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9.07.03. 성 토마스 사도 축일

dariaofs 2019. 7. 3. 05:30



부활하신 예수님께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요한 20,27)이라는 아름다운 고백을 남긴 성 토마스 사도의 축일입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이미 잘 알려진 이 복음 내용을 묵상하는 제 시선을 토마스 사도보다 당신께 더 집중해 머물도록 이끄셨습니다.


그래서 익히 잘 아는 토마스 사도(와 우리)의 약함에 대해서보다 토마스 사도 덕분에 만나게 된 예수님에 대해 나누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뒤 제자들이 모여있던 자리에 이미 나타나셨던 터라 당신 부활을 증명하기 위해 오늘 굳이 재차 발걸음을 하실 필요는 없었습니다.


 "토마스"가 아니었다면 말이죠. 어쩌면 이 발현은 온전히 지난 발현 때 부재했던 토마스만을 위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은 전체를 위해 소수를 건너뛰는 분이 아니시니까요.(루카 15,1-7 참조)

"그 자리에 없었던 건 네 사정이니 본 형제들에게 대충 듣고 믿어라!" 하시지 않고 토마스의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십니다. 사실 제자들을 향한 토마스의 어깃장에 가까운 항변(요한 20,25)의 중심에 자리한 건 불신이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소외감과 서운함, 안타까움, 그리고 무엇보다 참을 수 없는 그리움과 갈망. 그러니 오늘 만남의 주인공은 토마스입니다. 과연 토마스 사도의 최고의 날입니다.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요한 20,27)


예수님의 이 말씀은 토마스가 입으로 뱉었던 바람들을 되풀이하여 그를 부끄럽게 하시려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인간적 바람을 선선히 허용하시면서 더 깊은 바람으로 가닿게 하시려는 동의입니다.


그의 모든 감각에 당신 존재를 내어맡기시고 마음껏 향유하라는 관대한 사랑입니다.


특히 옆구리에 손을 넣으라 하시는 것은 사랑으로 펄떡이며 전율하는 당신 심장을 어루만지게 내주시는 것이고, 죽음의 순간 피와 물을 쏟아냈던 교회의 원천에 접근하길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요한 20,27)


이 말씀은 채근도 아니고 꾸짖음은 더욱 아닙니다. 오직 그만을 위해 나타나신 분이 고작 질책이나 하시려고 등장하셨겠습니까? 어제 풍랑 기사에서도 보았지만 논리성과 합리성으로 무장한 인간 실존에 믿음이 어디 쉬운 일입니까?


사실 의심하는 이가 어디 토마스뿐이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승천 직전에도 여전히 믿지 않는 이들의 불신과 완고한 마음을 꾸짖으셨다는 사실을 마르코 복음사가도 솔직히 전하고 있습니다.(마르 16,14)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요한 20,29)


이 말씀에서 가볍게 놀림을 섞어 다정히 권면과 축복을 하시는 예수님을 봅니다. 토마스 사도 덕분에 세기를 거쳐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이들에게 행복이 선언됩니다. 이는 선언을 넘어 축복이고 격려입니다.


믿음은 몇 차례 허용된 도전으로 울고 웃는 기록 경기도 아니고 단거리 경주도 아닙니다. 온 생애를 걸고 뛰는 장거리 여정입니다.


일생동안 삶의 구비구비에서 어느새 빛바래고 삭고 허물어져가는 믿음을 갱신하고 또 갱신하며 가는 길이 신앙의 여정이니까요.

제1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에페소인들(우리들)에게 "여러분은 더 이상 외국인도 아니고 이방인도 아니다"(에페 2,19)고 선언합니다. 믿음은 민족적 혈연적 신분적 경계를 무너뜨리는 가히 혁명적인 힘이랄 수 있습니다.


보고도 믿음을 거부했던 유다인들의 예루살렘 도성은, 보지 않았지만 믿음을 고백하는 이방인들을 통해 새롭게 건설될 새 예루살렘으로 옮아갑니다.

우리는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이고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바로 모퉁잇돌이십니다."(에페 2,20)
예수님을 보지도 만지지도 못한 이들에게 모든 믿는 이들이 곧 그리스도를 모퉁잇돌로 하는 그분의 몸입니다.


"거룩한 성전!"(에페 2,21), "하느님의 거처!"(에페 2,22) 듣기만 해도 설레고 행복한 이 표상이 곧 우리 모두이고 또 동시에 각자 자신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여러분,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겪고 체험하고 알 기회가 없었던 이들에게 당신 몸이고 거처인 우리를 드러내 주십니다.


교회는 그렇게 이어져 온 것이지요. 그리고 마치 토마스 사도에게 하셨듯이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만져 보고, 맛보라고 우리를 내어주십니다.


믿음이 부족하기야 매한가지이지만 고작 한 발짝 먼저 영의 길을 걷고 있는 무수한 "하느님의 거처"인 우리들이, 그리스도를 보지는 못했으면서도 보잘것없는 우리를 겪으면서 그리스도께 믿음을 고백하게 될 행복한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할 것입니다.

예수님을 보지 않고도, 부족한 교회를 보면서도 믿는 우리, 또 예수님을 보지 않고도 비천한 우리를 보면서도 믿을 미래의 교회,


우리 모두는 "성도들과 함께 한 시민"이고, "하느님의 한 가족"(에페 2,19)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아멘.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