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5년 8월 12일 나해 연중 제19주간 수요일(성녀 요안나 프란치스카 드 샹탈 수도자)

dariaofs 2015. 8. 12. 05:19

 

1572년 1월 23일 프랑스 동부 부르고뉴(Bourgogne) 지방 디종(Dijon)에서 귀족 가문의 둘째 딸로 태어난 성녀 요안나 프란치스카 드 샹탈(Joanna Francisca de Chantal)은 18개월 만에 어머니를 여의고 엄격한 가톨릭적 분위기 속에서 아버지로부터 폭 넓은 교육을 받으며 성장하였다.

 

20세 때에 크리스토프 드 샹탈(Christophe de Chantal) 남작과 결혼한 그녀는 충실한 아내이자 헌신적인 어머니요 검소하고 알뜰한 주부로서 몰락의 위기에 처해 있던 집안을 일으켜 세웠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성(城)에서 매일미사를 봉헌하는 관례를 만들었고, 다른 성의 신심활동을 도입하여 소개하면서 자선활동도 열심히 하였다.

 

그들 부부는 6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그 중 둘은 유아 때 사망하였다. 게다가 1601년 남편이 사냥을 나갔다가 불의의 사고로 사망하자 그녀는 네 명의 자녀와 함께 친정으로 돌아와 신앙생활에 전념하였다. 그러나 이듬해 시아버지로부터 자신이 살고 있는 몽틀롱(Monthelon)으로 오지 않으면 손자들의 상속권을 박탈하겠다는 위협을 받고 할 수 없이 몽틀롱으로 가서 7년 동안 자녀교육에 힘쓰며 살았다.

1604년 사순시기 동안 친정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디종을 방문한 성녀 요안나 프란치스카 드 샹탈은 마침 그곳을 방문한 제네바(Geneva)의 주교 성 프란치스코 드 살(Franciscus de Sales, 1월 24일)의 설교를 듣고 대단한 감명을 받아 그의 영적 지도를 청하였다. 처음에 다소 망설이던 주교는 결국 그녀의 간청을 받아들였고 여러 번의 만남을 통해 서로 영성적인 교감을 나누게 되었다. 

 

그 후 그녀는 다시 결혼하지 않을 것과 주교에게 순종할 것을 서원하였다. 디종의 카르멜회 수녀들과 만남을 통해 큰 영향을 받은 그녀는 자신을 하느님께 전적으로 봉헌하고자 원했으나 주교는 좀 더 인내를 갖고 기다리도록 했다.

1607년에 성 프란치스코 드 살 주교는 그녀에게 영성적으로는 성모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방문하였을 때에 드러내었던 덕들을 따르고, 활동적으로는 노인들과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자선활동을 하는 수도 공동체를 세우려는 자신의 계획을 설명하였다. 이에 뜻을 같이 한 그녀는 주교의 도움으로 자녀들의 장래 문제와 집안의 대소사를 해결한 후 안시(Annecy)로 떠났는데, 그곳은 주교가 새로운 수도회를 세우고 싶어 하던 곳이었다.

 

1610년 6월 6일 삼위일체 대축일에 성 프란치스코 드 살 주교는 안시 수도원의 축성식을 거행하였다. 그녀와 2명의 동료들이 그 자리에 함께 참석해 주교로부터 정식으로 회칙을 받았으며 이듬 해 그들 모두 수도 서원을 하고 그녀가 원장이 되었다.

 

이 수도회의 이름과 회헌은 여러 번 바뀌어 오다가 마침내 ‘성 마리아 방문 수도회’를 공식 명칭으로 확정하였다. 이 수도회는 1612년 1월부터 병자방문을 시작하여 사람들로부터 칭찬과 경탄을 불러일으켰다. 이듬해 그녀는 시아버지의 사망과 함께 많은 재산을 상속받은 후 더욱 영성적인 성숙에 힘쓰며 수도회의 새로운 분원 설립에 주력하였다.

1614년 리옹(Lyon)에 새로운 수도원을 설립하면서 많은 난관을 겪기도 했지만 그 모든 시련에도 불구하고 성녀 요안나 프란치스카 드 샹탈은 성 프란치스코 드 살 주교의 도움을 받아 수도원을 급속히 확장해 나갔고 많은 여성들이 입회하였다. 이러한 성공적인 확장은 육체적인 고행보다는 겸손과 온화함을 강조한 주교의 가르침과 그녀의 신중함과 헌신 덕분이었다.

 

1619년에 그녀는 파리(Paris) 분원을 설립하면서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Vincentius a Paulus, 9월 27일)를 만나게 되었는데,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는 성 마리아 방문 수도회의 초기 정신과 활동 방향을 옹호하였을 뿐만 아니라 성 프란치스코 드 살 주교가 사망한 후에는 그녀의 영적 지도자가 되어 주었다. 성 프란치스코 드 살 주교가 사망하던 1622년 당시 성 마리아 방문 수도회의 분원은 13개였고, 프랑스 전역으로 확장되어 그녀가 사망할 당시 약 86개의 분원이 있었다.

그녀는 수도회 내적, 외적인 시련을 견디어 내면서 계속해서 분원을 설립하기 위해 거처를 옮겨 가며 생활하였다. 1628년 흑사병으로 많은 수도자들이 사망한 후 안시 수도원으로 돌아온 그녀는 다시금 장상을 역임하다가 1641년 마지막으로 파리에 가서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를 만나고 돌아온 후 느베르(Nevers)에서 병을 얻었다. 결국 물랭(Moulins)의 분원에서 몸져누운 그녀는 1641년 12월 13일에 그 수도원에서 선종하였다.

 

그녀의 시신은 안시로 옮겨져 성 프란치스코 드 살 주교의 무덤 곁에 묻혔다. 그녀는 1751년 11월 21일 교황 베네딕투스 14세(Benedictus XIV)에 의해 시복되었고, 1767년 7월 16일 교황 클레멘스 13세(Clemens XIII)에 의해 시성되어 1769년부터 로마 전례력에 포함되었다. 그녀의 생애에 대한 기록은 성 프란치스코 드 살 주교가 쓴 “신심생활 입문”(The Introduction to the Devout Life)에 잘 나타나 있다.

2001년 12월 18일 교황청 경신성사성의 교령에 의해 성녀 축일의 전례적 기념일이 12월 12일에서 8월 12일로 변경되었다. 그 이유는 1999년 3월 25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가 라틴아메리카의 수호자로 선포한 ‘과달루페(Guadalupe) 성모 축일’과 같은 날이어서 전례적인 기념에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런 이유로 미국에서는 그녀의 축일을 8월 18일로 변경하여 기념하고 있다.

 

강론   :   마태오 18.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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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오늘 마태오복음 18장의 이 말씀은 같은 마태오복음 16장에서

베드로 사도에게 하신 말씀과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둘의 차이가 있다면 <>, 곧 베드로 개인에게 하신 말씀을

<너희>, 곧 공동체 모두에게 확장하여 하신 말씀의 차이인데

그러나 베드로 사도에게 풀고 매는 권한을 주신 것도

실은 개인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의 대표에게 주신 것이었지요.

 

아무튼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공동체성을 강조하십니다.

공동체 안에 누가 잘못을 하면 같이 교정을 해주고,

공동체 안에 어려운 일이 생기면 같이 기도하라 하십니다.

잘못된 일이든 어려운 일이든 같이 해결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어려운 일을 같이 해결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고,

그래서 조금만 관심과 사랑이 있어도 같이 기도하고,

그럼으로써 사랑이 확인되고 증진되는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기도해주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남을 교정해주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고

그래서 사랑이 보통 많지 않으면 하기를 꺼려하고

덕이 없으면 하려고 해도 해낼 수 없습니다.

사랑으로 푼다는 것이 오히려 더 꼬이게 만들지요.

 

사실 잘못이 있다고 얘기하면 좋아할 사람 별로 없고,

잘못을 선선히 인정하는 사람도 별로 없습니다.

선선히 인정하는 사람이라면 매우 성숙한 사람이고,

그래서 그런 사람은 사실 얘기가 필요 없는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잘못 자체를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고치라고까지 해야 하니 이 얼마나 어렵습니까?

네 잘못이나 고치라고 역공을 할 것이니

실상 자기도 잘못이 많음을 아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기에 웬만한 사랑을 가지곤 말도 꺼내지 못할 것이고,

욕을 바가지로 먹을 각오로 용기 내어 말을 꺼내더라도

완강한 거부를 만나면 이내 움츠러들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식으로 문제를 풀려고 하지 말고,

다른 식으로 문제를 풀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개인적으로가 아니라 공동체적으로 푸는 것이고

너의 잘못을 고쳐라가 아니라 우리의 잘못을 고치자이지요.

 

너만 잘못인 것이 아니고 나도 잘못이 있으며

너의 잘못만 아니고 너의 잘못에 내 탓도 있고

너의 잘못이 아니고 사실은 우리의 잘못이라고 하는 겁니다.

 

여기에는 부드러운 사랑이 있고,

그 밑바탕에는 겸손이 있습니다.

 

겸손이 기초되지 않으면 만덕이 불가능하다는 그 진리가

잘못의 공동체적 교정에서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겸손치 못할 바에는

숫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나을지도 모릅니다.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