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성탄대축일 낮미사 복음묵상

dariaofs 2018. 12. 25. 05:30

2018년 12월 25일


메리 크리스마스!
옆에 사람들에게도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악수하며 인사합시다!

크리스마스 하면 생각나는 것이 두 가지 있습니다.
첫번째로
제가 기억력이 좋지 않다고 다들 잘 아시겠지만,
저희 부모님의 결혼기념일 만큼은 기억하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그것은 바로 저희 부모님의 결혼기념일 이기 때문입니다.

두번째로
중학교 1학년때 영어듣기평가 문제가
Christmas를 쓰는 것이었는데요
저는 철자가 생각이 안나서 
그냥 X-mas 라고 적어서 틀렸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가 성탄에 서로 인사하는 Merry Christmas에서
Christ는 그리스도를 Mas는 미사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메리 크리스마스는
즐거운 성탄의 미사를 지내자!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성탄절에 미사가 빠질 수 없는 이유인 것입니다.

사실 Merry Christmas는 중세에는 잘 쓰이지 않았던 인사입니다.
중세에는 성탄보다는 성삼일과 부활에 더욱 집중했던 시기였기에
상대적으로 성탄절을 견건하고 조용하게 지내왔었습니다.
실제로 17세기 청교도인들은 성탄절을 금지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게 성탄절은 시간이 흘러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성탄절의 의미가 점차 잊혀져 갔습니다.
일종의 경제논리, 합리주의, 공리주의로 인하여
흥청망청대는 성탄에 대하여 더욱이 비판적인 시각을 가졌었습니다.
즉, 돈도 되지 않는 축제를 뭣하러 하는가?라는 것이지요.

이것이 바로 우리가 잘 아는 스크루지의 입장입니다.
많은 사람이 스크루지에 대하여 한번쯤 들어봤을 것입니다.

스크루지는 ‘크리스마스 캐럴’이라는
찰스 디킨스의 중편소설에 나오는 인물입니다.
19세기 초반, 영국이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농업중심에서 공업중심으로 경제체제가 변화하게 됩니다.
농촌의 인구가 도시로 집중되었고
도시에서 석탄이 타는 연기로 인해 공기오염이 심해졌으며,
도시는 비위생적이고 악취가 심해졌습니다.

사회적으로 신흥 재벌이 생겨나기 시작하였고,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서 살아야했고
박봉에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증가하였고,
그러다보니, 인권이 심각하게 침해를 받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심지어 자본가들은 고아들을 데려다 노동착취를 하였습니다.

그래서 ‘크리스마스 캐럴’이라는 소설도
당시 영국의 현실을 풍자하는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바로 스크루지가 당시의 비인간적인 사회를 의인화한 시대의 아이콘으로로 탄생한 것입니다.

스크루지는 다들 아시다싶이
짠돌이 할아버지입니다.
그냥 짠것이 아니라 소설 속에서 묘사된 것을 보면
남을 돕는데에도 인색하고 무정한 사람이 이었습니다.

그런데 스크루지 영감이 원래부터 그러한 사람은 아니었지요.
소설속에서 어느 크리스마스에 유령이 나타나서
그를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크리스마스로 안내합니다.

과거 소년이었던 스크루지는 알리바바를 읽으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 시절도 있었고,
아리다운 여성과 결혼을 약속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점차 성공과 돈에 집착하면서
그는 사랑하는 사람도 떠나보내게 되고,
경제논리의 사회에 완전히 동화되어 버립니다.

하지만, 어느 크리스마스 이브에
죽은 자신의 친구가 유령되어 스크루지의 집에 나타났니다.
그리곤 스크루지가 게으르다고 멸시했던 사람들에게로
스크루지를 데리고 가서 사람들이 그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에 대해 어떻게 말들을 하는지 보게해줍니다.

또한, 미래로 데리고가서
죽은 스크루지를 사람들이 어떻게 기억하는지를 보게해줍니다.

그제서야,
스크루지는 자신이 멸시했던 사람들
즉, 부지런하지 못한 사람들
하층노동자들
그동안 담을 쌓고 살았던 자신의 가족들에게
자신이 얼마나 인색하고 무심했는지 깨닫게 됩니다.

결국, 자기 안에 갇혀 있다가
그 동안 보지 못하던 자신의 인생을
타인의 입장을 통해 비로소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죽어서 유령이 되어 스크루지를 찾아온
친구는 스크루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살아생전 베풀수 있었던 선행을 모조리 베풀어야 함을 이제야 깨달았네!
선의를 품고 무엇이 되었건 제 본분을 다하려 열심히 노력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든 그 어마어마한 사명을 다하기에는 이승에서의 삶이 너무나 짧다는 것을 말이야!”

현실로 돌아온 스크루지는 자신의 지난날의 인색함에서 벗어나
이웃들에게 선행과 자선을 베푸는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날 이후,
스크루지는 선행하는 삶, 자선하는 삶, 이웃과 함께하는 삶이
바로 크리스마스의 정신이라고 믿게 되었지요.

그동안 자신에게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인사하던 사람들을
먹고 살 걱정없이 축제만 즐기려는 얼간이쯤으로 여기던 스크루지는
이제 사람들에게 먼저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인사하는 사람으로 변화했습니다.

아무도 자신의 장례식에 찾아와 주지 않았던 스크루지는
이제 자신이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축복을 빌어주는 사람이 되었고,
사람들은 이렇게 변화된 스크루지를 바라보며, 
크리스마스를 진정으로 기릴 줄 아는 사람으로 평가하면서 소설을 마치게 됩니다.

사실, 크리스마스 캐롤의 작가인 찰스 디킨스는
잊혀져 가는 크리스마스의 정신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어했습니다.

그래서 디킨스는
크리스마스에 맞추어서 이책을 출판했고,
선물을 할 수 있도록 책의 표지도 이쁘게 양장을 했습니다.
그래서 유럽에서 크리스마스 트리 앞에 놓여있는 선물 중에서
이 책은 언제나 맨 첫자리에 장식하는 전통이 생겨납니다.

그리고 우리가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성탄인사를 하는 것도
바로 이 책 덕분에 방방곡곡에 더욱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오늘 요한이 전한 복음도
성탄의 의미를 잃어가는 이 시대에
다시 한번 그 정신을 깨닫게 해줍니다.

“그분께서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지만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아무도 하느님을 볼 수는 없지만,
그 사랑 만큼은 우리 가슴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느님께서
그 진실하고 완전한 사랑을 보여주시고자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병고를 짊어주셨고,
우리가 필요한 은총을 풍부히 주시며,
이웃을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당신의 삶을 통해서 보여주셨습니다.

개과천선한 스크루지가 바로 예수님의 가르침과 모범을 그대로 따랐고,
우리는 스크루지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를 다시금 되새길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고 서로 사랑하기로 다짐하는 마음으로
다시 옆에 사람들과 악수하며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인사합니다.


박동현 제노 신부(대전교구 목동성당 보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