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9.08.05. 연중 제18주간 월요일

dariaofs 2019. 8. 5. 05:54



오늘 미사의 말씀은 먹는 이야기들로 가득 채워졌습니다. 당장 육신의 욕구를 채워 줄 만나(제1독서), 적은 양으로 수많은 군중을 먹이신 예수님의 빵의 기적(복음),


그리고 빵만으로 살 수 없는 인간에게 내리신 말씀이라는 양식(복음 환호송), 하늘에서 마련하신 빵, 성체(영성체송)까지 인간의 영육의 목숨을 위해 하느님께서 마련해 주시는 모든 양식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제1독서는 다소 험악한 분의기로 시작됩니다. 척박한 광야의 떠돌이 생활에 지친 이스라엘 자손들이 불평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불평은 진실보다 왜곡과 비약이 가득합니다.

"우리가 이집트 땅에서 공짜로 먹던 ...이 생각나는구나!"(민수 11,5)


그들은 이집트에서 노예로, 종으로 살았기에 당연히 대가 없이 "공짜로" 노동력을 착취 당했지요. 거기서 얻어 먹었던 음식은 노동을 위한 생존적 지급분이었을 뿐 그들의 미각이나 취향, 건강을 존중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마치 그 모두를 "공짜로" 대접받아 누린 듯 과거를 각색하고 있습니다. 이 왜곡은 불평의 강도를 높이면서 자기 주장을 정당화할 수는 있지만 스스로를 진실에서 더 멀어지게 만들고, 스스로의 빈곤감과 박탈감을 가중시킬 뿐이지요.

불평의 전염성이 얼마나 큰지 이미 불평은 씨족끼리 모여 우는 소리를 할 만큼 퍼졌습니다. 이제는, 그동안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시달릴 대로 시달린 모세까지 하느님께 달려가 불평을 터뜨립니다.


"어찌하여 제가 당신 눈 밖에 나서, 이 온 백성을 저에게 짐으로 지우십니까?"(민수 11,11)

아, 그런데 슬프게도, 모세의 항변 안에도 왜곡이 끼어들었습니다. 본인이 주님께 가장 친밀한 친구 같은 존재임을 모르지 않으면서 "눈 밖에 나서"라고 단서를 붙인 것입니다. 홧김에, 너무 힘들어서 내뱉은 말임을 알긴 하지만, 모세 자신에게도 하느님께도 너무나 아플 표현입니다.

"저에게는 너무나도 무겁습니다."(민수 11,14)


모세에게 연민이 느껴집니다. 얼마나 벅차고 외로웠을지 감히 짐작이 갑니다. 하느님과 각별한 사이긴 했지만 그 역시 오롯한 인간일 뿐이니까요. 제발 죽여 달라는 애원도 예사로 들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의 고뇌에 백 번 공감하면서도 이제는 되물릴 수 없이 한 운명 공동체가 되어 버린 이스라엘 자손들을 "짐"이라 부르는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립니다.

복음도 세례자 요한의 죽음을 언급하며 무겁게 시작됩니다.
"세례자 요한의 죽음에 관한 소식을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배를 타시고 따로 외딴 곳으로 물러가셨다."(마태 14,13)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의 친척이기도 하고, 신뢰하는 예언자며, 같은 곳을 바라보는 도반이기도 하고, 서로를 알아 봐 준 동지입니다.


그러니 그런 그의 죽음이 슬프셨을 것이고, 또 시시각각 당신을 향해 다가오는 예언자의 운명을 견인하는 듯 느끼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일단 "외딴곳"을 향하십니다. 그곳에서 하느님과 마주해 사랑에 머무르며 위로와 힘을 받고 싶으셨을 것 같습니다. 지금 예수님께는 아버지가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이마저도 녹록치 않게 됩니다. 그 소문을 듣고 군중이 그분을 따라나섰으니까요.


"예수님께서는 ...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마태 14,14)


예수님의 발목을 잡은 건 마음의 연민, 즉 연민의 사랑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원하신 위로는 잠시 미뤄두시고 그들과 머물며 병자들을 고쳐 주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모세를 완성하시는 예수님을 봅니다. 모세가 애써 받아들인 소명의 의무감과 자기 통제 범위를 벗어나는 동족의 일탈이 안타깝게도 그로 하여금 동족을 "무거운 짐"으로 여기게 한 것 같습니다.


반면 사랑, 자기를 버리는 지극한 사랑에서 시작된 예수님의 오심은 인류 구원을 위해 모든 걸 내려놓으셨기에, 그분 눈에는 끈질기게 따라붙는 군중이 짐이 아니라 가여운 어린 양, 도움이 필요한 작은 양떼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무거워하지 않으시고 (제자들처럼) 귀찮게 여기지 않으시고 불쌍히 보시며 먼저 해결책을 찾으십니다. 기꺼이 말입니다!

"스스로" 먹을 것을 찾게 하자는 제자들에게 "너희"가 주라고 뚱딴지 같은 요구를 던지신 예수님. 그분은 "하늘을 우러러 찬미의 제사를"(마태 14,19) 드리시는 것으로 모든 인류의 필요를 하느님 발 앞에 펼쳐 놓으시고 아버지께서 직접 개입하시라고 초대하십니다.


그리고 빵을 "제자들"에게 주시지요. 그 빵은 곧 "군중"에게 전해져 그들을 배불리고 원기를 회복시킵니다.

스스로(군중)>너희(제자들)>예수님 손>하늘(아버지)로 이어지는 이 상승의 흐름은 다시 예수님>제자들>군중으로 이어지는 하강의 흐름을 타고 땅 위에 내립니다. 육적인 음식이 영혼을 배불릴 선물, 곧 은총으로 변모되는 과정입니다.

마지막으로 복음 사가는, 오천명을 훨씬 넘는 군중 모두 배불리 먹고도 "남은 조각을 모으니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다"(마태 14,20)고 덧붙입니다. 이 몫, 완전한 숫자 열둘로 남겨진 이 몫은 바로 미래 세대인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내 백성에게 나는 기름진 참밀을 먹이고 바위틈의 석청으로 배부르게 하리라."(화답송)


기름진 참밀, 바위틈의 석청은 최고의 음식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여러분, 살아있는 빵 진리이신 예수님, 바위이신 하느님께 맺힌 석꿀인 성자 예수님은 모든 인류를 살리고 위로하고 일으키는 진정한 빵이십니다.


말씀으로, 성체로 오시는 예수님이야말로 이 땅에서 광야살이로 지친 우리의 원기를 돋우고 생명을 수혈할 진정한 양식이십니다.

오늘 자식들 때문에 지쳐 힘들어하는 한 어머니를 생각합니다.
오늘 사업 때문에 지쳐 힘들어하는 한 아버지를 생각합니다.


오늘 교회와 공동체의 수많은 문제들로 지쳐 힘들어하는 교황님과 교회의 장상들을 생각합니다.
오늘 영적인 양식을 배불리 먹이려 온갖 힘을 다 쏟아부어 지친 예수님같은 그런 착한 목자를 생각합니다.

모두 참 생명의 말씀이요 빵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원기를 회복하시도록 기도합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