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5년 11월 14일 연중 제32주간 토요일(성 니콜라오 타벨리츠와 동료 사제 예루살렘 순교자 1회)

dariaofs 2015. 11. 14. 01:29


 

성 니콜라우스 타벨릭(Nicholaus Tavelic, 또는 니콜라오 타벨릭)은 크로아티아(Croatia) 남서부 달마티아(Dalmatia)의 귀족 가정에서 1340년경에 태어나서 작은 형제회에 입회하였다.

 

그 후 그는 보스니아(Bosnia) 부근, 특별히 파테린(Paterine) 이단자들 속에서 활동하였다. 그러다가 1384년 예루살렘 성지 선교에 자원해 동료들과 함께 성지와 순례자들을 돌보는 일을 수행하였다. 


1391년 성 니콜라우스 타벨릭은 동료인 성 데오다투스(Deodatus)와 나르본(Narbonne)의 성 베드로(Petrus) 그리고 쿠네오(Cuneo)의 성 스테파누스(Stephanus)와 함께 이슬람교도들에게 직접 복음을 전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래서 같은 해 11월 11일 동료 형제들과 함께 예루살렘의 오마르(Omar) 모스크에 가서 복음을 선포하였고, 그로 인해 체포되어 무자비한 구타를 당하고 감금된 뒤 사형에 처하게 되었다.

 

1391 11 14일 순교했다. 그들은 1970년 6월 21일 교황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그들은 예루살렘 성지에서 순교한 작은 형제회 회원 중에서 시성된 유일한 경우이다.

 

강론   :   (루카 18,1-8)

 

<기도>

 

어떤 고을에 불의한 재판관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는 한동안 어떤 과부의 청을 들어주지 않다가
과부가 계속 졸라대니까 귀찮아서 올바른 판결을 내려줍니다(루카 18,2-5).

 

예수님께서는 이 이야기를 하신 다음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불의한 재판관이 하는 말을 새겨들어라.
하느님께서 당신께 선택된 이들이 밤낮으로 부르짖는데
그들에게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지 않으신 채, 그들을 두고 미적거리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지체 없이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실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루카 18,6-8)"

 

과부의 청을 들어주는 불의한 재판관의 이야기와 예수님의 말씀은,
루카복음 11장 5절-8절, '끊임없이 간청하여라.'와 비슷합니다.
"너희 가운데 누가 벗이 있는데, 한밤중에 그 벗을 찾아가 이렇게 말하였다고 하자.
'여보게, 빵 세 개만 꾸어 주게.
내 벗이 길을 가다가 나에게 들렀는데 내놓을 것이 없네.'
그러면 그 사람이 안에서,
'나를 괴롭히지 말게. 벌써 문을 닫아걸고 아이들과 함께 잠자리에 들었네.
그러니 지금 일어나서 건네줄 수가 없네.' 하고 대답할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사람이 벗이라는 이유 때문에 일어나서 빵을 주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그가 줄곧 졸라 대면 마침내 일어나서 그에게 필요한 만큼 다 줄 것이다(루카 11,5-8)."

 

이 두 이야기는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너희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려고 하시다가도
너희가 끈질기게 졸라대면 들어주신다."는 뜻은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너희는 다른 사람에게 뭔가를 청할 때에는 온갖 정성을 다 쏟으면서도
하느님께 기도할 때에는 왜 그렇게 하지 않느냐?"
(또는, "세속의 일에 대해서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하면서
영혼 구원을 받는 일은 왜 그렇게 쉽게 포기하느냐?")
라고 꾸짖으시는 말씀으로 알아들어야 합니다.

 

하느님은 불의한 재판관이 아니라 정의로운 재판관입니다.
또 하느님은 우리가 뭔가를 청할 때에 미적거리시는 분이 아니라
'지체 없이' 그 청을 들어주시는 분입니다(루카 18,8).

 

그러나 우리가 달라고 청하는 것을 무조건 다 주시는 분은 아닙니다.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좋은 것을 얼마나 더 많이 주시겠느냐?(마태 7,11)"
하느님은 가장 좋은 것을, 가장 좋은 때에 주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청한 것을 청한 그대로 주시는 분이 아니라,
청한 것보다 더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고,
우리가 정한 때에 주시는 분이 아니라
당신이 보시기에 가장 좋은 때에 주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청하더라도 '나쁜 것'이라면 안 주실 것이고,
우리가 '좋은 것'을 청하더라도 그 시기가 '나쁜 때' 라면 나중에 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기도할 때 우리가 겪는 어려움입니다.

 

"지금 내가 청하는 것이 정말로 가장 좋은 것인가? 혹시 나쁜 것은 아닌가?"
우리는 거의 항상 '내가' 생각하기에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을 청하는데,
사실 그렇게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그렇게 기도하는 것 자체를 탓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청하는 것이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것이 아닐 수도 있고,
또 우리는 그것을 잘 모른다는 것, 그게 바로 기도의 어려움입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니에서 바치신 기도가 좋은 모범이 됩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원하시면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루카 22,42)."
'예수님의 뜻'은(예수님께서 바라신 것은) '고난의 잔'이 거두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아버지 하느님께서는 침묵을 지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뜻'이 무엇인지 알아들으셨습니다.
'아버지의 뜻'은 예수님께서 '고난의 잔'을 마시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버리고 기꺼이 아버지의 뜻을 따르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고난의 잔'이 거두어지기를 청하시면서도
'아버지께서 원하시면'이라고 말씀하신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가장 먼저 원하신 것은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었고,
고난의 잔이 거두어지는 것은 그 다음이었습니다.

 

'가장 좋은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내가 생각하는 그 '때'가 정말로 가장 좋은 때인가?"
우리는 거의 대부분 자신이 기도하고 있는 '지금' 받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가장 좋은 때는 '지금'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아마도 분명히 아브라함은 자기가 아직 젊고 건강할 때 아들을 얻기를 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가 아주 많이 늙어서 아들을 포기하고 있을 때
그에게 아들을 주셨습니다(창세 17,16-19).

 

"이렇게 하느님께서 가장 좋은 것을 가장 좋은 때에 주신다면,
우리가 왜 끈질기게 기도해야 하는가?"
("기도할 필요 없이, 주시는 대로 받기만 하면 그만 아닌가?")

 

기도는, 안 주시려고 하는 하느님을 설득해서 주시도록 만드는 일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청하지 않아도 이미 알고 계시고(마태 6,8),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제 때에 주시는 분입니다(마태 6,33).
그래서 기도는,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을 '잘 받는 일'입니다.
그리고 무엇을 언제 주실지 잘 모르기 때문에
주실 때까지 낙심하지 말고 끈질기게, 최선을 다해서,
잘 받을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끊임없이 기도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뭔가를 달라고 청하는 '청원의 기도'도 사실은 잘 받기 위한 기도인데,
자기가 청하는 '바로 그것만', 또 그것을 '지금' 달라고 고집을 부리면 안 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