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5년 4월 21일 나해 부활 제3주간 화요일 (성 안셀모 주교 학자)

dariaofs 2015. 4. 21. 00:30

 

 

1033년 겨울 이탈리아 북부 아오스타(Aosta)의 부유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성 안셀무스(Anselmus, 또는 안셀모)는 15살 되던 해에 수도원에 입회하려 하였으나 부친의 반대에 부딪혀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는 1056년 어머니가 사망하자 프랑스 동부의 부르고뉴(Bourgogne)로 공부하러 집을 떠났고, 1059년에는 노르망디(Normandie)의 베크(Bec)에 있는 베네딕토회 수도원 학교에서 공부하였다.

 

당시 수도원 원장은 란프랑쿠스(Lanfrancus)로 안셀무스는 그의 제자이자 친구가 되었다. 여기서 그는 1060년 아버지마저 사망하자 정식으로 수도원에 입회하여 수도자가 되었다.

1067년에 수도원 학교의 교장이 된 성 안셀무스는 제자인 동료 수도자들을 위해서 많은 작품을 저술하였고, 윤리 교육과 종교 교육에 힘씀으로써 베크 수도원 학교를 명문 학교로 발전시켰다.

 

1078년에 수도원 원장이 된 그는 박학다식과 성덕에 대한 소문을 듣고 수많은 청년들이 베크 수도원으로 몰려들자 그들을 한곳에서 교육할 수 없어 프랑스와 영국 여러 곳에 수도원을 건립하였다. 이를 통해 프랑스의 경계를 넘어 영국에까지 명성을 떨친 성 안셀무스는 란프랑쿠스가 사망한 뒤 영국 왕 윌리엄 2세(William II Rufus)에 의해 1093년 캔터베리의 대주교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성 안셀무스는 이때부터 적지 않은 분쟁에 휩싸였다. 영국 국왕의 교회 직무에 대한 간섭에 반발하고 교황의 권위를 위해 투쟁하며 성직자들의 개혁을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국왕은 물론 다른 많은 주교들로부터도 배척을 받게 되었다. 안셀무스는 1093년까지 베크를 떠나지 않고 국왕 윌리엄 2세와 격렬한 논쟁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결국 1097년 영국을 떠나 로마로 망명을 갔다.

교황 우르바누스 2세(Urbanus II, 7월 29일) 역시 윌리엄의 요구를 반대하자, 윌리엄은 안셀무스를 유배시키겠다고 위협하였으나 끝내는 안셀무스의 귀국을 허용하였다. 1098년 우르바누스 2세 교황의 요청에 따라 성 안셀무스는 바리(Bari) 공의회에 참석하였으며, 성령을 두고 벌인 동방 교회와 서방 교회의 '필리오퀘'(filioque) 논쟁을 조정하는데 큰 몫을 하였다.

 

1100년에 윌리엄 2세 국왕이 사망하자 안셀무스는 영국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또 다시 윌리엄의 후계자인 헨리 1세에게 충성 서약을 하지 않아 1103년에 다시 로마로 망명길에 올랐다. 1102년 웨스트민스터(Westminster) 공의회에서 안셀무스는 노예 매매를 극렬히 비난하였다.

그는 영국 국왕을 상대로 하여 교회의 권리를 옹호하는 일에 혼신의 힘을 다 바치면서도 학문을 게을리 하지 않아서, 그 당시 그는 위대한 신학자요 '스콜라 학파의 아버지'란 칭호를 이미 얻고 있었다. 그는 계시와 이성이 조화를 이룰 수 있으며, 아리스토텔리스파의 변증법에서 이용하는 이성주의를 신학에 성공적으로 도입시킨 첫 번째 인물이었다.

그는 완전한 존재에 대한 인간의 개념에서부터 하느님의 존재를 증명한 “독어록”(獨語錄, Monologion)의 저자이다. 이 사상은 후대의 둔스 스코투스(Duns Scotus), 데카르트(Descartes) 그리고 헤겔(Hegel)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성 안셀무스의 “왜 하느님은 사람이 되셨는가?”(Cur Deus Homo)는 중세의 강생에 관한 신학 논문 중에서는 가장 돋보이는 대작이다.

 

그의 저서 중에는 “삼위일체에 대한 신앙”(De fide Trinitatis), “동정녀 잉태론”(De Conceptu Virginali), “진리론”(De Veritate) 그리고 400여 통의 편지와 기도 및 묵상에 관한 책들이 많이 있다. 그는 1109년 4월 21일 캔터베리에서 운명하였다.

 

그는 1492년 교황 알렉산데르 4세(Alexander IV)에 의해 시성되었고, 1720년에 교황 클레멘스 11세(Clemens XI)에 의해 교회학자로 선포되었다. 단테는 신곡의 천국 편에서 태양권 안에 있는 빛과 힘의 영들 가운데 안셀무스를 언급할 정도였다. 성 안셀무스의 상징은 배이다.

 

강론   :   (요한 6,30-35)

 

<믿음, 표징>

 

"그러면 무슨 표징을 일으키시어 저희가 보고 선생님을 믿게 하시겠습니까?

무슨 일을 하시렵니까?

'그분께서는 하늘에서 그들에게 빵을 내리시어 먹게 하셨다.'는 성경 말씀대로,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습니다(요한 6,30-31)."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주신 '기적의 빵'을 먹었습니다.

그런데도 자기들이 믿을 수 있도록 표징을 일으켜 보라고 요구합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빵 다섯 개로 오천 명 이상의 군중을 먹이신 일을

특별한 기적(표징)으로 생각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1)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주신 (또는 제자들이 나누어 준) 빵을

받아먹었습니다(요한 6,11).

그래서 그들의 눈에는 그 빵이 하늘에서 내려온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서 온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만나'는 하늘에서 내려왔습니다(탈출 16,14).

누가 보아도 그것이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또 우리는 예수님께서 '어떻게'

빵 다섯 개를 굉장히 많은 양으로 늘리셨는지 모릅니다.

아마도 당시 사람들도 그 과정을 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기적이 일어나는 과정을 모르는 채로 기적의 결과물인 빵을 받아먹기만 했으니

자기들 눈앞에서 기적이 일어났다는 것을 실감하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어떻든 우리가 보기에는 예수님의 빵이 더 놀라운 기적으로 보이는데,

당시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만나'만큼 놀라운 기적으로 생각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 그들은 왜 예수님을 임금으로 삼으려고 했을까?

 

2) 적은 양의 빵으로 많은 사람이 먹은 일은 예수님께서 처음 하신 일이 아니라,

구약성경에도 이미 기록되어 있는 일입니다.

예언자 엘리사는 보리 빵 스무 개로

백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먹였습니다(2열왕 4,42-44).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의 '빵의 기적'을 엘리사가 행한 기적과 같은 것으로,

또 예수님을 엘리사급 예언자로 생각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임금으로 삼으려고 한 것은

엘리사와 같은 지도자가 되어 달라고 요구한 일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너희에게 빵을 내려 준 이는 모세가 아니다.

하늘에서 너희에게 참된 빵을 내려 주시는 분은 내 아버지시다.

하느님의 빵은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빵이다(요한 6,32-33)."

 

사람들이 인용한 시편 78장 24절,

"그분께서는 하늘에서 그들에게 빵을 내리시어 먹게 하셨다." 라는 말에서

'그분'은 원래는 하느님을 가리키는 말인데,

사람들은 '모세'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했습니다.

그러면서 '만나'를 내리게 한 모세처럼 표징을 보이라고 예수님께 요구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것을 지적하시면서

하늘에서 빵을 내려 준 이는 모세가 아니라 하느님이시라고 바로잡으셨습니다.

 

또 예수님의 말씀에는, '만나'는 하느님께서 당신이 하느님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내려주신 표징이 아니라는 가르침도 들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만나'를 내려주신 것은

사람들이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리고 있었기 때문이지

당신을 증명하시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구약시대 백성들이 '만나' 때문에 하느님을 하느님으로 믿은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만나'가 내리기 전에도 하느님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지금 사람들이 예수님께 표징을 요구하면서

'만나'를 예로 들고 있는 것은, '만나'를 그런 표징으로 오해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의 우리도 그런 요구를 할 때가 있습니다.

"당신이 정말로 하느님이라면...", 또는 "당신이 정말로 구세주라면..."

이라는 말을 하면서 뭔가를 청하는 기도를 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가 예수님께 그런 식으로 청한 적이 있습니다.

"주님, 주님이시거든 저더러 물 위를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마태 14,28)."

이 말은, "당신이 정말로 주님이시라면,

저에게 물 위를 걷는 능력을 주십시오."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말은, 그런 일을 통해서 진짜로 주님이라는 것을 증명해 보라고

요구하는 말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때는 제자들의 믿음이 아직 부족한 때였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나중에는 위대한 믿음의 사도들이 되었습니다.)

 

표징을 통해서 증명해 보라고 요구하는 것 자체가

자신에게 믿음이 없음을 드러내는 일이 됩니다.

믿는 사람들은 그런 요구를 하지 않습니다.

무조건, 그냥 믿을 뿐입니다.

물론 태어날 때부터 믿음을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은 없고,

말씀을 듣고 배워서 믿게 되거나 체험을 통해서 믿게 되는데,

믿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표징이 없어도 믿게 되지만,

믿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은

아무리 놀라운 표징을 보아도 더욱 의심하면서 안 믿게 됩니다.

 

믿음도 은총입니다.

은총은 원래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지만, 받으려고 하는 사람만 받게 됩니다.

은총이 은총으로 작용하려면 받는 사람 쪽에서도 잘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 말씀에 들어 있는 세 번째 가르침은,

이제는 몸의 배를 부르게 하는 것으로 그치는 빵만 찾지 말고,

참 생명을 주는 영적인 빵을 청하라는, 또 그것을 추구하라는 가르침입니다.

'만나'는 분명히 하느님께서 내려주신 하느님의 빵이었지만,

그것을 그냥 지상의 빵처럼 먹은 사람들은

'썩어 없어질 양식'을 먹었을 뿐입니다(요한 6,49).

 

바로 이어서 하신 말씀, "내가 생명의 빵이다(요한 6,35)."는

당신을 믿으면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라는 가르침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