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Roma)의 일곱 부제(차부제 포함) 중 한 명인 성 라우렌티우스(Laurentius, 또는 라우렌시오)는 에스파냐의 우에스카(Huesca) 출신이며, 발레리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에 로마에서 순교하였다.
그는 교황 성 식스투스 2세(Sixtus II, 8월 7일)의 부제였고, 식스투스 교황이 사형을 받게 되자 슬픔을 억누르지 못했다고 한다.
이때 교황은 그 역시 3일 안으로 자신을 따라 오리라고 예언하자, 라우렌티우스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면서 교회의 소유물들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로마의 집정관이 그의 이런 행위를 알고는 교회의 보물들을 모두 황제에게 바치라고 엄명을 내렸다.
이때 그는 모든 보물을 모으려면 3일 정도가 소요된다는 말을 하고 돌아와서는 모든 보물들을 맹인과 절름발이, 고아와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에 분개한 집정관은 그를 체포하여 온갖 고문으로 괴롭히다가 석쇠 위에 눕히고는 구워 죽였다.
시인 프루덴티우스(Prudentius)에 의하면 그의 죽음과 표양이 로마의 회개를 가져왔고, 로마에서 이교의 종말을 고하는 직접적인 동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의 문장은 석쇠이다.
강론 : (요한 12,24-26)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2,24).”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과 죽음은 죽음으로 끝난 일이 아니라,
부활의 전 단계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인류에게 새 생명을 주기 위한 일이었습니다.
따라서 그 일은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묻혀서
많은 열매를 맺는 일과 같습니다.
순교자들의 죽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 없는 사람들의 눈에는
순교자들의 순교가 죽음으로 끝나는 일로만 보이겠지만,
그분들의 죽음은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 밀알 하나를 밭에 심는 일입니다.
여기서 ‘많은 열매’는 순교자들 자신들이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을 뜻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순교자들이 목숨을 바쳐 신앙을 증언하는 일은,
그 자신의 구원을 위한 일이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한 일이기도 합니다.
순교를 하지 않더라도, 충실한 신앙인들의 신앙생활은 모두 다
밀알 하나를 밭에 심는 일과 같습니다.
충실하게 신앙생활을 함으로써 그 자신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고,
다른 사람들도 신앙인들의 삶을 보고 인도를 받아서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향해 나아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신앙생활, 사랑 실천, 봉사 등을
단순히 ‘희생’이라고만 생각할 일은 아닙니다.
사실 밭에 심은 밀알은 겉으로는 죽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죽는 것이 아닙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 썩어 없어질 것으로 묻히지만 썩지 않는 것으로 되살아납니다.
비천한 것으로 묻히지만 영광스러운 것으로 되살아납니다.
약한 것으로 묻히지만 강한 것으로 되살아납니다(1코린 15,42-43).”
“그러므로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굳게 서서 흔들리지 말고
언제나 주님의 일을 더욱 많이 하십시오.
여러분의 노고가 헛되지 않음을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다(1코린 15,58).”
예수님의 죽음은 부활과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는 하나의 일입니다.
그처럼 우리도 죽음에서 부활로 바로 건너갈 수 있도록
지금 열심히 노력해야 합니다.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요한 12,25).”
이 말씀의 뜻은, “영원한 생명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고
육신의 목숨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하고,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은 그 생명을 얻을 것이다.”입니다.
요한1서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세상도 또 세상 안에 있는 것들도 사랑하지 마십시오.
누가 세상을 사랑하면, 그 사람 안에는 아버지 사랑이 없습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 곧 육의 욕망과 눈의 욕망과 살림살이에 대한 자만은
아버지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온 것입니다.
세상은 지나가고 세상의 욕망도 지나갑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은 영원히 남습니다(1요한 2,15-17).”
권력과 재물을 탐하다가 인생의 말로가 비참하게 되는 사람을 자주 봅니다.
영원한 것을 생각하지 않고 허무한 것을 욕심내다가
그 자신의 인생도 허무하게 끝나는 사람은 대단히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런 어리석은 사람의 말로를 보면서도 교훈을 얻지 못하고,
그 사람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을 따라가고 있으니 그런 사람들은 더욱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함께 있을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존중해 주실 것이다(요한 12,26).”
이 말씀은 순서를 반대로 해서 읽는 것이 적절할 것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존중해 주실 것이다.” 라는 말씀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이고,
예수님의 영광에 동참하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함께 있을 것이다.” 라는 말씀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섬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 라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가신 길을 뒤따라가야 신앙생활이 완성된다는 뜻입니다.
그 길은 ‘십자가의 길’입니다.
공관복음에는 이렇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마태 16,24).”
루카복음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집주인이 일어나 문을 닫아 버리면, 너희가 밖에 서서
‘주님, 문을 열어 주십시오.’ 하며 문을 두드리기 시작하여도,
그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면 너희는 이렇게 말하기 시작할 것이다.
‘저희는 주님 앞에서 먹고 마셨고,
주님께서는 저희가 사는 길거리에서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나 집주인은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모두 내게서 물러가라, 불의를 일삼는 자들아!’ 하고
너희에게 말할 것이다(루카 13,25-27).”
주님을 섬긴다고 주장해도 불의를 일삼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주님의 뒤를 따라가는 사람이 아니고,
제대로 주님을 섬기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주님의 집에(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마태 7,21).”
송영진 모세 신부(전주교구신풍성당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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