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7년 6월 6일 가해 연중 제9주간 화요일(성 노르베트토 주교)

dariaofs 2017. 6. 6. 01:00

 

 

독일 산튼(Xanten)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성 노르베르투스(Norbertus, 또는 노르베르토)는 하인리히 5세 황제의 궁전에서 하사품을 관리하는 차부제로 지내며 물려받은 많은 재산을 가지고 방탕한 생활을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예식에 참석하고자 말을 타고 가다가 번개를 맞아 땅에 떨어졌다.

 

얼마 후 의식이 회복되자 방탕했던 지난 생활에 대해 깊이 통회하며 "주님, 저로 하여금 무엇을 하길 원하십니까?" 하고 옛날의 사도 바오로(Paulus)처럼 주님께 여쭈어 보았다. "악을 피하고 선을 행하라"는 음성이 들리는 것 같았다.

 

이를 구체적으로 알기 위해 그는 쾰른 근처 지그부르크의 한 수도원에 들어가 기도와 단식으로 시간을 보냈었다. 결국 주님의 뜻을 확신한 그는 쾰른 시로 나와 사제 서품을 준비하고 1115년에 사제품을 받았다.

서품 후 그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전에 있던 곳으로 돌아왔으나 환영받지 못하였다. 그는 과거의 죄의 보속으로 이러한 모욕과 냉대를 참으며 그리스도의 고난을 묵상하는 기회로 삼았다.
그 후 그는 주임 사제직을 사임하고 소유물을 팔아서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준 뒤 보속의 길을 떠났다.

 

그가 북부 프랑스를 다니며 주님의 말씀을 설교한 것이 큰 효과를 내게 되어 그는 매우 유명한 설교가로 변신하였다. 이윽고 포세스(Fosses)의 성 후고(Hugo, 2월 10일)가 동반자가 됨으로써 그의 능력은 더욱 돋보이게 되었다.

1120년 1월 25일 그는 13명의 동료들과 함께 프레몽트레(Premontre)에서 성 마르티누스(Martinus)의 율수 수도회를 개혁하여 새 수도회를 설립하였다. 그 수효는 급격히 불어나기 시작하였는데 이것이 소위 '프레몽트레 수도회'이다.

 

그는 생전에 8개의 대수도원과 2곳의 수도원을 세웠고, 교황 호노리우스 2세(Honorius II)로부터 1125년에 공식 인가를 받았다. 그 후 테오발드(Theobald) 백작이 입회를 요청하자 그는 입회를 거절하고 세상에서 수도회의 규칙을 따라 살도록 제3회를 조직하였다.

그 후 그는 독일에 갔다가 황제와 교황 사절의 간청에 굴복하여 마그데부르크의 대주교가 될 것을 승낙하였다. 그 교구에는 개혁할 일, 정리할 일들이 태산 같았다.

 

 그가 임지에 갔을 때 주교관의 문지기는 그의 너무나 남루한 모습을 보고 거지로 착각하여 주교관으로 들여보내지 않았다는 일화도 있다.

 

새 주교와 그의 개혁 정책에 반감을 갖게 된 이들도 많아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방해하며 심지어 그를 처치해 버리려고도 하였다. 그러나 그의 덕행과 온화하고 용맹한 마음은 모든 장애를 극복하였다.

1132년 그는 황제 대관식에 참석하고자 로마에 갔다가 중병에 걸려 4개월 간 병상에 눕게 되었으나 그 후 교구로 돌아와 2년 간 직무를 수행하다가 1134년 54세로 선종하였다.

 

그는 캉브레(Cambrai)에서 이단과 싸우는 친구 성 발트만(Waltman, 4월 11일)을 도와주었으며, 성체 현존에 관한 이단을 배격하는데 공로가 컸다.

 

그는 1582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Gregorius XIII)에 의해 시성되었고, 1672년 교황 클레멘스 10세(Clemens X)는 전세계 교회에서 그의 축일을 지내도록 하였다.
 

강론   :   (마르 12,13-17)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문제>


“그 뒤에 그들은 예수님께 말로 올무를 씌우려고,

바리사이들과 헤로데 당원 몇 사람을 보냈다.

그들이 와서 예수님께 말하였다.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합당합니까, 합당하지 않습니까?

바쳐야 합니까, 바치지 말아야 합니까?’(마르 12,13-14)”


여기서 ‘그들’은 수석 사제들과 율법학자들과 원로들입니다(마르 11,27).

“말로 올무를 씌우려고” 라는 말은,

그들이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려고 세금 문제를 질문했음을 나타냅니다.

예수님께서 황제에게 세금을 내라고 말씀하시면,

그들은 예수님이 민족을 배반했다고 선전할 것이고,

세금을 내지 말라고 말씀하시면, 로마법을 어겼다고 고발할 것입니다.

당시의 유대인들 가운데에는 하느님만이 유일한 지배자라고 주장하면서

로마제국의 지배를 인정하기를 거부하고,

그래서 세금 내는 것도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마음속으로는 싫어하면서도 세금을 내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 문제는 법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양심’에 관한 문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위선을 아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데나리온 한 닢을 가져다 보여 다오.’

그들이 그것을 가져오자 예수님께서,

‘이 초상과 글자가 누구의 것이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이 ‘황제의 것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마르 12,15-16).”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위선자라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들은 겉으로는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문제를 고민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즉 황제의 지배를 인정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실제로는 황제의 모습과 이름이 새겨져 있는 돈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사실상 황제의 지배를 받아들인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위선자들입니다.

(예수님을 존경하는 척 하면서 함정에 빠뜨리려고 질문하는 태도도 위선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데나리온 한 닢을 가져오라고 말씀하셨을 때,

다른 곳에서 데나리온을 가지고 온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가지고 있던 것을 드렸습니다.

그것은 자기들이 이미 로마황제의 지배를 받아들이고 있음을 드러낸 일이고,

자기들이 위선자라는 것을 스스로 자백한 것과 같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

그들은 예수님께 매우 감탄하였다(마르 12,17).”


1) 예수님의 말씀은,

황제의 것과 하느님의 것을 대등한 위치에 놓으신 말씀이 아닙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다 ‘하느님의 것’입니다.

‘하느님의 것’이 아닌 ‘황제의 것’이란 따로 없습니다.

황제의 것도 하느님의 것에 속합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하느님의 것과 대등한 위치에 있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예수님 말씀의 뜻은,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되면 황제에게 세금을 내라.”입니다.

(반대로 표현하면,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일이라고 생각되면

황제에게 세금을 내지 마라.”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일인지 아닌지는 어떻게 판단할 수 있는가?

황제가 세금으로 무엇을 하는지를 보면 됩니다.

만일에 황제가 세금을 걷어서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죄를 짓는 일을 한다면,

세금을 내는 것은 그 죄의 공범이 되는 일입니다.


2) 예수님의 말씀은, 정치와 종교가 서로 간섭하면 안 된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즉 “정치는 정치인들에게 맡기고 종교인은 신앙생활만 열심히 하여라.”

라는 가르침이 아닙니다.

신앙인은 세상을 향해서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예언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고,

또 이 세상을 하느님 나라로 변화시키고 완성시키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악에 맞서서 싸워야 하고, 선의 실현을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정치인이 악을 행한다면 당연히 그것을 막아야 합니다.

교회의 사회 참여는 정치에 간섭하는 일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과 선의 실현을 위해서 노력하는 일입니다.

따라서 예수님 말씀의 뜻은,

“하느님의 것을 온전히 하느님께 돌려 드리는 일이 이루어질 수 있다면,

황제에게 세금을 내도 된다.”입니다.


3) 예수님의 말씀은,

로마제국의 지배를 인정해야 한다는 뜻으로 하신 말씀도 아니고,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합당하다는 뜻으로 하신 말씀도 아닙니다.

(반대로 로마제국을 부정하신 말씀도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 자신들이 로마제국의 정치 질서와 경제 질서를 받아들이고

그 질서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는 점을 말씀하신 것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현실과 타협하신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도 세속의 질서를 존중하셨지만, 악의 질서를 존중하신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 우리는 “악법도 법이다.” 라는 말을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계명과 율법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마르 2,27).”

법은 오직 사람을 살리는 일만 해야 합니다.

만일에 법이 사람을 죽인다면 그 법은 없애야 합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고통만 주는

바리사이들의 많은 규정들(율법들)을 반대하셨고, 폐지하셨습니다.

따라서 “악법은 법이 아니다.”가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그런데 독재자들은 “악법도 법이다.” 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자기들 마음대로 법을 만들고서 그 법으로 독재를 합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죄악입니다.

오늘날에도 세속의 법과 하느님의 법이 충돌할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에 신앙인들은 당연히 하느님의 법을 따라야 합니다.

우리는 수많은 순교자들이 로마황제 숭배를 거부하고

신앙을 위해서 기꺼이 목숨을 바쳤음을 생각해야 합니다.

다른 선택은 있을 수 없습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전주교구 신풍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