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5년 8월 4일 나해 연중 제18주간 화요일(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사제 기념일)

dariaofs 2015. 8. 4. 05:27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Joannes Maria Vianney)는 1786년 5월 8일 프랑스 리옹(Lyon) 근교에서 열심한 가톨릭 신자로 농부인 마태오와 마리 블루즈 사이의 6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비안네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서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났고, 5세 때에는 파리(Paris)에서 가톨릭 성직자와 수도자들이 추방되고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하자, 비안네는 어린 시절을 주로 부친의 농장에서 양을 치면서 지냈다. 정규 교육은 몇 개월밖에 받지 않았지만, 신앙생활을 충실히 하여 비밀리에 첫 고해(1794년)와 첫영성체(1796년)를 받았다.

18세 때 부친의 허락을 받고 에퀼리(Ecully) 본당 발레(Balley) 신부의 지도를 받으며 개인적으로 사제직을 위한 공부를 시작하였으나 기초 교육이 부족하고 수학 능력도 많이 떨어졌다. 특히 라틴어 공부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게다가 정식으로 등록되어 있지 않은 신학생이었던 비안네는 1809년에 징집을 당해 갖은 고통을 겪었다.

 

 1811년에 베리에르의 소신학교에 입학하여 철학 과정을 공부하고 1813년에는 리옹의 대신학교에서 신학 공부를 하였으나, 라틴어 성적이 좋지 않아 1년 만에 퇴학당한 비안네는 학과 성적은 부족하였지만 발레 신부의 도움으로 신학교에서 공식적으로 신심과 성품을 인정받아 1815년 8월 13일 그르노블(Grenoble)에서 시몽(Simon) 주교로부터 사제 서품을 받았다.

사제 서품 후 발레 신부가 있는 에퀼리 성당에서 2년 동안 보좌 신부로 생활한 비안네 신부는 1818년에 230여 명의 주민밖에 살지 않는 작은 마을 아르스의 본당신부로 부임하였다. 그는 여기서 죽을 때까지 42년 동안이나 봉직하면서 주민들에게 열렬한 신심을 불어넣었다. 이러한 비안네 신부의 노력으로 아르스의 종교적인 분위기는 일신되었고, 그 또한 설교자와 고해신부로 대단한 명성을 얻게 되었다.

그 결과 1827년부터 수천 명의 고해자들이 그에게 성사를 받기 위해 한적한 시골 마을 아르스로 찾아올 정도였다. 매년 2만여 명의 신자들이 비안네 신부를 찾아왔기 때문에, 그는 오전 11시에 설교를 하고 성무일도와 식사, 특별한 상담 시간을 제외하고는 매일 새벽부터 저녁때까지 약 18시간 정도 고해성사를 주어야 했다.

 

그러나 그의 동료 사제들은 그를 잘못 판단하고, 그를 무식하고 지나치게 열성적이며 허풍선이라고 비난하곤 하였다. 이에 대해 그의 주교는 “저 신부만큼이나 모두 미쳤으면 좋겠다.”고 하며 그를 옹호하였다.

이렇게 열심한 그 역시 가끔씩 사탄의 유혹을 받기도 하였다. 그의 성품은 지극히 단순하였고, 충고는 간단명료하였으나 신심이 차고 넘쳤으며 직선적인 설교를 하였다. 순례자들의 소란, 끊임없는 고해성사 요구들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그는 언제나 최선을 다하였다. 그는 단지 세 번 아르스를 떠났는데, 그것은 모두 수도원에 잠시 다녀온 것이 전부였다고 한다.

비안네 신부는 열심한 성무에 지친 나머지 1859년 8월 4일 73세의 나이로 아르스에서 사망하였다. 1905년 1월 8일 교황 비오 10세(Pius X)에 의해 복자가 된 비안네 신부는, 1925년 5월 31일 교황 비오 11세에 의하여 시성되었으며, 1929년에는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본당 신부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다.

 

강론   :   (마태 14.22-36)

 

거센 바람을 보고서는 그만 두려워졌다.

그래서 물에 빠져들기 시작하였다.”

 

베드로 사도가 물위를 걷는 얘기는 마태오복음에만 나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이 얘기의 구성은 참으로 뜬금없습니다.

 

예수님이 나타나시자 유령인 줄 알고 두려움에 빠지는 것은

마르코복음에서도 같은 식으로 기술을 하고 이해할 만하지만

주님이시거든 저더러 물위를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라는

베드로 사도의 얘기는 그 상황에서 너무도 이상합니다.

 

그렇게 두려운 바다라면 거기서 살려달라고만 얘기하지

그 두려운 바닷물 위를 걸어갈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생각을 한다 하더라도 걸어갈 엄두는 내지 못할 겁니다.

 

그러므로 마태오가 이 얘기를 집어넣은 것은 의도가 있습니다.

우리가 봐야 할 것은 무엇인가? 이점을 얘기하고 싶은 것이고

우리가 봐야 할 것은 두려운 게 아니라 주님이라는 것이지요.

 

헌데 참 이상한 것은 우리 인간이 두려워하며 본다는 겁니다.

싫으면 안 보면 그만이고 두려우면 더더욱 안 보면 되는데

두려운 것이 있으면 안 볼 수가 없고 두렵기에 보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두려운 것은 안 볼 수가 없고 두렵기에 보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사로잡히고 빠지기 때문입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히고 두려움에 빠지지요. 우리 인간은.

 

이것은 좋아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너무도 좋거나 너무도 아름다우면 그것도

우리 시선을 잡아끌고 우리를 사로잡습니다.

 

그러니까 웬만큼 좋거나 아름다우면 우리를 잡아끌거나 사로잡지 못하고

웬만큼 싫거나 보기 싫어도 우리를 잡아끌거나 사로잡지 못하지만

너무 좋으면 우리를 사로잡고, 너무 싫고 두려워도 우리를 사로잡습니다.

 

그러니 선도 극단적으로 가면 우리를 사로잡지만

악도 극단적으로 가면 우리를 사로잡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뱀과 정말 아름다운 꽃이 같이 있다면 우리는 무얼 볼까요?

거의 대부분의 우리는 꽃이 아니라 뱀을 볼 것입니다.

마귀와 하느님이 같이 계셔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이 없다면 하느님이 아니라 마귀를 볼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눈은 감성의 눈을 초월하는 것이며

분명한 하느님 선택이요 고도의 하느님 집중입니다.

줄타기처럼 늘 아슬아슬하게 하느님께 가는 것이고

조금이라도 집중력이 떨어져 집중치 못하면 두려움의 심연으로 떨어집니다.

 

이것을 박해시대의 신앙과 비교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입니다.

박해는 우리로 하여금 순교와 배교 중 하나를 선택케 합니다.

조금이라도 인간적인 정에 끌리는 순간,

조금이라도 인간적인 두려움에 머무는 순간 배교하게 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느님 아닌 것에 조금도 곁눈을 주지 말고

초고도의 집중력으로 하느님을 바라보아야 하며,

두렵기에 하느님께 집중하고 두려울수록 하느님께 집중해야 할 것입니다.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작은 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