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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리더를 만나다](2) 김전 (요한 사도) 라파엘 인터내셔널 이사장

dariaofs 2016. 12. 19. 05:30


우리 사회 빈자리 채워주는, 사랑으로 꽉찬 사람



▲ 김전(오른쪽) 이사장이 서종빈 보도총국장에게 김수환 추기경이 남긴 통장 사본의 잔액을 가리키고 있다. 이힘 기자 lensman@cpbc.co.kr


▲ 1997년 12월 김수환 추기경(오른쪽에서 다섯 번째)이 라파엘 클리닉을 방문했을 때. 맨 오른쪽이 김전 이사장. 김전 이사장 제공


▲ 2003년 12월께 김전 이사장(오른쪽)이 라파엘 클리닉 봉사자(가운데), 이주노동자와 함께 환하게 웃고 있다. 김전 이사장 제공


삶에는 많은 부침과 변곡점이 있다. 그래서 초심(첫 마음)을 유지할 수 없고 고집스러운 ‘외길 인생’이 어렵다. 특히 본업 이외에 봉사라는 이름으로 사랑과 나눔을 실천할 때는 더욱더 그렇다.


43년 동안 의사생활을 하면서 20년의 ‘긴 호흡’을 의료봉사라는 ‘한 호흡’으로 매진했다. 라파엘 인터내셔널 김전(요한 사도) 이사장이다.

김수환 추기경이 씨앗을 뿌린 이주노동자 무료 진료소 라파엘 클리닉에서 해외 의료봉사 단체인 라파엘 인터내셔널, 여기에 라파엘 나눔까지… 한 호흡, 한 호흡이 멈춤 없이 이어지고 있다.


궤짝 2개로 출발한 무료 진료소가 지금은 연간 1만 6000여 명을 진료하는 종합병원 수준이 됐다. 연평균 400여 명의 의료진과 1500여 명의 봉사자가 참여한다.

‘서로 다른 각자의 좋은 점이 모두 모이면 이게 바로 하느님의 모상’이라며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일은 목표치가 없다’고 했다.


치유의 대천사 라파엘처럼 의료 소외 계층을 향한 그의 기도는 끝이 없다. 가톨릭 리더로 인터뷰를 섭외했지만, 그는 ‘리더’임을 거부한다. 사랑과 나눔은 함께하는 것이라고….

서종빈 기자

▶ 라파엘 인터내셔널은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요.

10년 동안 라파엘 클리닉을 하다 보니까 외국인 노동자들이 점점 더 늘어났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에는 한 30만 명 정도 됐는데 지금은 130만 정도가 됐습니다.


그래서 저희도 좀 더 시야를 넓혀서 의료 환경이 열악한 개발도상국에 저희가 가지고 있는 재능과 정보 등을 공유하면 어떨까, 그분들이 좀더 나은 의료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같이 협력하면 어떨까 해서 라파엘 인터내셔널을 만들었습니다.


이제 10년이 됐는데요. 현재는 미얀마, 몽골, 네팔, 필리핀에서 주로 나눔 활동을 하고 있고요. 처음 시작은 몽골이었습니다.


단순한 의료 캠프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그 나라의 의료 환경 개선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의논하면서 그분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 의료환경 개선 사업에 주거환경 개선도 들어갑니까.

네, 들어갑니다. 예를 들면 부뚜막 사업인데요. 사실 많은 나라가 주거 공간과 난방 시스템, 취사 시스템이 독립되어 있지 않고 한 군데에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공기도 나쁘고 일산화탄소 같은 것도 많이 나오고, 호흡기 질환이 대단히 많죠. 네팔 같은 경우는 보통 13% 정도가 만성 호흡기 질환 환자들인데 부뚜막을 만들고 굴뚝을 만들어 주면 일산화탄소 등 나쁜 공기들이 빠지면서 호흡 환경을 개선할 수 있습니다.


해 보니까 돈도 그렇게 많이 안 들어요. 그곳에 있는 흙으로 부뚜막과 굴뚝을 만드는 기술을 전수해 주고 현지 인력을 동원하면 10만 원이면 하나를 만들 수 있습니다.

▶ 라파엘 인터내셔널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요.

정기적으로 후원하시는 개인 후원자분들도 있고요. 기업에서 후원해 주기도 합니다.


또 코이카나 국제보건의료재단 등 준 정부 조직에서 하는 해외 사업에 저희가 제안을 해서 협력 사업으로 하고 있고요. 기업들도 해외에 진출하면서 그 지역에 어떤 사회 공헌을 하고자 할 때 우리가 제안해서 공동 협력 사업으로 하기도 합니다.

▶ 의료진 등 봉사하시는 분들은 어느 정도인가요.

매 주일 나오는 의사 선생님이 한 30명 정도 되고요. 300명 정도의 의사 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분들이 돌아가면서 1년에 한 3~4번 정도 나올 수 있는 네트워크로 운영하고 있고요. 의과대학이나 약학대학 동아리를 중심으로 많은 봉사자가 참여하고 있습니다.


사실 봉사라는 것은 학습이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학습하고 나면 하고 싶어지고 중독도 되고요. 의사분들의 경우 일주일 내내 환자에 시달리다가 주말만 되면 골프도 치고 싶고 쉬려고 하는데 학생 때 봉사를 했던 사람은 골프 약속이 있어도 오늘 선생님이 부족하다고 하면 취소하고 진료하러 오십니다.


어떻게 보면 학생들의 일종의 학습 차원에서도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라파엘 인터내셔널 10년, 어떤 감회가 드십니까.

나누자는 것입니다. 저희가 가지고 있는 재능이나 정보, 재화 등을 나누는데 즐거운 마음으로 나누고 우리 사회의 빈자리를 채우자는 것입니다.


저희가 처음 몽골에서 지역 의료 환경 개선 사업을 하고 그분들을 초청해 연수를 시키고 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저희의 나눔 정신을 자기들끼리 실천하더라고요. 몽골의 경우 자기들끼리 무의촌에 가서 정기적으로 봉사도 하고요. 나눔 문화가 확산될 수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 라파엘 클리닉을 처음 시작할 때 궤짝 두 개, 의자 몇 개를 놓고 시작하셨죠?

제가 서울대 의대 가톨릭 학생 모임인 카사를 맡았던 1988년부터 국민건강보험이 시작돼 공식적으로는 무의촌이 없어져서 의치학과 학생들의 진료 봉사가 상당히 침체해 있었습니다.


그래서 92년쯤에는 성가정입양원에 가서 아기 보는 일도 했는데 그 일은 저희보다 더 잘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파키스탄 노동자 구명 운동을 계기로 김수환 추기경님께서 불법 체류 외국인 노동자들의 열악한 의료 환경을 개선하는 데 의사들이 좀 힘써야 하지 않겠느냐 하는 이야기를 하셨다고 합니다.

▶ 당시만 해도 무모한 용기가 아니었나, 이런 생각이 좀 드는데요.

저희는 학생들의 봉사 진료 때보다 조금 더 크면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그냥 진료를 시작했는데 안규리 선생은 그것을 운영하려면 돈이 필요하다고 해서 고민을 많이 하셨습니다. 처음에는 안 선생이 한 50만 원쯤, 개인 돈을 어디서 얻어 가지고 와서 시작했습니다.


한 30명쯤 진료를 했는데 그 궤짝 두 개라는 것이 학생 진료 때 가지고 다니던 궤짝이거든요. 당시 외국인 노동자들의 3분의 2가 불법 체류 상황이라 서울 시내 사대문 안에 들어오는 것을 굉장히 두려워했거든요.

▶ 이후 이주노동자뿐만 아니라 새터민이나 다문화 가족들도 라파엘 클리닉을 찾고 있는데요. 이렇게 ‘나눔’이 쭉 이어져 온 배경에는 어떤 힘이 있다고 보시나요.

네, 진료 과목만 해도 17개가 됐고 연간 환자 수만 해도 1만 6000여 명인데요. 라파엘 클리닉 10주년 미사 때 김수환 추기경님께서 ‘라파엘의 10년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여 주는 10년이었다’라고 하셨는데, 저희가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습니다.


그냥 닥치는 대로 하루하루 하다 보니까, 이렇게 됐는데요. 이것은 저희 힘이 아니죠. 누가 봐 주셔야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43년간 의사 생활을 하시면서 20년 동안 의료 봉사와 나눔을 실천하고 계시는데요. 신앙생활이 궁금합니다.

제가 사실 이래서 인터뷰를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요. 저는 워낙 날라리 신자라서 성당도 간신히 다니고 있습니다. 사실 지금 생각해 보면 상당히 어렵거나 위험했던 상황이 많이 있었어요. 예를 들면 어릴 때 전쟁고아가 될 뻔했습니다.


어머니와 피난을 가다가 어머니를 잃어버린 거죠. 3살 때였는데요, 혼자서 노래 부르면서 걸어가고 있었대요. 또 초등학교 2, 3학년 때에는 동네 연못 위에서 팽이치고 놀다가 얼음이 깨지면서 그 밑으로 들어간 적도 있고요.


야외 풀장에서 수영하다가 꼬르륵 물속으로 들어갔던 적도 있고요, 미국에 있을 때 운전하면서 졸다가 트레일러 밑으로 들어갈 뻔 한 일도 있었고요. 그런데 사실 저는 아침 기도는 안 하는데 밤에 잘 때 묵주기도는 꼭 해요.


왜냐하면, 그게 자장가처럼 들려서. 묵주기도를 마친 적은 없고요. 그냥 못한 것은 수호천사가 해 주신다니까 하고 철석같이 믿고 있습니다.


정상적인 신앙생활은 안 하지만 제 전공과목이 생리학이니까 신앙이 생명의 이치, 나아가 삶의 이치와 다 통하는 것 같습니다.

▶ 요즘은 어떤 기도를 바치시나요.

요즘 종교와 과학 사이의 어떤 관계를 공부하고 있는데 그게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종교와 과학이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종교는 우리가 왜 살아야 하느냐를 가르쳐 주는 것이고, 과학은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 어떻게 해서 병이 걸리고 어떻게 하면 그 병을 고칠 수 있는지 하는 거거든요. 왜 살아야 하느냐 하는 삶의 의미를 찾게 하신 그 자체가 하느님의 뜻이라고 생각하고 하느님의 모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동물들이 삶의 의미를 찾지는 않잖아요. 삶의 의미를 찾고 그 의미에 좀 더 충실한 것, 그 자체가 기도가 아닐까 합니다. 기도라는 것이 기복적인 것 같고, 말로만 감사하는 것 같고 해서 선뜻 몸에 잘 배어들지 않거든요. 어떤 의미를 생각하고 그것을 추구하는 것이 아마 기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 지금까지 하느님과 하신 약속은 다 이루셨나요.

약속이라기보다는 그냥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일을 하자. 그것은 어떤 목표치가 있는 것이 아니잖아요. 항상 노력하고 노력하는 정도가 크면 클수록 그만큼 더 하느님께 다가가는 것이니까요.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일을 정말 내가 하고 있나, 매일 매일 뒤돌아보고 있습니다.


지금 제 나이에 무엇을 하겠다는 것보다 어쨌든 더불어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데 제가 기여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게 저의 조그만 소망입니다.

▶ 젊은이들과 생활을 많이 하셨는데요. 요즘 힘들어하는 젊은이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좀 주시죠.

더불어 살면 마음의 안정, 평화를 얻을 수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사람을 하느님의 모상으로 만들었다고 하는데 사람은 누구나 좋은 점이 있고, 나쁜 점이 있잖아요. 각자의 좋은 점이 다 모이면 그것이 하느님의 모상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과 나누고 좋은 점은 따르고 하면 결국 그것이 하느님에게 가까이 가는 길인 것 같고요. 그런 노력을 많이 하는 사람이 바로 리더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리더라는 것이 어떤 목표치를 정해 놓고 이것을 넘으면 리더라는 것이 아니고요. 그냥 얼마만큼 그런 노력을 하고 있느냐, 과정 중에 보여 주는 것이 바로 리더라고 생각합니다.

▶ 라파엘은 병원이고 진료소이지만 소통하는 따뜻한 공동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저는 그런 공동체가 되기를 참으로 바라고 있고요. 단순한 진료보다는 ‘아, 한국에도 같이 더불어 살만한 사람들이 많구나’ 하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고요.


필리핀 사람 같은 경우에는 80~90%가 대학 나온 사람들이거든요. 그들이 귀국하면 그 나라의 여론을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인데 우리나라에 대해 좋게 말할 수 있는 그런 계기를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세상이라는 게 결국 하느님이 마련해 주신 공동의 집이고 세상 사람들이 가족인데 같이 더불어 잘 살자고 하는 것이 기본적인 생각이죠.

▶ 열악한 북한의 의료 현실에 관해 관심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저희가 처음에 해외 진료를 시작할 때 북한 진료를 하고 싶었는데요. 당장 들어갈 수가 없으니까, 당시 주한 교황대사이신 체릭 대주교님께서 몽골도 맡고 계셔서 몽골로 가게 됐거든요. 몽골에 북한 사람들이 많이 와 있고 북한 의사들도 왔다 갔다 한다고 그러고요.


우리가 몽골 의사들을 잘 교육하면 그 정보가 북한 의사들에게도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징검다리 같은 생각을 했죠. 남북 관계가 풀리고 하면 북한에 가보고 싶습니다.

방송 시각

TV : 20일 오후 7시, 21일 오후 11시, 22일 오전 8시
라디오 : 17일 오전 7시

김전 이사장 약력
1973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2014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2014~현재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명예교수
1997~2012년 라파엘 클리닉 진료소장
2007~2015년 라파엘 인터내셔널 상임이사
2016~현재 라파엘 인터내셔널 이사장

수상 이력
2001년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회사목부 감사패
2002년 국제로터리 3650지구 특별공로패
2006년 2006 세상을 밝게 만든 100인 선정(환경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