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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카에서 시에나를 넘어가는 토스카나 지역의 길은 강렬한 햇살과 바람에 익어가는 올리브 나무와 포도밭이 구릉을 따라 펼쳐져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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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 지미냐노 마을에 있는 산 아고스티노 성당 안에 있는 성모상. 심장에 칼을 꽂고 있는 이 성모상은 예수님의 어머니로서 겪어야 하는 마음의 고통을 형상화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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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전거로 비아 프란치제나를 순례 중인 이탈리아 출신 지오르지오(오른쪽)씨와 다리오씨. 이들은 나이, 직업 등의 사회적 허울을 다 벗고 “오롯이 나 자신으로 있을 수 있는 자유를 주기에” 순례가 좋다고 말했다. |
성녀 가타리나의 고향 시에나의 광장에서 벗에게 소식 전합니다.
가이드북에 따르면 오늘로 700여㎞를 걸었고 로마까지 250㎞가량 남았어요. 길을 잃고 바로 잡느라 하루 평균 3~4㎞는 더 걷게 되니 넉넉히 잡아 300여㎞ 남았다 봐야겠지요.
이번 주에는 “춥다”는 말을 달고 살았어요. 토스카나(Toscana, 이탈리아 중부 지방)의 바람 때문이었어요. 아무도 없는 들판이나 언덕길에서 맞는 바람은 정말 세차고 춥더군요.
이왕 좋은 날씨가 아닐 거라면 차라리 비가 오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그래서 도보 중에 문이 열린 성당이 나타나면 무조건 들어가 쉬었어요.
바람을 피하려는 목적도 있지만 천장이나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 전부인 성당에서 어슴푸레 보이는 십자가 위의 예수님을 응시하고 있자면 마음이 애잔해지면서 우리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 좋거든요.
처음 그런 느낌을 받았던 것은 산 미니아토 알토(San Miniato Alto)에 있는 프란치스코 수도원의 성당에서예요. 그날도 바람이 거셌고 예닐곱 시간을 걸어 마을에 도착했을 때는 으슬으슬 한기가 들었어요.
바로 숙소로 들어갈까 하다가 성당 문이 열려 있기에 들어가 배낭을 풀고 앉았는데 그날따라 유독 제대 위 허공에 매달린 그분이 춥고 아프게 느껴지는 거예요. 가진 것이라곤 몸을 가리고 있는 천 조각이 전부인 분….
“그분”이 안쓰럽게 느껴져
순간, 감정이입이 되어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어요. “당신, 많이 추우시겠다. 아프고. 따뜻한 담요라도 있었으면 좋겠는데 어떡하지요? 나도 없는데….” 이렇게 말하고 나니 더욱 그분이 안쓰럽게 느껴져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그런 나를 보면서 생각했죠. 누군가 이런 나를 본다면 이상한 사람, 어린아이도 아니면서 상징과 실재도 구분 못 하는 사람으로 여길 수도 있겠다고요.
단순한 감정이입이라 할지라도 이 일은 내게 중요한 가르침을 주었어요. 그분이 한때 사람으로서 나와 같은 추위와 아픔을 느끼며 사셨다는 것, 그러니까 공통의 경험이 있다는 것이 우리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주는 데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었어요.
이렇게 쓰다 보니 생각나는 일이 있는데 비바람에 우비 자락 펄럭이며 힘들게 걷고 있을 때 제일 위로가 되는 사람이 누군줄 아세요? 바로 그 시간에 나랑 똑같이 비를 맞으면서 오르막길을 끙끙대며 자전거를 타고 올라오던 순례자였어요.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어 나타난 그를 보는 순간 와하하, 웃음이 터지면서 위로와 힘이 느껴지더군요. 퍼붓는 빗속에서 자기 길을 가고 있는 사람이 나 말고 또 있다는 데서 오는 강한 동질감이랄까, 유대감이 그렇게 작용한 것 같아요.
강한 동질감 일어
그도 비슷한 감정이었던 듯 싱긋이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올려 보이길래 “힘내요, 화이팅!” 외쳐주고 서로의 길을 갔지만 우리가 함께 같은 길을 가는 것도 아닌데 단지 같은 시간에 거리에서 비를 맞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토록 강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더라고요.
벌써 편지를 마무리할 때가 되었네요. 다시 소식 전할 때까지 일상 속에서 이루어지는 그대의 순례가 순조롭기를 바라며 오늘은 이만….
2015년 10월 26일
로마로 가는 길에서 그대의 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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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타 <문지온, 프리랜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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