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5년 8월 7일 나해(성 식스토 2세 교황과 동료 순교자들, 성 카예타노 사제)

dariaofs 2015. 8. 7. 06:45

 

 

성 식스토 2세 교황과 순교자들

성 식스투스(또는 식스토)는 257년 8월 30일에 교황 성 스테파누스 1세(Stephanus I, 8월 2일)를 계승하였다. 이때 황제 발레리아누스는 그리스도교를 박해하는 첫 번째 포고령을 내렸다. 군사들이 그리스도인들을 습격했을 때 식스투스 교황은 지하 묘지인 카타콤바 속에 있었다. 그 당시에는 로마(Roma)의 지하 묘지들이 신자들의 집회 장소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아피아(Appia) 가도에 있는 성 칼리스투스(Callistus) 묘지에 안장되었다.

성 식스투스와 함께 체포되어 순교한 사람은 부제 성 펠리키시무스(Felicissimus)와 성 아가피투스(Agapitus) 그리고 차부제 성 야누아리우스(Januarius), 성 빈첸시오(Vincentius), 성 마그누스(Magnus), 성 스테파누스(Stephanus)이다. 또 한 명의 동료 순교자로 성 콰르투스(Quartus)가 있다.

 

그도 부제라는 기록이 있으나 잘못된 기록으로 인정되고 있다. 이들은 교황 식스투스 2세와 함께 순교하였기 때문에 로마 순교록에서 같은 날을 축일을 정해 공경해 왔다. 그러나 성 라우렌티우스(Laurentius) 부제는 며칠 뒤에 순교하였기 때문에 다른 날 축일을 정해 공경한다. 이들은 프랙텍스타투스(Praetextatus) 카타콤바에 안장되어 있다. 오늘날 교황 성 식스투스(8월 7일)와 성 라우렌티우스(8월 10일) 외의 다른 순교자들은 8월 6일을 축일로 지낸다.

 

 

 

성 카예타노

티에나의 가스파르(Gaspar) 백작과 포르토(Porto)의 마리아(Maria)의 아들로 태어난 성 카예타누스(Cajetanus, 또는 카예타노)는 비첸차(Vicenza)에서 세례를 받고, 두 살 때 그의 부친이 전사하는 불운을 안았다. 그는 어머니 슬하에서 자라나 파도바(Padova) 대학교에서 공부하여 민법과 교회법의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곧 비첸차의 시의원이 되었고, 1506년에는 로마(Roma)로 가서 교황 율리우스 2세(Julius II)로부터 최초의 공증인으로 임명받았다. 또한 그는 신심 깊은 사제들로 구성된 신애회(神愛會)를 재생시켰다. 1513년 율리우스 교황이 서거하자 자신의 직책을 사임하고, 1516년에 사제로 서품된 후 비첸차로 돌아왔다.

그는 거기서 성 히에로니무스(Hieronymus)의 오라토리오회에 입회하여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위하여 일하다가, 베로나(Verona)에서 이와 비슷한 회를 설립하였다. 1523년 그는 로마로 가서 후일 교황 바오로 4세(Paulus IV)가 된 요한 피에트로 카라파, 바오로 콘시글리에리 그리고 보니파티우스 다콜레 등과 함께 교회를 개혁하고, 백성들에게 설교하며, 병자를 돕고,

 

최악의 경우에서 허덕이던 성직자의 신분을 개선하려는 목적으로 성직 수도회를 설립하여 1524년에 교황 클레멘스 7세(Clemens VII)의 승인을 받았다. 테아티노회(Theatines)라 부르는 이 수도회는 공동체 생활을 하는 정규 성직자들로 구성하고, 서원을 발하며, 사목직에 종사하였다. 처음에는 그리 성공적이 못되었다. 1530년 카예타누스가 총장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주교들의 개혁에 반대하는 무리들을 대적하여 훌륭한 싸움을 하였고, 이단적인 가르침을 과감하게 물리쳤다. 일반 시민들을 위한 카예타누스의 주요 업적 중의 하나는 전당포의 설립이었다. 후일 그는 복자 요한 마리노니(Joannes Marinoni, 12월 13일)와 함께 몬테스 피에타티스(Montes Pietatis)를 설립하여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주는 일로써 시민들의 복리를 위해 일하였다.

 

 1547년 8월 7일 나폴리(Napoli)에서 운명한 그는 1629년 8월 7일 교황 우르바누스 8세(Urbanus VIII)에 의해 시복되었고, 1671년 교황 클레멘스 10세(Clemens X)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그는 트렌토(Trento) 공의회 전에 있었던 가톨릭 개혁가들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성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강론    :    (마태 16,24-28)


<예수님을 어떻게 따라야 하는가?>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마태 16,24)."


'내 뒤를 따라오려면'은 "내가 주는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입니다.

'자신을 버리고' 라는 말씀은,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모두 버리라는 가르침으로 해석됩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라는 말씀은,

힘든 일이 생겨도 참고 견뎌야 하고, 죽음도 각오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영원한 것'을 얻기 위해서 '영원하지 않은 것'을 버리는 일입니다.

('반드시 죽어야 한다.'가 아니라, 죽을 수도 있음을 각오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제 십자가' 라는 표현은,

사람마다 십자가의 크기와 무게가 다르다는 것,

또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무거운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암시합니다.

각자 자신의 십자가가 있고, 자기가 지고 갈만 한 십자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은,

예수님을 따라가는 일은 특별한 사람만 할 수 있는 특별한 일도 아니고,

무슨 특공대만 할 수 있는 힘든 일도 아니라는 것을 암시하는 말이 되기도 합니다.


'누구든지' 라는 말은 겉으로는 "예외가 없다."는 뜻이지만,

"누구나 할 수 있다."는 뜻이 되기도 합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 자신을 버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하려고 노력하기만 한다면.


이 말씀과 대조적인 말씀이 있습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마태 11,28)."


겉으로만 보면,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라는 말씀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라는 말씀이 모순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모순이 아닙니다.

안식을 얻기 위해서 예수님께 가는 일과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일은 같은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안식'은 모든 짐을 내려놓은 상태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지고 가는 '십자가'는

우리를 고생시키는 '무거운 짐'은 아닌 것이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모든 고통에서 해방시켜 주시려고 오신 분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지고 가는 십자가는

모든 고통에서 해방되기 위해서 기꺼이 감수해야 할 하나의 '과정'입니다.


앞에서 인용한 '안식'에 관한 말씀에 이어지는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마태 11,29-30)." 라는 말씀에 있는

'내 멍에' 라는 말을 '힘들어도 지고 가야 할 십자가'로 해석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렇게 해석하면,

우리가 메고 있던 멍에를 벗기고 새로운 멍에를 주신다는 뜻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올바른 해석이 아닙니다.

십자가는 멍에가 아닙니다.

멍에를 완전히 벗기 위한 '노력'입니다.


("내 멍에를 메고" 라는 말은 "나에게 와서 멍에를 벗어라." 라는 뜻이고,

"내 멍에는 편하고" 라는 말은

"나는 너희의 멍에를 벗기고 편안함을 주겠다." 라는 뜻입니다.)


1)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는 일은 '집으로' 돌아가는 여행입니다.

이 세상은 잠시 머무는 객지이고, 하느님 나라는 영원한 고향집입니다.

사람에 따라서,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이 가나안으로 가는 것과 같은 여행일 수도 있고,

어떤 시인의 표현대로

이 세상에 소풍 왔다가 집으로 되돌아가는 여행일 수도 있습니다.


어떻든 '자신을 버리는 일'은 이 여행에서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버리는 일이고,

'십자가를 지는 일'은 꼭 필요한 필수품을 챙겨서 가지고 가는 일입니다.

(필수품 자체가 십자가라는 뜻이 아니라,

그것을 '가지고 가는 일'이 십자가라는 뜻입니다.)


하느님 나라로 가는 여행에서 꼭 가지고 가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첫 번째는 '사랑'입니다(1코린 13,1-3).

그런데 사랑을 실천하는 일이 너무 힘들 때가 많습니다.

(그래도 사랑은 기쁨입니다.)

힘들어도 기쁘니까 참고 견디는 것이 바로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행을 준비할 때,

필요하지 않은 것은 버리고 필요한 것만 챙기려고 애를 쓰는데,

나중에 보면, 필요하지 않은 것들도 여행 가방에 잔뜩 들어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가 많습니다.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필요하지 않은지를 잘 구분해서

필요한 것만 챙기는 것이 지혜입니다.

하느님 나라로 가는 여행에서는 그 지혜가 특히 더 필요합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2) 하느님 나라로 가는 여행을 '귀성 여행'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명절 때 귀성객들의 모습을 보면 선물들을 잔뜩 들고 갑니다.

그 선물들은 준비할 때에도 '기쁨'이고, 들고 갈 때에도 '기쁨'이고,

부모님과 가족들에게 줄 때에도 '기쁨'입니다.

그러니 아무리 무거워도 무거운 줄 모릅니다.

그처럼 예수님의 뒤를 따르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는 일'을

하느님께 드리는 선물을 가지고 가는 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선물 자체가 십자가라는 뜻은 아니고,

선물을 준비하는 일과 그 선물을 가지고 가는 일 등이 십자가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지고 가는 일은

하기 싫은데도 억지로 하는 일이 아니라, '기쁨'으로 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드릴 수 있는 선물 가운데 최고의 선물은 무엇일까?

역시 '사랑'입니다(마태 22,37).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