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장 : 지혜문학 -구약성경입문 -
Ⅰ. 개 관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과의 만남과 이 만남에서 비롯되는 관계를 전해주는 구약성경의 기본주제가 있다면 그것은 모세오경과 역사서 그리고 예언서를 통하여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이집트 탈출 사건과 시나이 계약이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역사 안에 개입하신 사건 가운데 최대의 사건이었으며, 이러한 역사적 대사건을 바탕으로 비로소 야훼는 이스라엘의 하느님이 되셨으며 이스라엘은 야훼의 백성이 되었기 때문이다. 후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종교 예배행위 안에서 이 사건을 기념해 나감으로써 “야훼는 이스라엘의 하느님, 이스라엘은 야훼의 백성”이라는 계약 의식을 현실화시켜 나갔다.
그러나 여기 이집트 탈출사건에서 비롯되는 일반적 역사의식이 결여되어 있는 작품들이 있다. 지혜서를 예외로 한다면 이 장에서 살펴나갈 작품들 속에선 이집트 탈출에 대한 언급을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잠언, 욥기, 코헬렛, 집회서, 지혜서, 아가 등 지서(智書)를 따로 구분해서 보고자 하는 첫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으며, 또한 이 작품들이 다루고 있는 소재나 문체 또는 문학유형 역시 특이하다.
1. 고대근동지방의 지혜문학
예언문학과 마찬가지로 지혜문학 역시 고대 근동지방에 널리 알려져 있던 문학유형 가운데 하나이다. 성경전승이 이를 입증해 주며(2열왕 5,10-11; 예레 49,7; 오바 1,8), 고고학의 연구결과도 한층 더 이를 분명히 해준다. 그러나 좀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이러한 문학유형은 비단 고대 근동지방뿐만이 아니라, 인간이 모여 살고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찾아볼 수 있는 문학유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인간의 삶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유형이기 때문일 것이다. 지혜문학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현인들은 한 시대나 문화에 갇혀있던 사람들이 아니다. 시대와 문화의 지배를 온전히 모면할 수는 없었다 하더라도 그들이 다루었던 문제들이 인간의 삶에 관한 것이었다는 점에서 어느 시대, 어느 문화의 민족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들이다. 현인들은 일반적으로 상류계급에 속한 사람들로서 고급교육을 받은 지식인들이며, 따라서 이들은 교육에 있어서 중대한 역할을 담당했다. 바로 이들에 의해 이집트에서는 ‘금언’, 바빌론에서는 ‘우화’, 가나안, 페니키아에서는 ‘비유’등의 지혜문학유형이 탄생되고 발전되어 나갔다.
2. 이스라엘의 지혜문학
모세오경이 모세의 작품으로, 시편이 다윗의 작품으로 전해져 내려온 것처럼 지서들은 일반적으로 솔로몬의 작품으로 소개되고 있다. 물론 그대로 인정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전승까지를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다. 성경 전승에 의하면 솔로몬은 분명 현인이었고 또한 이스라엘 지혜문학에 중대한 기여를 한 인물로 평가되기 때문이다(1열왕 3,16-28;5,9-10). 당시 빈번했던 국제무역을 틈타 많은 국가들과 문학적 교류가 이루어졌음이 분명하며, 바로 이때 이집트, 바빌론 등지의 지혜문학을 접하게 되었으리라 추측된다. 그러나 여기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언문학에서와 마찬가지로, 세속적 지혜문학 속에 그들의 위대한 정신을 심어 나간다. 즉 순수 인간적인 이 문학을 야훼신앙 문학으로, 야훼 하느님을 찬미하는 문학으로 수용하고 발전시켜 나간다.
참된 지혜의 원천은 하느님 바로 그분임을 인식하고 고백함으로써 모든 인간들은 하느님께 간청하여 이 지혜를 얻어야 하고(1열왕 3,6-12), 이렇게 얻은 지혜를 통하여 삶의 참 뜻을 파악하고 이 지혜에 비추어 삶을 영위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 이스라엘 지혜문학이 백성들에게 전해주고자 하는 기본 가르침이다.
Ⅱ. 지서 각권
1. 잠 언
수백 개의 금언들로 이루어진 잠언은 상당히 오랜 시대와 과정을 거쳐 형성된 작품이다. 솔로몬 시대부터 시작하여 기원전 5-4세기에 완성을 보게 되는 문학적이며 교양적인 작품으로서 이스라엘 백성의 참된 지혜선집이라고 말 할 수 있다.
1) 구조 : ( 9개의 금언집이 발견된다.)
▪ 1,1-7: 표 제 ▪ 1,8-9,18: 유배시대 이후 5세기경의 작품이다.
교육자로서의 아버지가 아들에게 가르치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특히 악한 동료들과 방탕한 여인들( 거짓 지혜)을 경계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 10,1-22,16: 9개의 금언집 가운데 가장 오래된 부분으로서 남 유다에 기원을 두고 있는 ‘솔로몬 제1 금언집’이다.
윤리생활에 관한 376개의 금언을 담고 있으며 종교적 영감으로 충만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 22,17-24,22: 요시아 시대(640-609)의 작품으로 “현인들의 제1 금언집”이라 불린다.
▪ 24,23-34: 유배시대 직전의 작품으로 ‘현인들의 제2 금언집’이라 불린다.
▪ 25-29장: 히즈키야 시대(716-687)에 수집된 작품으로 북 이스라엘에에 기원을 두고 있는 ‘솔로몬 제2 금언집’이다.
▪ 30,1-14: 비 이스라엘인 아굴의 금언집.
▪ 30,15-33: 수적(數的) 금언집.
▪ 31,1-9: 비 이스라엘인인 르무엘의 금언집.
▪ 31,10-31: 유배시대 이후 5세기경의 작품으로 제1 금언집 저자의 손에 의하여 이루어진 작품으로 본다.
제 1금언집에서 ‘거짓 지혜’(방탕한 여인)를 멀리 할 것을 가르치고 있는 반면
여기서는 ‘참된 지혜’(현숙한 여인) 를 예찬하고 있다.
2) 메시지
인간세계
잠언에 나타난 인간세계는 지혜로운 세계와 어리석은 세계 이렇게 두 세계로 분명하게 양분된다. 지혜란 무지가 아닌 어리석음의 반대개념으로서 아무리 유능하고 식견이 높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인생의 참 뜻과 목적을 깨닫지 못한다면 그는 어리석은 사람으로 남게 된다.
신앙은 윤리생활의 기초
지혜개념의 명확한 파악을 통하여 잠언서는 선행실천을 종용하고 있다: 자기억제, 근검절약, 언어자제, 솔직담백성, 결혼에 대한 성실성, 재판의 공정성, 자선행위 등. 그러나 이러한 윤리적 행위보다도 최대의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 것은 “신앙”이다. 신앙이 도대체 모든 윤리 행위의 기초로 나타난다. 여기서 현인은 신앙인과 동일시되며, 어리석은 사람은 야훼 하느님을 믿지 않는 비신앙인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느님께 대한 두려움” 그 자체가 지혜의 유일한 원천이요 원칙이기 때문이다 (1,7).
바로 여기서 잠언이 말하는 지혜와 이방민족들이 말하고 있는 지혜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점이 발견된다. 인간의 품위를 간직하고 또는 현인들의 가르침을 숙고함으로써만 지혜로운 사람이 될 수 없고 “하느님께 대한 경외심”을 통해서 비로소 지혜로운 사람이 될 수 있음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2. 욥 기
유배시대 이후 5세기경의 작품인 욥기는 지상생활에서의 상선벌악(賞善罰惡) 사상이 해결될 수 없는 실질적인 문제점에 봉착한 바로 그 순간 탄생한 작품이다. 이 작품뿐만이 아니라 지혜문학 전체를 옳게 읽어나가기 위해선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후세계(死後世界)에 대하여 어떤 사상을 가지고 있었는지 우선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죽음이 다가왔을 때 인간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침울하고 불투명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 לוֹאꚉ(se'ôl)로 내려간다. 여기서 모든 이들은 지상생활에서의 삶의 양식에 관계없이, 즉 부자였건 가난뱅이였건, 선한 사람이었건 악한 사람이었건 관계없이 동등한 상태에 놓이게 된다. 사후에 대하여 이런 사상을 간직하고 있었다면 그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순간은 지상생활일 수밖에 없었으며, 따라서 선한 사람은 하느님의 축복을 받아 복된 삶을 누려야 하고, 악한 사람들은 하느님의 저주를 받아 고통스러운 삶을 누려야만 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인간체험은 오히려 그렇지 않은 경우 또는 정반대의 경우를 더 많이 확인시켜 주지 않는가? 그러함에도 하느님을 의로우신 분으로 믿어 고백할 수 있겠는가? 죽음 후의 상선벌악사상이 부상하기 시작한 것이 6세기 초엽이지만(예레 31, 29; 에제 18,2) 결정적인 단계는 역시 욥기의 출현으로 보아야 할 것이며, 결국 기원전 2 세기 말엽에 가서야 정리된다(다니 12, 2-3; 2마카 7,15; 12,43-45).
1) 구조
▪ 1 - 2: 산문체 서언부분으로서 욥이 당한 불행과 하느님께 대한 신뢰심을 서술한다.
▪ 3 - 31: 욥과 그의 세 친구인 엘리파즈, 빌닷, 초바르 사이의 운문체 대화 를 내용으로 한다.
3; 29-31: 욥의 독백 4-27: 대화(친구의 충고, 욥의 답변, 욥의 기도가 3번씩 반복됨)
▪ 32 - 37: 운문체 연사. 욥의 오만과 세 친구의 시원치 않은 논리에 의분을 느낀 엘리후의 등장과
그의 운문체 연사를 소개한다..
▪ 38,1-42,6: 하느님과 욥 사이의 운문체 대화.
▪ 42,7-17: 산문체 끝말.
2) 메시지
상선벌악 사상
현세적, 전통적 상선벌악 사상에 도전하고 있다. 욥은 전통적 상선벌악 사상을 신봉하고 있는 세 친구와의 대화를 통하여 자신의 무죄를 천명하기도 하고 또는 유죄하다 하더라도 그 대가가 의롭지 못함을 끝까지 주장하고 나선다. 하느님의 정의까지 의심하고 나서는 욥의 집념이 돋보이나, 이는 욥 개인의 당면 문제이기보다는 욥을 대표로 하는 그 시대 모든 인간들의 문제였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욥은 야훼 하느님께 대한 신뢰심마저 포기하고 나서는 것은 아니다. 신비스러운 그분의 계획을 인정하면서 그 계획에 대한 한 인간의 고통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를 고심하고 있을 뿐이다.
현세적 고통의 의미
결국 현세적 고통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한다. 현세에서 맞이하게 되는 고통은 하느님의 저주의 단순한 표지가 아니라 그분 사랑의 또 하나의 표현이 될 수도 있음을 가르친다. 하느님께서 즐겨 사용하시는 교육방법 가운데 하나로서 인간은 당연히 이를 극복해 나가야만 한다는 것이 욥서가 전달해 주는 보배로운 메시지이다.
3. 코헬렛
코헬렛(תꗞꕛꙑ qōhelet)은 “집회에서 말하는 자”, 즉 사회자, 설교자를 가리키는 일반명사이나 이 작품에서는 거의 고유명사화하고 있다. 1장 1절이 코헬렛을 다윗의 아들 솔로몬과 동일시하고 있고 또한 1-2장이 솔로몬의 생애를 자주 암시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이 작품은 유배시대이후 대략 3세기경의 작품으로 본다. 비교적 후기 히브리어로 저술되어 있고 아람어적인 경향이 농후할 뿐만이 아니라 희랍사상까지 이미 내포하고 있으며 전통교의를 신랄하게 비난하고 나선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해 준다. 이 작품은 초막절 축제시 사용되었던 전례용 두루마리이기도 하다.
1) 구조
▪ 1,1 : 표제
▪ 1,2-11 : 머리말 (사물의 주기적 변화노래)
▪ 1,12-2,26 : 코헬렛의 자기반성
▪ 3,1-6,12 : 영원성과 순간성을 노래하면서 인간의 부정적인 면과 능력의 한 계를 깨우쳐 준다.
▪ 7,1-12,7 : 비유법을 활용하면서 좋은 일들이 어떠한 것인가에 대한 반성으 로 시작하여 지혜론을 펼쳐나간다.
▪ 12,9-14 : 결어.
2) 메시지
코헬렛의 인생관
코헬렛을 염세주의자, 쾌락주의자, 회의주의자로 보는 경향이 있으나 이는 그의 인생관을 철저히 파악하지 못한 데서 나오는 편견이다. 코헬렛은 의로우신 하느님의 섭리에 대한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는 종교인일 뿐(3,11.14-15; 8,17; 11,5) 그는 염세주의자가 아니다. 또한 삶의 기쁨을 하느님의 선물로 받아들이고 있을 뿐만 아니라(2,24; 3,13; 5,18; 9,7) 오히려 쾌락에 대한 남용을 단죄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2,1-2; 11,8.10) 그는 쾌락주의자도 아니다. 코헬렛은 회의론에 대해 말하고는 있으나 인생의 마지막 순간 모든 것을 하느님께 전적으로 내맡기고 있다는 사실에서 (6,10; 12,7) 회의론자가 아님이 또한 분명하다. 그는 다분히 현실주의자이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진실을 사랑하는 사람이며 삶을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 즉 선한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인간은 이 삶을 기쁨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 작품을 통해 코헬렛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자 하는 참된 인생관이다.
하느님의 섭리
코헬렛은 전통신학이 주장하는 하느님 섭리에 대한 기계적인 개념을 배척하고 있다. 그에게 있어서 하느님은 갚아야 할 것[借邊]과 가지고 있는 것[貸邊]을 엄격하게 대조해서 계산해 주는 회계사도 아니며 인간의 공로와 범죄에 비례해서 삶 또는 죽음, 행복 또는 불행을 의무적으로 지불해야 하는 거래자도 아니다. 신앙인은 다만 열심히 살아가면서 모든 것을 하느님의 섭리에 내맡기는 겸손과 신앙을 갖추어야 한다(7,14; 8,17; 마르 14,36).
4. 집회서
희랍어 성경엔 Σοφία Σιρὰχ(시라의 지혜) 또는 Σοφία Ίησού υἱός Σιρὰχ(시라의 아들 예수의 지혜)라는 서명으로 나타나나(50,27), 라틴어 성경은 Ecclesiasticus라는 책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이 라틴말 서명에서 이 작품이 신자 또는 예비신자 교육을 위해 사용된 작품이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집회서의 실질적인 저술목적은 신심과 선행을 가르치는 일로서 희랍문화권에 접어든 세대를 교육시키기 위함이라고 볼 수 있다.
마카베오시대 이전 대략 190-180년경 저술된 작품으로 본다. 원래 히브리어로 저술되었으나 -1896년부터 몇 년에 걸쳐 이집트 카이로의 옛 Synagoga 안에 위치한 Gueniza에서 집회서의 60%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필사본 5개가 발견됨- 130년경 예수의 손자 한 사람이 희랍어로 번역한 것으로 본다(집회서 머리말 참조).
1) 구조
▪ 머리말(희랍어 역자의 작품)
▪ 1,1-16,23 : 지혜의 본질과 그것이 주는 혜택
▪ 16,24-23,27 : 하느님과 창조, 인간의 도덕적 품행
▪ 24,1-32,13 : 가정과 사회 속에서의 지혜
▪ 32,14-42,14 : 정결한 삶
▪ 42,15-50,29 : 하느님의 지혜는 드러난다.
▪ 51,1-30 : 감사의 기도(51,1-12)와 맺음 시(51,13-30)를 담고 있는 부록
2) 메시지
- 전통교의를 비판하기보다는 존중하면서 작품을 전개시켜 나간다.
- 지혜와 율법을 동일시하고 있다(24,23-24; 15,1; 19,20 ).
또한 역사에 대해서도 큰 관심을 보이고 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선인들의 덕망을 본받게 하기 위함일 뿐이다(42,15-50,29).
5. 지혜서
기원전 50년경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유다인들 즉 Diaspora의 유다인 공동체가 이방인들에게 자신들의 종교를 전하려는 의도에서 저술한 작품이다. 따라서 지혜서는 처음부터 희랍어로 저술되었으며, 이스라엘의 전통을 견지하면서도 희랍문화의 영향을 숨기지 못하는 작품이다.
1) 구조
▪ 1,1-15 : 머리말(정의, 지혜, 생명)
▪ 1,16-5, 23 : 지혜와 인간의 운명
▪ 6 - 9 : 지혜의 기원, 본성, 작용과 지혜를 구하는 방법
▪ 10 - 19 : 역사 안에서의 하느님 지혜
아담으로부터 이집트 탈출까지의 지혜의 역할(10,1-11,4)
제1 반대명제(11,5-14) : 물
하느님의 자비(11,15-12, 27)
우상숭배(13-15)
제2 반대명제(16,1-4) : 동물과 메추라기
제3 반대명제(16,5-14) : 메뚜기 - 파리떼와 구리 뱀
제4 반대명제(16,15-19) : 벼락 - 우박과 만나
제5 반대명제(17,1-18,4) : 암흑과 빛
제6 반대명제(18,5-25 ) : 맏아들
제7 반대명제(19,1-9) : 홍해
이스라엘과 이집트(19,10-21)
결어(19,22)
2) 메시지
- 지혜서의 하느님은 이스라엘 전통의 하느님이시다. 전능하신 창조주로서 만물의 주인이시며 지혜의 원천이시다.
- 지혜서의 하느님은 불사불멸하는 존재로 인간을 창조하신 분이다(2,23).
죽음 후의 새로운 삶을 기대하며, 지상생활을 영원한 삶을 준비하는 과정으로 이해한다.
6. 아가
주해를 둘러싸고 논쟁이 가장 심했던 그리고 심한 작품이다. 문제의 핵심은 아가가 지나칠 정도의 선정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아가는 그 저자로 솔로몬을 가리키고 있으나(1,1), 전도서의 저자와 마찬가지로 이는 하나의 전승일 뿐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아가를 구성하고 있는 자료 가운데 일부가 솔로몬 시대와 관련이 있다 하더라도 유배시대 이후 대략 4세기경에 이루어진 작품으로 본다.
1) 구조 : (작품의 절정인 8장을 향하여 5개의 시집이 열거되어 있다.)
▪ 머리말 : 1,1 - 4
▪ 제1 집 : 1,5 - 2,7
▪ 제2 집 : 2,8 - 3,5
▪ 제3 집 : 3,6 - 5,1
▪ 제4 집 : 5,2 - 6,3
▪ 제5 집 : 6,4 - 8,5
▪ 맺음말 : 8,6 - 7
▪ 부록 : 8,8 - 14
2) 주해방법
- 우의적 주해
전통적인 주해방법으로 신랑을 하느님, 신부를 이스라엘로 본다. 초기교회 때부터 흔히 이 방법을 따라서 그리스도와 교회 또는 그리스도와 각 개인의 영혼과의 관계를 노래하는 한 편의 시로 이해해 왔으나 이런 주해방법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아가서 자체가 우의적 작품임을 시사하는 바가 전혀 없으며, 이스라엘의 역사나 지명까지도 우의적으로 해석해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 자의적 주해
최근까지 위험시되거나 거의 무시되어온 방법으로서 현대 성경학계에서 점차 주장되기 시작한 주해방법이다. 선남선녀 사이의 사랑을 노래한 내용을 그대로 인정하고서 받아들이자는 견해다. 인간의 사랑을 노래하고 있기 때문에 무조건 부정하다는 편견을 떠나서, 순수한 인간적 사랑이라면 하느님의 은총 속에 펼쳐져 그분의 관심대상에서 결코 제외될 수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주해방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여기에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그렇다면 과연 작품이 전해주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아가가 실질적인 남녀간의 사랑을 노래한 작품임을 인정하면서 이를 승화시켜 하느님과 이스라엘, 그리스도와 교회 관계를 묘사한 시로 읽어나간다면 히브리 성경의 책이름이 말하듯 가장 아름다운 “찬미가들 중의 찬미가”(םיꙞיꚍꕘ ריꚄ)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Ⅲ. 결 어 : 신앙과 지혜
제 8장에서 살펴본 예언문학이 그러하듯 이스라엘의 지혜문학은 야훼 신앙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외부세계 즉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페니키아, 가나안 등지를 향해 전적으로 개방되어 있으면서도 이스라엘의 현인들은 그들의 가르침을 율법 그리고 예언자들의 사상과 조화시켜 나갔다. 이들은 고대 근동지방 지혜문학의 관점과 그 방법을 적극 수용하면서도 모세의 후손들임을, 예언자들의 제자들임을 결코 잊지 않았던 사람들로서 세속적 지혜문학을 종교적 지혜문학으로, 더 정확하게는 야훼 신앙의 지혜문학으로 승화시키고 발전시켜 나간 사람들이다.
이렇게 해서 지혜문학은 이제 지혜의 원천이신 야훼 하느님을 찬미하는 문학, 인간들로 하여금 하느님으로부터 참 지혜를 간구하게 하고 슬기로운 삶을 영위하도록 이끌어 가는 탁월한 문학으로 성경 안에 자리하게 된다. 그러기에 우리는 성경의 지혜문학 작품들을 통하여 하느님을 좀 더 깊이 있게 바라보고 그분을 경외하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 “야훼를 경외함은 지식의 근원이다”(잠언 1,7; 2,5; 9,10; 14, 2; 15,33; 시편 111,10; 욥 28,28; 집회 1,14).
제10장 : 시 편 -구약성경입문 -
Ⅰ. 개 관
구약성경 대부분이 그렇듯 시편 구성사 역시 복잡하기 그지없다. 시편은 150개의 시를 담고 있으나 어느 한 시대에 한 사람의 저자에 의해 이루어진 작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탈출기 15장 21절의 ‘미르얌의 노래’나 판관기 5장 1-31절의 ‘드보라의 노래’를 통해 이스라엘의 종교적 시가 역사적으로 상당히 일찍 탄생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으며, 이러한 시가 꿈란에서 발견된 ‘솔로몬 시편’(Hodayoth)이나 복음서의 ‘마니휘깟’(Magnificat: 루카 1,46-55) 또는 ‘베네딕뚜스’(Benedictus: 루카 1,67-79) 등으로 미루어 최소한 그리스도 시대까지 이어졌음이 또한 분명하다. 시편 밖에서도 물론 이러 저러한 시들을 산발적으로 만날 수 있으나(1사무 2,1-10; 이사 38,10- 20; 44,23-28; 예레 15,15-25; 애가 3; 5; 다니 2,20-23; 3,26-45.52-90; 요나 2,2-9; 토비 13 등) 히브리 시의 대부분을 만날 수 있는 곳은 역시 시편이다.
1. 서 명
히브리 성경에선 םיꗤꕙꚢ(tehîllîm: 찬미가들), 희랍어 성경에선 Ψαλμοί(Psalmoi: 현악기를 동반한 노래)라는 서명으로 나타나며, 라틴어 역본(Liber psalmorum)이나 현대어 역본들은 희랍어 성경의 서명을 거의 그대로 따르고 있다. 우리말 <성경>과 <공동번역>, 또는 최민순 신부 역본은 ‘시편’(詩篇)을, 선종완 신부 역본은 ‘성영’(聖詠)이라는 책이름을 선택하여 사용하고 있다.
2. 구 분
지금의 시편은 모세오경의 구분법을 따라서 다섯 권으로 나뉘어 있다: 제1권(1-41), 제2권(42-72), 제3권(73-89), 제4권(90-106), 제5권(107-150). 각권은 ‘영광의 찬가’로 끝맺음하며(41,13; 72,18-19; 89,52; 106,48; 150) 이 가운데 시편 150편은 제5권은 물론 시편 전체의 마감 찬가 역할을 하고 있다. 히브리어 성경이나 희랍어 성경 모두 150개의 시들을 담고는 있으나 시의 구분 및 배열에 있어서는 다소 차이를 보이고 있다.
히브리어 성경
(성경, 공동번역 참조)
희랍어 성경
(최민순 역 - 성무일도 참조)
1 - 8
1 - 8
9/10
9
11 - 113
10 - 112
114/115
113
116
114/115
117 - 146
116 - 145
147
146/147
148 - 150
148 - 150
3. 구성과 저자
시편을 다섯 권으로 나누는 구분법은 그런 대로 상당히 오래된 구분법이라 볼 수 있으나 편집초기부터 그러했다고는 볼 수는 없다. 시편이 하나의 완성된 작품으로 출간되기 이전 최소한 몇 개의 시집이 따로 편집되어 상당기간 동안 독립형태를 취하고 있었으리라 보기 때문이다.
■ 야훼계와 엘로힘계 시집
하느님이 어떻게 호칭되고 있는가에 따른 구분법이다. 크게 세 개의 시 모음집이 발견되는데 그 가운데 두 개는 야훼계 시집이고(1-41장과 90-150) 하나는 엘로힘계 시집이다(42-83장).
■ 저자를 통한 구분
① 다윗(3-41, 51-71, 86, 101-103, 108-110, 138-145)
② 코라의 후손들 역대기 하권 19절 참조.(42-49, 84-85, 87-88)
③ 아삽 역대기 상권 16장 4-7절과 느헤미야기 7장 44절 참조.(50, 73-83편)
④ 모세(90-91), 솔로몬(72), 에단(89)
⑤ 순례자의 기도(120-134편)
⑥ 기타 : 하느님 나라(92-99), 감사시편(100), 알렐루야(104-107, 111-117, 135, 136, 146-150)
이를 종합해 볼 때 지금의 시편은 최소한 세 단계를 거쳐 각기 다른 시대에 편집되었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최후단계 : 다섯 권으로 분류된 지금의 시편
중간단계 : 야훼계와 엘로힘계 대 모음집
초기단계 : 저자의 이름에 따라 독립되어 있던 소 모음집
한편 저자 문제에 있어서 150편의 시들 가운데 절반 가량이 다윗을 저자로 명기하고 있고, 다윗이라는 인물이나 그 시대에 관계된 요소들이 여기저기서 발견된다는 사실 자체를 부인하지는 않더라도 그의 이름을 표제에 담고 있는 시들이 다윗에 의해 직접 저술되었다고는 보기 힘들다. 다만 지혜문학에 있어서 솔로몬이 그러했듯이 성경전승은 다윗을 이스라엘 시문학의 창시자, 이스라엘 전례의 창설자로 소개한다(1사무 16,14-23).
4. 표 제
각 시편의 표제 속에서 다양한 내용을 대하게 된다. 이 표제들이 원초적이라고는 볼 수 없으나, 3세기경 희랍어 번역자들이 상당 경우 표제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보아 비교적 오래된 표제들인 것만큼은 또한 확실하다.
■ 전통적 저자 표기
다윗, 솔로몬, 코라의 후손, 아삽, 에단, 모세.
■ 문학유형 표기
רוֹמꖅꗬ(mizmôr) : 시편 - 57개 시편(예, 3편)
ריꚄ(šîr) : 노래 - 30개 시편(예, 48편)
ליꗑꙺꗫ(maśkîl) : 마스킬 - 13개 시편(예 32편)
םꚛꗎꗬ(miktām) : 믹탐 - 6개 시편(16; 56-60)
ןוֹיꔿꚄ(šiggāyôn) : 시까욘(애가) - 1개 시편(7편)
הꗢꕙꚢ(tehillāh) : 찬양가 - 1개 시편(145편)
הꗢꘫꚢ(tepillāh) : 기도 - 4개 시편(예 86편)
■ 음악연주표기
ꖙꙇꗻꗱꗛ(lamnaṣṣēaḥ) : 지휘자에게 - 55개(예, 4편)
הꗚꘑ(selāh) : 셀라(쉼) - 39개 시편 속에 71번
תוֹניꔹꘁꔱ(binegînôt) : 현악기에 맞추어 - 6개(예, 4편)
תוֹליꕙꘌꕘ־לꔟ('el-hannehîlôt) : 피리에 맞추어 - 1개(5편)
תוֹמꗚ꘥־לꘞ(`al-`alāmôt) : 알 알라못(알라못 가락에 맞추어) - 1개(46편)
תיꗼיꗬꚒꕘ־לꘞ(`al-haššemînît) : 팔현금에 맞추어 - 2개(6, 12편)
תיꚝꕁꕘ־לꘞ(`al-haggittît) : 기팃에 맞추어 - 3개(8, 81, 84편)
תוּדיꗜ(lîdût) : 여두툰의 지휘를 따라 - 3개(39, 62, 77편)
(여두툰은 성가대 지휘자의 한 사람)
■ 대중 멜로디표기
תꖒꚉꚜ־לאַ('al-tašḥet) : ‘부수지 마소서!’ - 4개(57-59, 75편)
רꖏꚌꕘ תꗞꖻאַ('ayelet haššaḥar) : ‘새벽 암사슴’ - 1개(22편)
םיꘇꚃꚇ(šōšannîm) : ‘나리꼿’ - 2개(45, 69편)
םיꙎꖓꙣ םꗞꔟ תꗻוֹי(yônat 'elem reḥōqîm) : ‘요낫 엘렘 르호킴’ - 1개(56편)
ןꔲꗛ תוּמ(mût labbēn) : ‘뭇 라벤’ - 1개 (9편)
תוּד꘠ ןꚃוּשׁ(šûšan `ēdût) : ‘수산 애둣’ - 1개(60편)
תוּד꘠ םיꘇꚃꚇ(šōšannîm `ēdût) : ‘쇼사님 애둣’ - 1개(80편)
תꗛꖖꗪ(māḥalat) : ‘마할랏’ - 2개(53, 88편)
■ 전례시기 표기
안식일(92편), 기념제물 바칠 때(38, 70편), 감사제물 바칠 때(100편), 예루살렘을 향한 성지 순례시(120-134편).
5. 문학유형
시편을 포함해서 구약성경 이곳저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 히브리 시 전체는 순수 개별적인 것이 없다. 모든 시는 이스라엘 백성의 삶 속에서 탄생된 공동유산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의 영감의 기본적인 출처는 예배였으며(민수 10,35; 시편 68; 유딧 15,9-10; 탈출 15등), 이러한 종교행위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선택된 하느님의 백성임을 의식할 수 있었다.
이스라엘의 연례 대축제, 봉헌의식, 감사의식, 기도, 토라 봉독, 계약 갱신 등 이 모든 행위는 야훼를 이스라엘의 하느님, 구원자로 고백하는 의식이었다. 신약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의 백성에게 있어서 전례는 지나간 사건, 특히 이집트 탈출사건과 시나이 계약에 대한 현실적인 행위였다. 그것은 하느님의 구원행위와 말씀 그 자체였다.
구원의 역사는 공동체 안에서 지속적으로 선포돼야만 했으며, 이러한 선포를 통하여 모인 사람들은 야훼 하느님과 그분의 업적에 찬양과 신앙을 불러 일으켜야만 했다. 개인, 사제, 왕, 예언자 등과 같은 시편저자들은 주어진 상황 속에서 하나의 시를 지어냈으며 이렇게 지어진 시들은 되풀이되어 나갔고 또한 후대에 전승되었다. 여러 개의 시들이 완성되고 전승되어 나감에 따라 비슷한 유형의 시들이 한데 모아지기 시작했고 이렇게 모인 시들에 문학적인 기술이 가미되어 전례적 특수성격을 갖추게 되었다. 따라서 각개 시편이 어떠한 상황 속에서 저술되었는지, 그 구성을 둘러싼 문제점들은 어떠한 것인지를 밝혀낼 때야 비로소 그 시편이 전해주는 메시지와 가치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문학유형 고찰에 대한 의미는 바로 여기에 있다. 궁켈(H. Gunkel)의 학설을 바탕으로 하여 150개의 시들을 문학유형상 탄원시, 감사시, 찬미시, 임금에 관한 시, 시온에 관한 시, 하느님 나라에 관한 시, 기타로 나누어 살펴보기로 한다.
Ⅱ. 시편분류
1. 탄원시편
1) 개인적인 탄원시편
각종 질병, 임박한 또는 너무 이른 죽음, 거짓 비난 등과 같은 개인적인 불행에 직면해서 이를 의로우신 하느님께 말씀드리고 구원을 요청하기 위하여 구성된 시들로서 시편 가운데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
이 탄원시편은 일반적으로 기원 - 하소연 - 탄원 - 동기 순으로 짜여져 있다.
탄원 : 5, 6, 7, 10, 13, 17, 22, 25, 26, 27, 28, 31, 35, 38, 39, 41, 42, 43, 51, 54, 55, 56, 57, 59, 61, 63, 64, 69, 70, 71, 86, 88, 102, 109, 120, 130, 140, 141, 142, 143 편.
신뢰 : 3,11, 16, 23, 62, 131편.
2) 공동체적인 탄원시편
짜임새에 있어서 개인적인 탄원시와 유사하나 가뭄, 페스트, 전쟁 등과 같은 공동체에 관계된 재난을 모면하기 위해서 정해진 기도의 날에 올려진 시로서 공동체의 지도자가 하느님 앞에서 탄원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12, 44, 58, 60, 74, 77, 79, 80, 82, 83, 85, 90, 108, 125, 137편.
2. 감사시편
1) 개인적인 감사시편
하느님께서 개개인 또는 각 집안에 베풀어주신 은혜에 감사드리기 위해서 감사 제물을 바치면서 올려진 시들이다. 감사행위는 성전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 유형의 시편 속에서는 전례적인 분위기가 쉽게 감지된다. 선포 - 이야기[위험-기도-하느님의 개입] - 감사행위에 대한 초대순으로 구성되어 있다.
4, 9, 18, 30, 32, 34, 40, 92, 107, 116, 118, 138편.
2) 국가적인 감사시편
국가적인 성격을 띤 축제일에 사용된 시로서 전투에서의 승리나 국가적 재앙모면 또는 풍년 등의 경사에 대한 감사기도를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65, 66, 67, 124, 129 편.
3. 찬미가
찬미가는 이스라엘 시문학의 기원을 이룰 만큼 역사적으로 일찍 모습을 드러낸 문학유형이다(탈출 15,1-21; 판관 5). 야훼께서 역사적인 사건을 통하여 당신의 권능을 드러내실 때마다 이스라엘 백성의 입에서는 자발적인 찬미의 노래가 흘러 나왔을 것이기 때문이다(유딧 16,1-2.13). 이렇게 탄생한 찬미가는 하느님과 당신 백성과의 만남의 장소 곧 전례 안에서 새로운 가치를 부여받게 된다. 하느님 찬미에로의 초대 - 동기 - 끝맺음 순으로 짜여져 있다.
8, 19, 29, 33, 68, 100, 103, 104, 111, 113, 114, 115, 117, 135, 136, 145, 146, 147, 148, 149, 150편.
4. 임금에 관한 시편
시편에서는 왕정이념이 새겨져 있는 상당수의 시들을 만나볼 수 있다. 엄격하게 말해서 이스라엘의 참된 임금은 유일하신 야훼 하느님이시나, 또한 그분의 대리자인 지상 임금은 기름으로 축성된 사람으로서 “야훼 나라의 왕좌에 앉아 이스라엘을 다스리기 위해 뽑혀”(1역대 28,5), “다윗이 걸었듯이 내(야훼의) 길을 걸으며, 내 규정과 계명을 지켜야할”(1열왕 3,14; 2역대 7,17) 사람이다. 따라서 우리는 시편 속에서 임금의 즉위식 때나 즉위 기념일, 결혼식, 외적과의 전투에서 승리를 기원할 때나 승리하고 돌아오는 임금을 환영하러 나갈 때 읊어진 시들을 찾아 볼 수 있다.
2, 20, 21, 45, 72, 89, 101, 110, 132, 144편.
5. 시온에 관한 시편
다윗은 여부스 사람들의 요새지였던 예루살렘을 정복하고서 그 도읍을 통일 이스라엘 왕국의 수도로 삼은 후 야훼의 궤를 모셔온다(2사무 5-6). 또한 다윗의 뒤를 이어 솔로몬이 야훼의 궤를 모실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자 시온은 이제 야훼께서 선택하신 종교적 중심지, 따라서 신성불가침한 장소로 자리한다. 나아가 바빌론 제국에 의해 성전이 완전히 파괴되어버린 유배시대 동안에도 시온은 여전히 메시아적 희망의 중심지로 남는다(이사 60; 66; 즈카 8). 이러한 종교적 상황 속에서 유배시대 이전은 물론 유배시대 이후에도 시온이 종교적 시편의 대상이 된 것은 당연한 일로 보인다.
24, 46, 48, 76, 84, 87, 122 편.
6. 하느님 나라에 관한 시편
야훼는 이스라엘의 하나이시며 참된 임금으로서(탈출 15,18; 민수 23,21; 판관 8,23; 1사무 8,7) 계약의 궤 위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다스리시는 분이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례행위에 의식적이며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야훼께서 이 세상에 당신 나라를 건설하실 때 완벽하게 실현될 계약의 미래를 내다볼 수 있어야 한다. 하느님 나라에 관한 시편은 우선 이 나라에 대한 찬미와 기쁨에 백성들을 초대하고 있고, 두렵고 위엄 있는 존재로서 당신 옥좌에 앉아 계신 하느님을 묘사하고 있으며, 끝으로 창조와 구원 역사 속에서 그 모습을 드러낼 하느님 나라를 노래하고 있다.
47, 75, 93, 96, 97, 98, 99편.
7. 기타
1) 지혜시편
지혜문학의 영향을 받아 구성된 시들로서 주요테마는 역시 선악보상에 관한 문제이다.
전통적 교의 : 1, 15, 52, 112, 119, 127, 128편.
문제 제기 : 14 ,53, 94편.
도전 : 36, 91, 139 편.
해답 : 37, 49, 73 (17)편.
2) 신명기계 시편
시편 50, 78, 81, 95, 105, 106편은 신명기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 율법준수(신명 5,1-2; 6,1-9), 예배에 대한 신실성(신명 6,10-16; 8,11-18), 그리고 이집트 탈출 사건(신명 6,6-9; 11,18-21). 이밖에 신명기 27-32장의 요약을 찾아볼 수도 있다 : 율법과 규범 사랑(시편 78,5-6; 81,5-6; 105,8-10), 이집트 탈출사건을 상기시키는 연사(시편 81,7-8; 105), 훈계 (78; 81,9-13; 95,8-11; 106), 약속(81,14-17).
3) 그 밖의 기도문
다섯 가지 층계송(121, 123, 126, 133, 134편)은 유배시대 이후의 기도 모음집으로 본다.
제11장 : 역대기자의 역사서 -구약성경입문 -
Ⅰ. 개 관
신명기계 학파의 작품인 신명기계 역사서와 이 역사서가 반향하고 있는 신학을 살펴본 바 있으나 이와 동일한 문학유형의 또 다른 작품들을 성경에서 만난다. 이 작품들은 유배시대 이후에 저술되기 시작한 작품들로서 사제계 사상이 뚜렷이 드러나는 작품들이다.
Ⅱ. 역사서 각권
1. 역대기
1) 저자와 저작연대
역대기는 에즈라-느헤미야기와 함께 하나의 작품을 형성한다. 용어와 문체가 동일하며, 예루살렘 성전에 대한 관심이나 족보나 통계에 대한 관심 역시 마찬가지이다. 또한 역대기의 마지막 본문인 역대기 하권 36장 22-23절이 에즈라기 도입부분(1,1-3)에서 되풀이되고 있다는 사실에서 이 작품들은 동일한 저자에 의해 저술된 하나의 저서임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작품들은 에즈라-느헤미야 활동시기(대략 450년) 이후에 완성된 작품일 것이며, 역대기 상권 3장 19-24절이 말하는 다윗의 족보가 다윗의 후손으로서 유배로부터의 귀환인물인 즈루빠벨로부터 시작해서 최소한 6대가 더 내려가므로 350년경까지를 추측케 한다. 또한 작품 속의 용어와 문체가 사제계 전승과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으며, 히브리어 경전이 역대기를 최후의 작품으로 열거하고 있다는 사실 역시 이 작품의 저작연대를 350-300년으로 추정하도록 한다.
이 작품의 히브리어 서명은 םיꗬꖿꕘ יꙟꔮꕑ(diberê hayyāmîm: ‘날들의 사건들’)이고 희랍어 서명은 Παραλειπόμενα(Paraleipomena: ‘누락된 사건들’)이다. 히브리어 경전은 본서를 하나의 역사서로 보고 있는 반면, 희랍어 경전은 사무엘기와 열왕기의 보충부분으로 취급하고 있으며 Vulgata 역시 이 서명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Liber Paralipomenon).
2) 구조
▪ 아담에서 다윗까지(1역대 1-10)
족보(1-9)
사울(10)
▪ 성전에서 거행되는 종교의식 창시자로서의 다윗(1역대 11-29)
다윗시대(11-14)
다윗 성 안의 계약의 궤(15-20)
예루살렘 성전 건축 준비(21-29)
▪ 솔로몬과 예루살렘성전 건축(2역대 1-9)
▪ 남 유다의 왕조사(2역대 10-36,21)
▪ 부록(2역대 36,22-23)
(이후의 역사는 에즈라-느헤미야기에서 이어진다).
3) 문학유형
역대기를 사무엘기-열왕기와 비교해 볼 때 우리는 저자가 하나의 역사적인 작품을 구성하기를 원했다는 사실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작품 속에 좀 더 깊이 들어가 보면 역대기가 사료 면에선 신명기계 역사서와 일치하고 있다 하더라도 역사에 대한 관점이나 작품 구성면에서는 상당한 차이점이 발견된다.
역대기는 유배시대 이후의 복잡한 종교적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역사를 통해 얻으려는 집요한 노력과, 특히 유배시대 이후 유다교가 당면한 문제점들을 다윗 시대까지 끌어올리려는 경향을 노출시키고 있는 작품이다.
저자의 의도는 과거와 현재사이의 연속성을 정립시킴과 동시에 지나간 일 들이 지금 이 시대에도 의미가 있음을 강조하는 데 있다. 또한 저자의 저술목적은 다윗 왕가의 역사를 기술하는 데 있으며, 이 왕가가 종교영역 안에서 이루어낸 업적을 제시하는 데 있다. 역대기 기자가 자신의 역사신학을 정립하게 된 것은 바로 이러한 의도와 목표를 중심으로 해서이다. 따라서 그의 작품은 신명기계 역사서와 다른 역사서이며 동시에 역사에 대한 신학서이다.
4) 저술방법
- 사무엘기와 열왕기를 축소시켜 나가고 있다.
- 다윗과 다윗 왕가에 관한 역사만을 하느님 백성을 위한 참된 역사로 인식하고 있다. 따라서 북 이스라엘 왕조에 대해선 전혀 관심이 없다.
- 다윗과 솔로몬 시대의 영광을 강조하기에 탐탁하지 않은 이러저러한 사건들 을 의도적으로 삭제시키고 있다.
- 축복과 저주의 대상이 왕뿐만 아니라 백성 전체로 확대된다. 하느님께 불순 종 했던 왕과 백성은 저주를 받게 되며, 성전과 종교의식에 대해 열성 과 성실성을 보였던 왕과 백성은 축복을 받는다.
5) 저자와 다윗
사제이며 예언자였던 에제키엘의 이념을 받아들여 저자는 자신의 작품 속에 메시아사상을 반영시키고 있다. 그가 바라보고 있는 다윗, 왕이며 동시에 사제인 다윗은 역사적 인물을 이상화시킨 인물로서의 다윗이 아니라 미래의 다윗, 전혀 새로운 다윗, 즉 메시아로 보아야 할 것이다. 물론 저자가 자신의 작품 속에서 하느님 왕국에 대한 종교성을 그토록 강조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우리는 이에 대한 “완성”을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빌라도 앞에 선 예수 그리스도처럼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요한 18,36)라고 저자 역시 침묵 속에 강조하고 있는 듯하다. 저자가 미래 속에서나마 어렴풋이 찾아보려 했던 그 임금은 그의 작품을 완성으로 이끈, 그의 이념을 실현시켜 준 예수 그리스도임에 틀림없다.
2. 에즈라-느헤미야기
1) 저자와 연대
( 역대기의 저자와 저작연대를 참조하시오 )
2) 구조
▪ 귀환과 예루살렘 성전 재건(에즈 1 - 6)
▪ 새로운 유다 공동체 조직(에즈 7 - 느헤 13)
에즈라의 사명과 인물(에즈 7 - 10)
느헤미야와 예루살렘 성벽 개축(느헤 1 - 7)
느헤미야와 에즈라의 종교 쇄신(느헤 8 -13)
3) 종교적 관점
예루살렘 성전
유배지에서 귀환한 유다인들의 당면과제는 587년 바빌론 제국에 의해 파괴된 예루살렘 성전의 재건사업이었다.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이를 사명으로 유배민들은 본국으로 귀환한다(에즈 1,1-4). 성전은 당신 백성 한 가운데에 늘 거하시는 “하느님 현존”에 대한 실질적이며 물리적인 표지였기에 성전 재건사업은 그렇게 긴박한 작업일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 사업은 515년경 그 완성을 보게 되며[제2 예루살렘 성전이라 칭함], 이를 하느님의 업적으로 찬양한다(에즈 6).
성도 예루살렘
예루살렘 성전은 성도 예루살렘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은 되풀이할 필요가 없는 자명한 사실이다. 현재와 미래를 위한 성도에 대한 깊은 관심 때문에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에 파견되기를 자청하여 성벽개축 작업에 착수한다(에즈 2-6). 전쟁으로 황폐화한 이곳에 여느 때처럼 하느님 백성이 다시 안주할 수 있도록 하려는 (느헤 11), 또한 이방인 상인들에 의해 침해된 안식일법을 다시금 준수케 하려는 느헤미야의 열성은 성도로서의 자격을 되찾게 하려는 희망과 일치한다.
하느님 백성의 공동체
이 공동체 없이 예루살렘 성전과 성도 예루살렘이 무슨 가치와 의미가 있겠는가? 유배생활로 심한 충격을 받아 다소 완화된 이스라엘 공동체는 하느님 율법에 오로지 순종함으로써 다시금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본 모습을 찾도록 노력해야 했다. 바로 여기에 에즈라-느헤미야기의 중요성이 깃들어 있다. 율법에 대한 순종은 동시에 신앙생활의 전혀 새로운 자세를 요구하고 있느니 만큼 종교의식 행위라든지 축제, 안식일, 봉헌물과 십일조에 관한 규정을 준수해야만 했으며, 또한 이방인들과의 통혼을 마다해야 했다.
제12장 : 성 문 서 - 구약성경입문 -
성경 전체가 성문서(聖文書), 즉 ‘거룩한 문서’이나, 이 장에서 우리가 다루고자 하는 작품들은 지금까지 살펴 본 모세오경, 역사서, 예언서, 지서 그리고 시편을 제외한 ‘그 밖의 작품들’을 말하며, 성경 정경화에 있어서 많은 문제점을 야기했던 상당수의 작품들이 여기에 포함된다.
Ⅰ. 성문서 각권
1. 룻기
히브리어 성경에는 םיꔩוּתꗖ(ketûbîm) 속에 포함되어 있으며, 그 가운데서도 다섯 권으로 된 전례용 두루마리(megilloth) 둘째 권으로서 맥추절(탈출 23,16 참조; 오순절)에 사용되던 예식서이다.
Septuaginta와 Vulgata는 판관기 다음에 룻기를 배치시키고 있으나, 이는 룻기가 “판관들이 다스리던 시대에”(1,1)로 시작되기 때문일 것이다.
1) 저자와 저작연대
탈무드는 룻기의 저자로 사무엘을 가리키고 있으나 작품 속에 아람어적인 경향과 몇몇 새로운 용어[新造語] 사용이 분명하다는 점에서 사무엘을 저자로 볼 수 없다. 또한 저작연대 역시 불분명하나 저자가 주인공 룻이 모압 여인임을 강조하고 있는 사실로 미루어 대략 에즈라-느헤미야에 의한 종교쇄신운동 이전인 450년경의 작품으로 본다. 에즈라-느헤미야는 이방인들과의 통혼을 엄금하고 있기 때문이다 (에즈 9-10; 느헤 13).
2) 구조
▪ 룻과 나오미 : 1장
▪ 룻과 보아즈의 만남 : 2장
▪ 나오미의 계략 : 3장
▪ 보아즈와 룻의 결혼 : 4,1-17
▪ 끝말 ; 다윗의 족보(4, 18-22)
3) 메시지
저자는 유배시대 이후 유다 공동체가 고심하고 있던 문제에 대하여 해결안을 제시해 주고자 다윗에 관한 전승을 이용하여 작품을 구성한 것으로 본다. 유다공동체의 상당수 사람들은 이방인과의 통혼이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국가 존속에 치명적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에 대해 저자는 요나서 저자처럼 좀 더 관대하고 보편적인 정신을 갖출 것을 동족들에게 호소하는 듯하다.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순수함, 정결성을 거부하는 것은 아니나 이방인들에게 닫힌 폐쇄적 민족주의 정신을 힐책하고 있다. 룻처럼 야훼를 하느님으로 받아들이고 율법에 따라 살기를 약속한다면 그가 이방인이라 하더라도 하느님의 백성이 될 수 있고 또한 이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가 작품을 통해 전해주는 가르침이다.
2. 토빗기
제2 경전에 속하는 토빗기는 유다문학의 보배 가운데 하나이다. 당시 고대 근동지방에 널리 알려져 있던 지혜문학 전승을 이어받음과 동시에 성경으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아 저술된 작품이기 때문이다. 정확한 저술연대를 말하기는 어려우나 190년경에 저술된 집회서와 유사한 점들이 많고 또한 םיꕉי꘏ꖏ(ḥasîdîm: “경건한 자들”)처럼 경건한 자세를 강조하고 있는 점으로 미루어 대략 200년경의 작품으로 추정할 수 있다. 꿈란 발굴시 토빗기는 세 편의 아람어 단편과 한편의 히브리어 단편으로 발견되었다. 이 한 편의 히브리어 단편이 아람어에서 번역된 인상을 주고 있어 토빗기는 원래 아람어로 저술된 것으로 본다.
1) 구조
▪ 1 - 3장 : 등장인물 소개(토빗과 사라) 및 토비트와 사라의 기도 청허
▪ 4 - 11장 : 라파엘 대천사의 등장, 토빗과 사라의 결혼과 토빗의 치유
▪ 12 - 14장 : (결어) 대천사 라파엘의 정체 및 토빗의 찬미가.
2) 역사성
토빗기는 기원전 735-612년 이스라엘과 아시리아 양국에 공통된 역사 속에 나타나는 사건, 인물, 장소 등에 대해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다는 점에서 언뜻 보기에 한 편의 훌륭한 역사소설이라는 인상을 준다(1; 14). 1장 1-2절에 의하면 토빗과 그의 집안은 납탈리 지파와 함께 포로로 잡혀간다. 이 시기는 아시리아 왕 티글랏 필에세르 3세(747-727)가 북 이스라엘 왕 베가의 반(反) 아시리아 동맹운동을 저지하기 위해 진격하여 이스라엘 북부지방을 점령했던 735년경일 것이다(1열왕 15,29).
그러나 여기에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사화에 나오는 자료들을 비교 분석해 볼 때 우선 저자는 자신이 언급하고 있는 왕들을 그저 어렴풋이만 알고 있을 뿐이다 예를 들어 납탈리 지파를 아시리아로 강제 이주시킨 왕은 1장 2절이 말하는 바와는 달리 살만에세르가 아니라 선왕 티글랏 필에세르였고, 1장 15절에서는 산헤립이 살만에세르의 왕위를 계승한 것으로 말하나 산헤립의 선왕은 사르곤 2세였기 때문이다. 또한 저자는 자신이 언급하고 있는 지방들도 여행해 본 적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엑바타나에서 라게스까지는 5장 6절이 말하는 것처럼 이틀이 아니라 훨씬 더 걸리기 때문이다.
성경 각 권이 그렇듯 토빗기 역시 역사서가 아니다. 지나간 사건들을 소재로 해서 작품을 구성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역사가들이 의도하는 바와는 근본적인 차이를 보일 뿐이다. 그렇다면 저자가 자신의 작품을 통해서 전달해 주려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무엇을 목적으로 이 작품을 저술하였는가?
3) 흩어져 살고 있는 유다인들을 위한 종교적 교훈서.
강제 이주된 전형적인 인물들인 토빗과 토비야의 역사를 통해서 저자가 의도하는 바는 이 나라 저 나라에 흩어져 살고 있던 유다인들, 즉 디아스포라 유다인 공동체를 위한 종교적 가르침이다.
하느님의 섭리와 역사
문제는 과연 하느님께서 시련 중에 있는 당신 백성들에 대해 관심을 갖고 계시는가 하는 데 있지 않고, 그 관심이 시련들을 통해서 어떻게 전개되는가 하는 데 있다. 토빗과 사라의 기도가 영광스런 하느님 앞에 도달하여 하느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주시기로 결정하셨다는 대목(3,16-17)과, 라파엘이 자신의 정체를 밝히는 대목(12,11-15)이 그러기에 토빗기의 양대 산맥을 이룬다. 여기서 하느님의 계획을 실천에 옮기는 존재는 천사다. 성경 이곳저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 천사들 가운데 가장 인간적인 천사의 모습을 토비야의 길동무 라파엘에게서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인간적인 천사의 모습 속에서 인간 역사 안에 개입하시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구원계획 실현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자유를 손상치 않으시려는 세심한 배려, 또 하나의 하느님 섭리를 발견하게 된다.
가정과 결혼
가정은 한 민족, 한 나라의 정신적 유산이 전승되는 주요한 보고이다(1,3-8; 4,3-21; 14,3-11). 가족간의 유대감을 돈독케 하는 모든 덕행들 가운데 특히 부모에 대한 효도가 강조되고 있는 것은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1,8; 3,10.15; 4,3-4; 6,15; 14,12-13). 가정생활의 결정적인 순간은 결혼이다. 결혼을 통해서 세대교체가 이루어지며 집안의 앞날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이방인들과의 결혼 위험성을 다분히 안고 있던 유배민들에게 있어서 결혼에 대한 가치관은 그렇게 숭고할 수밖에 없었으며, 그러기에 우리는 결혼이 왜 토빗이 아들 토비야에게 내린 행동규범의 핵심을 이루고 있으며(4,12-13), 더 나아가 작품전체의 중심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6-8장).
기도와 자선행위
한 집안이 세세 대대로 전승시켜 나가야 할 유산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하느님과 그분의 계명에 대한 신실성이다. 예루살렘 성전은 멀리 떨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예배드릴 수 없다는 이러한 현실이 오히려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개인적 의무를 충실히 수행하도록 더욱 종용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 가운데 자선행위는 공동체의 일치를 위한 최선의 방법이며(1,16; 4,7-8.16; 14,8-9), 이는 또한 하느님의 은혜에 대해 보답하는 행위이기도 하다(4,9-11; 14,8-11). 기도는 하느님께 오로지 충실한 의인들의 신뢰행위로서 격식에 따른 의무감을 떠나 언제든지 하느님을 받아들이려는 마음의 준비를 위한 기본자세이어야 한다(4,19). 각가지 상황 속에서 올려지는 이와 같은 기도는 하느님을 찬미하고 그분께 감사하는 데 그 목적이 있으니, 하느님께서 이루시는 모든 업적은 올바르며 그분이 제시하시는 길은 참되고 성실하기 때문이다(3,16; 3,11-15; 8,5-8.15-17).
3. 바룩서
바룩서는 간단한 작품이면서도 상당히 복잡한 작품이다. 예레미야 예언자의 비서였던 바룩(예레 36장 참조)이라는 사람의 작품으로 되어있으나 시대적으로 이를 입증하기는 어려우며, 오히려 여러 시대,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대략 3세기경 완성된 작품으로 본다. Septuaginta는 예레미야서 다음에 바룩(1-5장), 애가, 그리고 예레미아의 편지(바룩 6장)를 배열해 놓고 있으며, 불가타는 우리말 <성경>이 그러하듯 예레미야의 편지를 바룩서에 첨가시키고 있다.
분명한 사실은 편지의 긴 서두가 잘 뒷받침해 주고 있듯이 예레미야의 편지는 바룩서와 구분된다는 점이다
1) 구조
▪ 역사적인 머리말 : 1,1-14
▪ 통회의 기도 : 1,15-3,8
▪ 지혜에 대한 묵상 : 3,9-4,4
▪ 예루살렘에 대한 훈계와 위로 : 4,5-5,9
▪ 부록(예레미아의 편지) : 6장
2) 메시지
바룩서는 디아스포라 공동체가 어떠한 방법으로 예루살렘 공동체와 통교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서신왕래, 의연금, 기도 안에서 일치).
죄에 대한 분석
죄를 하느님의 정의에 기초한 윤리적 질서를 파괴시키는 행위로 보고 있다(2,12). 죄인은 언제나 불손하게 참된 지혜를 배척하고 있으며(3,9-4,4) 이러한 불손[오만]은 근본적으로 율법을 거스르게 하며, 예언자들의 부단한 경고와 질책에도 무관심하게 한다(1,18.21; 2,5.10.24). 죄를 멀리할 수 있는 예방책은 모든 복의 근원이신 하느님께로 겸손하게 되돌아가는 길[회개]과 그분의 말씀인 율법을 철저하게 준수하는 길이다. 율법 안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참된 삶을 찾게 될 것이다(4,1).
하느님은 “영원하신 분”
성경전승을 따라 바룩서의 하느님 역시 ‘지혜의 샘’(3,12.32), ‘거룩하신 분’(4,22. 37; 5,5), ‘해방자’(4,18.23.29), ‘의로우신 분’(1,15; 2,6.9; 5,9), ‘자비하신 분’(2,27; 3,1; 5,9)이나 이분은 또한 ‘영원하신 분’(ὸ αἰώνιος - ho aiônios: 4,10.14.22.24)이다. 바룩서에 처음 나타나는 하느님의 이 새로운 호칭은 죄인들을 위한 구원의지의 항구성을 보다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4. 에스테르기
Septuaginta, 대문자 필사본들, 안티오키아의 루치아노 개정본 등과 같은 에스테르기의 희랍어 역본들은 히브리어 성경과 현저한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희랍어 역본 1장, 3장, 4장, 5장, 8장, 9장 그리고 10장에는 히브리어 성경에서 찾아볼 수 없는 구절들이 상당량 발견되기 때문이다. Vulgata는 이 구절들을 따로 모아 제시해 주고 있으며, 우리말 <성경>은 다른 방법을 활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1장의 경우 1①로 시작하는데 여기서의 ①, ②, ③ 등이 히브리어 성경에는 없고 희랍어 성경에서만 발견되는 부분이다.
희랍어 성경의 마지막 구절은 이 작품이 프톨레마이오스 8세(116-96)와 클레오파트라 치세 4년 즉 기원전 113년에 이집트에 전래되었다는 사실을 밝혀준다. 따라서 히브리어 에스테르기는 이보다 훨씬 이전에 저술되었을 것이다. 한편 팔레스티나 유다인들은 기원전 160년경 ‘모르도카이의 날’이라는 기념축제를 이미 거행하고 있었다는 사실에서 이 시대에 벌써 에스테르기가 전해주는 이스라엘의 역사가 널리 알려져 있었던 것으로 본다. 다만 그 기념축제가 푸림절(Purim節)이라는 명칭으로 나타나지 않는 것은 아직 이 푸림절이 에스테르기 또는 에스테르기가 전해주는 역사와 관련을 맺고 있지 못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추측 하에 히브리어 에스테르기가 대략 150년경 저술된 것으로, 그리고 이 시대부터 113년 사이에 희랍어 에스테르기가 탄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1) 구조
- 서언(1(1)~(17))
- 크세르크세스왕과 와스디왕후(1,1-22)
- 모르도카이와 에스테르(2,1-3,6)
- 전멸될 위기에 처한 유다인들(3,7-5,14)
- 유다인들의 복수(6,1-9,19)
- 푸림절(9,20-10,3)
- 부록(10(3)~(11))
2) 메시지
하느님의 섭리
비록 히브리어 에스테르기가 하느님의 이름을 한번도 언급하고 있지 않다 하더라도 사건의 흐름을 주도하고 계신 분은 하느님 바로 그분이심을 다른 어느 작품에서보다도 더욱 분명하게 느낄 수 있다. 모르도카이라는 인물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은 하느님 백성의 한 사람으로서이며, 에스테르라는 유다 여인이 왕후 자리에 오르게 된 사건 역시 당신 백성에 대한 하느님의 자비로우신 구원계획 성취를 위한 기초단계로 인식되기 때문이다(4,14). 에스테르와 유다인들의 단식(4,16)이나 모르도카이의 참회의식(4,1)은 그 순간 고통스러운 일이었을지 몰라도 이는 하느님의 역사 개입을 기대하는 확고한 희망과 신앙의 표현이었을 뿐이다. 심판에 공정하신 하느님 외에 그 누가 하만의 음모를 벌할 수 있겠는가? 저자가 하느님의 이름을 침묵하면 할수록 그분의 존재, 그분의 활동은 더욱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중상모략자들의 손에서 다니엘을 구워하셨던 분이 바로 그분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희랍어 성경의 첨가부분들은 따라서 세속적인 작품을 종교적인 작품으로 변형시키기 위함이 아니라, 히브리어 성경이 묵시하고 있었던 바를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을 따름이다. 이는 오래 전부터 희랍 문화권에 속해 있던 디아스포라 유다인들이 에스테르기를 신앙의 눈으로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푸림절과 예수그리스도
에스테르기는 유다인들이 그들의 독특한 삶 때문에 고대세계로부터 감수해야만 했던 적대감을 우선 노출시키고 있으며, 이 점에서 안티오코스 4세(또는 Antiochos Epiphanes)의 유다교 종교박해와 비교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유다인들의 격양된 민족주의 정신은 자기방어세력으로 부상되기에 이르며 결국 원수들에 대한 보복행위로 표출된다. 작품이 전해주고 있는 이러한 보복행위는 하나의 종교적 명제인 푸림절을 좀더 극적으로 묘사해 주기 위한 노력의 단면이었다손 치더라도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겐 충격을 줄 수밖에 없었던 역사적 사건이었다. 십자가의 그리스도와 비교해 볼 때 엄청난 차이점만 발견되기 때문이다. 원수들에 의해서 유다인들이 또는 유다인들에 의해서 원수들이 십자가에 매달린 것이 아니라, 유다인들과 이방인들이 서로 화해, 회개하고 그분 안에서 서로 일치할 수 있도록 예수 그리스도는 이들 양자에 의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에스테르기는 그리스도교 안에서 어떤 가치를 지닐 수 있겠는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상 죽음을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작품이 아닌가! 그리스도의 인간에 대한 숭고한 사랑을 가일층 빛내주기 위한 전주곡이 아닌가! “유다인도 그리스인도 없고,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도 여자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입니다”(갈라 3,28).
5. 유딧기
제2 경전에 속하는 유딧기는 토빗기, 에스테르기와 마찬가지로 유딧이란 특정 인물을 통해서 위태로운 사태에 직면한 이스라엘 백성을 하느님께서 어떻게 구원하시는가를 전해주고 있는 작품이다.
1) 저자와 저작연대
유딧기의 원저자가 누구인지는 정확하게 알 길이 없으나 이 작품은 본래 히브리어로 저술되었을 것이며, 기원전 2세기경 어떤 희랍어 편집자가 히브리어 원문을 기초로 해서 때로는 충실하게 때로는 임의대로 이 작품을 의역한 것으로 본다. 히브리어 원본에 관한 한 희랍인들의 박해에 대항해서 싸운 마카베오 형제들의 저항운동시대에 완성되었을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추측이다. 네부카드네자르만을 온 누리의 유일한 신으로 받들어 섬길 것을 강요하는 장면(3,8; 6,2)은 다니엘이 불경한 왕 안티오코스 4세를 겨냥해서 던진 말들과 잘 비교가 되기 때문이다(11,36- 37).
저자는 좀 더 오래된 옛 사화들을 인용하면서 종교와 율법과 성전에 있어서 위협을 받고 있던 자기 동족들에게 용기를 불어 넣어주고 싶었을 것이다. 우상을 숭배함으로써 당신을 저버리지 않는 한 이스라엘의 하느님은 극도의 위험 속에서도 당신 백성을 저버리지 않으실 것이며, 원수들의 계획을 꺾어 버리실 것이라는 신념을 은연중에 표현하고 싶었을 것이다. “유다 여인”이라는 의미의 유딧은 이제 외국 박해자들을 대항하여 싸우도록 불림을 받은 국가의 상징으로 남게 된다.
2) 구조
▪ 홀로페르네스(Holophernes)에 의한 전쟁(1-6장)
▪ 배툴리아(Bethulia)의 포위(7장)
▪ 유 딧(8-9장)
▪ 유딧과 홀로페르네스(10-13장)
▪ 승 리(14,1-16,20)
▪ 결 어(16,21-25)
3) 메시지
남녀평등사상
유딧기가 전해주는 역사 속에서 유다 백성을 구원으로 이끈 인물은 평범한 유다 여인이다. 이 여인은 모든 백성이 실의에 잠겨 있을 때도 좌절하지 않고서 배툴리아를 방어하고 있는 장군들을 우선 안심시킨 후 그들에게 용기를 북돋우어 준다. 그리고서 장군들의 도움 없이 계책을 마련하고 이를 실천에 옮겨 끝내 외적을 격퇴시킨다. 구약성경 이곳저곳에 여권신장을 강조하는 본문들이 발견되지 않는 것은 아니나, 유딧기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남녀평등사상이 돋보이고 있다.
유딧과 율법정신
유딧기에서 우리는 엄격한 의미의 율법정신을 찾아보기 힘들다. 신앙심 깊은 과부 유딧의 단식행위는 슬픔과 회개에 대한 자발적인 표현이었을 뿐 율법을 준수하기 위한 행위는 아니었으며, 더구나 유딧은 축제일에 그 단식을 임의로 중단했다 (8,6). 자녀가 없었던 유딧은 신명기 25장 5-10절이 명하는 수혼제(嫂婚制)를 따르지 않았으며(16,22-25), 이방인 암몬 사람 아키오르를 율법이 금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신명 23,4; 민수 13,1-3절 참조) 유다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였다(14,10). 이와 같은 분명한 사실들은 율법준수를 통해 선택된 이스라엘 백성만 보호될 수 있다는 배타적 구원사상을 뛰어 넘어, 모든 이가 유일하신 하느님께 다가갈 수 있다는 좀 더 진취적인 사상을 잘 반영해 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고통과 시련
유딧기에서의 고통은 백성전체 또는 개개인의 범죄에 대한 응벌로만 이해되지 않고, 당신 백성을 시험해 보기 위해 하느님께서 내리시는 시련 또는 그들을 교육시키기 위한 고된 과정으로 해석된다(8,25-27). 과거와는 달리 유다 백성 가운데 우상숭배를 일삼는 자가 한 사람도 없었기 때문에(8,18-20), 이 점에 관한 한 유딧은 확신을 가지고 있었던 듯하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께서 내리시는 이 시련을 마땅히 받아들여 극복해 나가야 한다(8,25).
6. 애가
히브리어 성경은 작품의 첫 단어를 서명(הꗇיꔞ : 'êkāh)으로 채택함과 아울러 Ketûbîm으로 분류하고 있으며, 그 가운데서도 전례용 두루마리(megilloth) 셋째 자리에 배열해 놓고 있다. 유다인들은 이 작품을 587년 예루살렘 성전 함락을 애도하는 전례서로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Septuaginta와 Vulgata는 이를 예언자 예레미야의 작품으로 보고 예레미야 예언서 다음에 배치시키고 있으며, 작품의 문학유형에 따라 Θρήνοί(thrênoi), Lamentationes라는 서명을 사용한다.
1) 저자와 저작연대
Septuaginta와 Vulgata가 작품의 저자로서 예언자 예레미야를 가리키고 있다 하더라도 이를 그대로 인정하기는 어렵다. 예레미야는 애가 2장 9절이 말하듯 예언자적 영감이 중단되었다고 말할 리 없으며, 치드키야에 관한 평가 역시 다르게 나타난다(4,20절과 예레 24,8절 비교). 또한 상선벌악사상(5,7절과 예레 31,29-30절 비교), 이집트와의 계약(4,1절과 예레 37,5-7절 비교)에 대해서도 서로 견해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작품 속의 몇몇 사항이 587년의 예루살렘 멸망과 관련이 있다 하더라도 대략 유배시대 직후의 작품으로 본다.
작품의 전체적 분위기는 그야말로 침울하다. 1장과 4장은 문학유형상 만가(輓歌)에 속하며, 5장은 공동체적 성격을 띠고 있고, 3장 역시 공동체적 성격을 보이기는 하나 때로는 개별성을 내포하기도 한다. 작품의 인위적인 조화에도 불구하고 애가는 하나의 훌륭한 시로서 높이 평가되고 있다. 특히 5장을 가리켜 Vulgata는 ‘예레미야의 기도’라 칭한다.
2) 메시지
정치적이며 종교적인 불행으로 말미암은 내외적 비참한 체험을 바탕으로 해서 하느님의 분노를 사게 된 죄스런 행동에 대한 회개와, 역사의 주인이신 하느님을 향한 신앙에로의 복귀가 애가가 전하려고 하는 기본 메시지이다. 이스라엘의 범죄에 대한 응벌을 내리시는 분도 하느님이시기 때문이다(5,21).
7. 마카베오기 안티오코스 4세(A. Epiphanes)의 종교박해에 대항하여 일어난 유다 마카베오와 그의 형제들인 요나탄과 시몬의 저항운동을 내용으로 하고 있는 작품으로서 희랍제국시대의 역사를 소개해 주는 유일한 작품이다. 역사적인 면에서 안티오코스 4세의 등극(175)에서부터 하스모니아 왕조의 시조인 시몬의 아들 요한 히르카노스(J. HyrcanosⅠ: 134-104)의 행적까지를 담고 있다. 그러나 마카베오기 상하권은 사무엘기, 열왕기, 역대기, 에즈라-느헤미야기와 같은 다른 역사서처럼 계속되는 역사를 양분해서 소개하고 있는 작품이 아니라, 서로 비슷한 역사를 반복해서 전해주고 있는 작품이다.
1) 마카베오기 상권
① 저자와 저작연대
저자가 작품 말미에서 ‘사제실록’을 언급하고 있다는 점에서 요한 히르카노스의 죽음 후 이 실록을 참조해서 작품을 저술했으리라 본다. 그러나 로마제국이 팔레스티나를 정복한 63년 이후의 작품은 아니다. 작품 속에서 유대와 로마의 관계는 상당히 우호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8; 12,1-4; 15,15-24). 따라서 104-63년 사이에 작품이 저술되었을 것으로 추측하나 저자가 마카베오 형제들의 사건을 비교적 소상히 알고 있다는 점에서 그 저작연대를 대략 100년경으로 둔다.
저자가 누구인지에 대해선 거의 아는 바 없으나 팔레스티나 유다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성경에 정통했던 인물로 본다. 당대 사건에 지대한 관심을 쏟음과 동시에 하스모니아 왕가를 적극 지지하면서 히브리어로 작품을 저술하게 된다.
② 구조
- 머리말(1-2장) : 악의 증가(1) - 희랍문화의 영향, 종교박해
- 유다 마카베오(3,1-9,22) : 166년-160년
- 요나탄(9,23-12,53) : 160년-143년
- 시몬(13,1-16,17) : 143년-134년
- 요한 히르카노스 1세(16,18-24) : 134년-104년
③ 종교적 가치
하느님의 섭리
유배시대 이후 하나의 문학적인 경향으로 마카베오기 상권에서도 하느님의 이름이 한번도 거론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 작품은 역시 훌륭한 한 편의 종교적인 역사서다. 사건을 주도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시며 따라서 하느님의 섭리에 의하여 모든 것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다인들은 전쟁에 앞서 기도로 하느님의 도움을 청하여, 승리를 거둔 후에도 하느님께 감사를 드린다(4,24; 13,47.51). 지나간 과거 역사 속에서의 하느님 개입이 모든 희망의 기초가 되어 나타난다(4,9.30; 7,41).
율법준수
신명기계 학자들 못지않게 율법준수를 강조하고 있다. 율법이 모든 사화의 중심이다. 또한 마카베오 형제들이 이러한 저항운동을 전개하게 된 기본 동기가 “율법을 자유롭게 준수”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특히 안식일법 준수는 놀랍기까지 하다 (2,31-38; 2.41절 참조).
2) 마카베오기 하권
앞서 말한 대로 마카베오기 하권은 상권의 후편이 아니라, 상권에서 이미 소개된 역사적 사건들 가운데 일부 즉 유다 마카베오(166-160년)에 관한 이야기만을 전해 주는 작품이다. 어떤 ‘키레네 사람 야손’(Jason)이 저술한 다섯 권으로 된 작품을 축소, 요약하고 있다(2,19-32).
① 저자와 저작연대
저작연대를 일반적으로 124년 이후로 보고 있으며 따라서 상권보다 앞서 탄생한 작품으로 본다. 상권과 마찬가지로 저자가 누구인지 알 길이 없으나,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 살고 있던 유다인으로서 희랍어로 이 작품을 저술했으리라 본다. 그러나 상권 저자와는 달리 하스모니아 왕가의 지지세력은 아님이 분명하다. 하스모니아 왕가의 운명에는 별관심이 없이 율법준수자, 성전정화자로서의 유다 마카베오에게만 관심을 쏟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키레네 사람 야손이 희랍어로 저술한 작품을 원전으로 하고 있으며, 예외가 있다면 히브리어 또는 아람어로 작성된 두 통의 편지(1,1-2,18)를 희랍어로 번역하여 작품 속에 삽입시켜 놓고 있다는 점이다.
② 구조
- 머리말(1-2) : 이집트 유다인에게 보낸 편지(1,1-2,18)
저자의 서문(2,19-32)
- 성전을 중심으로 한 다섯 가지 장면(3-15,36)
헬리오도로스(Heliodoros) : 성전의 성성(3)
안티오코스 4세의 종교박해 : 성전모독(4-7)
유다승리 : 성전정화(8,1-10,9)
유다 마카베오의 전투 : 종교자유(10,10-13,26)
니카노르(Nicanor)와의 전투 : 니카노르 기념일 제정(14,1-15,36)
- 결 어(15,37-39)
③ 종교적 가치
창조적 우주론
희랍세계의 우주론과 성서적 우주론의 대표적 차이점은 세상의 기원에서 비롯된다. ‘Ex nililo nil fit’이 희랍사고의 원칙이라면, 성경은 Creatio ex nihilo를 주창하며 믿고 있기 때문이다(7,28).
부활사상
마카베오기 하권의 종말론은 다니엘서의 종말론을 더욱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다니엘서가 의인(義人)만의 부활을 말한다면 마카베오기 하권은 악인(惡人)의 부활도 말하고 있으며(7,15; 12,43-45), 전자가 영혼(靈魂)만의 부활을 말하고 있는 반면 후자는 육신(肉身)의 부활도 선포하고 있기 때문이다(7,11; 14,46).
죽은 이들을 위한 속죄의 기도와 성인들의 통공
마카베오기 하권은 죽은 죄인을 위한 살아있는 사람들의 속죄기도 및 제사(12, 40-45)와 살아있는 사람들을 위한 죽은 의인[성인]의 기도의 가치와 필요성을 분명히 언급하고 있는 작품이다 (15,11-16).
Ⅱ. 결어 : 제2경전과 성령의 감도성(感導性)
이 장(章)에서 다룬 작품들의 대부분이 가톨릭의 소위 제2경전에 속한 작품들이며 유다교와 프로테스탄트에서는 성경으로 인정하지 않는 작품들이다. 가톨릭의 “제2경전”이란 용어를 탄생시킨 그 근본 배경은 이들 작품들이 그 정경성(政經性)에 있어서 유다교나 프로테스탄트로부터 거센 도전을 받아왔기 때문이라는 점에서 용어자체가 한 시대의 부산물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성경을 연구하고 있는 신학도들은 물론 모든 신앙인들은 따라서 성령의 감도성(Inspiratio Spiritus)에 있어서까지 ‘제2’로 인식해서는 안 될 일이다. 종교개혁 당시 마르틴 루터(M. Luther)는 유다교의 정경 목록만이 참되다는 단순한 판단으로 이들 작품들을 그들의 정경목록에서 제외시키면서 ‘신앙에 유익한 서적’이라는 평에 인색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마카베오기 상권을 제외시키는 데에는 큰 아쉬움을 표명했던 바 있다.
제1장에서 이미 언급했듯이 유다교가 왜 이 작품들을 그들의 정경목록에서 제외시켰는지 그 근본 이유를 알 길 없으나, 이 작품들이 초대교회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가톨릭교회에 신앙적이며 교의적인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해 온 것은 부동의 사실이다. 하나의 ‘재미난 이야기들’이라는 무지한 평가를 지양하고서 작품 안으로 좀더 깊이 들어가 각기 작품들이 전하는 기본 메시지를 간파하고 그 내용을 생활해 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