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핵심·자기이해

영적교만 --- 창세기 11장 ~ 심리학이창세기를 말하다

dariaofs 2019. 9. 6. 00:30

창세기 11장

 

바벨탑 이야기 : 영적 교만

  

바벨탑을 만든 사람들이 ’우리 이름을 날리자’고 했다

하느님이 보시기에 시건방져 보였다

우리 이름을 날리자는 것에 많은 뜻이 내포되어 있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천(영적 세계), 지(자연), 인(나)으로 되어 있다

이 중에 인(나)만 생각하는 것이 우리 이름을 날리자는 것이다


우리 이름을 날리자는 것은 기도할 필요가 없다

바벨탑을 쌓아 하느님과 닿게 하자는 것이다

  

바벨탑을 세우면서 기도를 하지 않았다

하느님과 맞서자는 것이었다

  

사람이 갖고 있는 의지(voluntas), 이성(객관적 판단), 감정이 있는데

우리 이름을 날리자는 것은

사람이 갖고 있는 자기 의지에 대해 지나친 확신을 가지고 있다

 

이성이란 기분 좋을 때나 이성이다

 

감정은 어떤가

늘 행복한가, 늘 편안한가

하느님 안에서 잔잔한 마음을 늘 갖고 있는가

불편한 시간이 더 많기 때문에 평화를 구하는 기도를 하는 것이다

  

내가 갖고 있는 의지나 이성이나 감정은 통제가 안된다

내 통제의 범위를 벗어난다

  

사람은 성장과정에서 내적인 힘을 받게 된다

(지지, 격려, 칭찬, 인정, 그리고 feed-back등을 통해)

  

이 성장과정에서 내적인 힘을 키우지 못하고

받은 상처가 클수록 의지와 이성과 감정을 통제를 못한다

통제를 못하는 사람들일수록 이것들을 잡으려고 더 노력을 한다

  

Catholic vs Communism (카톨릭과 공산주의의 비교)

  

Catholic은 의지, 이성, 감정 위에 하느님이 있다고 믿는 것이 Catholic이다

 

Communism은 그리스도교 초기 공동체의 모델을 공산주의로 끌어들였다

(레닌이나 스탈린이 신학생이었다는 얘기가 있듯이)

공산주의의 원래 목표는 수도원이다

수도원의 수사들도 하느님만 빼면 공산주의라 할 수 있다

나 말고 나를 통제하는 힘이 있느냐 없느냐의 선택의 문제이다

  

공산주의는 늘 정의를 부르짖으며

갖은 자대 뺏긴자로 본다


노동으로 얻은 생산물에 대해서 고루 분배해야 한다는 지향 점에서

내 눈에 보이는 부정적인 요소를 계속 잘라나간다

뺏긴 자 편에서 증오를 일으켜 혁명을 이룬다

 

뺏긴 자들에게 돌려주겠다는 방법론에서 Catholic과는 결정적 차이가 있다

  

나의 투사->비난->분노로 치달아

자기 자신을 자기 문제를, 자기도 부를 추구하는 마음을 못 본다

이런 구조가 악이라고 보는 것이다

  

악이라고 하는 것은

철저하게 자기 문제를 은폐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공산주의 안의 다이내믹한 에너지를 악이라고 보는 것이다

  

나와 부자사이의 문제를 사람들도 부자를 나쁘게 보게 된다

자기를 은폐(악)하고 계속 문제를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려 한다

  

유물론 뒤에는 다른 것이 있다

공산주위<-바리사이<-바벨탑

선과 악의 ’영신 전쟁터’라고 한다(신약.구약)

  

내가 내 자신을 보려면 투사의 대상이 없으면 된다

자기 안의 분노를 못 보고 -악의 유혹-

미운 사람만 계속 찾게되기 때문에 자기 문제를 못 보게 된다


자기가 왜 그 사람을 미워하는지를 안 본다

이런 사람들이 자기 이름을 걸고 무엇인가를 하려고 한다


-바벨탑의 이야기

  

*천 지 인이 하나다’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인간이 가장 성숙한 단계에서 갖는 생각이라고 한다

  

그리이스 로마시대(지)- 자연철학이 발달되었다

(탈레스) 자연계의 존재 원리에 대해 강조

 

중세시대(천)- 신을 강조

 

근대(인)- 데카르트 ’Logito ergo sum’(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사람이 갖고 있는 이성과 의지에 대해 강조

 

현대- 환경문제에 대해 논하고 있다

다시 ’지’로 돌아감

 

최근-에 대두되고 있는 신에 대한 생각이 다시 나타나고 있다

 

인간의 관심이 주기적으로 순환과정을 거치며 계속 변한다

이것이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신 구원사라고 얘기하고 있다

  

*이름의 중요성

  

이름은 인정받는 것이기 때문에 매달린다

사람도 자기 브랜드가 있다

자기 가치를 알아주는 것이다

 

성장론에서도 이름을 중요하게 여긴다

남들이 내 이름을 알아주어야 한다

중간단계에 추구하는 정신적 행복으로 중요하다

  

생리적 행복-> 정신적 행복(인정)-> 영적 행복

정신적 행복을 너무 중시하게 되면

영적인 행복 단계에 올라갈 수 없다

  

의사가 환자가 병이 낫게 된 것이 내 실력이라 생각하면 짜증이 많고

다른 이와 같이 치료하는 거야, 하느님의 손에 달려있다고 하면

편안한 사람이란 평가를 받는다

  

상담자를 만난다는 것도 내 힘이 아니다

듣고 깨닫는 내담자 자신이 변해가는 역동적 과정에서

하느님의 힘이 역사하시는 것이다


상담자가 자기 이름을 걸고 내담자를 고쳐주려고 하면 배우지를 못한다

내담자들이 하는 얘기에서 상담자가 배운다

  

-바벨탑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자기애적 성격장애(Narcissism)-

  

하느님 이름 vs 자기 이름

 

7죄종중 하나(분노, 질투, 인색, 교만, 해태, 자기애, 자기비하)

다 필요한 것이지만 지나칠 때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자기애가 지나칠 때 안 좋다

자기비하가 지나치지 않고 자기 자신을 인정하면 겸손이다

(내 안의 건강한 부분과 병든 부분을 같이 보는 것이 겸손이다)

  

겸손하지 않다는 것은 자기 비하가 지나치면 교만이다

나는 쓸모가 하나도 없다 (하느님을 욕먹게 하는 것이다)

나는 문제가 하나도 없다고 하는 자기애가 지나쳐도 교만이다

  

적당히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적당히 자기 자신의 문제를 보는 것을 겸손하다고 한다

겸손은 타인의 평가에 의한 것이다

  

겸손하게 살겠다고 하기보다는

건강하게 행복하게 즐겁게 살겠다고 하는 것이

하느님이 주신 복락은 다 누리고 살겠다고 얘기하는 것이 좋다

  

바벨탑을 만든 사람들의 문제가 자기애적 성격장애라고 한다

 

*자기애적 성격장애(Narcissism)를 가진 사람의 특징

  

공감능력이 없다

타인의 마음을 이해를 못하니까 타인에 대한 배려도 없다

(마리 앙뜨와네트;밖에서 배고픈 사람들이 빵을 달라고 했더니 고기를 사먹으라고 했다-공감능력이 없는 것이다,

이멜다;서민들의 집이 보기에 안 좋다고 재개발을 했다다; 추종자들에게는 금화를 뿌렸다)

(Catholic은 인정이 많다/공감능력이 있기 때문)

  

자기가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선택된 사람만 만나고 보통 사람들은 나를 이해 못한다고 생각한다

특별한 대접을 바란다->바리사이(Pharisee:선별된 자라는 뜻)

  

남을 추켜 주고 자기를 동격화 함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한없이 무시하고 나은 사람은 한없이 존경한다 하며 동격화 하려함

자기 자신을 이상화 시킨다

  

이런 사람들이 심리적으로 자기 안의 어두운 부분을 안 보고

그것을 밖에다가 투사시킨다(열등감)

 

주로 쓰는 말이, 이상, 최고, 엘리트, 최상급, 등등의 등급의 말을 많이 쓴다

 

자기 자신이 늘 여기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누가 이상형에 대한 비난 농담을 하면 못 참고 터진다

  

행동심리학에서는

이런 사람들이 자기 아랫사람을 무시할 때

눈을 안 쳐다보고 땅을 보고 얘기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 사람의 얘기를 듣지를 않는다

자기 얘기만 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칭찬해주면 부끄러워한다, 자기를 더 많이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에서 그런 제스쳐를 보낸다(이것을 겸손의 포장이라고 한다)

  

노화현상을 받아들이지 못 한다(늘 젊은 사람들과 어울리고 노인들과 어울리지 않는다-꼭 우리 안에 자기를 집어넣는다)

  

두려움이 있다(버림받을 것 같은, 혼자 있는 것을 견디지 못 한다)

’우리’라는 이름으로 바벨탑을 만들자고 했듯이

  

병적인 대인관계

 

1)상대방을 이상화시킨다(자기도 같이 올라간다)

2)금방 지루해한다

3)그 다음에 평가 절하한다

4)버리고 다른 대상을 찾아 나선다

다시 번복되고 친구가 없다

결국 외롭게 살다가 죽는다

  

성령 vs 악령

  

성령

 

-성령께서 사람을 이끄신다

신자를 광야에 내보내는 것

하느님의 뜻이 곧 깨달음이다

하느님의 뜻은 인간이란 누구인가를 깨닫게 하는 것이다

성령께서는 선을 지향하는 모든 사람의 마음 속에 역사 하신다고 보는 것이다

 

내가 만나는 사람과 일을 통해서 깨달음을 주신다

좋은 인연이건 악연이건 관계없이 하느님의 뜻과 내 존재의 의미를 깨달아야한다

(이런 상황에 들어가는 사람은 성숙하다고 하고/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은 미성숙하다 한다, 병적이라고 말한다)

  

기도로써 성령을 초대해야한다

그래야 그 힘이 내 안에서 임재 하신다

기도란 ’하느님을 부름’이다

  

성숙함이란 ’통합’이다

내가 만나는 사람과 일을 통해 하나라는 것을 깨닫고

편안하게 가는 과정이 성숙해가는 것이고,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다라고 하는 것이다

  

영적 행복이란 ’십자가(문제)를 지고 나를 따르라’는 것

자기 안의 문제를 보고 죽을 때까지 다듬어 가라는 것이다

그 안에서 얻는 행복이 있다

  

악령

 

-무지의 상태에 머무르기를 원한다

게으름이다(생리적 행복위로는 올라가지 않으려 한다)

기도의 주제가 생리적 욕구에 머문다,

악령의 유혹이 제 자리에 머물게 한다

기도의 내용이 중요한 것이다

  

-기도 생활-

  

생리적->정신적->영적

빵의 의미를 알라는 것은 그 다음 단계를 얘기하는 것이다

그래서 들을 귀 있는 자 알아 들으라,

초대받은 자는 많으나 부르심에 응하는 자는 적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악령의 유혹이란 그 자리에 머물게 하는 것이다

  

배고픔과 갈증의 정도가 사람마다 다 다르다

원칙적으로 채워져야 다음 단계로 간다

자기 때가 있다(점프를 해서는 안된다)

사람마다 자기 때가 있다

다음 단계에 대한 갈증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아래 단계에서 위 단계로의 변화는 번복한다

아래 단계도 다 떠 매고 사는 것이다

그래서 십자가를 지고 산다고 한다

사람은 한 발은 십자가에 한 발은 하늘에 걸치고 사는 존재이다

죽어서 하늘 나라 영적 세계로--->

  

나선형으로 올라가며

왔다갔다 하다가 때가 되면 업그레이드 되고

행복하다고 한다

  

자기 자신의 내적인 힘에 따라 원의 반경이 다르다

힘이 강하면 짧고 점프도 강하게 높이 뛴다(나선형)

이것이 계속 된다

사람마다 다 다르다

데레사 수녀는 7단계라 함/프란치스코 성인(한 번 점프하고 끝남)

  

올라가 그 상태에 머무는 사람은 없다

영성론에서도 up and down을 얘기함

영성론의 변화 법칙이다

  

                 ---   작성자 박용귀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