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7년 6월 5일 가해 연중 제9주간 월요일(성 보니파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dariaofs 2017. 6. 5. 19:08

 

 

성 보니파티우스(Bonifatius, 또는 보니파시오)는 675년경 영국 웨식스(Wessex)의 크레디톤의 귀족가문에서 태어나 주로 수도원에서 교육받았다. 그는 불과 7세 때에 엑서터(Exeter)의 베네딕토 수도원 학교에 들어갔고, 14세 되던 해에는 너슬링(Nursling)의 베네딕토 수도원에서 윈버트(Winbert)의 지도하에 공부하였다.

 

그는 너슬링 베네딕토회에 입회하여 30세에 사제로 서품되었고, 수도원 학교의 교장이 되어 교수생활과 설교자로서의 생활이 성공하자 프리슬란트(Friesland)의 선교사가 되기로 결심하였다. 그러나 716년의 첫 번째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이렇게 되자 그는 718년에 교황 그레고리우스 2세(Gregorius II)가 계시는 로마(Roma)로 갔으며, 여기서 교황으로부터 라인 강 동쪽에 사는 이교도들을 개종시키라는 명을 받고 길을 떠났다.

 

이때부터 그는 보니파티우스로 개명하고 3년 동안 성 빌리브로르두스(Willibrordus, 11월 7일)를 도와 프리슬란트에서 선교사로 활약하였다.

 

그가 722년 가장 이교도적인 헤센(Hessen)으로 가서 아뫼네부르크에 베네딕토회 최초의 수도원을 설립하고 많은 사람에게 세례를 주는 등 선교활동의 대성공을 거두게 되자, 교황은 보니파티우스를 로마로 불러들여 주교로 서품하고 교회 법령집과 독일의 모든 수도자들과 관리들에게 보내는 추천서를 써주었다.

 

이 서한은 그의 독일 선교 활동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특히 프랑크 왕국의 재상인 카를마르텔(Karl Martell)의 보호를 받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보니파티우스는 카를마르텔의 보호를 받으며 723년부터 725년까지 제2차 헤센 선교에 나섰는데, 이때 그는 가이스마르(Geismar)에서 이교도들이 신성시하는 떡갈나무를 베어 경당을 짓는 데 사용하였다.

 

그런데 이 사건을 계기로 개종자들이 확산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 후 그는 튀링겐(Thuringen)에 가서 오르트루프(Ohrdruf)에 수도원을 세웠고, 영국의 수도자들을 독일의 선교사로 파견하는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였다. 또한 그는 여러 곳에 수도원을 세웠다.

 

744년에 그와 성 스투르미우스(Sturmius, 12월 17일)는 풀다(Fulda)에 수도원을 세웠는데, 이 수도원은 몇 년 지나지 않아서 북유럽에서 가장 큰 중심 수도원으로 발전하였다. 또한 그는 독일과 프랑크의 교황대사로 임명되었고, 피핀을 프랑크의 유일한 통치자로 세우는 대관식을 거행하였다.

성 보니파티우스는 754년에 마인츠(Mainz)의 대주교직을 사임하고 성 빌리브로르두스의 사후 이방 관습에 다시 떨어진 프리슬란트를 재건하는데 여생을 바쳤다.

 

그가 프리슬란트의 도쿰(Dokkum) 근처 보르네 강변에서 개종자들에게 견진성사를 주려고 준비하던 중에 이교도들의 급습을 받아 살해되었다.

 

 '게르만족의 사도' 또는 '독일의 사도'로 불리는 그의 축일은 교황 비오 9세(Pius IX)에 의해 1874년부터 전 교회에서 기념하고 있다.

 

 

(마르코 12.1-12)

 

 

“그는 소작인들에게 종 하나를 보내어

포도밭 소출의 얼마를 받아오라고 하였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포도밭이란 하느님의 기업이고,

여기서 각자는 소작료를 내야 할 소작인이 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만 소작인이고 우리는 아닙니까?

우리는 아니라고 하는 사람은 신앙인이 아니니

신앙인이라고 하는 우리는 모두 하느님 포도밭의 소작인들이지요.

 
그렇다면 우리가 내야 하는 소작료는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구약에서 얘기하고 개신교 신자들이 충실히 내는 십일조입니까?

또 우리가 주일마다 내는 헌금이나 미사봉헌입니까?

 
이런 것들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우리는 이것들로 충분하다고 하거나

이것 외에는 필요 없다고 해서도 안 될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주일미사 참례가 제일 중요하고

그래서 주일미사 참례한 것으로 신자로서의 도리 다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실상 주일미사 참례자가 20%대라고 하니

주일미사만 빠지지 않아도 충실한 신자이고

거기다 교무금과 헌금까지 잘 내면 훌륭한 신자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이에 대해 냉철하게 성찰하고 비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더 원하시는 것은 성당에 돈을 갖다 바치는 것이 아니라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며 그러므로 교무금이나 헌금을 내지 말고

그 돈으로 직접 이웃사랑을 실천하거나 자선단체에 헌금하라고 말입니다.

 
저도 그렇고 이 글을 읽는 여러분 대다수도 그럴 거라고 생각하는데

물론 이것도 또 다른 극단이기에 잘못이라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긴 하지만 분명 이런 주장은 지금 우리 교회생활의 잘못을

지적하고 있다는 차원에서 곱씹어 볼 필요는 있을 겁니다.

저는 여기서 신앙생활이라고 하지 않고 교회생활이라고 얘기했습니다.

 
교회생활이 신앙생활의 전부는 아니라는 뜻입니다.

교회생활 열심히 한다고 신앙생활 다하거나 잘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고

교회를 통해서나 또는 직접 이웃사랑을 실천해야 신앙생활 잘하는 것이고

하느님께서 요구하시는 소작료를 잘 바치는 것입니다.

 
이참에 저는 저의 수도생활과 저의 수도원의 삶도 성찰합니다.

 
사도께서 말씀하시길 일하지 않으면 먹지 말라고 하셨고,

성 프란치스코도 몸소 일하여 먹고 살되

일의 대가로 먹을 것을 주지 않을 경우 애긍을 하라고 하셨지요.

 
그러나 그렇다고 수도자나 수도회가 돈벌이를 하면 안 되겠지요.

그러므로 수도자는 돈벌이가 아니라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일,

신자들을 대신해서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일을 열심히 해야 하고

이웃사랑을 실천하지 않으면 성금도 후원도 받지 말아야 합니다.

 
기도생활 열심히 하는 수도자와 신자의 모습, 아름답습니다.

교무금과 헌금을 정성껏 바치는 모습, 이것도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이웃사랑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아름다움이 줄어들고

어떤 때는 자기구원만을 위하는 이기적인 모습 같아 안타깝습니다.

 
이런 눈으로 오늘 독서의 토빗을 보고

이번 한 주간 토빗기를 읽으면 좋겠습니다.

“나 토빗은 평생 진리와 선행의 길을 걸었다.”

 
이렇게 토빗은 감히 그리고 당당히 말하잖아요?

우리도 죽을 때 자만해서가 아니라 이렇게 말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