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드로
티베리아 호수에 인접한 마을 베싸이다 출신인 사도 성 베드로(Petrus)는 시몬이라 부르는 요한(Joannes)의 아들로서 겐네사렛 호수에서 고기잡이를 하며 살았다.
그의 아우 안드레아(Andreas)가 그를 예수께 소개했는데, 예수는 그에게 아라메아어로 베드로와 같은 뜻인 ‘게파’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요한 1,35-42).
그는 가나안 혼인 잔치에서 베푼 그리스도의 첫 번 째 기적이 일어난 곳을 비롯하여, 자신의 장모가 치유되는 장면 등을 목격하였다.
베드로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인정하면서 “선생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마태 16,16) 하고 고백할 때, 주님은 “잘 들어라.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 즉 죽음의 힘도 감히 그것을 누르지 못할 것이다.” 하셨다.
그리고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도 매여 있을 것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도 풀려 있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으로 가톨릭 교회는 베드로가 첫 번째 교황이며 교황권의 우위성을 입증하는 근거로 이해한다. 베드로는 다른 어느 사도들보다 복음서에 자주 언급되며, 그리스도의 주요 행적에도 항상 그가 함께 자리한다.
또 대사제의 관저에서는 그리스도를 부인한 사실도 있다. 어쨌든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승천 후 신도들의 우두머리이고, 유다(Judas)의 후계자를 임명했으며,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한 첫 번째 사도이자, 기적을 행한 첫 사도이며, 설교로 많은 사람들을 개종시킨 사도였다.
베드로는 43년경에 헤로데 아그리파에 의하여 투옥되었으나, 천사의 인도를 받아 피신하였고, 예루살렘 회의에서 그리스도께서는 만인에게 기쁜 소식을 선포하기를 원하신다고 강조하였다.
초기 전승에 의하면 그 후 그는 로마(Roma)로 가서 초대주교가 되었고, 네로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중인 64년경에 바티칸 언덕에서 역십자가형을 받아 순교했다.
성 베드로 대성전 지하에는 그분의 무덤이 있다. 순교 직전에는 저 유명한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로 널리 알려진 주님의 발현을 보았다.
성 바오로
베냐민 지파의 유대인이자 로마 시민권을 가졌던 사도 성 바오로(Paulus)는 당대의 유명한 유대인 랍비 가믈리엘의 문하생으로 예루살렘에서 공부하였다. 그가 회심할 때까지는 사울이라 불렀다. 천막 만드는 일을 업으로 삼던 그는 엄격한 바리사이파였고, 그리스도교의 열렬한 박해자였다.
그는 스테파누스(Stephanus)의 순교 현장에도 있었다. 또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체포하기 위하여 다마스쿠스로 가던 중 그는 그리스도의 환시를 체험하였다(34-36년 사이). 이 환시는 그의 극적인 개종을 불러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위대한 이방인의 사도로 만들어 주었다.
그 후 그는 3년 동안 아라비아에서 지낸 후 설교하기 위하여 다마스쿠스로 돌아왔다. 그는 즉각 유대인들의 맹렬한 반발에 직면하였는데 그에 대한 위협은 죽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아레타(Aretas) 왕의 총독이 바오로를 잡으려고 성문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밤을 이용하여 비밀리에 성벽을 타고 도시를 빠져나갔고, 39년경에 예루살렘에서 사도들을 만났으며, 바르나바(Barnabas)의 지원으로 그리스도교 공동체에 입적하였다.
그 후 그는 타르수스(Tarsus)에서 몇 년을 지내다가 43년경에 바르나바에 의하여 안티오키아(Antiochia)로 갔으며 그곳 교회의 교사가 되었다. 이것이 이방인을 상대로 하는 대 전교의 시초가 되었다. 45년경부터 바오로는 세 차례의 전교여행을 하게 된다.
45년부터 49년까지 그는 키프로스(Cyprus), 베르게, 비시디아 안티오키아, 리가오니아를 전교했고, 이 여행에서 이름을 바오로로 개명했다.
이 여행을 마치고 49년경에 예루살렘에 온 그는 베드로(Petrus)와 야고보 및 다른 사도들을 설득하여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은 유대인처럼 할례를 받을 필요가 없음을 확신시키는데 성공함으로써 그리스도교회의 보편성 확립에 기여한 한편,
그의 이방인 선교를 예루살렘 교회가 인정하도록 하는 등 교회의 체제 면에서도 가일층 진보된 단계를 맞게 하였다.
안티오키아로 돌아온 직후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제2차 전교여행을 계획한다(49-52년). 제1차 전교여행에서 세운 교회들을 재차 방문한 뒤, 바오로는 마케도니아를 가로질러 갔고 최초로 유럽에 복음을 선포하였다.
그는 필리피(Philippi), 테살로니카(Thessalonica), 베레아(Berea)에 교회를 세웠으나, 아테네(Athenae)에서는 ‘알지 못하는 신’을 비판하는 ‘아레오파고’ 법정 진술만 다소 효과를 내었을 뿐 신통한 열매를 맺지 못하였다.
그 후 안티오키아로 귀향한 그는 다시 제3차 전교여행을 계획하였으나(53-58년), 2년 동안은 코린토스(Corinthos) 교회를 위하여 헌신하였으며, 에페수스(Ephesus)에서는 데메드리오라는 은장이 사건이 유명하다.
58년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그는 야고보를 만나 보았고, 이레 동안의 정결 기간이 거의 끝날 무렵에 그는 유대인들에게 곤욕을 치르다가 출동한 로마 군인들에게 체포되었다.
이때 그는 자기의 개종을 설명하고 이방인의 사도가 된 경위를 비롯하여 로마 시민권을 행사하기도 하였으나, 60-61년 사이에 몰타(Malta) 연안을 따라 로마(Roma)에 갇히게 되었다.
로마의 클레멘스(Clemens)에 따르면 그 후 그는 에페수스, 마케도니아, 그리스 등지를 재차 방문했고(63-67년), 트로아스에서 또다시 체포되어 로마로 끌려가서 사도 베드로와 같은 날에 처형되었다(에우세비우스의 견해). 테르툴리아노에 의하면 그는 네로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참수치명 하였다.
바오로는 역사상 가장 뛰어난 그리스도교 저술가로 꼽힌다. 로마서(코린토스에서 57-58년); 코린토 1서(에페수스에서 54년); 코린토 2서(필립비에서 57년); 갈라티아서(에페수스에서 54년);
콜로새서, 필리피서, 에페소서, 필레몬서(로마에서 61-63년); 테살로니카1, 2서(코린토스에서 51-52년) 및 사목서간인 티모테오서와 티토서를 보냈다. 히브리서는 아마도 다른 저자인 듯하다. 공식 축일은 6월 29일이고, 개종 축일은 1월 25일에 지낸다.
[참고] 바오로의 여성형이 "폴리나"입니다.
이 이름을 아주 오래전에는 "보리나"라고 하였습니다.
강론 : (마태 16,13-19)
<베드로, 바오로>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마태 16,17).”
이 말씀에서 ‘그것’이라는
말은,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 라는 계시 진리를 가리킵니다.
그것을 하느님께서 베드로 사도에게 알려 주셨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베드로 사도를 특별히 선택하셔서 뽑으셨음을 나타냅니다.
어부 시몬이 사도로 뽑히고, 베드로라는 이름을 얻고, 교회의
반석이 되고,
하늘나라의 열쇠를 받은 일은 모두 예수님께서 하신 일이지만,
그 일들은 사실은 아버지 하느님의 뜻에 의한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시몬’은 베드로 사도의
원래 이름입니다.
‘바르요나’는 ‘요나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베드로’는 ‘반석’이라는 뜻인데, 예수님께서 지어 주신
이름입니다.)
하느님께서 베드로 사도를
선택하시고 뽑으신 일에 대해서
“왜 베드로인가?” 라고 물을 수 있습니다.
정답은 “뽑힐만한 자격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입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더 뛰어났기 때문에 뽑혔다는 것입니다.
(또 그 자신이 많이 노력하기도
했고...)
사도들에 대해서 말할
때,
그들이 평범한 사람들이었고, 결점도 많았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만 말하고 그들의 장점과 위대한 점을 말하지
않는다면,
대단히 불공평한 일이고, 잘못된 일입니다.
특히 그들이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말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사도들을 깎아
내리기 위해서 하는 말이 될 뿐입니다.
물론 하느님은 평범한 사람도
위대하게 만드실 수 있는 분입니다.
그러나 인간 쪽에서 아무런 응답과 노력을 하지 않아도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도들은 태어날 때부터 위대한 인물이었던 사람들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었고,
결점도 많았고, 실수도 많이
했지만,
그런 약점들을 극복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응답하면서 노력했고,
그래서 예수님과 함께 열두 옥좌에 앉게 된 위대한
분들입니다(마태 19,28).
(우리는 그분들의 그런 노력을 본받아야 합니다.)
일부 종파에서는 베드로
사도의 몇 가지 실수 때문에
그가 사도로서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예수님께서는 그를 사도로 뽑으신 일과 반석으로 삼으신
일과
그에게 여러 가지 권한을 주신 일을 취소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뒤에
베드로 사도에게
“내 양들을 돌보아라.” 라고 세 번이나 말씀하신 일은(요한 21,15-17)
그에게 주신 지위와 권한과 사명을
재확인해 주신 일입니다.
(그 일은 베드로 사도에게 자격이 있음을 공식 선언하신 일과 같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니아스라는 제자에게 하신 말씀을 보면,
바오로 사도도 특별히 선택되고 뽑힌 제자입니다.
“그는
다른 민족들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내 이름을 알리도록
내가 선택한 그릇이다(사도 9,15).”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바오로
사도에게 직접 하시지 않고
다른 제자에게 하셨다는 것은 중요합니다.
아마도 분명히 하나니아스는 자기가 들은 예수님
말씀을
사도들과 교회 공동체 앞에서 증언했을 것입니다.
교회와 사도단이 바오로를 사도로 인정하고 받아들인 것은
하나니아스의
증언을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9장을 보면,
바르나바가 바오로 사도를 위해서 증언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하나니아스가
바르나바를 통해서 증언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어떻든 ‘사울’이라는
박해자가 ‘바오로 사도’로 변화된 일은
예수님께서 직접 하신 일인데,
그 일도 아버지 하느님의 뜻에 의한 일입니다(1코린
1,1).
바오로 사도가 뽑힌 일에 대해서도 “왜 바오로인가?” 라고 물을 수 있습니다.
대답은 역시 “자격을 갖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입니다.
“왜 하필이면 박해자였던 사람을 뽑으셨는가?
사도로 뽑으실 생각이었다면 교회를 박해하기 전에 막으셨어야 하지
않은가?”
라고 물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섭리나 계획을 잘 모릅니다.
그의 박해 때문에 교회가 많은 고통을
겪었지만,
사울 자신에게도 그 일은 하나의 시련이 되었을 것이라고 짐작합니다.
바오로 사도 자신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전에 그분을 모독하고 박해하고 학대하던 자였습니다.
그러나 내가 믿음이 없어서 모르고 한 일이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자비를 베푸셨습니다(1티모 1,13).”
“이 말은 확실하여 그대로 받아들일 가치가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나는 그 가운데에서 첫째가는 죄인입니다(1티모
1,15).”
(아마도 바오로 사도는 예수님을 만나기 전부터 구원을 갈망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도 교회를 박해한 것은, 아직
예수님을 모르는 상태에서
그것이 구원을 받는 방법이라고 잘못 생각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도들은 예수님에 대한
신앙, 사랑, 충성심 등에서,
그리고 교회에 대한 헌신, 희생, 봉사 등에서 우리의 모범이 되는 분들입니다.
특히 두드러진 것은 바로
‘뜨거움(열정)’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미 하느님께 올리는 포도주로 바쳐지고 있습니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날 때가 다가온 것입니다.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2티모 4,6-7).”
이 말은 신앙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다 태워서 바쳤음을 잘
나타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전구교구 신풍본당 주임)
'강 론 말 씀 '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가톨릭신문- [염철호 신부] 7월 3일 다해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 경축 이동(마태 10,17-22) (0) | 2016.06.30 |
|---|---|
| -평화신문- [주수욱 신부] 7월 3일 다해 연중 제14주일(루카 10,1-12. 17-20) (0) | 2016.06.30 |
| 2016년 6월 28일 다해 연중 제13주간 화요일(성 이레니오 순교자 기념일) (0) | 2016.06.28 |
| 2016년 6월 27일 다해 연중 제13주간 월요일(알렉산드리아의 성 치릴로 주교 학자) (0) | 2016.06.27 |
| 2016년 6월 26일 다해 연중 제13주일 (교황주일) (0) | 2016.06.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