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양아버지 성 요셉(Josephus)에 관한 내용은 마태오 복음 1-2장, 루가 복음 1-2장의 예수 탄생 기사에서 발견되는 것이 성서상의 근거이다. 이에 따르면 요셉은 다윗(David) 왕가의 후손이고, 요셉 가문은 유대아의 베들레헴에서 왔으나 갈릴래아의 나자렛으로 이사하여 목수 일을 하고 있었고, 이미 의인으로 존경받고 있었다.
그는 마리아와 약혼하였으나 ‘성령으로 말미암아’ 아기를 가진 마리아와 파혼하지 말라는 천사의 말을 듣고 천사가 명한대로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였다. 그는 마리아와 함께 아기 예수께 조배하러 온 동방박사의 방문을 받았고, 헤로데의 영아 학살을 피하기 위하여 가족을 이끌고 이집트로 피신하였다.
헤로데가 죽은 후에야 가족들은 나자렛으로 돌아와서 살았다. 그와 마리아는 아기에게 할례를 베풀었고, 주님을 예루살렘 성전에 봉헌하였다. 예수가 12세였을 때 그는 마리아와 예수와 함께 명절을 지내러 예루살렘을 다녀오다가 예수를 잃어버린 것을 알고 다시 돌아가서 예루살렘 성전에서 학자들과 이야기하는 아들을 찾기도 하였다.
이때부터 성 요셉은 루가 복음 4장 22절을 제외하고는 신약성서에서 언급되지 않는다. 성 요셉은 아마도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 이전에 운명한 듯 여겨진다. 외경인 “야고보의 원복음서”에는 그가 마리아와 결혼하였을 때 이미 노인이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성 요셉에 대한 공경은 동방 교회에서부터 시작되었는데, "요셉 이야기"라는 외경은 4세기부터 7세기까지 대중들로부터 사랑받는 인기 있는 책이었다. 서방 교회에서는 아일랜드 사람인 웬거스 펠리르란 분이 9세기에 성 요셉 축일을 '기념'했다는 언급이 있으나 15세기까지는 요셉 공경이 확산되지 않다가, 1479년 교황 식스투스 4세(Sixtus IV)가 로마(Roma)에 요셉 신심을 도입한 이후 널리 전파되었다.
성 요셉 신심은 특히 아빌라(Avila)의 성녀 테레사(Teresia, 10월 15일)와 성 프란치스코 드 살(Francis de Sales, 1월 24일)에 의하여 보편화되었고, 1870년에 교황 비오 9세(Pius IX)가 요셉을 ‘교회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하였으며, 교황 레오 13세(Leo XIII)는 요셉을 가장의 모범으로 선포하면서 성인들 가운데서 성모님 다음의 위치로 올리셨다.
‘노동자의 수호자’란 칭호는 교황 베네딕투스 15세(Benedictus XV)가 부여하였고, 교황 비오 11세(Pius XI)는 ‘사회정의의 수호자’로, 또 비오 12세는 1955년 공산주의자들의 노동절에 대응해서 5월 1일을 ‘노동자 성 요셉 기념일’로 제정 선포하였다. 성 요셉은 한국 교회의 수호성인이다.
강론 : (마태 1,16.18-21.24ㄱ)
<요셉>
3월 19일은
"한국 교회의 공동 수호자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입니다.
요셉 성인은 성모 마리아와 함께 한국 교회의 주보성인입니다.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는 예수님의 탄생 과정을 보면,
요셉은 무시해도 좋은 '들러리'가 아니라 주인공입니다.
예수님의 족보는 사실은 요셉의 족보입니다.
또 하느님께서는 처녀 마리아를 선택하신 것이 아니라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루카 1,27)',
즉 당시의 법으로는 사실상 유부녀인 마리아를 선택하셨습니다.
이것은 마리아와 요셉을 함께 선택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요셉은 단순한 조연이 아니라 마리아와 함께 공동 주연입니다.
루카는 예수님의 탄생 과정을 마리아 중심으로 기록했고,
마태오는 요셉 중심으로 기록했는데,
이것은 같은 사건을 다른 관점에서 기록한 것입니다.
그런데 복음서를 보면, 요셉의 말은 한마디도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궁금하거나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을 설명해 달라고 요구하는 말도 없고,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말도 없고... 심지어 응답하는 말도 없습니다.
복음서 저자들이 요셉의 말을 기록하지 않은 것일까?
아니면 요셉은 원래 그렇게 말이 없는 사람이었을까?
1) 침묵과 묵상
요셉은 원래 말수가 적은 사람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말수가 적은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닥친 상황을 침묵 속에서 묵상하고,
기도하는 사람이었던 것으로 생각합니다.
마리아가 잉태한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요셉은 침묵을 지켰습니다.
마태오복음에 있는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마태 1,19)" 라는 말은
그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고, 다른 사람과 의논하지 않았음을 나타냅니다.
그는 혼자서 많은 생각을 하면서 고민했을 것이고, 기도했을 것입니다.
천사가 나타나서
성령 잉태를 설명해 주면서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이라고 말한 것은
그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복음서에는 요셉이 천사가 말한 대로
곧바로 행동한 것처럼 기록되어 있지만(마태 1,24),
아마도 그때에도 침묵 속에서 묵상하고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 시간이 얼마나 걸렸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요셉은 묵상과 기도 끝에 결단을 내렸을 것입니다.
마치 로봇처럼 명령에 복종한 것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순종은 자유의지로 하는 것입니다.
이집트로 피신하는 장면을 보면(마태 2,13-15),
상황이 매우 급박했기 때문에 무슨 말을 할 여유가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요셉은 이해할 수 없어도 따져 묻지 않고,
아무런 준비가 안 되어 있어도 시간을 좀 더 달라고 요구하지 않고,
바로 행동합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할 때 천사가 롯에게 빨리 대피하라고 말해도
롯은 계속 망설이기만 했습니다.
그래서 천사는 롯과 그의 가족의 손을 잡고
데리고 가야만 했습니다(창세 19,15-16).
롯과 요셉의 모습을 비교해 보면,
요셉은 상황 판단을 빠르게 하고, 즉시 행동하는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도 어떻든 이집트로 피신하는 장면은
확실히 그가 말수가 적은 사람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때에도 역시 명령에 기계적으로 복종한 것은 아니고,
"지금은 말할 때가 아니라 행동할 때이다." 라고 판단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소년 예수님을 잃었다가 찾은 장면에도
요셉의 말은 한마디도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마리아와 함께 예수님을 '애타게' 찾았으니(루카 2,48)
분명히 아버지로서 뭔가 말을 했을 것 같은데...
어떻든 그 장면에서 소년 예수님을 잃었을 때 말없이 슬퍼하는 요셉의 모습,
또 찾았을 때 말없이 기뻐하는 요셉의 모습이 보입니다.
'말'에 대해서 야고보서 저자는 이렇게 권고합니다.
"나의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이것을 알아 두십시오.
모든 사람이 듣기는 빨리 하되,
말하기는 더디 하고 분노하기도 더디 해야 합니다(야고 1,19)."
"누가 스스로 신심이 깊다고 생각하면서도 제 혀에 재갈을 물리지 않아
자기 마음을 속이면, 그 사람의 신심은 헛된 것입니다(야고 1,26)."
우리는 요셉의 말수 적은 모습, 침묵 속에서 묵상하고 기도하는 모습,
그러면서도 신속하게 행동하는 모습을 본받아야 합니다.
2) 의로움과 자비
마태오는 요셉이 '의로운 사람'이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마태 1,19).
원문에서 '의로운 사람'이라는 말은 '법을 잘 지키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마리아의 일을(잉태 사실을)' 감추려고 했기 때문에,
유대교 기준으로 보면 율법을 어긴 사람입니다.
그래서 마태오가 말하는 법은 유대교의 율법 자체가 아니라
율법에 들어 있는 하느님의 뜻,
또는 그리스도교의 '자비의 법'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루카 6,36)."
그렇다면 '의로운 사람'이라는 말을 '자비로운 사람'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요셉은 율법이 없어도 살 수 있을 정도로 율법을 잘 지키는 사람이었지만,
율법의 근본정신대로 자비를 먼저 실천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인간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려고 오신 구세주입니다.
그런 점에서 요셉은 예수님의 아버지로서 적임자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만일에 자비는 없고 율법만 내세운다면,
바리사이들 같은 무자비한 율법주의자가 되기 쉽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법을 무시해도 된다는 것은 아니지만,
법은 자비와 함께 실천되어야 한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됩니다.
항상 사람이 먼저입니다.
법은 사람을 살리기 위한 것이 되어야 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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