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9.08.04. 연중 제18주일 - 오상선 바오로 신부

dariaofs 2019. 8. 4. 05:15



오늘 미사의 말씀들은, 지상 재물의 주인이 누구인가 우리에게 묻습니다.


이 재물에는 사람의 "생명"을 포함해 "지혜와, 지식, 재주"(코헬 2,21) "노고, 노심"(코헬 2,22), "소출, 곡식, 재물, 재산"(루카 12,16.18) 등 사람이 한 세상을 살면서 소유하고 누리고 처분하는 모든 것이 포함됩니다.

일화의 발단은 공정한 유산 배분에 도움을 받고자 예수님을 찾아온 어떤 사람의 청에서 시작됩니다.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관이나 중재인으로 세웠다는 말이냐?"(루카 12,14)


이 "사람아"라는 호칭으로 예수님은 재물의 중재를 청하는 사람과 거리를 유지하시는 한편, 누구나 포함될 수 있는 보편적 인간, 우리 모두를 대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시려는 것 같습니다.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루카 12,15)


고도로 발달한 의학과 과학의 도움으로 재산과 생명의 유지 및 연장의 상관 관계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밀접하다고 보여집니다만, 그래도 이 말씀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걸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생물학적인 육신의 생명과, 영원한 생명 모두를 가리키는 이 "생명"은, 믿는 이에게나 믿지 않는 이에게나, 아직 아니 어쩌면 영원히 인간의 손아귀에 들어올 수 없는 조물주의 권한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재산과 구원은 어떤 관계에 있을까요? 부유하다고 모두 구원되거나 또 구원에서 제외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가난하다고 모두 구원되거나 구원에서 제외되는 것이 아니지요.


재물이건 능력이건 지식이건, 지닌 모든 것의 유무와 정도가 구원의 척도는 아닙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어떤 부유한 사람의 비유를 들어 그 답을 들려 주십니다.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루카 12,20)


제게는 이 말씀이 오늘의 키워드로 다가오십니다. "되찾다"는 표현에는 생명의 소유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명확히 들어 있습니다.


많은 소출로 뿌듯해서 흥분한 부자는 그것을 실컷 누려보지도 못한 채 "오늘 밤에"(루카 12,20) 주님께 생명을 되돌려 드리고 그분 앞에 불려가야 합니다.


한 치 앞도 모르는 인간 실존의 전형일 뿐 무슨 징벌의 의미는 결단코 아닐 겁니다. 다만 그에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자기가 획득한 재물, 재산이 자기 힘의 소산이라 착각하고 자기만을 위해 쌓아두려한 인식의 오류와 이기적인 탐욕입니다.


이쯤 되면 그에게 재산을 믿고 맡기신 주님 입장에서는 착복과 다름 없을 겁니다. 재산은 주님께서 서로의 구원을 위해 맡겨주신 것이니만큼 항상 나눔을 향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한 인간이 생명을 누리느냐 누리지 못하느냐의 차이는, 재산(능력)이 많든 적든 상관 없습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의 주권을 온전히 그분께 드리고 경외와 감사로 살아가는 삶이 곧 생명이니까요.

제1독서인 코헬렛은 이스라엘 현자의 입을 빌어 우리에게 도전장을 던집니다.


"허무로다 허무! 코헬렛이 말한다.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코헬 1,2)


이는 아무것도, 어떤 노력도, 어떤 관계도 다 소용없다는 비관적 허무주의가 아닐 겁니다. 하느님 없이 허무라는 뜻입니다. 우리 생명의 원천이시고 만물을 소유하신 하느님과의 관계성을 의식하며 살지 않는 모든 인간과, 그의 노고가 허무라는 뜻일 겁니다.

"그의 나날은 근심이요. 그의 일은 걱정이며 밤에도 그의 마음은 쉴 줄 모르니, 이 또한 허무이다."(코헬 2,22)


하느님 없이 추구하고 소유하고 성취하는 모든 과정과 결과물은 태양이 얼굴을 내미는 즉시 스러져 버리는 이슬과 같습니다. 그런데도 "나"의 힘만으로 이룬다고 착각하고 숨가쁘게 달리다 보니, 근심과 걱정과 불면은 사라질 줄 모르지요.

"아침에 당신 자애로 저희를 채워 주소서. ... 주 하느님의 어지심을 저희 위에 내리소서. 저희 손이 하는 일에 힘을 주소서."(화답송)


이에 시편 저자는 이 세상에서 우리가 이루는 것처럼 보이는 업적들이 실은 주님의 자애와 어지심, 힘에서 온다고 노래합니다.

그리고 사도 바오로도 제2독서에서 이렇게 권고하지요.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것은 생각하지 마십시오."(콜로 3,2)
그는 "옛 인간을 그 행실과 함께 벗어 버리고 새 인간을 입은"(콜로 3,9-10) 우리에게 이 질서를 촉구합니다. 자칫 세속(재물, 권력, 명예)에 매여 거기에 몰두하며 자신하는 사이 하느님 사정에는 관심도 열의도 차츰 옅어지게 마련이기에 그렇습니다.


그가 말하는 "참지식"(콜로 3,10)은 인간적으로 죽어라 노력해서 쌓아 올린 "지혜와 지식"(코헬 2,21)의 아슬아슬한 탑과 대비됩니다. "참지식"은 "창조하신 분의 모상에 따라 끊임없이 새로워지면서 이르게"(콜로 3,10) 되는 은총이니까요.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루카 12,21)


예수님께서 비유를 마무리하시면서 어리석은 부자를 이렇게 표현하십니다. 그런데 역으로 이 말씀 안에는 우리에게 바라시는 바가 들어 있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자기를 위해서는 재화를 포기하면서 하느님 앞에서 부유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시는 것이지요. 같은 하느님이시면서 모든 걸 비우고 종의 신분을 취하신 당신이 그 길의 선두에 서 계십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복음 환호송)


사랑하는 빗님 여러분, 오늘 말씀의 초대에 마음이 홀가분하고 행복하다면 생명의 길에 이미 들어섰다는 증거이니 함께 기뻐합시다. 홀가분하고 행복한 마음이 되길 바란다면 오늘 이 도전장을 깊이 숙고하고 주님께 길을 여쭈어 봅시다.


이미 새 인간을 입은 우리에겐 모든 게 가능합니다. 오늘, 나는 무엇을 추구하고 있는지, 어떤 사람이 되고싶은지 한번 숙고해 봅시다.


재물이 아니라 하느님을 추구하고, 자기를 위해서는 재화를 포기하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한 사람이 되고싶어 하시는 벗님을 축복합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