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연중 제32주일 복음묵상

dariaofs 2018. 11. 11. 21:43

2018년 11월 11일


오늘은 평신도 주일입니다.
평신도라는 단어가 성직과 구분되기 때문에
교회적으로 그렇게 사용하는 것이지만,
사실 평신도라는 단어 보다는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의미가 신학적으로 더욱 잘 어울립니다.

하느님의 백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가난한 과부한 사람이 헌금함에 렙톤 두 닢을 넣는 모습을
보시고 “저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돈을 넣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렙톤은 예수님 시대에 제일 작은단위 화폐 였습니다. 
당시 하루 품삯을 1 데나리온으로 계산했는데,
렙톤은 1 데나리온의 144분의 1밖에 되지 않는 작은 돈입니다.

오늘날로 계산하면 하루 품삯을 5만원이라고 할 때,
1 렙톤은 겨우 350원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 과부가 헌금함에 넣은 돈은 겨우 700원 정도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전통이 계속되고 있는지
여전히 가톨릭 교회 안에 렙톤 두 닢을 봉헌하는 문화가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흔히 천주교가 천주교인 까닭은 신자들이 천원만 내서 그렇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습니다.
천주교 신자들이 봉헌금을 적게 낸다는 것을 빗대어 이렇게 표현한 것이지요.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어떠한 사람은 초기 한국천주교회의 박해로 인해
궁핍한 생활과 박해를 피해다니다보니 직업을 갖기도 어려웠기에
이러한 사정을 뻔히 아는 선교사들이 신자들에게
재정적인 협력을 요청하지 않았고,
이러한 문화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한 개신교와는 달리
선교국의 자금지원이 적었고,
자립적인 토대도 약했기 때문에
이백년 가까이 성당에서 돈 이야기를 하지 않았고

그래서 지금에 이르러서
성당에서 재정이야기를 하는 경우
불평하는 지경이 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의 생각을 다릅니다.
평신도로 시작된 우리 교회가
하느님의 은총과 도우심으로 이렇듯이 성장을 했고,
성당은 여러분의 신앙의 공간이면서
교육의 공간이자, 또한 문화의 공간으로 성장해왔습니다.

100주년을 준비하는 우리성당도
평신도에 의해 운영되고 있고
앞으로도 여러분에 의해서 더욱 발전하고
성장되어 나갈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여기서 성장된다는 것은
단지 성당이 더 세련되고 멋있는 공간이 된다는 것만이 아니라
신앙과 영성이 함께 성장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복음에서
가난한 과부가 보여준 희생과 봉사는
물질적인 것을 뛰어넘는 신앙의 행위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 넣었지만
과부는 자신의 생활비를 다 넣었다는 것은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날 먹어야 하는 음식조차도 먹지 않겠다는 의지이기에
자신의 신앙을 목숨보다도 더 소중하게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아시다싶이 예수님 시대의 과부는
사회로 부터 보호받지 못했고,
죄를 지어 하느님으로부터 벌을 받았다고 여겨졌습니다.
종교적으로 과부는 하느님께 봉헌할 수조차 없었던
부당한 사람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럼에도 자신의 안녕만을 추구하지 않고
하느님께 매달렸던 이 가난한 과부의 1000원 정도되는 헌금이
그녀의 신앙의 투신과 진정성의 척도로 드러난 것입니다.

그래서 이 과부의 이야기는
재물과 하느님을 동시에 섬길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오늘날 수도자와 성직자가 평생을 교회를 위해 봉사하는 것도
이와 비슷한 맥락안에 있습니다.

이 과부는 성직자나 수도자가 아니었지만,
그들을 훨씬 뛰어넘는 신앙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복음의 가난한 과부는
하느님 백성 중에서도 빛나는 신앙의 모범인 것입니다.

시험이 주는 이점은 지식을 정리하는 기회
이러한 측면에서
시험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인생의 전환점입니다

하지만 시험이 끝나면 나는 새로운 인생으로 나아가기에
단순히 시험에 대한 부담이 끝나는 것이 아니고
여러분의 미래를 마주하게 됩니다

마치 기차가 터널을 지나 밝은 세상과 마주 하듯
나도 수능이라는 터널을 거쳐 새로운 세상과 마주 하게 됩니다.

내 인생을 내가 살아가기에
나 자신과 수능이 동일시 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시험점수가 나 자신의 가치와 같을 수 없음
점수는 다만 내 노력의 척도를 알려주는 것이기에
내가 보완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기회

모든것을 긍정적으로 이것을 받아드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까짓거 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하느님께 용기를 청하며 마음을 잘 다스려서
차분하게 수능을 잘 치르시길 빕니다
                        


박동현 제노 신부(대전교구 목동성당 보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