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9.08.08. 성 도미니코 사제 기념일

dariaofs 2019. 8. 8. 05:12



성 도미니코 사제 기념일인 오늘 미사 말씀들에서는 믿음에 따른 극적인 희비가 드러납니다.

먼저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당신을 누구라 하는지, 또 너희들은 누구라" 하는지 물으시지요.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마태 16,16)


이때 베드로는 하느님께서 주신 영감에 힘입어 예수님의 정체성을 고백하고 엄청난 칭찬을 듣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라는 반석 위에 당신 교회를 세우실 것이고, 또 베드로는 하늘 나라의 열쇠까지 받지요. 사람으로서 최고의 영예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때부터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반드시 예루살렘에 가시어 ...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흗날에 되살아나셔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밝히기 시작하셨다."(마태 16,21)


"그때부터"는 제자들이 비로소 예수님의 신원을 어렴풋하게나마 깨달은 순간부터를 가리킬 겁니다.


이제 그들은 자기들이 따라나선 스승이 온 백성의 속죄를 위한 희생 제사에 바쳐질 하느님의 어린양으로서의 소명을 지닌 존재임을 직면해야 하는 순간을 맞이한 겁니다.

이에 베드로는 예수님을 강하게 만류하다 호되게 꾸지람을 듣습니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마태 16,23)

교회의 뿌리가 될 반석이 순식간에 걸림돌로 전락합니다.


전자는 하느님 백성을 굳건히 지탱하고 후자는 넘어뜨리거나 휘청이게 만들지요. '반석이 되느냐, 걸림돌이 되느냐'의 기준은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느냐, 사람의 일을 생각하느냐'의 차이라고 예수님께서 명백히 밝히십니다.


그리고 사람의 일에 집착하는 자체가 사탄의 유혹이라는 것도 알려 주십니다. 사탄이 추구하는 바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바는 결코 병립할 수 없으니까요.

제1독서는 광야에서 벌어진 극적인 일화를 전합니다.


"공동체에게 마실 물이 없었다."(민수 20,2)


커다란 위기가 닥쳤습니다. 만나에 질렸다든가 고기가 먹고 싶다든가 하는 취향적 불평과는 차원이 다른, 그야말로 생존이 달린 상황에 맞닥뜨린 것입니다.


백성은 모세와 아론에게 몰려가 마실 물이 없다면서 또 다시 죽음을 들먹이며 왜곡 가득한 후회와 불평을 퍼붓습니다.

백성과 실랑이하는 대신 곧장 주님 앞에 나아가 땅에 엎드린 모세와 아론에게 주님께서 친히 해결책을 주십니다. 이에 모세는 손을 들어 지팡이로 바위를 쳐서 많은 물이 터져 나오게 합니다.

"공동체와 그들의 가축이 물을 마셨다."(민수 20,11)


그런데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죽음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 생명의 물로 모두가 환호하고 흡족해할 그때, 주님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는 청천벽력같은 선고를 내리십니다.


이유는, "너희가 나를 믿지 않아 이스라엘 자손들이 보는 앞에서 나의 거룩함을 드러내지 않았다"(민수 20,12)는 것입니다.

정확히 모세의 어떤 말과 태도가 문제였는지 성경저자는 구체적 설명을 극도로 절제합니다.


분명 바위더러 "물을 내라"고 명령하라 하셨는데 백성에게 "이 반항자들아 들어라" 하며 대상을 바꾸어서인지, "우리가 물을 나오게 해주랴?" 하며 주님이 아닌 자기들이 마치 기적의 주체인 듯 굴어서인지, 바위를 딱 한 번 치면 될 걸, 두 번이나 쳐서인지...

다시 없을 만큼 주님과 친구처럼 친밀했던 모세에게 내리신 형벌이 너무 냉정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우리가 믿고 사랑하는 하느님께 반드시 그럴 이유가 충분히 있으셨으리라는 것만은 확실하기에 원인 탐색을 그치고 그저 믿음에 기대기로 합니다.


정말로 무엇이 진짜 문제였을지 그 답은, 어쩌면 이 말씀에 매달리는 우리 각자에게 달려 있을지도 모릅니다. 사람은 종종 자기 체험에 비추어 상선벌악을 인식하기 마련이니까요.

오늘 우리는 예수님과 베드로, 하느님과 모세 사이에 오간 희열과 추락을 동시에 맛보았습니다. 목숨까지 내줄 만큼 사랑하고 아끼는 존재임에 틀림없지만, 하느님께서 일깨워 주시는 대로 사고하고 행동하지 않을 때 치러야 하는 대가는 우리를 긴장시키기에 충분하지요.

"너희가 나를 믿지 않아 ... 나의 거룩함을 드러내지 않았다."(민수 20,12)는 말씀에서 우리는 믿음과 거룩함의 상관 관계를 봅니다. 사랑하는 벗님 여러분, 주님은 우리에게 대단한 능력이나 지혜를 바라시기보다 믿음을 원하십니다.


약하고 부족한 죄인의 보잘것없는 믿음이 감히 그분의 거룩함을 드러낼 수 있다니 놀랍지요.


모세와 베드로의 롤러코스터같은 하루도 이 믿음의 시소타기였으니, 벗님도 스스로에게 이루지도 못할 너무 크고 대단하고 완전한 걸 기대하기보다, 지금 가난하고 초라한 몰골로나마 우선 믿음을 부여잡는 게 좋겠습니다.


믿는 나를 통해 세상에 드러날 주님의 거룩함, 생각만 해도 벅차고 행복하지요. 그러고 있다면 벗님은 이미 반석이고 약속의 땅 안에 들어있는 것입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