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9.07.26.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부모 성 요아킴과 성녀 안나 기념일

dariaofs 2019. 7. 26. 05:36



예수님께서 일전에 말씀하신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풀이해 주십니다. "씨"는 곧 "하늘 나라에 관한 말씀"(마태 13,19)이고, 씨가 뿌려진 땅이란 말씀을 들은 이의 "마음"(마태 13,19)입니다.


씨가 뿌려진 "좋은 땅"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마태 13,23) 이의 마음이고, "길"은 "하늘 나라에 관한 말을 듣고 깨닫지 못하는"(마태 13,19) 이의 마음이지요.

"돌밭"은 "말씀을 들으면 기쁘게 받지만 뿌리가 없어서 오래가지 못하고"(마태 13,20-21), "가시덤불"은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걱정과 유혹"(마태 13,22)으로 말씀이 질식되니,


말씀을 그저 듣고, 기쁘게 받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걸 알겠습니다. 관건은 그 말씀을 '깨닫느냐, 깨닫지 못하느냐' 입니다.

그런데 깨달음은 인간의 자력만으로는 불가능한, 은총의 개입이 반드시 필요한 영역입니다. 지식이 많다고, 학위나 자격증이 있다고 쉬이 깨닫는 게 아닙니다.


학문적으로 많이 안다면 전문 이론과 자료에 접근이 용이하기는 하겠지만, 깨달음은 전 존재적인 사건이기에 머리만으로 도달할 수 없습니다.


진정한 깨달음은 인간이 가진 모든 조건을 총체적으로 건드리시고 뒤흔드시는 하느님께로부터 오기 때문입니다.

제1독서는 십계명 이야기입니다. 시나이 산에 도착한 이스라엘 자손이 시나이 산 앞 광야에 진을 치고는 하느님 말씀에 따라 계약 체결을 준비합니다.


셋째 날 아침, 드디어 하느님께서 시나이 산에 나타나셔서 그들이 지켜야 할 계명들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느님 백성으로서 지켜야 하는 이 계명들을 "왜 지켜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그 답은, "너에게는 나 말고 다른 신이 있어서는 안 된다"(탈출 20,1)는 첫째 계명에 있을 겁니다.


여기에서 하느님과의 관계가 출발하고, 그 관계성에서 지켜야 할 의무와 책임이 도출되기 때문입니다. "너는 그것들에게 경배하거나 그것들을 섬기지 못한다."(탈출 20,5)


우리는 우상숭배를 금지하시는 이 말씀에서 역으로 우리가 하느님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배웁니다. 즉 "경배"와 "섬김"은 오직 하느님께만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십계명은 꼭 하느님 백성이나 그리스도인이 아니어도 종교, 민족, 직업 등을 막론하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마땅히 준수해야 하는 덕목도 포함합니다.


생명을 지닌 존재들 간의 질서와 존중을 위해서는 보편적으로 지켜야 하는 것이 있기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 근간에도 역시 모든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이 계십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과 하느님 사랑은 불가분의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소수의 예외적 경우를 제외하고 규칙이나 규율을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없지요. 십계명 앞에서도 그럴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 앞에 나갈 때, 주님께 대한 사랑과 그분을 위해 헌신한 기억을 떠올리기보다, 내가 뭘 잘못했는지 기억하고 쪼그라드는 일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계명이 사랑 받고 있음을 확인하고 더 사랑하기 위해 살피는 디딤돌로서가 아니라, 부족한 항목 체크 리스트 정도로 전락해 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안타깝게도 아직 우리는 계명 앞에서 그렇게 경직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독서에 화답하는 시편에서 주님의 법을 가리키거나 수식하는 말씀들에 머무르다보니 법 앞에서 경직되었던 마음이 활짝 개이는 느낌입니다.


 "완전, 생기, 참됨, 깨우침, 올바름, 기쁨, 밝음, 맑음, 경외함, 순수, 영원, 진실, 의로움, 값짐, 감미로움..." 오늘 주님의 계명 앞에서 특히 더 생기 넘치는 아름다운 말씀들을 엮어 노래하는 시편 저자의 목소리를 들으며,


'그렇지, 계명은 사랑이지! 사랑하니까 주시는 거고, 사랑하라고 주시는 거지' 하는 생각이 올라옵니다. 계명은 굴레가 아니라 자유니까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하늘 나라의 복음은 이 계명들의 연장이고 적용일 터인데, 깨닫느냐 깨닫지 못하느냐의 차이는 꽤 큽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말씀을 듣고 깨달을 수 있을까요? 그 답 역시 오늘의 말씀 안에 있습니다.

"바르고 착한 마음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간직하여 인내로 열매를 맺는 사람들은 행복하여라."(복음 환호송) "바르고 착한 마음, 간직(머무름), 인내." 귀로 듣고 마음으로 듣고 온 존재로 들은 말씀은 이 토양에서 열매를 맺습니다.


말씀하시는 분과 말씀이신 분을 사랑하고 신뢰하는 선량하고 순수한 마음과, 그 말씀을 깊이 간직하고 머물러 말씀이신 분에게 물들어가는 시간, 그리고 어떤 도전이 와도 말씀과의 밀회를 소홀히 하거나 포기하지 않는 인내.

사랑하는 벗님 여러분, 우리가 설령 많이 부족하더라도 희망을 놓지 않고 말씀을 끌어 안고 있다면, 비록 가난한 죄인에 불과한 영혼이지만 하느님께서는 기꺼이 말씀을, 당신을 깨닫게 해 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곧 일치의 신비입니다. 말씀 묵상을 사랑하는 벗님을 축복합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