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복음 대목은 예수님께서 세 번째로 수난과 부활을 예고하시고 나서 벌어진 일입니다. 예수님이 각별히 아끼셔서 중요한 순간마다 베드로와 더불어 함께 했던 야고보와 요한 형제의 어머니가 나서서 청을 드린 일화지요.
"스승님의 나라에서 저의 두 아들이 하나는 스승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마태 20,21) 앉게 해 달라는 그들 어머니의 부탁은 예수님의 사명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데서 나온 지극히 인간적인 바람입니다.
하지만 이 욕망이 그저 두 형제나 그 어머니만의 것이라고 손가락질하기 어려울 듯합니다. 메시아의 최측근이라면 그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누구나 생각하기 마련일 테니까요.
사실 예수님 같은 사람은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었기에 세속 이치에 역행하는 그분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하기란 쉽지 않았을 겁니다.
오죽하면 그분을 잡으러 갔던 경비병들도 그냥 돌아와 "그분처럼 말하는 사람은 지금까지 하나도 없었습니다."(요한 7,46)라고 보고하다가 바리사이들에게 욕을 먹었겠습니까!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마태 20,22) 예수님께서 물으십니다. 이미 제자들의 마음을 아시는 그분은 질책이나 비난을 섞지 않고 그저 담백하게 물으십니다.
당신이 받으셔야 할 잔, 피와 죽음의 잔은 어쩌면 당신께도 녹록치 않은 무게이기에(마태 26,39 참조) 제자들은 말해 무엇하겠습니까만, 제자들은 뭣도 모르고 이렇게 답을 하지요. "할 수 있습니다."(마태 20,22) 그리고 언젠가는, 결국은 그리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너희는 내 잔을 마실 것이다."(마태 20,23)라고 확인해 주실 때, 아직 천지분간 못하는 제자들에 대해 그분 안에서 일어나는 짠-한 마음이 읽힙니다.
주님의 오심은 그 목적성이 분명합니다. 사랑 때문에 섬기러, 몸값을 치르러, 죽으러 오신 것입니다. 이 사랑은 하느님이신 분의 극적인 하강과 비움의 이유입니다. 그리고 이 방향성, 목적성은 그분을 따라나선 제자들을 피해가지 않습니다.
제자가 스승의 뒤를 따르는 것은 당연하니까요. 그래서 비록 아직까지는 깨닫지 못했더라도 이 호된 의무가 사랑이 되기까지 기다려 주어야 합니다. 제자에게 다른 길은 없습니다.
제1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부족한 우리가 예수님의 뒤를 따를 수 있는 비결을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보물을 질그릇 속에 지니고 있습니다. 그 엄청난 힘은 하느님의 것으로 우리에게서 나오는 힘이 아님을 보여 주시려는 것입니다."(2코린 4,7)
아직 제자들의 상태는 인간적 야망과 탐욕으로 빚은 질그릇에 불과할 겁니다. 손으로 살짝 밀어도 바닥에 툭 떨어져 산산이 부서지고 마는 질그릇 말입니다. 하지만 그 안에 보물이 담겨 있기에 무한한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 보물이란, 모든 사람 안에 깃든 하느님의 모상성, 하느님의 은총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승천 이후 제자들이 온갖 박해와 환난을 겪으면서도 절망하지 않고 세상에 예수님의 생명을 약동하게 만든 하느님의 힘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여러분, 질그릇이 투박하고 약하고 거칠어 더 질그릇 다울수록 그 안의 보물은 더 빛을 발할 것입니다. 질그릇의 약함, 모자람, 부족함은 하느님의 영광을 더 확연히 드러나게 할 터이니 괜찮습니다.
그래서 아직까지 우왕좌왕하는 제자들에게 공감과 연민의 마음이 드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탓하지 않으셨듯 우리도 그들을 비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희망이 되어주니 감사할 뿐입니다.
제자들은 자기의 인간적 힘이 아니라 하느님의 힘으로 십자가를 지고 순교의 영예를 얻기까지 기꺼이 스승의 길을 따를 것이고 스승의 잔을 함께 마실 것입니다.
"그들은 주님의 잔을 마시고 하느님의 벗이 되었네."(영성체송) 결국 그들은 주님의 오른쪽 자리, 왼쪽 자리를 차지할 것입니다. 그분과 가장 가까운 자리, 지나온 닮은 꼴 궤적을 친밀히 공유하며 함께 울고 웃는 사랑의 자리입니다.
종이 되어 섬기고 대신 죽는 사명은 세상 명예가 손짓하는 꽃길에 황금잔은 분명 아니지만, 님이 가신 길이고 그분이 마신 잔이니 더 바랄 것 없습니다. 사도 성 야고보, 우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아멘.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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