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연중 제26 주일 복음묵상

dariaofs 2018. 9. 30. 22:29

2018년 9월 30일 나해


오늘 복음에서는 사도요한이
예수님을 따르지 않는 어떤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보고
이것을 막아야 하는 것은 아닌지 예수님께 묻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이 예수님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지지하는 사람이라고 밝히십니다.

이 사건을 오늘날의 이야기로 바꾸어 봅시다.
우리는 다른 종교, 인종, 문화를 가진 이들이
선한 일을 하거나 봉사를 하는 것을 보고 어떠한 생각이 듭니까?

예를들면
어떤 무신론자가 양로원에서 봉사를 한다고 가정해봅시다.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됩니까?

어느 스님이 고아들을 위해
길거리에서 모금을 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됩니까?

나와는 다른
우리와는 다른 어떤 사람들이
남들을 돕는 일을 한다고 할 때,
우리는 종교, 인종, 문화, 성별에 관계 없이
좋은 일을 하고 있구나! 라고
어떠한 편견도 없이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오늘 복음서에서
사도요한은 아마도 어떠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요한은 예수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에 신뢰를 가졌던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자신이 하는 것만이 최고라고 여기는 자기중심적 성향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누구나 자기애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어느정도의 집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고 여기게 됩니다.

이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자신감과 책임감을 불러 일으켜주고,
나름의 성취감과 행복감을 가져다 줍니다.

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내가 하는 일만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다른 사람들이 하는 봉사를 낮게 바라보거나
하찮게 여길 수 있는 ‘보이지 않는 덧’에 걸려 넘어질 수도 있습니다.

과도한 자기애적 성향을 심리학에서 나르스시즘이라고 합니다.
심리적 문제가 아니라 하더라도 우리는 저를 포함한 누구나
자기중심적 성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인간관계 안에서 여러가지 문제를 야기하게 됩니다.

신앙인에게 있어 자기중심적 성향의 위험성은
개인적 차원을 벗어나 공동체적 차원으로까지 어렵게 할 수 있습니다.

신학적으로는
하느님의 전 우주적인 구원 계획을 막아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가톨릭 신자이기 때문에 나의 구원은 이미 하느님의 계획 안에 있게됩니다.

그러나 신앙인의 자기중심적 성향은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교회 안에 국한하게 되는 실수를 저지를 수도 있게 합니다.

사실 교회는 하느님의 구원 계획이 가톨릭 신자가 아니더라도
창조주를 알아 모시는 모든 사람들을 다 포함하고
그 안에 무슬림도 있고,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알지 못하더라도 바른 생활을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에게도
구원에 필요한 도움을 주신다고 가톨릭 교회는 가르칩니다 (LG 16).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더라도
올바른 삶을 살아가려고 하는 이들에게
돌아가는 구원의 몫을 우리가 빼앗을 수는 없습니다.

이들은 우리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우리를 지지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오히려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하신 주님의 명령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 자신 만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자기중심적 세계관에서 벗어나
하느님의 시선에서 모든 이에게 구원을 가져다 주는
제자가 되도록 합시다.
                        


박동현 제노 신부(대전교구 목동성당 보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