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미사 독서에는 "아버지의 영"(마태 10,20), "하느님의 영"(2역대 24,20), "성령"(로마 5,5)이 공통적으로 등장하십니다. 이는 한국 최초의 사제 순교자이신 김대건 신부님을 기념하는 날에 말씀께서 우리어게 각인시키시고 싶으신 바일 겁니다.
믿지 않는 보통 사람들은 순교를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자기의 안위와 목숨'까지 버려가며 지키고 싶은 신념이 있다는 게 생소하고 어리석게 보이기까지 합니다. 더우기 '자기의 안위와 목숨'이 삶의 목적일 경우에는 더 그럴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박해와 죽음을 기정 사실로 이야기하십니다. 또 그걸 피하는 길을 알려주시기보다 그때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일러주십니다. 그러니 주님의 길에 들어선 이상 다른 선택지는 희박하다고 보면 될 것입니다.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마태 10,20)
그런데, 참으로 막막한 위기의 순간에 당신의 현존을 드러내실 이 말씀은 단지 상대를 감화시킬 음성 언어로만 발설되지 않고, "죽음"이라는 행동 언어로도 표현됩니다.
그러니 아버지의 영께서는 그 순간을 모면하도록 등장하시는 게 아니라 목숨을 바쳐서라도 지켜야 할 것이 있음을 증거하기 위해서도 활동하시는 것입니다.
"너희는 나 때문에 ... 끌려가 ... 증언할 것이다."(마태 10,18)
제자의 증언 역시 성령의 활동처럼 말뿐만 아니라 목숨을 바치는 행동으로 드러날 것입니다. 잘 알다시피 "순교"는 "증거"의 다른 말이고, 그래서 순교자를 증거자라 부르기도 합니다.
"그때에 ... 즈카르야는 하느님의 영에 사로잡혀 백성 앞에 나서서 말하였다."(2역대 24,20)
부정적 결과가 뻔히 예상되는 말을 전해야 할 때 얼마나 위축되고 두려울지 어느 정도는 압니다. "그래도" 해야 한다면, 그 중심에는 인간의 힘이 아니라 성령께서 움직이시는 것입니다.
제2독서인 로마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리라는 희망"(로마 5,2)입니다.
그런데 그는 이 희망을 자랑할 뿐 아니라 "환난도 자랑으로 여깁니다."(로마 5,3)
환난을 자랑하다니 도대체 어느 경지에 다다라야 그럴 수 있을까요? 그건 환난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환난을 통해 인내, 수양, 희망이 차례로 탄생될 것이기에 그렇다는 뜻일 겁니다.
결국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로마 5,5)에 우리는 우리가 표현할 수 있는 모든 언어를 동원하여 하느님을, 그분의 사랑을 증언합니다.
아쉽지만 사랑 없이는 목숨을 내놓는다 해도 아무 소용이 없으니까요.(1코린 13,3 참조)
종교와 신앙이 대체로 존중받는 오늘 이 시대에 우리가 말과 행동으로 증언할 내용은 우리가 받은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우리 안의 성령께서 이 사랑이 증언되도록 친히 영감을 주시고 생각을 일깨워 주시고 입을 열어 주시고 움직이게 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니 성령께서 하시도록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마태 10,22)이고, 사랑의 순교자, 사랑의 증거자라 불리울 것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여러분, 그러니 우리도 사랑의 순교자가 됩시다. 하느님 사랑 때문에, 이웃 사랑 때문에 나를 내어놓는 오늘 되시길 축원합니다.
한국교회의 성직자들이 그러한 사랑의 순교자들이 되시도록 기도하는 날입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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