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빈체슬라오 순교자
체코 서부 보헤미아의 통치자였던 보리보이(Boriwoj)와 그의 아내 성녀 루드밀라(Ludmilla, 9월 16일)의 그리스도교로의 개종은 그의 민족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당시 강력한 힘을 갖고 있던 체크가(家)는 새롭게 등장한 그리스도교를 극구 반대하였다.
915년경 보리보이의 아들 라티슬라프(Ratislav)가 전국을 통치하게 되었고, 슬라브족 이교도인 벨레시안스의 딸 드라호미라(Drahomira)와 결혼하여 두 아들을 두었는데, 프라하(Prague)에서 태어난 벤체슬라우스와 볼레슬라우스가 그들이다.
성 벤체슬라우스(또는 벤체슬라오)는 할머니인 성녀 루드밀라의 배려로 그리스도교에 입교하였고, 보데크의 학교에서 라틴어와 슬라브어를 익혔다.
그러나 920년경 그리스도교 신자였던 부친이 마가르인과의 전투에서 전사하자 어머니 드라호미라가 섭정을 하였는데, 그녀는 반그리스도교적인 정책을 펼쳤다. 그래서 그리스도교적인 벤체슬라우스와 그의 어머니 사이의 대립이 격화되었다.
929년 독일의 하인리히 1세 황제의 침략을 받은 벤체슬라우스는 무력에 의해 국가가 패망하는 것보다 그를 카알 대제의 후계자이자 대군주로 인정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고 항복하기로 결심하였다.
이로써 그는 독일의 도움을 받아 그리스도교적인 기치 아래 슬라브족의 통합을 진행시키려 하였다. 그는 성 비토(Vitus)를 모시는 성당을 프라하에 세웠고 독일과의 우의를 돈독히 했다.
그의 이러한 정책은 귀족들의 반발을 샀고, 그로인해서 도처에서 귀족들의 봉기가 일어났다. 929년 9월 그는 동생 볼레슬라우스(Boleslaus)의 초대를 받고 성 코스마(Cosmas)와 성 다미아누스(Damianus) 축일 기념행사를 지내려고 스트라 볼레슬라프(Stara Boleslav)로 갔다.
축제일 저녁 그가 위험에 처한 줄을 알았다. 벤체슬라우스는 9월 28일 미사에 참례하러 가던 도중 동생과 그 일파에 의하여 처형되었는데, 성당 문 앞에 쓰러지면서 그는 이렇게 외쳤다. “동생아, 나는 너를 용서한다.” 그 후 그는 즉시 순교자로서 높은 공경을 받았고, 보헤미아 전 주민의 수호자로서 공경을 받았다. 지금은 체코의 수호성인이다.
성 라우렌시오 루이스와 동료순교자들
성 라우렌티우스 루이스(Laurentius Ruiz, 또는 라우렌시오 루이스)는 첫 번째 필리핀인 성인으로 그리스도교 신앙을 위해 순교한 첫 필리핀 순교자이다.
그는 1600년경 마닐라의 비논도(Binondo)에서 신자였던 중국인 아버지와 필리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중국어와 타갈로그어를 배웠다. 그리고 도미니코회에서 운영하는 학교에서 교육을 받으며 스페인어를 배웠다. 그는 비논도 성당의 복사로 활동하였고 성사 보조자와 성사 기록자로 봉사하였다.
그는 아마도 서예로 생계를 유지했으리라 짐작되는데, 사적 혹은 공적인 용도의 서류를 아름다운 필기체로 만들어주는 일을 하였다. 그 직업은 안정되고 교육받은 사람임을 암시하는데, 당대에 많은 사람들이 그 기술을 배우고자 했다는 사실에서 그 증거를 찾아볼 수 있다.
1636년 그는 알 수 없는 이유로 불운한 사건에 연루되어 살인 혐의로 고발되었다. 그릇된 재판으로 사형을 받을까 두려운 나머지 성 라우렌티우스는 필리핀을 떠나기 위해 배를 탔다.
그런데 그 배에는 세 명의 도미니코회 신부인 성 안토니우스 곤잘레스(Antonius Gonzalez), 성 귈레르무스 쿠르텟(Guillermus Courtet), 성 미카엘 데 아오사라사(Michael de Aozaraza)와 일본인 사제인 성 빈첸시오 시오주카 드 라 크루스(Vincentius Shiwozuka de la Cruz)와 평신도이며 나환자인 교토(Kyoto)의 성 라자루스(Lazarus)가 타고 있었다.
그는 바다에 나오고 나서야 그 배가 대대적인 그리스도교 박해가 일어나고 있는 일본으로 가는 길이라는 것을 알았다.
일본의 오키나와(Okinawa)에 도착한 성 라우렌티우스와 동료들은 곧 그리스도인임이 발각되어 체포되어 나가사키(Nagasaki)로 압송되었다. 그들은 며칠 동안 갖은 비인간적인 고문을 당했으나 용감하게 그리스도교 신앙을 고백하였다.
성 라우렌티우스는 신앙을 철회하지 않았고 그의 사형집행인에게 자신은 하느님을 위해 죽으며, 자신이 죽는 대신 수천 명을 살릴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다.
1637년 9월 27일 그는 교수대에 거꾸로 달려 구덩이로 떨어졌다. 이틀 동안의 고통 후에 그는 출혈과 질식으로 인해 숨을 거두었다. 그의 시신은 화장되어 바다에 뿌려졌다.
성 라우렌티우스 루이스와 동일한 방법으로 처형된 15명의 동료 순교자들이 있는데, 그들은 모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1981년 2월 18일에 마닐라에서 시복되었고, 1987년 10월 18일 같은 교황에 의해 로마(Roma)에서 시성되었다.
“헤로데는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일을 전해 듣고 몹시 당황하였다.”(루카 9,7)
(루카 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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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말씀과 행적으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시자 사람들은 놀라워합니다. 당시 그 지방 영주였던 헤로데는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일을 전해 듣고 몹시 당황해 합니다(9,7).
예수님이 누구이신가에 대해 사람들이 다양한 반응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또 엘리야가 다시 와서 하느님의 위대한 개입을 준비하리라 기대했던 이들은 예수님을 다시 나타난 엘리야로 봤습니다.
또 다른 이들은 옛 예언자 한 분이라 했습니다. 사실 예수님은 예언자들이 예고한 메시아 시대를 여신 분이시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예수님을 예언자로 보긴 했으나 ‘하느님의 아들’이나 ‘오시기로 된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말씀과 행적을 보면 하느님의 손길을 느끼지만 그건 되살아난 예언자로서 한 일로 축소시켜버린 것이지요.
그는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는데, 소문에 들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하며 의심의 끈을 놓지 않습니다. 요한이 다시 살아날 리가 없으며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불의와 부도덕을 서슴없이 지적했던 세례자 요한에 이어 하느님의 자비와 진리와 정의를 선포하시는 예수님의 존재 앞에서 두려워 불안에 빠졌습니다.
그는 거기서 헤어나고자 예수님을 직접 만나 확인하려 한 것입니다.
혹시 헤로데가 안고 있었던 두려움과 불안, 권력에 대한 탐욕, 의심, 하느님의 권능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교만 이런 것들이 내 안에도 있지 않습니까?
헤로데가 예수님에 관한 소문을 듣고 당황했던 것은 두려움 때문이었지요.
따라서 하느님의 자비와 정의와 선을 거슬러 재물과 권력을 자기 소유로만 삼으로 하는 이들은 불편과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지요.
하느님의 진리는 거짓의 바다를 출렁이게 만듭니다. 하느님의 자비는 탐욕의 뿌리를 뒤흔듭니다.
그러나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쫓아냅니다. ”(4,18) 그렇습니다! 내 안의 두려움과 불안은 사랑과 믿음이 부족하다는 표지임을 알아차려야겠습니다.
사랑이신 하느님을 사랑하지 못할까봐 두려워하는 두려움 외에 두려워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내 재물과 권력과 명예를 잃어버릴까 하는 두려움을 버리고 사랑을 갈망하는 복된 우리였으면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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