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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의 특별 희년] (6)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경찰사목 선교사 김선심(모니카)씨

dariaofs 2016. 1. 8. 03:33
쇠창살 너머로 따뜻한 손길 건네는 ‘자비의 일꾼’


▲ 서울 구로경찰서에서 유치장 선교 활동을 마치고 나오는 김선심씨.


▲ 유치장에서 만난 이가 보낸 감사 편지 중 일부.


오후 2시. 경찰서 유치장에 갇힌 사람들이 식사 후 말없이 누워있는 시각. 그때 적막을 깬 것은 서울대교구 경찰사목위원회 선교사 김선심(모니카, 61, 서울대교구 청파동본당)씨의 목소리였다.

“형제님, 춥지 않으세요? 다친 데 약은 바르셨어요? 저는 천주교 신자예요. 십자성호 긋는 거 영화에서 많이 보셨죠? 이참에 한 번 배워보세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김씨의 따뜻한 음성에 등 돌려 누워 있던 유치인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관심 없어 하던 유치인도 어느새 다가와 김씨가 창살 사이로 전한 따뜻한 커피와 빵을 먹었다.

“다 드셨으면 손가락 스트레칭을 해볼까요.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몸이 따뜻해진대요. 입 운동도 같이 하면 더 좋다고 하니 함께 노래 부르면서 운동해보세요.”

김씨는 유치인들에게 악보를 나눠주곤 오카리나를 꺼내 가톨릭 성가 517번 ‘내가 절망 속에’를 연주했다. 처음엔 김씨 연주소리만 들렸다. 그러다 하나둘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주님 자비하심을 우리에게 베풀고 모든 죄를 사하고 구원하시었도다. 주의 사랑하심은 영원불변하도다~”

모든 유치인이 한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천주교 신앙을 모르지만, 제 이야기인양 목소리를 높였다. 어떤 유치인은 노래를 부르다 흐느끼기도 했다. 김씨는 우는 이의 손을 잡고 말했다.

“몸이 건강해야 견디고 힘낼 수 있는 겁니다. 식사 잘 챙기세요. 나가서도 형제님 위해서 기도할게요.”

유치장에 갇힌 이들 마음을 보듬고 위로하는 사람들, 바로 ‘유치장 선교사’다. 김씨는 서울대교구 경찰사목위원회 유치장 사목 초창기 멤버. 그는 15년째 봉사를 이어오고 있다.

주님 부르심 따라

김씨는 오랜 시간 봉사할 수 있었던 것은 “특별한 기도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어릴 적 세례를 받고 냉담하다가 20년 전부터 신앙생활을 다시 시작했어요. 그때 했던 기도가 ‘꼭 아버지 앞에서 일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었어요. 그 기도의 힘으로 유치장 선교 활동을 지금까지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유치장 사목이 시작될 때만 해도 방문이 허락된 경찰서는 한 곳뿐이었다. 하지만 이젠 서울 시내 21개 경찰서 유치장으로 서울 경찰사목위원회 선교사들이 파견되고 있다.

김씨는 그동안 안 가본 유치장이 없다. 지금도 일주일에 두 번, 서울 구로경찰서와 경기 일산경찰서 유치장을 찾아 선교활동을 펼친다. 다른 선교사 대신 유치장을 방문하는 때도 있다.

이런 김씨도 범죄를 저지른 이들에게 다가가는 것이 처음부터 쉽지는 않았다. 마음을 굳게 닫은 사람도 있었고, 심지어 욕을 섞어가며 “커피에 무엇을 탄 줄 알고 마시라고 하느냐”고 김씨에게 윽박지르던 유치인도 있었다.

“당시엔 그런 일들이 마음에 상처가 돼 울기도 했어요. 마음을 다잡으려고 기도하다 보니 ‘하느님께서 나를 사랑하고 믿어주시기에 이런 시련도 주시는구나.

 

그 사랑 느낄 수 있도록 늘 깨어 있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강도나 살인을 저지른 유치인도 있지만 이젠 그들을 편안하게 느껴요. 이것 또한 주님이 주신 선물 같아요.”

자비 전하는 일꾼

몇 해 전 김씨 앞으로 특별한 편지가 도착했다. 편지에는 보낸 사람의 이름도 주소도 적혀 있지 않았지만, 언젠가 김씨가 손을 잡아줬던 한 유치인임은 분명했다.

‘누님 같은 분이 오셨던 그 날은 제가 유치장에 들어온 지 5일째 되던 날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그날 저녁에 생을 포기하려고 마음먹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분께서 제게 큰 위로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다시 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저녁밥도 정말 맛있게 먹었습니다. 늦었지만 감사한 마음을 꼭 전하고 싶어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

실제로 유치장에서 만나는 많은 사람이 김씨의 말 한마디에 눈물을 쏟아낸다. 그때마다 김씨는 “참지 말고 울라”며 손을 잡아준다.

“유치장에서 만난 많은 사람이 ‘누군가 나에게 따뜻한 말을 한 번이라도 해줬더라면 내 인생은 달라졌을 것’이라고 말해요.

 

그분들에게 필요했던 건 자비로운 말 한마디였더라고요. 하느님께서 저를 주님의 자비를 유치인들에게 전하는 일꾼으로 써주시는 것만큼 감사한 일은 없어요.”

1시간 동안 유치인들과 이야기 나누고 오카리나 연주까지 하면서 지칠 법도 하지만 김씨는 인터뷰 내내 연신 웃는 얼굴이었다.

“저는 유치장 체질인 것 같아요. 유치장에서 사람들과 만나고 나면 오히려 일주일을 생활할 에너지를 얻어요. 유치장 선교는 이제 제 일부분이나 마찬가지랍니다.”

취재 후기

김선심씨는 경찰서를 제집(?)처럼 드나드는 특별한 사람이었다. 경찰서 곳곳에 무엇이 있는지 꿰고 있었고, 수사팀 사무실도 스스럼없이 들어가 형사와 인사를 나눴다.

의문이 들었다. 왜 굳이 교회가 경찰서에까지 와야 할까. 유치장에 갇힌 사람들은 죄를 지었고 그에 합당한 벌을 기다리는 중이 아닌가. 하지만 김씨 눈에 유치인들은 단순한 범죄자가 아니었다.

“사람이 나빠서 유치장에 들어오는 것이 아녜요. 어릴 적 환경 때문에 반복해서 죄를 짓고 들어오는 경우가 많죠.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너무 마음이 아파요. 벌을 기다리는 사람의 마음은 어떻겠어요. 유치장에 갇힌 분들은 새카만 터널을 걷고 있는 것처럼 답답함을 느껴요. 당연히 위로가 필요하죠.”

현대 사회 사람들은 나와 남을 구별 짓는다. 또 자기 일이 아니라면 관심 두지 않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하느님 아래 형제자매 아닌 사람은 없다. 김씨는 유치인들 이야기를 하다 눈물을 글썽였다. 그 눈물은 같은 형제의 아픔에 동참하는 마음이었다.

“너희가 내 형제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

 

백슬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