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9.06.29. 사도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대축일

dariaofs 2019. 6. 29. 05:35



교회의 기초이며 두 기둥이라 할 수 있는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의 대축일입니다. 오늘 축일을 맞이하는 모든 분들께 축하드리며 큰 축복이 함께하시길 기원합니다.


복음에서는 예수님과 베드로의 정체성이 각각 서로의 입을 통해 선포되고, 두 개의 독서는 두 사도에 대해서 각각 다룹니다.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마태 16,16) 이는 당신을 누구라고 하는지 물으시는 예수님께 시몬 베드로가 한 답변입니다.


이는 베드로 자신의 생각에서 나왔다기보다 하느님께서 알려 주신 것이지요. 그래서 예수님은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마태 16,17) 하고 그를 격려하십니다.

그리고 이어서 "너는 베드로다."(마태 16,18) 하고 새 이름을 명명해 주십니다. 반석을 뜻하는 이 이름에는 예수님께서 친히 세우실 교회의 단단한 받침돌이 되리라는 그의 정체성이 담겨 있습니다.

베드로와 예수님이 서로가 서로에게 상대의 정체성을 선포하는 순간입니다. 진정 상대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눈은 하느님께서 주신 영감에 의해서 떠지고 밝아지는 것입니다.


아무리 오래 가까이 알고 지냈다 하더라도 하느님의 개입이 없이는 영혼을 진실로 직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베드로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알려 주신 대로 고백한 것입니다. 이 신비로운 고백 안에서 움직이시는 주체는 아버지십니다.


그분이 알려 주신 바가 베드로의 입을 통해 세상에 발설되고 새겨진 것이지요. 베드로는 다만 이 어마어마한 진리가 인간의 인식체계와 언명체계를 통해 계시되도록 도구 역할을 한 것입니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마태 16,19)


이어서 예수님은 베드로가 주체적으로 해야 할 몫도 알려 주십니다. 진리를 일깨워 주시는 것은 하느님 영역이지만, 이 땅에 살면서 매고 푸는 것은 베드로의 일, 인간의 일이 될 것입니다.

제1독서에서는 야고보 사도의 죽음 이후 일어난 베드로의 체포와 투옥과 구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감옥에 갇혀 있던 베드로에게 나타난 천사는 다짜고짜 그를 깨우더니 몇 가지 지시를 합니다.


 "빨리 일어나라. ... 허리띠를 매고 신을 신어라. ... 겉옷을 입고 나를 따라라."(사도 12,7-8) 사실 여기까지는 다 베드로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의 손에서 쇠사슬이 떨어져"(사도 12,7) 나가고 "문이 앞에서 저절로 열렸다"(사도 12,10)고 합니다.


이는 베드로의 능력 밖의 일이지요. "저절로!" 인간이 이성과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을 대면할 때 이만큼 두루뭉실 쓸 수 있는 적절한 말이 또 있을까요?


우연으로, 순리로 가장해 표출되는 하느님의 힘, 능력, 섭리에 대해 무지한 우리는 흔히 "저절로"라는 말을 덧씌우고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어쩌면, 아니 실로 이 구출 현장에서 움직이시는 주체는 천사를 통한 하느님의 힘입니다.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2티모 4,7)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그동안의 자기의 선교 활동을 요약 정리하여 단순한 문장들로 표현하고 있는데, 그 중 이 말씀만큼 그의 선교 열성과 주님께 대한 헌신을 잘 나타내는 표현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다 쏟아부었던 그의 여정이 잘 담긴 표현이지요. 우리도 주님 앞에 가게 될 때 지난 삶을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질까요! "제가 할 수 있는 바는 다 했답니다, 주님." 바로 이런 의미일 테니까요.

"주님께서는 내 곁에 계시면서 나를 굳세게 해 주셨습니다."(2티모 4,17) "주님께서는 나를 ...구출하시고 ...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2티모 4,18) 그러면서도 바오로는 이 모든 일을 이루신 주체가 자신이 아니라 주님이심을 고백합니다.


자신은 다만 "나를 통하여 복음 선포가 완수되고 모든 민족들이 그것을 듣게 하시려는"(2티모 4,17) 주님의 도구였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오늘의 말씀에서, 사도 베드로, 사도 바오로의 신앙이 발휘되는 순간마다 하느님께서 주도하시는 부분이 있고 인간 편에서 해야 할 몫이 공존한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 믿는 이들의 신앙 여정에서 주도권을 쥐고 계신 하느님은 우리를 두드리고 영감을 주고 이끌고 계시는 동시에, 주님 앞에 서 있는 우리도 할 수 있는 한, 제 깜냥을 다해, 힘껏 할 바를 하면서 나아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여러분, 모든 사도와 성인들이 그러했듯, 우리는 주님 의지와 행위의 목적이 되기도 하고 그분 뜻이 이루어지게 하는 도구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주어진 각자의 몫을 행할 때 그분이 원하시는 바 안에서 방향성을 그분과 맞추고 그분에게서 눈길을 거두지 않는다면 곁길로 빠져들 위험이 줄어들 겁니다.


그분과 우리는 자기 차례와 강약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혼연일체 팀이 되어 마치 듀엣 곡을 부르듯, 협동 작품을 만들듯 신앙의 삶, 교회의 삶을 엮어가는 중입니다.

성경에는 뛰어난 사도들의 인간적 약점과 과오가 있는 그대로 서술되고 있기에 우리는 그들의 위대함과 약함을 동시에 인식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발휘할 수 있는 최대치의 위대함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고, 또 그들이 지고 있는 약함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두어지지 않는 하느님의 힘이 그들을 통해 교회를 일으키고 이끌어오셨다는 반증이 되기에 더 소중하고 힘 있는 증언이 되지요.


 사도 베드로와 사도 바오로의 삶과 신앙이 우리를 주눅들게 하기보다 "그대도 할 수 있다"고 위로하고 독려하는 힘찬 목소리로 들린다면, 그 자체가 벌써 희망입니다. 이미 희망은 벗님 안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사도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