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 2,22-40)
<'빛'으로 오신 예수님>
우리는 '주님 봉헌 축일'에
초를 축복하면서,
예수님께서 '빛'으로 오셨음을 묵상하고, 또 우리도 '등불'로서 살겠다고 다짐합니다.
세례자 요한의 아버지
즈카르야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우리 하느님의 크신 자비로 높은 곳에서 별이 우리를 찾아오시어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는 이들을
비추시고
우리 발을 평화의 길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루카 1,78-79)."
예수님은 높은 곳, 즉 하늘에서 우리를 찾아와서 우리의
어둠을 밝혀 주시는 분입니다.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는 이들"이라는 말은,
죄와 죽음에 사로잡혀 있는 인류의 모습을 표현한 말입니다.
예수님은 어둠 속에 있는 우리의 앞길을
비추셔서
'평화의 길'로 우리를 이끌어 주시는 분입니다.
'평화의 길'은
평화를(구원을) 얻기 위해서 가는 길,
즉 하느님 나라로 가는 길을 뜻합니다.
어둠 속에 있었던 인류는 그
나라가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고,
그 나라로 가는 길도 몰랐습니다.
사람들은 어둠 속에서 방황하고만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오셔서
어둠 속에 있는 사람들을 비추어 주셔서
길을 찾게 해 주셨고(길을 가르쳐 주셨고), 앞장서서 그 길을 가셨습니다.
시메온 예언자는 이렇게
찬미합니다.
"이는 당신께서 모든 민족들 앞에서 마련하신 것으로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루카 2,31-32)."
'계시의 빛'이라는 말은
"사람들을 하느님 나라로 인도하는 빛"이라는 뜻입니다.
이 '빛'은 모든 민족들, 즉 인류 전체를 위한 '빛'입니다.
(이방
민족들만을 위한 빛이 아니라...)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이라는 말은,
메시아께서 이스라엘에서 태어나셨으니
메시아의 탄생은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뜻합니다.
요한복음서 저자는 복음서의
머리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요한 1,4)."
'빛'이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비추시는 것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빛'은 곧 '생명'이고, '생명'은 곧 '빛'입니다.
그 빛을 받은
우리가 예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길을 잘 가면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빛을 거부하면 스스로 생명을 거부하는 일이
됩니다.
생명을 거부하는 것은 죽음을 선택하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이는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요한
8,12)."
1) 그런데 사람들
가운데에는
'빛'을 거부하고 '어둠' 속에서 살겠다고 고집부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요한 3,19).
충실하게 신앙생활을 해서 구원을
받는 것은 싫어하고
그냥 죄 속에서 살면서 쾌락을 즐기는 것을 더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쾌락을 포기하고 사는
신앙인들을 보면서 어리석은 사람들이라고 비웃지만,
신앙인들이 보기에 진짜로 어리석은 사람들은 그들입니다.
2) 예수님은 '참 빛'이신
분인데(요한 1,9),
예수님이 '참 빛'이라는 것을 믿지 않고 '다른 빛'을 따라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다른 빛'을 따라가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나라가 아닌 곳으로 가게 될 텐데,
예수님의 나라가 아니라면 생명이 없는 나라입니다.
'참 빛'이라는 말은 '유일한
빛'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다른 빛'은 '빛'이 아닙니다.
'빛'이 아니니 '생명'도 없습니다.
3) '빛'이신 예수님을
따라나서긴 했지만,
'빛'이 너무 희미하다고 불평하는 사람도 있고,
그 '빛'을 따라가는 일이 너무 어렵고 힘들다고 불평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빛'이 너무 희미하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은
사실은 그 '빛' 에 집중하지 않고 자꾸만 한눈을 파는
사람들입니다.
자기들이 제대로 안 보니까 잘 안 보이는 것입니다.
또 '빛'을 따라가는 일이
너무 어렵고 힘들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은
씨를 뿌리지도 않고 열매만 거두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모든 사람'을 구원하려고 오신
예수님이기 때문에,
구원은 '모든 사람'이 받을 수 있는 '쉬운 일'입니다.
제대로 안 하니까 어렵게만 느껴지는
것입니다.
충실한 신앙인은 참되고
유일하고 밝은 빛이신 예수님만 잘 따라가서
마침내 영원한 생명을 얻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자기 혼자서만 가면 안 됩니다.
하느님
나라는 '사랑'이 없으면 갈 수 없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가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빛'을 받았다면
그 '빛'을 다시 다른 사람들에게 비추어 주어야 합니다.
즉 '세상의 등불'이 되어야 합니다(마태 5,14).
선과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악을 물리치는 일에 동참해야 합니다.
혹시라도, "예수님께서는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기도하여라.' 라고 말씀하셨다."
라고 반박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 말씀은, 위선자들처럼 기도하지
말고 참된 기도를 하라는 뜻이지
이웃의 고통을 외면하는 이기적인 신앙인이 되라는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마태 5,16)." 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신앙인은 이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하나의 촛불이 되어야 합니다.
(하느님 나라 입구에는
"혼자 오는 사람은 입장 불가" 라는 간판이 있다고 합니다.
그 나라는 이기적인 사람은 들어갈 수 없는 나라,
즉 이타적인 사람만
들어갈 수 있는 나라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전주교구 신풍 성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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