의 종교박해로 위기에 처한 동족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고 있으며 굽힐 줄 모르는 신앙을 고취시키고 있다.
190년경의 작품인 집회서가 다니엘서를 언급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 이후의 작품으로 본다. 또한 저자는 167년경의 성전침해사건(11,31), 유다인의 죽음(11,33)과 166년 마카베오 형제의 저항운동, 유다의 첫 승리(11,34)에 대해선 전혀 언급하지 않는 점으로 보아 저작연대를 대략 167-164년경으로 본다.
3) 구조
▪ 사화 (1-6) : 다니엘과 그 동료들
▪ 현시 (7-12) : 다니엘
▪ 부록 (3,24-90절과 13-14장) : 세 아이의 노래, 다니엘과 수산나, 벨과 뱀
4) 문학유형
- 교훈문학
다니엘서 1-6장이 이에 속하며 윤리 또는 영적 생활에 도움을 주기 위한 방법 중의 하나로 널리 사용된다. 사화의 주인공이 겪는 시련, 그가 취하는 행동전체가 독자들을 위한 산 교육이 된다. 다니엘처럼 이방문화와 종교 앞에 선 독자들은 어떤 자세를 선택해야 하고 어떻게 행동으로 옮겨나가야 하겠는가? 그들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묵시문학
유배시대 이후 이스라엘 예언문학은 서서히 하느님의 심판과 이에 뒤따른 구원에 대하여 지대한 관심을 쏟기 시작한다. 마지막 때에 대하여 무엇인지 알고자 하는 인간의 본성에 응답하고자 함에서, 하느님의 감춰진 계획을 밝혀주고자 함에서 이러한 유형의 문학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된다(다니 7-12장이 이에 속한다).
5) 메시지
신앙과 종교생활
다니엘서는 전승을 따르면서도 당대의 문제점들을 명쾌하게 직시하고서 그 해결방법을 선사하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희랍문화의 영향으로 인한 잡신숭배 (3,4-7; 5,4; 14,23)를 단호히 배척하면서 유일신 사상을 통해서만이 박해의 죽음을 불사하는 굳건한 신앙을 간직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3,5).
역사신학
역사를 통하여 당신의 신비스런 구원 계획을 실현하시는 하느님을 소개하고 있다. 바빌론, 메디아, 페르시아, 희랍과 같은 강대국이 연이어 등장함으로써(2장) 이스라엘 백성은 계속 억압을 받으나, 이는 최후 심판을 향해 나가는 역사의 한 과정임을 다니엘서는 설명하고 있다(2,44절 이하; 5,24-30; 7,11절 이하).
희망
희망을 알리는 예언서들을 참조하면서(9장과 예레 25,11-14절 비교) 하느님 나라를 고대하는 종말론적 신앙으로 이끌어 간다. 부활사상(12,2-3)이 엿보이기도 한다.
Ⅴ. 결어 : 예언자와 하느님 말씀
예언자는 하느님과의 직접적인 만남을 체험한 사람들이며, 자신의 확신 하에 이것이 바로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믿는 것을 백성들에게, 청중들에게 전한 사람들이다. 하느님과의 직접적 만남을 체험한 사람이라는 면에서 예언자는 또한 신비론자이기도 하다. 우리의 신앙체험이 그러하듯 직접적 체험은 순전히 내적인, 그래서 신비론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예언 신탁(神託)의 첫 부분과 끝 부분에 자주 나타나는 “야훼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라는 구절을 대하면서 우리는 예언자들이 사건들을 주의 깊게 관찰하면서 사색적인 어떤 이론을 이끌어내는 철학자들이 아니라 단순히 “야훼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것도 바로 지금”이라는 결론에 이르는 사람들임을 알아야 한다.
예언자들은 하느님께서 자신들에게 직접 말씀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그들의 내적 귀에, 그들의 영적 감각기관에 말씀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굳게 믿고 있었던 사람들이다. 하느님은 구체적 사건들을 통해 그들에게 말씀하시며, 예언자들은 이 사건들의 증인들이다. 따라서 사건 내지 역사에 관한 그들 나름대로의 해석은 극히 단순한 노력의 결실이 아니라, 외적 사건들을 예의 주시함과 동시에 하느님께 온통 열려 있음으로 해서 찾아 얻게 된 결실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