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례 상 식

[전례 속 성경 한 말씀] 7.강론: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이사 52,7)

dariaofs 2016. 11. 6. 06:00


시련은 곧 기회다라는 말이 있다. 힘겹고 막막한 시련의 시기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겨나가느냐?에 따라 그 시련이 자신의 인생에 좌절을 불러일으키는 걸림돌이 되느냐 아니면 인생의 전환점을 이루는 디딤돌이 되느냐가 달려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사제들에게 있어서 강론은 시련이면서 기회라고 할 수 있다. 매일 미사를 집전하면서 강론하기 위해서 준비하는 것은 사제들에게 참으로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요즈음처럼 신자들의 학력이 높아지고 여러 가지 신앙교육을 받으며 강론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진 상태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것이 교회의 존재이유인 선교사명을 전례 안에서 제대로 실현할 수 기회라고 생각하면 이 계속되는 어려운 시간은 당연히 사제들이 이겨나가야 하는 순간이며 더불어 사제로서의 정체성임을 느낄 수 있는 기쁨의 시간이 된다.



사제들 정체성을 느끼게 하는 복음 선포는 예수님께서 명령한 사도들의 사명에서 시작되었다.


바오로 사도는 복음을 거절하는 유다인들을 구약성경의 예언에 근거하여 비판하면서 유다인들이 어리석다고 생각하는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이 선포되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자기가 믿지 않는 분을 이렇게 받들어 부를 수 있겠습니까? 자기가 들은 적이 없는 분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선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로마 10,14)


그런데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너희는 온 세사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 16,15)라는 사명을 부여받음으로써 제자들은 파견된 자 곧 사도(Apostolus)로 거듭 태어난다.


바오로 사도는 이사야 예언서(52,7)를 인용하면서 복음을 전하는 사도들의 사명이 얼마나 즐겁고 행복한 일인지를 말해준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로마 10,15).


여기서 용어에 대한 구분을 이야기해야겠다. 개신교에서는 목사님은 ‘설교’를 한다고 하고 천주교에서는 신부님은 ‘강론’을 한다고 하는 데 무엇이 다른 것인가?


똑같이 복음을 주제로 설명하고 신자들이 어떻게 주님을 따를 것인가를 강조하고 있는 데 어떤 차이가 있을까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이는 전례 거행과 주제의 범위라는 기준에서 차이가 있다.


“강론”은 Homilia라는 그리스어를 번역한 것으로 아버지가 자녀에게, 스승이 제자에게, 또는 서로 가까운 동료 사이에 대화형식으로 하는 이야기를 뜻한다.


현재는 “강론”이라고 할 때 전례거행에서 전례력의 흐름에 맞추어 신앙의 신비와 그리스도인의 생활규범을 성경을 바탕으로 설명하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에 “설교”(Praedicatio)는 전례와 상관없이 회중 앞에서 교리나 신앙과 관련된 주제를 가지고 말하는 강연이나 연설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리스도교의 강론은 그 위치나 내용 등에 있어 유대교의 회당예식의 영향을 받았다. 예수시대에는 회당예배 중에 율법서와 예언서를 봉독한 다음에 회당장이 미리 지정한 성인 남자가 그에 대한 설명을 했다.


신약성경은 예수님과 바오로 사도의 회당 강론을 증언하고 있다(루카 4,16-21; 사도 13,15-41). 사도들이나 그 제자들의 활동 가운데 강론이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였고 사도시대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유스티노의 『호교론』제1권 67장에서 “독서자가 독서를 마친 다음, 주례는 기도를 올리도록 권하고 이 훌륭한 말씀을 본받도록 촉구한다.”라고 전해준다.


그런데 세기를 거치면서 미사 강론은 차츰 그 비중이 약해졌을 뿐 아니라 다른 부수적인 요소로 그 특성이 매우 흐려졌다. 미사에서 강론을 하는 위치가 대체로 복음 봉독 다음이었으나 미사 시작이나 신앙고백 후에 하는 경우도 생겼다.


강론자는 복음 봉독이 끝나면 제의를 벗고 강론대에 올라가 강론을 하면서 미사와 분리된 독자적인 예식처럼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강론 내용도 전례나 성경과 관련 없는 교리 해설이나 윤리 훈화가 많아졌다.


한동안 지나치게 성찬전례에 집중되어 말씀전례의 중요성을 간과하던 천주교 전례에 말씀의 중요성을 재발견하여 강론을 본래 위치로 돌려놓는 전환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전례헌장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전례 주년의 흐름을 통하여 거룩한 기록에 따라 신앙의 신비들과 그리스도인 생활의 규범들을 해설하는 강론은 전례 자체의 한 부분으로서 크게 권장된다.


 더더군다나 주일과 의무 축일에 백성과 함께 거행하는 미사에서는 중대한 이유 없이 강론이 생략되어서는 안 된다.”(52항).


더하여 프란치스코 교황현대 세계의 복음 선포에 관한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135항에서 전례 안에서 이루어지는 선포인 강론을 “사목자가 자신의 백성에게 다가가고 대화하는 능력을 가늠하는 시금석”이라고 하며 성령을 강렬하고 기쁘게 체험하는 일이 될 수 있는 기회라고 하였다.


이 권고에서 교황님은 강론 준비하는 데 중요한 기준들 제시하고 있다. 성경 구절의 메시지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시간을 할애하는 “진리의 존중”이 필요하며,


 “강론을 하고자 하는 이는 누구나 먼저 하느님 말씀으로 깊이 감화되어 그 말씀을 일상생활에서 실천해야 한다.”(150항)고 강조하며 말씀을 자기 것으로 삼기를 권고한다.


마지막으로 강론자는 말씀의 관상자이면서 또한 그의 백성의 관상자이기에 “복음 선포의 실질적 대상자들”에게 주의하여 그들의 삶의 터전을 이해하고 “그들의 언어, 그들의 표징과 상징들을 고려하고 그들의 질문에 대답하는 것”(154항)


양의 냄새가 나는 강론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강론 방법에 대해서는 간결함과 명료함, 그리고 정적인 언어 사용이라는 특징으로 정의하였다.


전례적인 설교인 강론은 세 가지 주요 요소인 강론자, 성경 그리고 전례에 참여한 회중의 대화 성령을 체험하게 하는 길이라 하겠다.


강론자만이 강론을 준비하는 데 열의를 다하는 것이 아니라 전례에 참여한 회중은 독서들의 내용을 미리 읽고 묵상하며, 강론을 경청할 때 판단보다는 강론자가 전하려는 성경의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알아들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럴 때 한 여름에 더위를 날리는 팥빙수처럼 삶의 현장에서 어렵고 답답했던 마음이 뻥 뚫리는 시원한 성령의 바람을 느끼는 체험을 하게 될 것이다.


윤종식 신부 작성
1995년 서품, 1995년-1997년 불광동본당 보좌, 1998년1월-2008년 6월 성 안셀모 대학에서 전례학 전공, 2008년 9월-2010년 8월 화정동본당 공동사목 및 대표주임, 2010년9월-2012년 2월 정발산본당 주임. 2012년 3월-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현, 주교회의 전례위원회 위원, 의정부교구 전례위원회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