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7년 8월 8일 가해 연중 제18주간 화요일(성 도미니코 사제 기념일)

dariaofs 2017. 8. 8. 06:02

 

 

펠릭스 데 구즈만(Felix de Guzman)과 아자(Aza)의 복녀 요안나(Joanna)의 아들인 성 도미니코(Dominicus)는 에스파냐 북부 부르고스(Burgos) 지방의 칼라루에가(Calaruega)에서 태어났고,

 

1184-1194년 사이에는 팔렌시아의 대학교에서 수학하였으며, 아마도 학업을 계속하는 중에 그곳에서 서품된 듯하다.

 

그는 1199년에 오스마(Osma)에서 주교좌성당 참사회원으로 임명되었다.

 

또 그는 1203년에 오스마의 복자 디에고 데 아제베도(Diego de Azevedo, 2월 6일) 주교를 수행하여 프랑스 남부 랑그도크(Languedoc)로 가서 알비파 이단을 상대로 설교하였고, 시토회의 개혁을 도왔다.

 

1206년에 그는 알비파(Albigenses) 지역인 프루이유(Prouille)에서 여자 수도회를 설립하였고, 수많은 수도자들에게 강론하였다.

1208년 교황대사 베드로 카스텔란이 알비파에 의해 피살되었을 때,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Innocentius III)는 그들을 상대할 십자군을 조직하고 그 대장으로 몽포르의 시몬 4세(Simon IV de Montfort) 백작을 임명하였다.

 

이때의 전투는 7년간이나 계속되었다. 성 도미니코는 이 군대를 따라다니며 이단자들에게 설교하였으나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하였다.

 

1214년 시몬 4세가 그에게 카세네일의 성을 주었는데, 이때 그는 여섯 명의 동료들과 함께 알비파의 회개를 위하여 활동할 수도회를 세웠다.

 

그리고 이 수도회는 그 다음 해에 툴루즈(Toulouse)의 주교로부터 교회법적으로 승인을 받았다.

 

그러나 1215년 제4차 라테라노(Laterano) 공의회에서 자신의 설교자회가 승인받는 데는 실패했지만, 다음 해에 교황 호노리우스 3세(Honorius III)로부터 승인을 받고 도미니코 수도회 일명 설교자회가 설립되었다.

그 후 성 도미니코는 수도회의 조직을 위해 여생을 보내면서 이탈리아, 에스파냐 그리고 프랑스 등지를 다니며 순회 설교를 하여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많은 회원이 새로 입회하면서 수도회도 정착 단계에 들어서게 되었다.

 

이 새로운 수도회는 지성적인 생활과 대중들의 요구를 잘 조화시켜 회개운동을 꾸준히 전개하는 등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1220년에 볼로냐(Bologna)에서 수도회의 첫 번째 총회를 소집하였고, 그 이듬해 8월 6일 그곳에서 운명하였다.

 

그는 헝가리 순회 선교에서 얻은 병으로 인해 일생을 마감한 것이었다. 그는 1234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9세(Gregorius IX)에 의해 시성되었으며, 천문학자의 수호성인이다.

 

   

                                                                         (민수12.1-13  : 마태14.22-36)

 


모세가 이집트 여자를 아내로 맞은 것 때문에 친 형제들인 아론과 미르암은

모세를 비방하며 “주님께서 모세를 통해서만 말씀하셨느냐?

우리를 통해서도 말씀하시지 않았느냐?”고 말합니다.

 
이에 대해 하느님께서는 아론과 미르암을 나무라고

미르암은 문둥병에 걸리게까지 하시는데 지금 우리 인간의 눈으로 보면

아론과 미르암이 오히려 이해가 되고 하느님의 처사는 납득이 안 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간의 눈으로 보면

아론과 미르암이 이해되고 하느님의 처사가 납득이 되지 않는데

맞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눈으로 볼 때만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눈으로 볼 때 아론과 미리암은 무엇이 문제입니까?

비방 자체가 문제입니까? 비방의 내용이 문제입니까?

 
저의 짧은 소견에 비방이나 비난은 비판보다 나쁜 뜻입니다.

비판은 누구의 어떤 면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그 기준이 자기중심적일 수도 있지만 어떻든지

옳고 그름의 기준을 가지고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이지만

비방이나 비난은 그의 어떤 면이 아니라 그 사람 자신을,

그것도 어떤 악의를 가지고 사람을 부정적으로 몰아가는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서 비판이 그래도 이성적이지만

비방이나 비난은 부정적인 감정에 의해 좌우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살다보면 단순한 비방이나 비난보다 더 나쁜 경우가 있습니다.

나름대로 옳고 그름의 기준을 가지고 아주 냉철하게 비판하는 것 같지만

겉포장과 달리 속에는 그 사람에 대한 반감이 있으며,

그래서 제법 논리적/합리적으로 비판하지만 반감을 갖고 하는 것이고,

그래서 실은 합리적인 비판의 탈을 쓰고 비방이나 비난을 하는 것입니다.

 
옛날 공동번역 성서는 아론과 미리암이 모세를 비판하였다고 하지만

비방을 하였다고 지금 개신교 성서나 우리 성서가 번역하고 있는데

그것이 맞다면 아론과 미리암은 비방 자체로 잘못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설사 비판이었을지라도 비판의 내용도 문제가 있습니다.

이집트 여인을 아내로 맞이한 것이 왜 문제가 됩니까?

그것이 왜 비판의 꺼리가 됩니까?

 
제가 처음 외국에 나간 것이 1987년 필리핀인데 첫 외국여행이었기에

문화적인 충격이 매우 컸던 면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우리의 순혈주의가 깨어지는 체험을 하게 되어서 더 충격적이었습니다.

 
우리는 배달의 민족, 한 핏줄이라는 것을 대단히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그래서 화냥년, 양갈보, 트기와 같은 말로 혼혈을 매도하였는데

필리핀 사람들은 오히려 혼혈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이었고,

후에 다른 나라들을 방문해보니 그들도 혼혈을 문제시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아론과 미리암이 모세를 비방할 때 하느님께서 무조건

모세를 두둔하는 것처럼 오늘 민수기가 보이기도 하지만 실은

무조건 두둔하는 것이 아니라 배타성을 초월한 모세의 옳음을

보편적인 하느님, 모든 민족의 하느님께서 인정하신 것이지요.

 
우리나라를 사랑해야 하지만 배타적으로 사랑해서는 안 되고,

우리나라를 사랑해야 하지만 하느님 나라보다 더 사랑해서는 안 되며,

우리민족을 사랑해야 하지만 하느님보다 더 사랑하거나

하느님 사랑보다 더 사랑해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이것을 머리로 알지만 가슴은 늘 그러지 못합니다.

국가 간의 시합이 열리면 저는 그 중계를 안 보려고 하는데

그 이유가 이성과 달리 가슴은 늘 우리나라가 이기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머리만 하느님과 같지 않고 모세처럼 가슴까지 하느님과 같이 되기를

빌어마지않는 오늘입니다.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