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5년 5월 18일 나해 부활 제7주간 월요일 (칸탈리체의 성 펠릭스)

dariaofs 2015. 5. 18. 00:30


▨ 5월 18일: 칸탈리체의 성 펠릭스(St. Felix of Cantalice)

1515~1587년, 이탈리아 출생 및 선종, 카푸친 작은 형제회 수사.

펠릭스 성인은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성인의 부모님은 자녀들을 학교에 보낼 형편이 아니었기에 성인은 10살 즈음부터 농장에서 일해야 했습니다. 때문에 성인은 글을 읽고 쓸 줄 몰랐습니다.

농장 일은 10대 소년이 하기엔 무척 고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묵묵히 견디며 일을 하는 것 외에는 달리 방도가 없었습니다. 생계를 위해 일을 하지 않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28살이 된 어느 날 성인의 꿈에 천사가 나타났습니다. 천사는 성인에게 카푸친 작은 형제회에 입회하라고 일러줍니다.

 

 이를 하느님 부르심으로 받아들인 성인은 곧장 카푸친회 문을 두드립니다. 어렸을 적 막연하게 동경했던 수도자의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로마에서 주로 수도 생활을 한 성인은 거리를 다니며 동냥하는 소임을 받았습니다. 그는 늘 자루를 지고 다니며 먹을 것을 구걸해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줬습니다.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궂은 날씨에도 성인은 매일 거리로 나섰습니다.

 

그렇게 40년을 지낸 성인은 로마에선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가 됐습니다. 성인 역시 로마 주민들 특히 가난한 이들, 노숙인들에 대해 꿰고 있었습니다.

 

누군가 아프고 병이 나면 가장 먼저 달려가는 이가 펠릭스 성인이었고, 가난한 이들이 가장 먼저 찾는 이도 성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성인은 로마 시민 사이에서 ‘데오 그라시아스 수사’로 불렸는데, 이는 성인이 ‘데오 그라시아스’(하느님,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녀서입니다.

 

성인은 누구를 만나든 ‘데오 그라시아스’라고 말을 건네며 하느님 사랑을 전하고 다녔습니다.

 

특히 아픈 이들을 돌보는 데 각별히 힘썼던 성인은 병으로 고통받는 이들 곁에서 기도해주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성인이 기도하던 중 종종 치유 기적도 일어났다고도 합니다.

성인을 그린 성화 중에는 자루를 들고 동냥하는 모습과 함께 아기 예수님을 안고 있는 모습이 많이 있습니다. 아기 예수님을 안고 있는 성인 모습<사진>은 성인이 영적 지도 사제로 모셨던 알폰소 루포 신부님이 목격한 장면입니다.

 

 알폰소 루포 신부님은 어느날 밤 불 켜진 기도실에서 홀로 기도하고 있던 성인을 발견했는데, 가까이서 보니 성모님께서 나타나 성인에게 아기 예수님을 안겨 주고 계셨다고 합니다.

 

 성 모자(母子) 신심이 지극했던 성인에게 성모님께서 나타나 아기 예수님을 맡기신 것입니다.

성인은 1712년 클레멘스 11세 교황에 의해 시성됐는데, 카푸친 수도회가 배출한 첫 성인입니다. 성인 유해는 로마 시내 카푸친회 성당에 모셔져 있습니다.

 

강론   :   요한 17.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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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너희가 내 안에서 평화를 얻게 하려는 것이다.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오늘 주님께서는 당신이 세상을 이겼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그것이 제게는 세상을 초월했다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왜냐면 주님께서 세상과 무엇을 놓고 싸우셨겠습니까?

그리고 세상과 싸우셨다면 세상 누구와 싸우셨다는 것입니까?

세상의 권력자와 세상 권력을 놓고 싸우셨다는 뜻입니까?

 

그런 거라면 빵의 기적 후 사람들이 당신을 임금으로 세우려고 했을 때

그리고 빌라도 총독이 유대인들의 임금인지를 물었을 때

주님께서 이미 한 마디로 일축하신 적이 있지요.

 

그러니까 주님께서는 세상과 싸워서 이긴 것이 아니라

싸우려고 덤비는 세상과 싸우지 않음으로써 이긴 것이고,

세상의 시비에 말려들지 않고 져줌으로써 이긴 것입니다.

 

어린이가 어른에게 싸우자고 덤비면 같이 싸우는 어른이 어디 있습니까?

어린아이가 싸우자고 덤비면 그래 네가 이겼다.’ 하고 져주지만

월등한 힘으로 싸우지 않고도 이미 우위를 점하는 것이지요.

 

한 마디로 주님께서는 하느님 나라가 중요한 분이시기에

이 세상의 것에는 이익이나 이권이 겹치지 않고 관심도 없으십니다.

이 세상을 이미 초월해계시고, 그래서 세상 문제에는 초연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승천축일과 관련하여 조명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늘로 오르시는 분이 세상일에 연연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런데 연연하지 않으시다면 초연하신 것이고

높은 차원의 평화는 바로 이런 천상의 초연함에서 오는 것이지요.

 

이런 주님 안에서 평화를 배우고 얻어 누리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