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례 상 식

[전례 속 성경 한 말씀] 9.예물봉헌: 우린 과연 모든 것을 주신 하느님께 무엇을 드릴 수 있을까?

dariaofs 2016. 11. 9. 00:30




‘봉헌’이라는 주제를 묵상하다가 예전에 동기신부가 안식년 동안 예루살렘에서 짧은 성서고고학 과정인 ‘Ecce Homo’를 하면서 베들레헴의 ‘목자들의 들판’(Shepherds’Fields)의 그리스 정교회성당에서 같은 코스 동료들과 함께 미사를 드렸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곳에서 동기신부가 영어로 미사를 주례하게 되었는데, 그때 “우리는 예수님께 무슨 선물을 가져왔습니까?


하느님께 받은 것이 많은 우리가 드릴 수 있는 것은 부족한 우리 자신밖에 없습니다.”라는 강론을 하면서 본인뿐만 아니라 참석자들 모두 공감을 하며 한마음이 되었다고 한다.


이 마음은 바오로 사도가 로마인들에게 행한 “여러분의 몸을 하느님 마음에 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십시오. 이것이 바로 여러분이 드려야 하는 합당한 예배입니다.”(로마 12,1)라는 권고를 떠올리게 한다.


미사에서 보편지향기도로 말씀 전례가 끝나고 예물 봉헌으로 성찬 전례가 시작된다. 초세기에는 미사 전에 교우들이 가져온 예물을 제대에 미리 놓아두었다가 말씀 전례가 끝나면 사제가 미리 준비된 예물을 들고서 성찬 기도를 바쳤다.


시간이 지나면서 신자수가 늘어나고 예물 운반행렬이 길어짐에 따라 그에 맞갖은 예식이 하나둘 늘어났다. 4세기 말경부터 행렬을 돕는 성가가 북아프리카에서 등장했으며 서서히 다른 지역에도 퍼져나갔다.


성가 내용은 예물 운반과 별 상관이 없는 시편이 주종을 이루었으며 비슷한 시기에 입당성가영성체 성가도 행렬 동반 노래로 생겨났다.


11세기경부터는 화폐제도의 발달로 교우들의 예물은 금전으로 바뀌었으며 그 영향으로 예물이 줄어들자, 중세 후기에는 4대 축일에만 교우들의 예물 행렬이 있었다. 그나마도 트리엔트 공의회 이후에는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행렬 동반 성가는 시편 없는 대송인 “봉헌송”(offertorium) 또는 “봉헌대송”(antiphona ad offertorium)만 존속하였다. 교우들이 예물을 제대로 가져오는 예식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교황 바오로 6세의 적극적인 노력에 의해서 완전히 복구되었다.


교우들은 예물 봉헌을 통하여 직접 공동사제직을 수행하고 참 사제이며 제물이신 그리스도와 함께 자신들도 봉헌한다는 뜻을 표현한다.


예물 봉헌에는 성찬 전례에 사용할 빵과 포도주의 운반과 가난한 이들과 교회운영을 위한 헌금이 있다. 봉헌과 연관하여 순교자 성 유스티노는 152년에 저술한 「제1호교론」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부자들과 그 외의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원하는 만큼 봉헌합니다. 이 봉헌물은 모아서 주례자에게 맡깁니다. 그는 이것으로 고아와 과부, 질병과 어떤 이유로 궁핍한 이들, 또한 갇힌 이들과 여행하는 이들을 도와줍니다.


한마디로 주례자는 어려운 모든 이들을 돌보아 줍니다.” 봉헌은 자신의 복을 더 많이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명하신 사랑의 계명을 이행하기 위한 것임을 성인이 잘 알려주고 있다.


이러한 예물 봉헌은 기도를 동반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 실행된 전례개혁으로 유대인들의 음식 축복기도에 성찬의 의미를 가미시켜 만든 빵과 포도주의 축복 기도인 ‘예물 준비기도’의 내용은 이러하다.


 “온 누리의 주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주님의 너그러우신 은혜로 저희가 땅을 일구어 얻은 이 빵을 주님께 바치오니 생명의 양식이 되게 하소서.”


기도 이 하느님의 선물이고 땅의 열매이며 인간 노동의 결실임을 표시하고, 이러한 빵을 주님께 되돌려드리면서 생명의 빵인 주님의 몸이 되게 해주시기를 비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사제가 아버지 하느님을 향해 빵을 들어올리며 이 기도를 바칠 때 십자가상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놓으신 ‘하느님의 어린양’이신 예수님을 떠올리게 된다.


온 세상에 구원을 주시러 오신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했다. 그리고 그 봉헌을 당신을 믿고 따르는 교회를 통해서 오늘도 계속하고 계시다.


이천년전의 예수님의 봉헌의 구원적 효과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은총 이외에는 모든 것이 “쓰레기”(필리 3,8)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리스도만이 모든 것”(콜로 3,11) 라고 고백하는 신앙적 태도가 필요하다.


곧 이러한 고백은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선물이라는 믿음의 또 다른 표현이라 하겠다.


우리 자신과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하느님께 속해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또한 우리가 하느님 창조물의 청지기로서 살아가도록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을 믿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이다.


청지기의 역할은 그리스도인이 하느님의 선물들을 책임 있게 돌보고, 각자의 시간과 재능, 그리고 재물을 자애롭게 나누도록 도와주는 것을 의미한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복음의 기쁨」78항에서 새복음화에 있어서 걸림돌이 되는 봉헌 생활자들과 사목 일꾼들의 태도들 중에 하나로 “개인의 자유와 휴식에 지나친 관심을” 두는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래서 사목활동이나 복음화노력을 단순히 자신의 삶의 부속물로 간주하며 자신의 정체성,


곧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는 사도로서의 자신과 그냥 한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구분하면서 투신과 열정을 제대로 하지 못하며 주저하는 삶의 태도에 경종을 울린다.


온전히 그리스도적 삶에 투신하지 못하는 나에게 예수님은 “너도 나를 본받아 자신을 바치고, 가진 바를 나누어라. 비록 작은 것이라도 가난하고 힘든 이들에게는 큰 힘이 될 수 있다.


한 아이가 내놓은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오천 명이 배불리 먹는 기적의 실마리가 되었다(요한 6,9-13)는 것을 기억하여라”라고 말씀하시는 듯하다.



윤종식 신부 작성
1995년 서품, 1995년-1997년 불광동본당 보좌, 1998년1월-2008년 6월 성 안셀모 대학에서 전례학 전공, 2008년 9월-2010년 8월 화정동본당 공동사목 및 대표주임, 2010년9월-2012년 2월 정발산본당 주임. 2012년 3월-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현, 주교회의 전례위원회 위원, 의정부교구 전례위원회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