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파냐 아라곤(Aragun)의 왕 페드로 3세(Pedro III)와 시칠리아(Sicilia)의 왕 만프레디(Manfredi)의 딸인 콘스탄스(Constance) 사이에서 태어난 그녀는 자신의 고모할머니인 헝가리의 성녀 엘리사벳(Elisabeth, 11월 17일)을 따라 같은 이름을 지었다.
12세의 어린 나이에 포르투갈의 왕 디니스 1세(Dinis I)와 결혼하여 오랫동안 자녀를 낳지 못하다가 결혼 7년째 되던 해에 자녀를 얻었다고 한다.
한편 디니스 1세는 능력 있는 강력한 통치자였지만 남편으로서는 칭찬받지 못할 사람이었다.
성녀 엘리사벳은 남편의 불신앙을 감내하면서 자신이 낳지 않은 서자들의 교육까지 담당하였으며, 끊임없이 기도와 경건한 삶을 추구하여 병원, 고아원, 매춘 여성들의 보호소, 양로원 등을 설립하였다.
성녀 엘리사벳은 남편의 냉대와 불신앙을 인내심을 가지고 대하였다. 그리고 1297년 이복형제들에게 관대한 아버지의 행동에 분개하던 아들 아폰소 4세(Afonso IV)와 남편 디니스 1세 사이의 대립을 중재하고 조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녀의 정치적 영향력 때문에 오해를 받아 한때 알랑케(Alenquer)로 추방되기도 했던 그녀는 1324년 남편 디니스 1세가 병을 얻자 헌신적으로 간호해 주었다. 극진한 그녀의 정성에 감동한 남편은 회심하였지만 이듬해 사망하고 말았다.
남편이 사망한 후 성녀 엘리사벳은 쿠임브라(Coimbra)의 집으로 은거하였는데, 그곳에는 자신이 세운 성녀 클라라(Clara)의 가난한 자매 수도회가 있어서 인근의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펴기 위함이었다.
또한 그녀는 수녀가 되겠다는 이상을 포기하고 작은 형제회 3회원이 되어 엄격한 보속생활과 봉사활동을 하였다.
그녀는 1336년 7월 4일 에스트레모스(Estremoz)에서 사망하여 쿠임브라의 수도회 성당에 묻혔다.
성녀 엘리사벳은 1516년 교황 레오 10세(Leo X)에 의해 복녀로 선언됨으로써 쿠임브라 교구에서 공식적으로 공경 예절이 허락되었으며, 1626년 교황 우르바누스 8세(Urbanus VIII)에 의해 시성되었다.
1630년 로마 순교록에 성녀의 축일이 7월 4일로 수록되어 있었으나 1695년에 교황 인노켄티우스 12세(Innocentius XII)가 7월 8일로 바꾸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 두 날을 모두 축일로 인정하면서 그중 하나를 선택하여 기념하도록 하고 있다. 그녀는 흔히 포르투갈의 이사벨라로 알려져 있다.
(마태 8.23-27)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다보다 소금 기둥이 되어 버렸다.”
오늘 창세기에서는 천사들이 등장하여 소돔을 멸망시킬 계획이니
빨리 소돔을 떠나라고 하지만 롯과 가족은 떠나는 것을 망설입니다.
멸망할 곳에서 떠나는 것인데, 다시 말해서
구원되는 것인데 그들은 왜 망설이는 것일까요?
멸망할 거라는 천사의 경고를 믿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요?
멸망할 것을 뻔히 알면서 어찌 떠나지 못하고 남아 있으려 하겠습니까?
멸망할 것을 알았다면 혹 금은붙이나 가재도구를 꺼내려고 하였을까요?
망설임.
우리도 많이 망설입니다.
무엇을 새로 하려고 할 때 많이 망설입니다.
그러니까 망설임이란 새로 뭣을 시작하는 것에 대한 망설입니다.
시작하려는 것이 옳은 것인지에서부터
시작하려는 것이 잘 될 것인지까지 확실치 않을 때 망설이게 되는데
오늘 창세기에서의 롯은 이런 면에서의 망설임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천사가 가라는 곳, 다시 말해서 앞으로 갈 곳에 대해 롯은 적합한지를 묻고
산보다는 옆의 작은 성읍이 낫지 않은지 수정 제안을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에 천사가 롯의 제의를 받아들이기는 하지만
세속성이 여전히 롯에게 남아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제게는 듭니다.
도시 소돔을 떠나라고 했는데 도시생활을 하다가 산에서 사는 것이 낯설어,
아니면 싫고 두려워 대신 다른 작은 성읍으로 가게해달라고
타협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도시생활을 하던 사람이 나이 먹어 시골로 가라고 하면 망설이는 것처럼.
아무튼 롯이 너무 망설이자 천사는 타협을 받아들여 억지로 끌고 나옵니다.
그러나 롯의 아내는 약간 다른 면에서 망설이는 것 같습니다.
롯이 앞을 내다보며 망설인다면 롯의 아내는 뒤를 보며 망설이는 거지요.
앞을 향해 빨리 내달려야 죽지 않고 살 수 있는데
목숨을 구하려면 돌아보지 말라고 천사가 경고했는데도
앞은 보이지 않고 경고도 들리지 않습니다.
과거가 끄는 힘이 미래가 끄는 힘보다 강력했던 겁니다.
그런데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죽음입니다.
그러면 이것이 말하려는 것은 무엇입니까?
단순하게 생각하면 뒤를 돌아보지 말라,
과거 지향적으로 살지 말고 미래 지향적으로 살라는 말 같지만
더 깊이 의미를 새겨보면 그 이상의 뜻이 있습니다.
과거는 지나간 것이고 이미 죽은 것이라는 뜻입니다.
과거가 죽지 않는 것은 오직 온고지신溫故知新일 경우뿐입니다.
새로움을 옷 입지 않은 옛것과 과거는 시간과 함께 죽고
옛것이 새것의 교훈이 될 경우만 옛것은 새것 안에 살아있지요.
이렇게 과거를 떠나지 못하는 이런 롯의 아내를 어떻게든 살리려고
“그의 아내와 두 딸의 손을 잡고 성읍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고 하는데
손을 잡아 억지로 끌고 나가지만 롯의 아내는 그 손을 뿌리친 것입니다.
가진 것 다 팔아 가난한 이에게 나눠주고 당신을 따르라는 주님의 초대를
가진 것들을 버리지 못하는 것 때문에 거절한 복음의 부자와 함께
롯의 아내는 구원의 손길을 뿌리치는 우리 인간을 대표합니다.
과거를 뿌리치지 못해서 하느님의 구원의 손길을 뿌리치는 내가 아닌지
성찰하고 반성하는 오늘이 되어야겠습니다.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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