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7년 7월 6일 가해 연중 제13주간 목요일(성녀 마리아 고레티 동정 순교자)

dariaofs 2017. 7. 6. 00:30

 

 

성녀 마리아 고레티(Maria Goretti)는 이탈리아 안코나(Ancona)의 코리날도에서 농부의 딸로 태어났는데 6남매 중의 맏이였다.

 

1896년 그녀의 집안은 갈리아노 교외의 콜레 지안투르코로, 그 다음에는 페리에레 디 콘카로 이사하였다. 이곳에 정착한 직후에 부친은 말라리아에 걸려 운명하니, 남은 식구들은 생계를 위하여 투쟁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마리아는 상냥하고 침착하였고 또 예의바른 아이였고, 하느님의 크신 사랑과 기도, 순명 및 죄악에 대한 예민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아직 12살이 되지 않은 나이였으나 꽤 성숙한 편이었다.

1902년 5월 29일 그녀는 첫 영성체를 하였으며 그해 7월 어느 날 오후, 그날도 그녀는 집안 설거지를 하고 있었는데 이웃에 사는 알렉산데르란 청년이 자기 셔츠를 기워달라는 부탁을 하여, 그것을 손질하면서 베란다에 앉아 있었다.

 

이때 18세 된 알렉산데르가 올라와서 계획대로 문을 잠그고, 미리 준비한 수건으로 그녀의 입을 틀어막고 그녀를 끌고 침실로 가려고 하였다.

 

그녀는 소리치며 완강히 버티었다. 그녀가 끝까지 항거하자 그는 이성을 잃고 마리아의 가슴을 마구 찔렀다. 그녀의 몸에는 14군데의 깊은 상처가 생겼고, 병원으로 옮겼으나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녀는 약 24시간 후에 운명하였다.

마지막으로 사제가 성체를 영해주면서 알렉산데르를 용서하겠느냐고 묻자 그녀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때문에 저 역시 그를 용서할 것이며, 그를 위하여 천국에서 기도할 것입니다.

 

저는 십자가 옆에 있던 강도처럼 그를 천국에서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 마디로 그녀는 정결을 지키기 위하여 순교한 것이다. 그녀는 1950년 교황 비오 12세(Pius XII)에 의해 시성되었다.

 

강론   :   (마태 9,1-8)

 

<중풍 병자를 고치시다.>

 

7월 6일의 복음 말씀은 마태오복음 9장 1절-8절, ‘중풍 병자를 고치시다.’인데,

이 이야기의 핵심 주제는 ‘예수님의 권한’입니다.

(또는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배에 오르시어 호수를 건너 당신께서 사시는 고을로 가셨다.

그런데 사람들이 어떤 중풍 병자를 평상에 뉘어 그분께 데려왔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얘야, 용기를 내어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마태 9,1-2)”

 

‘사람들’이 어떤 병자를 데려왔다는 말과 ‘그들의 믿음’이라는 말에서

다음 기록이 연상됩니다.

“그들은 호수를 건너 겐네사렛 땅에 이르렀다.

그러자 그곳 사람들이 그분을 알아보고 그 주변 모든 지방으로 사람들을 보내어,

병든 이들을 모두 그분께 데려왔다.

그리고 그 옷자락 술에 그들이 손이라도 대게 해 주십사고 청하였다.

과연 그것에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마태 14,34-36).”

당시에 그 지역에서는 예수님을 한 번만이라도 만나기를 간절하게 원했던

병자들과 병자들의 가족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간절하게 예수님을 만나기를 원한 것은,

그분을 만나기만 하면 병을 고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중풍 병자를 데리고 온 사람들도, 또 중풍 병자 자신도 그렇게 믿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그들의 믿음’이라는 말에서 ‘그들’이라는 말은,

중풍 병자를 데리고 온 사람들만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그 병자 자신도 포함하는 말입니다.)

 

중풍 병자를 예수님께 데리고 온 것은 중풍을 고쳐 달라고 청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병을 고쳐 주시지는 않고,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보시기에 병을 고쳐 주는 일보다 죄를 용서하는 일이

더 급하고 더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병자 자신이 병의 치유보다 죄의 용서를 먼저 청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의 죄가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고, 또 그의 병이 죄 때문에 생긴 것도 아닌데,

그래도 몸의 병 때문에 죄를 더 크게 의식하는 경우가 많고,

병의 치유보다 죄의 용서를 먼저 원하는 경우가 실제로 많습니다.

여기서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라는 말씀은,

뜻으로는 “나는 너의 죄를 용서한다.”입니다.

이 말씀으로 그 중풍 병자의 죄는 용서받았습니다.

 

“그러자 율법학자 몇 사람이 속으로

‘이자가 하느님을 모독하는군.’ 하고 생각하였다(마태 9,3).”

 

만일에 예수님이 하느님과 같은 분이 아니라면,

즉 그저 사람일 뿐이라면, 율법학자들의 생각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죄를 마음대로 용서하는 것은,

하느님의 권한을 침해하는 일이고, 하느님을 모독하는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느님과 같은 분이고, 하느님의 권한을 가지고 계신 분입니다.

따라서 율법학자들의 생각은 틀린 생각이고 ‘악한 생각’입니다.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을 부정한 것이기 때문에 ‘악한 생각’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마음속에 악한 생각을 품느냐?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고 말하는 것 가운데에서 어느 쪽이 더 쉬우냐?

이제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해 주겠다.’ 그런 다음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 네 평상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그러자 그는 일어나 집으로 갔다.

이 일을 보고 군중은 두려워하며,

사람들에게 그러한 권한을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마태 9,4-8).”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고 말하는 것 가운데에서 어느 쪽이 더 쉬우냐?”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둘 다 어렵다.”입니다.

또는 “둘 다 사람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다.”입니다.

(당시의 의술로는 중풍은 사람의 힘으로는 고칠 수 없는 병,

즉 하느님만이 고치실 수 있는 병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만이 고치실 수 있는 중풍을 고치신 일은,

당신이 하느님과 같은 권능을 가지고 계신다는 것을 ‘계시’하신 일입니다.

(‘눈에 보이는 권능’을 통해서 ‘눈에는 보이지 않는 권한’을 계시해 주신 일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과 같은 권능을 가지고 계신다는 것을 믿는다면,

하느님만의 권한인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계신다는 것도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 너희가 알게 해 주겠다.” 라는 말씀을 겉으로만 보면,

율법학자들에게 당신의 권한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서

중풍 병자를 고쳐 주신 것으로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만일에 예수님께서 정말로 그렇게 하셨다면,

메시아의 표징을 보여 달라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요구를 거절하신 일과(마태 12,39) 모순됩니다.

따라서 이 이야기에서 예수님께서 중풍 병자를 고쳐 주신 일은,

당신의 신원과 권한을 증명하기 위한 일은 아니고,

그 병자의 죄를 용서하신 일과 중풍을 고쳐 주신 일은 모두

처음부터 당신의 뜻에 의한 일이었다고,

즉 예수님의 자비에 의한 일이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리고 “... 알게 해 주겠다.” 라는 말씀은,

믿으려고 하지 않는 율법학자들을 꾸짖으시는 말씀으로 생각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기 전에,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마태 28,18).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은, “예수님은 하느님”이라고 믿는 것이고(요한 20,28),

예수님께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가지고 계신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 믿음이 없다면, 예수님을 올바르게 믿는 것이 아닙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라고 약속하셨습니다(요한 14,13).

이런 약속은 하느님이신 분만이 하실 수 있는 약속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청한다는 말은 예수님 뜻에 합당하게 청한다는 뜻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전주교구 신풍성당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