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6년 7월 13일 다해 연중 제15주간 수요일 (성 헨리코) - 나는 아는 사람일까, 안다는 사람일까?

dariaofs 2016. 7. 13. 05:37





성 헨리쿠스(Henricus, 또는 헨리코)는 973년 5월 6일 바이에른(Bayern) 또는 힐데스하임(Hildesheim)에서 바이에른의 공작 하인리히 2세와 부르고뉴(Burgogne)의 왕인 콘라트(Conrad)의 딸 기셀라(Gisela) 사이에서 태어났다.

 

995년에 사망한 부친의 뒤를 이어 바이에른(Bayern)의 공작 하인리히 4세가 되었고, 998년에는 룩셈부르크의 여백작인 성녀 쿠네군다(Cunegundis, 3월 3일)와 결혼하였다.

 

그리고 1002년 오토 3세의 사망 후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독일 마인츠(Mainz)에서 왕으로 추대되었으며, 1014년에 신성 로마제국의 황제로 대관하였다. 그의 주요 관심사 중의 하나는 독일 성직계의 강화와 교회의 개혁과 쇄신이었다.

성 헨리쿠스는 성녀 쿠네군다와의 혼인 중에 동정을 지켜 자식을 얻지 못했다는 전설도 남아 있을 만큼 경건한 신앙생활을 하고자 했다.


그의 스승은 성 볼프강(Wolfgang, 10월 31일)이었고, 클뤼니(Cluny) 수도원의 기틀을 마련한 성 오딜로(Odilo, 1월 1일)와 리카르두스(Richardus, 6월 14일)는 그의 절친한 친구였다.

 

그는 수도자가 되려고 노력하였지만 직책상 뜻을 이룰 수가 없었으나 그의 신심은 수도자에 못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밤베르크(Bamberg) 교구를 설정하고, 그곳을 교육과 문화의 중심지로 만들었다.


그는 1024년 7월 13일 괴팅겐(Gottingen) 근처의 그로나(Grona)에서 세상을 떠나 밤베르크의 성당 묘지에 안장되었다.

 

성 헨리쿠스 2세는 1146년 교황 에우게니우스 3세(Eugenius III)에 의해 시성되어, 중세 독일의 왕들 중에서 가장 명예로운 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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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사실 아는 사람은 많지 않고 안다는 사람이 많습니다.

저도 그런 사람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많지 않고 지혜롭다는 사람이 많습니다.

제가 바로 그렇습니다.

   

실제로 많이 알면 좋고 모든 것을 알면 더 좋으련만

실제로는 쥐뿔도 모르고 정말 조금밖에 모릅니다.

그러면서도 자기는 안다고 생각을 합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모르면서도 안다는 것이 문제이고,

안다고 하면서도 모르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면 왜 우리는 안다면서 모릅니까?

왜 모르면서도 안다고 생각하고, 자처하는 것입니까?

   

우리는 왜 안다면서 모르느냐고 묻는데

사실은 안다고 하기에 모르는 것입니다.

   

모른다고 생각하면 배우려고 할 것이요,

모른다고 하면 가르쳐 줄 터인데

안다고 생각하기에 배우려들지도 않고,

안다고 하기에 가르쳐줄 수도 없습니다.

   

그러면 두 번째 질문, 왜 모르면서도 안다고 생각하거나 자처하는 겁니까?

이 역시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안다고 생각하지만 모르는 사람은 정말 자신이 안다고 생각하고,

안다고 생각하기에 모른다는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그는 그것을 정말로 모릅니다. 거짓말이 아닙니다.

   

사실 우리는 아는 것이 조금 있고,

다른 사람보다 아는 것이 조금 더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만일 어린아이처럼 아는 것이 없다면,

그리고 어린아이처럼 모르는 것이 부끄럽지도 않고,

자랑스럽지도 않다면 안다고 하지 않음은 물론 물을 터인데

우리는 조금 아는 것도 아는 것이라고 안다고 하고 알려들지도 않습니다.

   

남보다 조금 더 아는 경우에는

조금 더 아는 것 가지고 다 아는 것처럼 기고만장하기도 하고요.

   

남보다 조금 더 아는 것으로 자신에게 만족하고,

그것으로 행복하고자 하는 교만 때문입니다.

   

사실 교만 때문에 하느님처럼 알려고 했지만

하느님을 모르게 된 자의 무지와 불행입니다.

   

무엇이 행복입니까?

많이 아는 것입니까, 하느님을 아는 것입니까?

철학, 신학박사가 행복합니까,

하느님께서 당신을 계시하신 철부지 어린이가 행복합니까?

   

내가 행복합니까, 철부지 어린이가 더 행복합니까?

나는 아는 사람일까, 안다는 사람일까?

이런 자문을 하는 오늘입니다.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