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7년 8월 7일 가해 연중 제18주간 월요일(성 식스토 2세 교황과 동료 순교자들, 성 카에타노 사제)

dariaofs 2017. 8. 7. 06:52

 

 

성 식스투스(또는 식스토)는 257년 8월 30일에 교황 성 스테파누스 1세(Stephanus I, 8월 2일)를 계승하였다.

 

이때 황제 발레리아누스는 그리스도교를 박해하는 첫 번째 포고령을 내렸다. 군사들이 그리스도인들을 습격했을 때 식스투스 교황은 지하 묘지인 카타콤바 속에 있었다.

 

그 당시에는 로마(Roma)의 지하 묘지들이 신자들의 집회 장소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아피아(Appia) 가도에 있는 성 칼리스투스(Callistus) 묘지에 안장되었다.

성 식스투스와 함께 체포되어 순교한 사람은 부제 성 펠리키시무스(Felicissimus)와 성 아가피투스(Agapitus) 그리고 차부제 성 야누아리우스(Januarius), 성 빈첸시오(Vincentius), 성 마그누스(Magnus), 성 스테파누스(Stephanus)이다.

 

또 한 명의 동료 순교자로 성 콰르투스(Quartus)가 있다. 그도 부제라는 기록이 있으나 잘못된 기록으로 인정되고 있다. 이들은 교황 식스투스 2세와 함께 순교하였기 때문에 로마 순교록에서 같은 날을 축일을 정해 공경해 왔다.

 

그러나 성 라우렌티우스(Laurentius) 부제는 며칠 뒤에 순교하였기 때문에 다른 날 축일을 정해 공경한다. 이들은 프랙텍스타투스(Praetextatus) 카타콤바에 안장되어 있다.

 

오늘날 교황 성 식스투스(8월 7일)와 성 라우렌티우스(8월 10일) 외의 다른 순교자들은 8월 6일을 축일로 지낸다.

 

 

 

 

티에나의 가스파르(Gaspar) 백작과 포르토(Porto)의 마리아(Maria)의 아들로 태어난 성 카예타누스(Cajetanus, 또는 카예타노)는 비첸차(Vicenza)에서 세례를 받고, 두 살 때 그의 부친이 전사하는 불운을 안았다.

 

그는 어머니 슬하에서 자라나 파도바(Padova) 대학교에서 공부하여 민법과 교회법의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곧 비첸차의 시의원이 되었고, 1506년에는 로마(Roma)로 가서 교황 율리우스 2세(Julius II)로부터 최초의 공증인으로 임명받았다.

 

또한 그는 신심 깊은 사제들로 구성된 신애회(神愛會)를 재생시켰다. 1513년 율리우스 교황이 서거하자 자신의 직책을 사임하고, 1516년에 사제로 서품된 후 비첸차로 돌아왔다.

그는 거기서 성 히에로니무스(Hieronymus)의 오라토리오회에 입회하여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위하여 일하다가, 베로나(Verona)에서 이와 비슷한 회를 설립하였다.

 

 1523년 그는 로마로 가서 후일 교황 바오로 4세(Paulus IV)가 된 요한 피에트로 카라파, 바오로 콘시글리에리 그리고 보니파티우스 다콜레 등과 함께 교회를 개혁하고,

 

백성들에게 설교하며, 병자를 돕고, 최악의 경우에서 허덕이던 성직자의 신분을 개선하려는 목적으로 성직 수도회를 설립하여 1524년에 교황 클레멘스 7세(Clemens VII)의 승인을 받았다.

 

테아티노회(Theatines)라 부르는 이 수도회는 공동체 생활을 하는 정규 성직자들로 구성하고, 서원을 발하며, 사목직에 종사하였다. 처음에는 그리 성공적이 못되었다. 1530년 카예타누스가 총장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주교들의 개혁에 반대하는 무리들을 대적하여 훌륭한 싸움을 하였고, 이단적인 가르침을 과감하게 물리쳤다. 일반 시민들을 위한 카예타누스의 주요 업적 중의 하나는 전당포의 설립이었다.

 

후일 그는 복자 요한 마리노니(Joannes Marinoni, 12월 13일)와 함께 몬테스 피에타티스(Montes Pietatis)를 설립하여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주는 일로써 시민들의 복리를 위해 일하였다.

 

1547년 8월 7일 나폴리(Napoli)에서 운명한 그는 1629년 8월 7일 교황 우르바누스 8세(Urbanus VIII)에 의해 시복되었고, 1671년 교황 클레멘스 10세(Clemens X)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그는 트렌토(Trento) 공의회 전에 있었던 가톨릭 개혁가들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성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마태 14,13-21)

 

<오천 명을 먹이시다.>

 

“예수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시어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그들 가운데에 있는 병자들을 고쳐 주셨다.

저녁때가 되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말하였다.

‘여기는 외딴곳이고 시간도 이미 지났습니다.

그러니 군중을 돌려보내시어, 마을로 가서 스스로 먹을거리를 사게 하십시오.’

예수님께서 ‘그들을 보낼 필요가 없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하고 이르시니,

제자들이 ‘저희는 여기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가진 것이 없습니다.’ 하고 말하였다(마태 14,14-17).”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라는 말은 예수님의 ‘자비심’을 나타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일 자체가 ‘자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원받을 길을 알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는 인류를 가엾게 여기셔서

이 세상에 오셨고, 사람들에게 구원의 길을 가르쳐 주셨고,

그 길을 앞장서 가시면서 사람들을 인도해 주셨습니다.

 

여기서 제자들이 한 일들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보다 먼저 사람들의 배고픔을 걱정했습니다.

그리고 해결책을 예수님께 건의했습니다.

이것은 교회의 역할을 상징적으로 나타냅니다.

교회는 사람들의 사정을 보살피는 곳이 되어야 하고,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신앙인 개인으로 좁혀서 생각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이웃의 사정에 관심을 가져야 하고, 이웃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건의한 해결책은,

겉으로만 보면 당시 상황에서는 합리적인 방법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예수님의 방식이 아니었기 때문에 올바른 해결책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뒤의 22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군중을 돌려보내셨다는 말이 나오는데,

그 군중은 예수님께서 주신 빵을 배불리 먹은 사람들,

즉 ‘은총으로 가득 채워진’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군중을 배고픈 상태로 돌려보내자고 건의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은총과 사람들을 서로 떼어놓는 일이 될 뿐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스스로’ 먹을거리를 사게 하자는 말은,

제자들 쪽에서는 아무것도 안 하겠다는 뜻이 되기도 합니다.

사람들의 배고픔을 걱정한 것은 훌륭한 태도이긴 한데,

실제로는 사람들을 위해서 한 일이 하나도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을 보낼 필요가 없다.” 라는 말씀은,

뜻을 생각하면 “그들을 보내지 마라.”로 생각할 수도 있는 말씀입니다.

(“배고픈 상태로 사람들을 돌려보내지 마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돈도 없고 빵도 없다는 것을 아시면서도,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교회의 역할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에게서 ‘생명의 빵’을 받아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제자들은 아마도 많이 당황했을 것입니다.

“저희는 여기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가진 것이 없습니다.” 라는 말은,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라는 말씀에 대한 반박, 또는 항의입니다.

이 말의 뜻은, “저희는 가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이고,

그래서 “저희는 저 사람들을 먹일 수 없습니다.”가 됩니다.

(사람들의 수가 오천 명이 넘기 때문에,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는 사실상 하나도 없는 것과 같습니다.)

 

(제자들의 말을 긍정적으로 생각해서, “저희는 가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니 주님께서 직접 해결해 주셔야 합니다.”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이라면, 주님께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그 당시에 제자들에게 주님의 권능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면,

그렇게 자신들의 무능력을 솔직하게 고백하면서,

겸손한 태도로 주님께 기적을 청했을 것입니다.

아직 그런 단계에 도달하지 못했다면, 그냥 항의만 했을 것이고...)

 

이 이야기에서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는,

기적을 행하시라고 제자들이 예수님께 드린 작은 정성이 아니라,

‘무(無)’를 상징합니다.

즉 예수님께서 행하신 ‘빵의 기적’은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내신 기적입니다.

원래 하느님의 기적이란 그런 것입니다.

꼭 어떤 재료가 있어야만 기적을 일으킬 수 있다면,

그 능력은 ‘전능’이 아니고, 그 기적은 하느님의 기적이 아닙니다.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없었다고 해도,

예수님께서는 기적을 일으키셨을 것입니다.

“무엇으로, 어떻게?” 라고 물을 필요는 없습니다.

한마디 말씀만으로 많은 기적을 일으키신 예수님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것들을 이리 가져오너라.’ 하시고는,

군중에게 풀밭에 자리를 잡으라고 지시하셨다.

그리고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찬미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그것을 군중에게 나누어 주었다.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모으니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다.

먹은 사람은 여자들과 아이들 외에 남자만도 오천 명가량이었다(마태 14,18-21).”

 

예수님께서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셨다는 말은 중요한 의미가 있는 말입니다.

빵을 뗀다는 말은 원래 성체성사를 표현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빵을 사람들에게 직접 주시지 않고 제자들에게 주신 것도

교회는 사람들에게 은총을 나누어 주는 곳이 되어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주신 빵을 받아서 다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줌으로써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라는 예수님의 명령을 실행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명령만 하고 내버려 두시는 분이 아니라,

그 명령을 제대로 실행할 수 있도록 우리를 도와주시는 분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천 명을 먹이신 이야기는, “예수님은 우리를 먹이시는 분”,

또는 “예수님은 우리를 살리시는 분”이라는 계시입니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요한 6,35).”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원하고 참된 생명을 주시는 분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전주교구신풍성당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