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독서와 복음은 시대적 배경이 크게 차이 나지만 공통적으로 "이스라엘"과 "가나안" 사이의 긴장을 담고 있습니다. 곧 야훼 신앙과 가나안 이교 신앙 사이의 간극에서 오는 갈등입니다.
"예수님께서 티로와 시돈 지방으로 물러가셨다. 그런데 그 고장에서 어떤 가나안 부인이 나와..."(마태 15,21-22)
티로와 시돈은 이교지역으로, 예수님께서 회개하지 않는 이스라엘 지역, 코라진과 벳사이다와 카파르나움을 꾸짖으실 때 언급하신 고을들이지요.(마태 11,20-24 참조)
거기에서 한 가나안 부인이 등장합니다. 그녀는 호되게 마귀가 들린 딸을 위해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마태 15,22)
다윗은 가나안 여러 민족을 무찌르고 이스라엘의 영토와 왕정을 굳힌 임금입니다. 그런 다윗의 후손에게 가나안의 한 여인이 희망을 걸고 자비를 청합니다. 그녀는 자기들의 신 바알에게 딸을 치유할 힘이 없다는 걸 깨달은 것 같습니다.
"나는 오직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파견되었을 뿐이다."(마태 15,24)
그녀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은 우리가 아는 착한 목자의 답이라 보기엔 상당히 까칠합니다.
설마 그럴 리는 없겠지만 요즘 문제가 되는 자국(자민족) 이기주의, 민족 차별주의와 비슷한 냄새마저 풍깁니다. 주님의 자비는 경계가 없는데 왜 예수님은 이런 말씀을 하시는 걸까요?
"그러나 그 여자는 예수님께 와 엎드려 절하며..."(마태 15,25)
말을 못 알아듣는 게 아닐텐데 그녀는 거절 비슷한 완곡한 표현에도 굴하지 않고 예수님께 다시 청합니다. 딸의 구원을 위해 못 할 것이 없는, 참으로 절박한 어머니의 심정이 느껴지지요.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마태 15,26)
예수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의 수위가 점점 높아집니다. 급기야 그녀와 그녀의 딸, 곧 이교도인들은 강아지에 비유하신 겁니다. 그녀로선 모멸감과 분노를 충분히 느낄만한 상황이 전개되어 갑니다.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마태 15,27)
그런데 그녀는 '그래도' 무너지지 않고 재차 청을 드립니다. 먼저 온순히 동의하며 충분히 예수님을 존중해 드린 후, 계속 졸라댑니다.
"주인!" 이 안에 담긴 여인의 진정성이 결정적 전환을 이루어냅니다. 사실 가나안 사람들은 바알 신앙을 가지고 있었지요. 바알은 농경 문화 안에서 풍요와 다산을 주관하는 신으로 "바알"이라는 이름 자체에 "주인"이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그런 그녀가 예수님께서 선포하시는 이스라엘의 하느님, 비유 속 "자녀"들의 아버지를 "주인"이라 먼저 고백한 것입니다.
그녀는 들리는 소문에 꽤 솜씨가 좋다는 유다인 치료사를 한 번 떠볼 목적으로 온 게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자기네 신(주인) 바알을 능가하는 진정한 신의 이름을 믿고 그 이름에 희망을 걸고 예수님께 나아온 것입니다.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마태 15,28)
예수님의 꾸밈없는 감탄이 들리는 듯합니다. 그분은 절박한 이교 여인 앞에서 터져나오는 탄성과 치하의 속내를 감추지 않으십니다. 예수님께서 여인의 믿음을 알아 주십니다.
이 말씀 안에는 그녀의 딸은 물론 여인의 긴장된 마음을 녹여 주는 순수한 사랑이 철철 흐릅니다. 어쩌면 거절과 반복된 간구로 숨가쁘게 오간 대화는 제자들과 군중, 그리고 오늘의 우리를 위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제1독서는 약속의 땅에 진입하기 전 주님의 명령으로 미리 가나안 땅을 정찰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각 지파에서 차출되어 사십 일간 정찰을 다녀온 "수장"들의 보고는 매우 비관적이고 회의적입니다. 세상의 언어로는 "긍정성이 결여된 시각"이고, 신앙의 언어로는 "믿음이 없는 시각"일 겁니다.
"어서 올라가 그 땅을 차지합시다. 우리는 반드시 해낼 수 있습니다."(민수 13,30)
다행히 모두가 그런 게 아니어서 칼렙과 여호수아가 백성을 독려하지만, 역부족입니다. 이미 가나안의 과일, 가나안의 사람들, 가나안의 신들에게 주눅이 들어버린 백성은 "소리 높여 아우성치고 밤새 통곡"(민수 14,1 참조)합니다.
어둠에 질식된 그들은 빛을 향해 숨을 들이쉬려 하지 않고 더 깊고 짙은 어둠을 택해 매몰되어 갑니다. 어둠은 전염성이 크기에, 집단 의식도 한몫 했을 거라 짐작됩니다.
최고로 좋은 선물을 준비해 놓으시고 백성이 기뻐할 모습을 기대하시며 한껏 부풀어 계셨을 하느님께서 많이 실망하십니다.
당신의 동행과 권능을 싸그리 무시해 버리고 스스로 구렁에 들어앉은 백성들의 불신과 패배주의로 받으신 상처는 참혹합니다.
그래서 아프고 슬픈 말씀을 던지시지요."너희가 내 귀에 대고 한 말에 따라 내가 반드시 너희에게 그대로 해 주겠다."(민수 14,28)
사실 이 말씀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이 여인을 치하하며 하신 말씀,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와 같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바라는 내용과 결과는 천양지차였지요. 불신의 악담을 퍼붓던 이스라엘 자손들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사십 년을 떠돌다 죽어갈 것이고, 믿음으로 매달렸던 여인은 바라던 딸의 치유와 구원을 얻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나안의 힘과 풍요에 지레 겁을 먹고, 그 땅을 약속하신 하느님께 신뢰를 드리지 못한 이스라엘 자손과, 당신 손수 뽑으신 백성에게 무시당하신 하느님의 관계는, 가나안 여인의 믿음과 겸손을 기꺼이 받으시고 사랑의 뜻을 이루신 예수님에게서 회복됩니다.
번번이 가나안의 우상에게 당신 백성의 마음을 갈취당하셨던 하느님의 상처는, 스스로 아버지 하느님은 "주인"이라 부르는 가나안 여인의 마음을 통해 아물었으리라 희망합니다.
사랑하는 벗님 여러분, 우리가 믿는다면, 주님 안에서 믿는다면 희망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믿고 희망하는 바는, 주님 "귀에 대고 한 말을 반드시 그대로 해 주시는" 그분의 능력으로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그러니 우리의 생각과 바람과 기도가 어떠해야 할지 오늘의 말씀들은 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마태 15,27)
"우리는 반드시 해낼 수 있습니다."(민수 13,30)
어떠한 처지에서도 이렇게 고백하는 벗님을 축복합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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