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 1,39-56
"마리아는 길을 떠나, 서둘러 유다 산악 지방에 있는 한 고을로 갔다."(루카 1,39)
♣ 사랑을 나누기 위해 찾아나서는 발걸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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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는 천사 가브리엘로부터 구세주를 잉태하리라는 예고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십니다. 며칠 뒤, 그녀는 ‘서둘러’(1,39) 산악 지방에 있는 한 고을에 사는 엘리사벳을 찾아갑니다.
마리아는 ‘말씀의 경청과 되새김’, 그리고 자발적이고 조건 없는 “예!”로 하느님의 사랑을 품게 되었습니다.
이제 사랑을 품은 마리아의 발걸음은 하느님과 함께 하는 하느님의 발걸음이 됩니다. 그녀의 움직이 안에 하느님의 생명과 사랑이 숨 쉬게 된 것이지요.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성적으로 밝히기 위해서나 불만을 쏟아놓기 위해서도 사촌을 찾아간 것도 아니었음이 분명합니다.
그녀는 성령의 은총을 받고 머뭇거리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참 사랑은 나누지 않고는 배기지 못합니다.
자기 것으로 소유하려는 태도는 참 사랑이 아니지요. 그래서 참 사랑은 늘 사회적 차원을 띨 수밖에 없습니다.
그녀는 그 씨앗을 뿌리기 위해 하느님의 도구가 되어, 나자렛에서 예루살렘으로 예루살렘에서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여행을 하게 됩니다.
그 여행은 사랑이 되어 사랑을 찾아 끊임없이 떠나 다가가는 사랑의 순례요, 평화의 순례였습니다.
마리아의 발길은 하느님의 축복을 나누고, 구원의 기쁨을 발생시킵니다. 엘리사벳은 목소리를 들었고, 요한은 무엇보다 먼저 은총을 깨달았습니다.
그녀는 구원을 기다리는 모든 가난한 사람들 안에서, 하느님의 위대하심을 알아보고 기뻐합니다(1,46).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천대받는 가난한 백성을 해방시키러 오시기 때문입니다(1,48).
마리아의 노래는 자신을 찾아오신 하느님의 자비와 생명이, 모든 사람 안에서 드러나기를 간절히 바라는 거룩한 사랑의 노래, 연대의 나침반인 셈입니다.
예수님을 품고 가난과 소외와 차별, 정의와 공평을 거스르는 구조악과 반생명적인 움직임에 맞서야겠습니다.
우리의 일상이 마리아처럼 말씀을 품고 생명과 사랑의 씨앗을 뿌리고, 공동선을 이루기 위해 가난한 마음으로 서로를 찾아가는 발걸음이 되었으면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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