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 11,1-13(16.7.24)
“저희에게 잘못한 모든 이를 저희도 용서하오니, 저희의 죄를 용서하소서.”(루카 11,4)

The Lord's Prayer
♣ 주님의 자비를 부르는 오늘의 의인 ♣
신앙인은 하느님께 속한 사람들이지만 아버지의 뜻을 이 땅에서 이루기 위해 사는 이들입니다. 따라서 결코 이 세상을 외면할 수 없고 무시해서도 안 됩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아브라함은 온갖 죄악으로 타락한 소돔을 멸망시키시려는 하느님의 분노를 막으려고 주님 앞에 나아가 그분의 용서를 청합니다(창세 18,22-32). 열 명의 의인만 있어도 주님의 용서를 받을 수 있었을텐데 의인이라고는 롯과 그의 가족뿐이었습니다. 그 결과 아브라함의 간절한 청에도 불구하고 소돔은 하늘에서 쏟아진 유황과 불로 멸망합니다(19,24). 그러나 소돔 사람들은 주님의 그토록 깊고 넓으며 끝이 없는 자비를 외면하고 타락과 부패 때문에 자멸하고 만 것입니다. 롯과 그의 가족의 의로움만으로는 그 타락한 도시는 정화될 수 없었고 창조의 새로움을 회복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내 힘과 돈으로 내가 원하는 대로 하고 누리며 사는 것은 얼마나 달콤하고 매력적입니까? 그러나 그런 것들은 영혼을 피폐하게 하는 우상일 뿐입니다. 권력형 부정부패, 사회 지도층의 타락, 경제 정의의 실종, 인권탄압, 빈부격차와 사회적 차별, 폭력, 인신 매매, 성범죄 등 우리 사회의 어두움은 우상에 사로잡힌 부패한 영혼의 쓰레기들입니다. 땅에 두 발을 딛고 살아가면서도 늘 하느님께 속해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의 자녀답게 조건없이 우리를 용서해주시는 그분의 자비 안에 머물러 서로 용서하며 살아야 합니다(루카 11,4). 주님의 영을 지님으로써 주님의 자비를 나누는 참으로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있고, 그 의로움이 세상의 어둠을 밝힐 것입니다. 소돔 성처럼 오늘 우리의 현실도 주님의 자비를 부를 열 사람의 의인을 그리워합니다. 이럴 때일수록 신앙이라는 이름의 울타리 속에 안주하면서 자신의 유익이나 안전만을 꾀하는 집단 이기주의자가 되어서는 안 되겠지요. 예수님처럼 자신을 희생제물로 내놓음으로써 하느님의 선 안에 머물 수 있도록 힘을 모았으면 합니다. 언제 어디서나 주님을 외면하지 않고, 다른 그 어떤 것보다도 중요하고 좋은 성령을 주시라고(11,13) 그분께 청하고, 찾고, 문을 두드리며(11,9) 다 함께 행복해지기 위한 순례를 시작할 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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