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7년 7월 24일 가해 연중 제16주간 월요일(성 사르벨리오 마클루프 사제)

dariaofs 2017. 7. 24. 01:00

 

 

성 사르벨리우스 마클루푸(Sarbellius Makhlouf, 또는 사르벨리오 마클루푸)는 1828년 5월 8일 레바논의 베카아 카프라(Bekaa-Kafra)에서 노새를 끄는 아버지의 아들로 태어나 요셉 자룬 마클루푸(Josephus Zaroun Makhlouf)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는 3살 때 아버지를 잃고 삼촌에 의해 양육되었다. 어려서부터 신심이 깊었던 요셉에 비해 그의 삼촌은 그렇지 못했다. 소년 시절 그가 가장 좋아한 책은 토마스 아 켐피스(Thomas a Kempis)의 “준주성범”이었다.

23살이 되었을 때 요셉은 집을 빠져나와 비블로스(Byblos) 북쪽에 있는 동정 성모 마리아 수도원에 입회하였다.
 1953년, 2년간의 수련을 마친 그는 안나야(Annaya)에 있는 성 마로 수도원으로 보내졌다.

 

그곳에서 그는 첫 서원을 하며 2세기의 순교자 성 사르벨리우스의 이름을 자신의 수도명으로 선택했다. 그는 1853년 장엄 서원을 하고 1859년에 사제품을 받았다.

그는 모범적인 수도승으로 살았지만 그가 꿈꾼 것은 고대 사막의 교부들과 같은 삶이었다. 그래서 1875년부터 죽을 때까지 23년 동안 5세기의 수도원장 성 마로(Maron, 2월 14일)의 모범을 따라 은수자로서 매우 엄격한 삶을 살았다.

 

그의 성덕에 대한 명성이 커지자 점점 많은 사람들이 상담이나 축복을 청하기 위해 모여들었다. 그는 또한 성체성사에 대한 위대한 신심을 갖고 있었다.

 

가끔 수도원장이 인근 마을에 가서 성체성사를 집전하도록 했을 때 그는 매우 기쁘게 이를 받아들였다. 그는 기도 중에 몸이 공중에 뜨는 은총도 받았다.

성 사르벨리우스 마클루푸는 1898년 12월 24일, 예수 성탄 대축일 전날 늦은 오후에 안나야에서 선종하였다.

 

그의 사후 몇 차례의 치유 기적이 일어나면서 그의 무덤은 레바논 사람이건 아니건, 그리스도인이건 아니건 수많은 사람들의 순례하는 장소가 되었다.

 

그는 1965년 교황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77년 10월 9일 같은 교황으로부터 성인품에 올랐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는 종종 교회는 두 개의 허파(동방 교회와 서방 교회)를 갖고 있는데, 우리는 그 둘로부터 호흡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성 사르벨리우스 마클루푸 같은 성인이야말로 가톨릭 교회의 다양성과 일치의 참된 가치를 깨닫게 해주는 좋은 예이다. 사르벨 마클루푸(Charbel Makhlouf)로도 불리는 그의 축일은 12월 24일에 기념하기도 한다.

 

 

                                                                 (마태 12,38-42)

 

<요나의 표징>

 

“그때에 율법학자와 바리사이 몇 사람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스승님이 일으키시는 표징을 보고 싶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악하고 절개 없는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구나!

그러나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요나가 사흘 밤낮을 큰 물고기 배 속에 있었던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사흘 밤낮을 땅속에 있을 것이다.

심판 때에 니네베 사람들이 이 세대와 함께 다시 살아나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다.

그들이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마태 12,39-41)”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예수님께 표징을 요구한 것은,

메시아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어떤 증거를 보여 달라고 요구한 것입니다.

(그들은 믿고 싶어서 표징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 안 믿었기 때문에 요구했습니다.

즉 “표징을 보여주면 믿겠다.”가 아니라,

“당신은 메시아가 아니니까 표징을 보여줄 수 없을 것이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요구를 거절하셨습니다.)

“악하고 절개 없는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구나!” 라는 말씀은,

“제대로 신앙생활을 하지도 않고 죄만 짓고 있는 자들이

어찌 표징을 요구하는가?” 라고 꾸짖으시는 말씀입니다.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라는 말씀은,

메시아라는 것을 증명하는 표징을 보여주시기를 거절하는 말씀이기도 하고,

“나의 죽음과 부활이 표징이 될 것이다.” 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사람의 아들도 사흘 밤낮을 땅속에 있을 것이다.” 라는 말씀은,

당신의 죽음을 예고하신 말씀인데,

‘사흘 밤낮’이 지나면 부활하신다는 뜻이 되기 때문에

부활을 예고하신 말씀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표징’이라는 말은,

“사람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표징”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즉, 표징을 보고 믿으면 구원을 받을 것이고, 안 믿으면 구원받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표징’은, 구원의 길과 멸망의 길로 갈라지는 갈림길에 서 있는

도로 표지판 같은 역할을 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바로 그런 표징이 됩니다.

부활을 믿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구원받을 것이고,

안 믿는 사람은 구원받지 못할 것입니다.

 

어쩌면 사도들이 선교활동을 하는 과정에서도 같은 논쟁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안 믿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사도들에게,

“당신들이 말하는 예수가 메시아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증거를 보여주시오.”

라고 요구했을 때, 사도들은 이렇게 대답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지만, 부활하셨습니다. 우리는 그 일의 증인입니다.

그분의 죽음과 부활이 그분이 메시아라는 증거입니다.”

실제로 사도행전에는 사도들의 증언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이 나무에 매달아 죽인 예수님을 다시 일으키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영도자와 구원자로 삼아

당신의 오른쪽에 들어 올리시어,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죄를 용서받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일의 증인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께 순종하는 이들에게 주신 성령도 증인이십니다(사도 5,30-32).”

“(다윗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예견하며, ‘그분은 저승에 버려지지 않으시고,

그분의 육신은 죽음의 나라를 보지 않았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이 예수님을 하느님께서 다시 살리셨고

우리는 모두 그 증인입니다(사도 2,31-32).”

 

구세주이신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사도들이 선포한 복음의 핵심 내용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믿음과 하나입니다.

즉 예수님이 구세주라는 것을 믿는다면 예수님의 부활도 믿게 되고,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다면 예수님이 구세주라는 것을 믿게 됩니다.

사도들은 바로 그것을 증언하려고 일생 동안 노력했고, 목숨까지 바쳤습니다.

그러나 안 믿으려고 하는 사람들은 냉소적인 반응을 보입니다.

바오로 사도가 아테네에서 선교활동을 할 때,

아테네 사람들이 그런 반응을 보였습니다.

“... 어떤 이들은 ‘저 떠버리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가?’ 하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바오로가 예수님과 부활에 관한 복음을 전하는 것을 보고

‘이방 신들을 선전하는 사람인 것 같군.’ 하고 말하였다(사도 17,18).”

“죽은 이들의 부활에 관하여 듣고서, 어떤 이들은 비웃고

어떤 이들은 ‘그 점에 관해서는 다음에 다시 듣겠소.’ 하고 말하였다(사도 17,32).”

 

“그런 사람들을 믿게 만들기 위해서 기적을 행한다면, 효과가 있을까?”

‘리스트라’ 라는 곳에서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군중은 바오로가 한 일을 보고 리카오니아 말로 목소리를 높여,

‘신들이 사람 모습을 하고 우리에게 내려오셨다.’ 하고 말하였다.

그들은 바르나바를 제우스라 부르고 바오로를 헤르메스라 불렀는데,

바오로가 주로 말하였기 때문이다. 도시 앞에 있는 제우스 신전의 사제는

황소 몇 마리와 화환을 문으로 가지고 와서,

군중과 함께 제물을 바치려고 하였다(사도 14,11-13).”

기적은 믿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에게는 표징으로 작용하지만,

안 믿으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기적을 행하셨을 때,

제자들은 예수님을 더욱 믿게 되었지만(요한 2,11),

그 일에 직접 참여했던 일꾼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는 말은 없습니다.

안 믿으려고 하는 사람들은 기적을 보아도 안 믿습니다.

 

우리는 사도들과 순교자들이 목숨 바쳐 증언한 진리를 믿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사실 그분들의 순교 자체가 강력한 표징입니다.

만일에 믿으려고 노력하지는 않고 기적만 바라고 있다면,

또는 바라는 대로 기적이 일어나면 그때 가서 믿겠다고 고집을 부린다면,

“요나의 설교만 듣고도 회개했던” 니네베 사람들이 우리를 단죄할 것입니다.

이 말은, 그들이 우리를 심판한다는 뜻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도 안 믿고, 말씀을 실천하지도 않은 것은 유죄라고

심판 때에 증언한다는 뜻입니다.

(요즘에도 어떤 사적 계시나 현상에만 집착하고, 놀라운 기적만 찾아다니면서,

평소에 늘 해야 하는 일상적인 신앙생활은 소홀히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악하고 절개 없는 세대’가 표징만 요구하는 태도와 다르지 않습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전주교구신풍성당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